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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미래는?평화갈등 이야기 /평화 2016. 11. 11. 16:45
'일곱 세대' & '200년의 현재'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어디로 가야하는 것일까? 요즘처럼 이런 질문이 현실적으로 다가온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아니 이전에도 있었을지 모르지만 지금처럼 절실하진 않았던 것 같다. 어찌보면 너무 추상적이서 밥 먹고 할 일 없이 뒹글거리거나, 우아한 커피숍에서 쓴 커피 마시며 싸구려 감상에 젖어 있는 한량이 내뱉을 사치스런 질문 같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많은 사람들이 지금 이 질문을 가슴에 담고 있는 것 같다. 이 불안하고 조심스런 상황에서 우리는 무엇을 하고 어디로 가야 할까? 이 질문과 관련해 며칠 전 평화학강의를 마치면서 참여자들과 나눴던 얘기를 해보려고 한다.
어떤 일을 결정할 때 '일곱 세대(seven generations)'를 생각해야 한다는 얘기가 있다. 환경문제나 지속가능성과 관련해 많이 하는 얘기지만 사실은 미국 원주민인 이로퀴이족의 헌법에 나와 있는 것이다. 현재 어떤 결정을 하든 지금으로부터 일곱 번째 세대(seventh generation)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140년 이후에 살 사람들에게도 악영향이 아니라 혜택일 미칠 결정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큰 고난을 감수하더라도 말이다. 비슷한 개념으로 '200년의 현재(two hundred year of present)'가 있다. 평화학자인 엘리스 볼딩이 얘기한 것으로 우리의 현재는 과거와 미래를 합친 200년과 연결돼 있다는 것이다. 200년은 현재 살고 있는 100세 된 사람이 태어난 때부터 현재의 아기가 100세가 될 때까지를 말한다. 내가 아는 가장 나이 많은 사람이 태어난 때부터 내가 아는 가장 어린 사람이 죽을 때까지를 합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나는 200년이란 시간의 가운데 위치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나의 현재가 과거 100년의 영향을 받고 동시에 미래 100년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와 관련해서는 우리 역사를 돌아보면 쉽게 이해가 간다. 100년 전 우리는 일제 식민통치 하에 있었고 지금도 그 영향을 받고 있다. 그렇다면 미래와 관련해서는 어떨까? 우리는 과연 100년 후에 살 사람들에게 우리의 현재 행동과 결정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생각하면서 사는지 궁금하다. 분명 그것은 우리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도 일어날 일인데 말이다.
어떤 미래를 상상하는가
우리는 현재의 상황에 왜 분노하는 것일까? 우리는 왜 굳이 자기 집을 박차고 광장으로 나가 목소리를 모으려는 것일까? 그것은 궁극적으로 지금보다는 나은 사회와 미래를 위해서다. 지금보다는 상식적이고 정의로우며 공정한 세상에서 살고 싶은 욕구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하는 미래는 과연 어디까지 닿아 있는 것일까? 20년, 30년, 아니면 50년? 과연 우리에게는 이로퀴이족처럼 140년 후의 미래 세대를 생각하는 상상력이 있는 것일까? 현재 우리의 행동과 선택이 미래 세대에 미칠 영향까지 고려하는 도덕적 민감성이 있는 것일까? 엘리스 볼딩이 얘기한 것처럼 과거 100년의 역사를 곱씹으면서 100년 후에 선한 영향을 미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일까?
우리는 지금까지 평탄치 않은 세월을 살아 왔다. 현재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어느 누구도 전쟁의 위험이나 이념에 의한 단절과 다툼이 없는 온전히 평화로운 사회를 경험한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평화로운 세상, 다른 말로 전쟁의 위험이 없고, 힘에 의한 억압과 억울한 희생자가 없고, 약자의 정의가 짓밟히지 않고, 안전하고 행복한 삶을 현실적 목표로 삼을 수 있는 사회를 위해 정말 열심히 그리고 충분히 노력하지 않았다. 모두 각자 자기 삶과 하루하루에 지쳐서 자기보다는 조금 한가해 보이는, 또는 오지랖이 넓어 항상 사회와 타인에게 관심이 많은 소수의 사람들에게 그 모든 일을 미뤄두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게 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권력의 사유화와 힘의 독점으로 사회가 난도질당했고 직접, 간접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됐기 때문이다. 물론 그 희생자 가운데는 우리 각자가 있다. 그래서 마침내 사람들은 분노하고 광장에 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현재의 상황에서 광장에 나가는 것은 변화의 욕구를 적극적으로 표출하는 것이다. 그런데 광장에 나가기 전에 한 가지를 더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 '우리는 과연 어떤 미래를 상상하고 있는가?'이다. 그리고 '그 미래는 어디까지, 몇 세대에까지 닿아 있는가?'이다. 그냥 나와 가족, 또는 자식이 아니라 앞으로 100년, 140년 후에 살 미래 세대에게도 혜택이 돌아갈 수 있는 미래를 상상하고 있는지이다. 우리의 미래는 우리가 어떤 미래를 상상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리고 우리가 상상하는 미래가 현재의 행동을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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