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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안보! 그럼 국민은?평화갈등 이야기 /평화 2016. 9. 22. 11:36
국가안보, 그게 다야?
지금 같은 복잡한 상황을 가까운 과거에는 보지 못했던 것 같다. 북한의 핵실험으로 정부와 정치권이 갈팡질팡하고, 국방부의 사드 배치지역 최종발표를 앞두고 김천과 성주 사람들의 분노가 들끓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일주일 간격으로 발생한 강도 높은 지진과 여진으로 경주와 인근지역 사람들은 물론 전 국민의 불안이 높아지고 있다. 국가안보 현안과 국민 개개인의 안전 문제가 동시에 생기면서 흥미로운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어떤 일과 관련해서도 객관적 실효성을 담보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는 정부에 대한 신뢰도는 떨어지고 있지만 국민들은 그래도 정부에 기댈 수밖에 없는 씁쓸한 상황이 바로 그것이다. 믿을 수 없어도 정부와 공공기관에 문제를 제기할 수밖에 없는 답답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정부는 '열일'하고 있다. 밥을 짓든 죽을 쑤든 나름대로 열심이다. 물론 문제는 그것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중.장기적으로 이 나라 사람들에게, 나아가 한반도 전체에 도움이 되는 일인지는 아주아주 의문이지만 말이다. 정부가 특히 열심인 것은 '국가안보'를 챙기는 것이다. 국민들이 그동안 먹고 사는 일에만 바빠서, 또는 민주주의의 '후유증'으로 개인의 권리와 자유에만 관심을 쏟느라 잊거나 등한시했던 '국가안보'를 상기하도록 열심히 강조하는 것이다. 북한의 핵미사일을 막기 위해 사드 배치를 결정하고, 핵실험을 한 북한을 압박할 국제사회 제재를 위해 외교력을 총동원하고, 미국에 요청해 B-1B 폭격기의 한반도 상공 무력 시위를 '성사'시키는 등 구체적 행동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와중에 경주 인근에서 유례 없는 규모의 지진과 역시 규모가 높은 여진이 발생했다. 경주와 인근 사람들, 그리고 전 국민이 지진을 임박한 재난으로 느끼고 있다. 그런데 지진과 관련해 정부와 공공기관은 믿고 의지할만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지진, 지질, 원전 안전 등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지도 투명하게 공개하지도 않으면서 보이지 않는 공포를 더 키우는 역할만 하고 있다.
물론 경주 지진은 예상됐던 일이 아니니 대응에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정부의 근본적인 태도와 접근에 있다. 세월호 이후 국민 개개인의 안전이 정부가 관심을 가져야 할 가장 큰 문제로 부각됐지만 여전히 정부는 '국가안보'를 챙기는 것만큼 '국민안전'을 챙기지 않고 있다. 물론 거기에는 가치, 철학, 사상 등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국가안보가 가장 중요하고 국가안보와 국민안전 문제가 같이 대두되면 국민안전은 좀 소홀히 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그리고 국가안보가 보장되면 국민 모두 결국 잘 살게 될거라는 민주주의와는 다소 거리가 먼 생각이 있다. 북한 핵실험이 있을 때는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열었지만 국민들이 실질적이고 임박한 공포로 느끼고 있는 지진에 대해서는 신속하게 대응하지도 믿을 수 있는 조치나 발표도 하지 않았다. 하긴 요즘에도 국가안보가 우선이며 '국가 없는 국민이 어디 있냐'는 군사독재 시절 언어를 쓰는 고위공무원이나 국회의원을 볼 수 있으니 그리 놀랄 일이 아니긴 하다.
국가안보 vs. 인간안보
국가안보 그러니까 national security는 정부와 의회가 정치력, 외교력, 경제력, 군사력 등 다양한 힘을 이용해 국가와 국민을 보호해야 한다는 개념이다. 2차대전 이후 미국에서 개발된 이 개념은 처음엔 군사력에 집중했지만 이제는 외교력과 경제력 등 비군사적 수단까지 동원해 국가와 국민을 보호한다는 개념으로 자리잡았다. 또한 안보 현안도 경제, 에너지, 환경은 물론 테러, 마약, 자연재해 등으로부터 국가와 국민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으로까지 확대됐다. 그런데 우리의 국가안보는 여전히 군사력에 의존한 국가, 즉 영토와 체제 보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보수정치의 사상과 신념으로 굳건하게 자리잡고 있다.
국가안보보다 진보한 개념으로 흔히 '인간안보(human security)'가 언급된다. 인간안보가 국가안보와 가장 크게 구분되는 점은 국가가 아닌 개인, 그러니까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중심에 놓인다는 것이다. 또한 군사력이 아닌 비군사적인 노력과 협력으로 한 나라 국민은 물론 지구촌에 사는 사람들의 안전하고 행복한 삶에 초점을 맞춘다는 것이다. 언뜻 보면 어떤 개념을 정치이념으로 선택하든 결과는 크게 달라질 것이 없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현재의 우리 상황처럼 국가안보와 국민안전 문제가 동시에 발생할 때, 또는 인적 물적 자원, 그리고 시간과 대응력이 부족해 둘 중 하나에 우선적으로 대응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결과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그 선택이 정부와 공공기관의 대응 방향 설정과 실행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한 가지 예로 정부가 국가안보가 아닌 국민안전을 우선적 정치이념으로 선택했다면 사드 배치 문제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지금과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인간안보가 완벽한 개념도 아니고 국가안보와 국민안전이 상반되는 목표도 아니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국가안보 담론의 중심은 어쨌거나 국가의 안보고 그것은 군사력으로 보장하고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상황에서는 이것이 실질적으로 국민안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군사력에 초점을 맞춘 국가안보가 지나치게 강조되면서 때로 인간안보의 접근, 즉 경제, 에너지, 환경, 자연재해,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 등으로부터 국민들의 안전하고 행복한 삶을 지키고 유지하는 문제는 상대적으로 외면되거나 등한시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 사드 배치 문제, 지진 공포 등이 뒤섞인 현재의 상황에서는 특별히 무엇이 국민들을 위해 더 필요한 개념인지 분명하게 드러난다. 솔직히 인간안보 개념이 정부 행정의 중심에 있다면 지진의 공포가 만연한 이 때 국민들이 애걸복걸해야 움직이는, 그리고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땜질 식으로 '10초 지진 알림' 체계를 구축하겠다거나 '활성단층 지도'를 만들겠다는 식의 당장은 실효성이 없고 사람들을 안심시키는데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정부, 정당, 정치인들의 사상이나 철학은 포장일 뿐 현실 정치나 먹고 사는 문제와는 별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거기에는 분명 큰 차이가 있다. 특히 우리 상황에서는 여전히 독재시절에나 어울릴 법한 '국가안보'를 우선하느냐, 아니면 국민 개개인의 생존과 안전을 고려한 '국민안전'을 우선하느냐가 현실 문제에 대한 대응을 좌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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