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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자 구분 사회평화갈등 이야기 /평화 2016. 6. 10. 09:54
여자가 조심해야지....?
새로울 게 없다. 사회 곳곳에 퍼져 있던 일이, 그리고 범죄가 우연히 한꺼번에 생겨 톱뉴스 자리를 차지한 것 뿐이다. 강남역 살인, 등산로 살인, 섬마을 성폭행, 제자 성폭행 사건 등의 가해자는 모두 남자고 피해자는 모두 여자다. 여자들의 공포와 분노는 깊어지고 정신 멀쩡한 남자들의 분노도 폭발하고 있다. 모든 사건에서 여자는 철저히 가해자인 남자의 욕심과 욕망 때문에 희생됐다. 그 사람이 조현병 환자든, 사회적 소외자든, 아니면 겉으로 멀쩡해 보이는 섬학교 학부모든, 대학 교수든 그들은 모두 같은 종류의 인간들이었다.
여전히 우리사회에는 '남자들의 세상'과 '여자들의 세상'이 구분돼 있다. 성차별, 유리천장, 경력단절 같은 거창한 얘기가 아니다. 여자들은 어릴 때부터 노인이 될 때까지 '남자들의 세상'을 경계하며 살아야 한다. 아무리 공부를 잘 해도, 직장에서 인정을 받아도, 전문인으로 업적을 쌓아도 해를 입지 않기 위해 '남자들의 세상'을 살피고 조심해야 한다. 어쩌다 늦은 귀가길에서, 또는 한적한 등산로에서 재수 없으면 어느 날 가족과 지인들에게 작별 인사도 못하고 객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여자들은 '여자들의 세상'이 따로 있다는 것을 주기적으로 기억해내며 험한 일 당하지 않도록 신경을 곤두세우며 살아야 한다. 과민반응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여자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현실이다.
그런데 절망스러운 것은 '여자들의 세상'이 계속될 것 같다는 점이다. 이유는 '남자들의 세상'이 쉽게 변할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섬마을 성폭행 사건이 있은 후 교육부가 고려한 대책은 여자 교사 대신 남자 교사를 배치한다는 것이었다. 그 말은 여자들이 조심해야 한다는 얘기를 돌려서 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여자들은 알아서 확실히 안전히 보장되는 곳에만 가야 하고 그런 곳에서만 일을 해야 한다는 논리다. 그런 대책을 생각한 사람들은 아마 '남자들의 세상'만 아는 남자들이거나 아니면 '남자들의 세상' 안에서 자기도 남자인 것처럼 착각하며 사는 여자들이거나 둘 중 하나일 가능성이 크다.
힘 없는 게 죄지...?'남자들의 세상'과 '여자들의 세상'은 '강자의 세상'과 '약자의 세상'을 대변한다. 우리사회는 약자의 세상을 존중하지도 보호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문제가 생기면 약자에게 '왜 조심하지 않았냐'고 나무라고, '힘 없는 게 무슨 자랑이냐'고 면박을 준다. 그리고 힘을 길러서 강자의 세상 속으로 들어가라고 덧붙인다. 한 마디로 '힘 없는게 죄'니 '억울하면 출세하라'고 뭐 큰 삶의 지혜나 되는 듯 내뱉는다. 그런데 약자가 힘을 길러 강자의 세상으로 들어가면 세상의 문제는, 다른 말로 강자의 횡포와 약자에 대한 폭력은 사라질까? 절대 그렇지 않다.약자가 힘을 길러 강자의 세상으로 진입해도 문제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 번째 이유는 힘이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힘이 있다는 것은 곧 다른 누구보다 힘이 있다는 것이고, 힘이 없다는 것 또한 다른 누구보다 힘이 없다는 얘기가 된다. 이것은 다른 말로 힘이 없는 사람도 어떤 누구보다는 힘이 있다는 얘기가 된다. 결국 약자가 강자의 세상에 진입해도 주인공만 바뀔뿐 새로운 강자-약자의 관계가 만들어진다. 두 번째 이유는 강자-약자의 관계를 강조하는 것이 곧 폭력이 되기 때문이다. 강자의 힘을 강조하고 약자에게 힘의 관계을 인정하는 태도와 행동을 요구할 때 강자는 폭력의 가해자가, 약자는 폭력의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다. 힘에 의존한 강요와 억압이 이뤄지기 때문이다.그렇다면 답은 무엇일까? 답은 약자를, 그리고 약자의 세상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것이다. 우리사회는 '약자 구분 사회'다. 좋은 의도가 아니라 나쁜 의도로 약자를 구분한다. 자신이 강자임을 확인하기 위해, 약자에게 복종을 요구하기 위해,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그 힘의 관계를 보여주기 위해서다. 물론 때로는 그로 인해 자신이 상대적 약자임을 확인하며 절망하기도 한다. 그렇게 되면 약자의 세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 힘을 쓴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자기보다 약한 사람을 짓밟는 일이 흔히 생긴다는 것이다. 그런데 힘의 차이를 있는 그대로, 그리고 약자를 그대로 존중하면 그렇게 피곤하게 살 이유가 없다. 사실은 그것이 힘의 차이가 아니라 그냥 사람이, 삶이, 그리고 나아가 성별이 다른 것 뿐이니 말이다. 그러니 여자들에게 힘 있는 '남자들의 세상'을 알아보고 미리 조심하라고, 그리고 힘 없는 사람들에게 '억울하면 출세하라'고 얘기해선 안 된다. 그리고 혼자 머리 속으로라도 강자의 논리를 갖다대며 자신의 비뚤어진 생각을 합리화해선 안 된다. 아무리 세상이 힘을 숭배해도 그것은 그냥 가장 천박하고, 비인도적이고, 비윤리적이고, 폭력적인 행동이고 생각일 뿐이다.'평화갈등 이야기 > 평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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