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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연합, 시민단체?평화갈등 이야기 /평화 2016. 4. 22. 09:30
사람만 모으면 시민단체?
대한민국 어버이연합(줄여서 어버이연합)이 연속 톱 뉴스 자리를 꿰차고 있다. 다른 때 같으면 단체 관계자들이 쾌재를 불렀을 일이지만 이번은 사정이 다르다. 완전히 탈탈 털렸으니 말이다. 어버이연합은 극우 성향의 각종 집회에 이른바 '알바'를 동원해 일당을 지급했다. 일당에 쓴 돈은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기업들이 회원으로 가입돼 있는 로비단체인 전경련(전국경제인연합)에서 나왔다. 그것도 차명계좌를 통해서 이뤄졌다. 청와대로부터 한.일 위안부 합의를 지지하는 집회를 요청 받았다는 어버이연합 핵심인사의 '고백'도 나왔다. OECD 회원국이고 선진국 언저리에 있는 나라에서 생길 수 있는 일이 아니지만 사실로 밝혀졌으니 잠시 멍하니 있다가 다시 정신줄 잡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이 고백을 토대로 어버이연합이 종종 청와대의 요청으로 집회를 했을 것이라는 의심을 해볼 수 있다. 재밌게도 그 인사는 어버이연합이 위안부 합의 지지 집회 요청을 거부해 청와대의 미움을 샀고 그래서 이번 폭로가 나왔다고 말했다. 그는 대한민국의 모든 일을 청와대가 좌지우지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뭐 그런 일도 있지만 어쨌든 사회의 상당 부분은 순리대로 움직인다는 것을, 그리고 사회에는 잘못된 것을 밝히려고 동분서준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 확실하다.
이번 '스캔들'에 이처럼 이목이 집중되는 이유는 그 동안 어버이연합이 폭언과 폭행을 동반한 집회를 한 적이 많기도 하지만 우리 사회가 어버이연합을 대표적인 보수 시민단체 중 하나로 보기 때문일 것이다. 언론은 어버이연합이나 비슷한 성향의 극우 단체들을 그냥 보수단체라고 쓰지만 그 뉘앙스를 보면 이들을 보수 시민단체로 생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어버이연합을 보수 시민단체로 볼 수 있을까? 표현과 사상의 자유가 허락된 사회에서 어떤 사상과 신념을 가지고 어떤 단체를 만들든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생각과 행동이 내 맘에 들지 않아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경찰도 그런 단체들의 집회를 허락해주고 보호해준다. 자기들 스스로도 시민단체로 목소리를 낼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사회 현안에 목소리를 내는 시민단체로 인정받으려면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몇 가지 조건이 있다. 사람만 모아 조직한다고 시민단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시민단체는 기본적으로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구성되고 활동하며 정부와 기업으로부터 독립성을 유지해야 한다. 프로젝트를 통해 사업지원금을 받을 수는 있지만 그것에 대한 대가로 정부나 기업의 입맛에 맞는 일을 해줘서는 안 된다. 그것은 도덕성을 포기하고 영혼을 파는 일이기 때문이다. 시민단체는 또한 모든 시민의 이익을 위해 일해야 하고 공존의 사회에 기여해야 한다. 설사 자기만의 독특한 철학, 가치, 비전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다른 단체나 사람의 철학, 가치, 비전과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고 자기 것만을 절대적인 것으로 주장해서는 안 된다. 자기 신념을 주장하고 지키기 위해 생각이 다른 시민에게 해를 입히는 일은 더더욱 안 된다.
독립성, 도덕성 없으면 사이비
시민단체에게는 특별한 사회적 역할이 부여돼 있다. 그것은 공공성이나 공익을 추구하는 것으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것을 평화적 공존을 위한 책임으로 설명한다. 시민단체라면 다양한 사회 집단 및 개인의 평화적 공존을 거부하지 않아야 하고 궁극적으로 평화적 공존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일해야 한다. 시민단체에게 그런 역할을 기대하기 때문에 사회가 시민단체의 존재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때로는 정부와 기업의 목소리보다 더 무게감 있게 취급해 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와 기업으로부터의 독립성과 높은 수준의 도덕성이 요구된다.
시민단체가 독립성과 도덕성을 포기하면 즉시 사회의 비판을 받고 존재 자체를 거부당하는 냉혹한 현실에 직면하게 된다. 그런 일이 생기면 시민단체의 운명은 다한 것으로 봐야 한다. 현재 어버이연합이 딱 이꼴이다. 다른 단체의 집회를 막으려고 알박기 집회를 하고 가스통으로 협박해도, 생명의 가치 자체를 거부하는 폭언을 쏟아내도, 그리고 교양과 상식에 어긋나는 안하무인식 행동을 해도 그것이 단체의 보수 극우 신념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딱히 막을 방법이 없다. 물론 거기에는 대부분 경찰의 봐주기가 개입돼 있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들이 다수의 시민들로부터 지탄받는 것을 기꺼이 감수하면서도 자기 목소리를 내겠다는데 뭐 어쩌겠나. 그렇지만 자발적 참여가 아닌 알바를 고용하고 청탁을 받아 집회를 하고, 투명하지 않은 방식으로 전경련이란 로비단체로부터 돈을 받아 사람을 동원한 것은 시민단체로서의 독립성과 도덕성을 포기한 것이다. 물론 그 단체 사람들에게 그런 인식이 있었을 것 같지는 않지만 말이다.
이번 사건으로 보면 어버이연합은 시민단체의 기본조건을 갖추지 못한 것이 확실하다. 편법으로 로비단체로부터 돈을 받았고, 정부와도 집회 청탁을 받을 정도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이런 일이 정상이 아니기에 모두가 관련 사실을 거부하고 있지만 말이다. 그러니 이제 언론은 어버이연합을 보수(시민)단체로 부르는 것을 중단해야 한다. 어버이연합은 시민단체가 아니라 그냥 돈벌이를 위한 사조직일 뿐이다. 그것도 폭언과 폭행을 시위 수단으로 삼는 위험 사조직이다.'평화갈등 이야기 > 평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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