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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싸움질이 당연?평화갈등 이야기 /평화 2016. 4. 7. 15:37
증오와 폭력의 정치
정치의 계절이다. 그것도 정치의 백미라 할 수 있는 선거를 앞두고 있다. 그래서인지 곳곳에서 정치인들의 말싸움, 공격, 증오 발산, 싸가지와 예의 없음 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선거 때마다 있는 일이라 면역성이 생겨서인지 유권자들도 그러려니 한다. 선거철에 표출되는 정치인들의 공격적이고 때로는 폭력적인 말과 행동에 일종의 면죄부를 주는 것이다. 적어도 선거철에는 증오와 폭력을 무한 발산하는 것이 상식, 또는 자연스러움으로 치장된다.
이번 선거는 전초전인 공천, 그리고 더 이전인 야권 분열 단계부터 험악했다. 최소한의 예의나 상호 존중은 찾아볼 수 없었고 누가 더 상대의 가슴에 비수를 꽂을 말과 행동을 동원할 '자질'이 있는지 경쟁하는 것 같았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의문이 생겼다. 정치인들은 상처받지 않는 것일까? 그들은 선거가 끝나고 다시 한 당에서, 또는 국회에서 일하게 되면 자신에게 상처를 줬던 말과 행동은 모두 잊는 것일까? 그들은 모두 그렇게 대인배인가? 뭐 이런 자질구레해 보이지만 인간 본성에 대한 질문이 생겼다. 유권자로서의 의문도 생겼다. 그렇게 폭력적이고 예의 없는 정치인들이 유권자는 잘 대할 수 있을까? 진짜 제대로 된 정치를 할 수 있을까? 눈과 귀에 거슬려도 그런 것들은 그냥 모두 '정치적 행위'로 뭉뚱거려 인정해주고 유권자인 나는 그냥 '능력'과 '정책'만 보면 되는 것일까?
데보라 테넌이라는 유명한 언어학자가 있다. 그녀는 여성과 남성의 소통 방식을 연구하는 탁월한 학자다. 나는 대학원 시절 그녀의 책들에 심취했었다. 워싱턴DC로 가 그녀의 강의를 청강할까 고민도 했었다. 그런데 그녀의 책 중에 남.녀 의사소통과는 상관없는 "논쟁문화(Argument Culture)"라는 책이 있다. 핵심 주장은 어릴 때부터 논쟁하는 법을 배우고 논쟁이 일상화된 환경에 살기 때문인지 미국인들은 공격, 빈정대기, 증오, 말싸움 등에 능숙하고 그것이 사회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그녀는 그 증거의 하나로 정치권의 논쟁문화를 지적한다. 좋은 말로 논쟁이지 사실은 정치인들의 공격과 증오 섞인 말과 행동이다. 1996년 104차 의회 회기가 끝난 후 역사상 처음으로 14명의 의원들이 한꺼번에 재선에 도전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들 중 대부분이 사려 깊고 공정하다는 평을 듣는 중견 정치인들이었다. 그들은 의회를 떠나는 이유 중 하나로 갈수록 심해지는 동료 정치인들의 공격, 증오 섞인 말과 행동, 그리고 당파성을 언급했다. 그녀는 책에서 공격과 증오의 대상이 된 몇몇 의원들의 구체적인 사례와 상처받은 심정을 소개한다. 관록 있는 정치인들도 상처를 받고 그렇게 변해버린 정치권에 절망과 회의를 느껴 정치를 그만둔다는 것이다. 우리 사례는 아니지만 어쨌든 정치판에서의 공격과 증오가 그냥 '정치적'인 행위가 아니라 정치인이라는 한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일임을 얘기한다.
폭력적 정치인, 무능력 정치인
우리는 흔히 논쟁을 잘하는 지식인이나 정치인을 높게 쳐준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 생각을 주장하고 다른 사람의 생각을 비판하는 건강한 논쟁과 상대를 공격하고 증오를 발산하는 말싸움을 잘 구분하지 않는다. 어떤 식으로든 정치적 경쟁자에게 깊은 상처를 주고 한 방에 날려버릴 말과 행동을 구사하는 정치인, 그런 방법으로 팬덤을 만드는데 몰두하는 정치인에게 환호한다. 그런데 이것이 결국 증오와 폭력의 정치를 고착화시킨다면 바람직한 일일까? 그런 정치가 과연 유권자들에게, 그리고 사회에 도움이 될까?
단언컨대 증오와 폭력의 정치는 바람직하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정치가 원래 그런 것 아니냐고 말한다. 정치인들도 정치를 하다보면 그럴 수밖에 없다고 정당화시킨다. 때로는 그런 정치인이 '능력 있는' 정치인으로 포장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나는 그런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능력이 없는 정치인이라고 생각한다. 정치는 원래 정치적이고 외교적인 말과 행동으로 이견을 가진 사람들을 설득하고 타협점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자질이 없으니 목소리를 높이고 폭력적인 방법까지 동원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정치인의 자질을 평가할 때 정책은 기본이고 도덕성까지 따져본다. 도덕성에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언행도 포함돼 있다. 나는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이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하나는 동료 정치인을 제대로 대하는 정치인이 유권자도 제대로 대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자기 목적을 위해 폭력적인 말과 행동을 서슴치 않는 정치인은 유권자를 대할 때도 폭력적인 언행을 드러낼 가능성이 높다. 특별히 자기를 지지하지 않는 유권자를 대할 때는 더욱 그럴 것이다. 또한 그런 정치인들은 유권자들이 일상에서 겪는 폭력적인 상황과 문제에 공감하고 민감하게 대응할 가능성도 낮다. 선거철이니 폭력성이 두드러지는 것이라고? 그렇더라도 문제다. 그런 정치인은 본래 싸가지와 예의가 없고 폭력적인데 평소에는 그것을 숨기고 있는 위선자일 가능성이 높다.
다른 하나는 증오와 폭력을 발산하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정치인은 당선되더라도 좋은 정치인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남에게 상처를 많이 준 정치인이 상처를 입은 정치인들과 좋은 협력관계를 만들어 제대로 '정치'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예는 아니지만 위에서 얘기한 것처럼 정치인들도 상처를 받는다. 우리나라 정치인들도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선거철에 있었던 일이라도 정치인도 사람인데 자신이 받은 상처를 쉽게 잊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생긴 감정이 정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 장담할 수 없다. 그러니 증오와 폭력으로 능력을 증명해 보려는 정치인을 걸러내는 것은 결국 선거 후 정치에 기댈 수밖에 없는 유권자인 나를 위한 것이다. 그래서 이번 선거에도 나는 조금이라도 더 싸가지 있고 예의 있는 정치인과 정당에 투표할 것이다. 물론 정책은 기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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