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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과 최순실, 힘의 독점과 폭력사회평화갈등 이야기 /평화 2016. 10. 26. 15:40
힘의 독점과 폭력사회
제 정신을 가진 사람들은 한 마디로 '멘붕' 상태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보지 못한 일이 현실이 됐으니 말이다. 나 자신도 이 멘붕 상태를 정리하지 않으면 내내 머리가 복잡할 것 같다. 분노와 자괴감, 뉴스 집착증과 과다 정보 수용에 따른 수면장애, 그리고 헛웃음과 무의식 중에 '미친...'이라는 말을 자주 내뱉는 이상 증상을 겪고 있다. 이 정도면 내가 피폐해지는 것을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냉정한 나름의 분석과 정리가 필요하다. 그래서 내 전공인 평화학의 시각으로 이번 일을 좀 정리해보기로 했다.
사람들은 멘붕 상태지만 여전히 대통령은 국민들의 분노와 자괴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국민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자기 입장에서 사건을 해석하고 변명을 달고 있으니 말이다. 사람들이 분노하는 가장 큰 이유는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국민이 정당한 절차를 거쳐 부여한 공식 권력을 사적 친분이 있는 사람과 비공식적으로 공유하고 그가 그 권력을 맘껏 휘두르게 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국민 모두가 수년 동안 우롱당하는 일이 생겼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는 더 근본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 적어도 내 생각은 그렇다. 그것은 지난 수십 년 동안 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계산할 수 없는 노력으로 진전시킨 민주주의가 자신의 책임과 역할을 인식하지 못하고 공사도 구분 못하는 대통령과 욕망덩어리인 한 인간의 합작으로 치명타를 입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어떤 변명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일인데 거기에 허접하고 성의 없는 변명을 들이댔으니 분노와 자괴감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사람들이 분노와 자괴감을 느끼는 또 다른 이유는 이 사건이 힘의 독점을 보여주는 '끝판 왕'이기 때문이다. 온갖 사회문제가 생기고 악화되는 가장 큰 이유는 다양한 분야에서 결정과 실행을 위한 공동의 힘을 소수가 독점하기 때문이다. 전체 사회의 힘은 다양한 사회 영역과 구성원들이 함께 만들고 행사할 때 바람직한 사회를 만드는데 기여하고 구성원들의 필요를 충족시키는데 이용될 수 있다. 그런데 힘을 소수가 독점하면 폭력적 사회구조가 만들어진다. 이것은 평화학에서 말하는 구조적 폭력의 개념과 맞닿아 있다. 폭력적 사회구조가 생기고 유지되는 이유는 사회 구성원들 사이에 불균등하게 힘이 분배되기 때문이다. 불균등한 힘의 분배는 불균등한 자원의 분배로 이어지고 마침내 사회적 부정의를 야기한다. 국가의 부를 다 같이 만들었는데 상위 10%가 40% 이상의 국가 부를 차지하고, 소수 정치인들과 기업인들이 자기 이익을 위해 사회 구조와 법을 재단하고, 권력을 독점한 사람들로부터 콩고물 권력을 나눠받은 사람들이 다시 자기 이익을 위해 자기 조직과 단체 안에서 사람들을 억압하고 권리를 짓밟는 일이 생긴다. 이로 인해 힘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은 경제, 보건, 교육, 공공서비스, 환경, 복지 등과 관련된 사회 자원에 대한 접근이 제한되거나 동등하게 이용할 수 없게 된다. 이것은 낮은 수입, 열악한 교육, 보건, 복지 환경 등 일상의 문제에 영향을 미친다. 나아가 시민이 당연하게 가져야 힘의 박탈이라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결과를 만들어낸다. 이것이 바로 구조적 폭력 이론이다. 그런데 갈수록 확대되는 구조적 폭력을 감소시키고 온갖 부정의한 사회문제를 바로잡아야 할 대통령의 승인, 적극 협력, 가담 속에서 최고 수준의 힘의 독점이 이뤄졌다. 그런 힘의 독점이 다양한 분야에서 작용해 폭력적 사회구조가 강화됐으니 차마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고 모두 멘붕 상태가 된 것이다.
폭력사회에서 생존하기
힘을 가진 사람들은 힘이 없는 사람들이 시기와 질투 때문에 힘을 가진 사람들을 비난하고 자연스런 사회 작동 방식에 딴지를 건다고 말하곤 한다. 그래서 자신들이 보기에 돈, 권력, 영향력, 인맥 등이 없는 '찌질하고' 남탓만 하는 '한심한' 사람들에게 '그럴 시간에 능력을 키우라'고 훈계하듯 말한다. 그런데 핵심이 틀렸다. 사람들이 비난하는 이유는 질투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정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리 개개인의 정의 기준이 달라도 적어도 민주주의를 선택한 이 사회의 정의는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런 문제 제기를 시기와 질투로 왜곡하는 사람들에게 과연 민주사회 구성원의 자격이 있는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민주주의가 진전되고 성숙된다는 것은 힘을 분배하는 구조를 더 세밀하게 체계적으로, 그리고 투명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민주사회에서는 대통령의 힘도 감시하고, 지자체장과 교육감도 선거로 뽑고, 정보 공개와 시민 참여를 확대하고,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예산 감시를 당연한 시민의 권리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힘의 분배가 이뤄지지 않고 독점이 심해지면 민주사회가 아니라 폭력사회가 될 가능성이 커지고 다수의 국민이 피해자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여전히 발전 단계에 있고 우리는 계속 폭력사회를 경험하면서 지속적으로 피해를 입고 있다. 이번 사건은 이런 우리의 슬픈 현실을 상기시키면서 어쩌면 우리의 뒤통수를 제대로 때린 사건이다. 그런데 이렇게 멍한 상황에서 우리가 직면한 또 다른 현실은 어찌됐든 이런 폭력사회에서 생존해야 하고 나아가 미래 세대를 위해 그냥 가만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폭력사회에 맞서, 아니 그것을 유지하는 힘을 독점하는 세력과 그것을 떠받치는 구조에 맞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 지점이 바로 많은 사람들이 절망하는 지점이다. 커다란 사회와 구조를 생각하면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존감을 지키고 제대로 살기 위해 "찍" 소리라도 내야 한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듯이 말이다. 어제, 그리고 오늘 내내 '탄핵'이나 '하야' 같은 말이 검색어 상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그 증거다. 지금까지 침묵하면서 '눈팅'만 하고 '좋아요'만 누르던 사람들도 이제는 한 마디라도 해야 한다.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야 한다. 지금의 상황이 부정의한 것이고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꼭' 한 마디 해야 한다. 나아가 한 마디 하던 사람은 열 마디를 해야 하고, 열 마디 하던 사람은 백 마디를 해야 한다. 그것이 모두 모여 여론이 되고 민주주의를 만드는 힘이 된다. 그래야 힘의 독점이 깨지고 공동의 힘이 만들어진다. 그래서 나도 이 글을 쓴다. 한 마디 더 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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