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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들의 혐오평화갈등 이야기 /평화 2016. 4. 15. 10:12
종교적 권리?
"동성애법 반대에 서명해 주세요. 이게 애국하는 길이예요."
"무슨 얘깁니까?"
"동성애자들이 많아지면 아이를 못 낳으니까 나중에 큰일 납니다. 지금도 출산율이 낮잖아요."
"동성애자들도 대한민국 국민이고 세금 내는 사람들인데 대놓고 차별하자고 하는 겁니까? 그리고 동성애법은 없습니다. 모든 차별을 없애자는 차별금지법이죠."
"그게 동성애법이예요."
"아니라고요. 그건 동성애법이 아니예요."
지하철에서 70세도 훨씬 넘어보이는 할머니가 주로 노인들을 상대로 '애국하는 길'이라며 서명을 받고 있었다. 내가 서명지를 보려고 하자 내게도 서명을 요청했다. 물론 나는 대충 짐작을 했지만 확인하고 싶어서 눈길을 준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름도 생소한 기독교단체에서 받는 서명이었다. 그리고 위에는 동성애법 반대라고 써 있었다. 나는 '동성애법은 없다'고 하고, 그 할머니는 '있다'고 하고 한참 말다툼을 했다. 그 할머니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나도 다 알아보고 하는 일'이라며 내게 '똑똑한 사람인 것 같은데 잘못 알고 있다'고 말하곤 다른 사람에게 가버렸다. 그 확신은 종교적 믿음에서 나왔을 것이고, 동시에 그 할머니가 속해 있는 종교단체와 알고 있는 성직자에 대한 신뢰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종교를 가진 사람이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표현하는 것은 종교의 자유가 허락된 민주사회에서 말릴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그것을 빌미로 특정 집단이나 개인을 차별해야 한다고, 그리고 사회에서 소외시켜야 한다고 하는 것은 절대 인정될 수 없는 일이다. 전자는 자기 권리를 누리는 것이지만 후자는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재 많은 기독교인들이 조직적으로 너무 뻔뻔하게 그런 일을 하고 있다. 타겟이 되고 있는 두 집단은 동성애자들과 무슬림들이다. 보수적인 기독교단체들은 동성애자들의 축제에 가서 훼방을 놓으면서 공격적인 행동을 하고, 동성애자들에게는 다른 사람들과 동등한 권리를 인정해주면 안 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차별금지법을 동성애법으로 호도하면서 입법을 방해하고 있다. 무슬림들이 이땅에 들어오는 것을 막아야 한다며 익산 할랄 식품단지에 대한 유언비어를 퍼뜨리기도 했다. 심지어 과자에 있는 할랄 표시, 비행기 기내식으로 할랄 음식을 제공하는 것에 대해서도 이슬람 포교에 도움을 준다며 우리나라에서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식으로 문제를 제기한 기독교인들도 있었다. 이런 반이슬람 주장은 곧 국내 거주 무슬림들에 대한 노골적 경고와 공격이기도 하다. 자신은 제한 없는 종교의 자유를 누리고 성탄절이 공휴일로 지정된 나라에 살면서 자신이 반감을 가지고 있는 종교를 가진 사람들의 종교의 자유는 제한하고 그들을 사회적으로 소외시켜야 한다고 우기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것을 종교적 권리로 착각하고 있다.
종교의 힘으로 쐐기박기
동성애자들과 무슬림들에게 동등한 자유와 권리를 허용해선 안 된다고 주장하는 기독교인들은 종교를 내세워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를 의도적으로 확산시키고 있다. 교회 안에서는 자기들끼리 사랑을 얘기하면서 자기와 다른 사람들은 혐오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하는 지극히 비종교적이고 모순적인 일을 거리낌도, 문제의식도 없이 하고 있다. 그런 행동이 거의 위법과 범죄의 수준에까지 도달했다. 그런데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그들이 한국사회에서 강자의 위치에 있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상대가 약자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강자의 위치에 있다는 것은 곧 그들이 정치권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정치권이 그 영향력을 인정하는 데에는 교회가, 그리고 성직자들이 선거 때 신도들의 표를 움직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특정 집단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혐오와 입법 저지는 정치권의 은밀한 협력과 지원, 그리고 외면에 힘입어 더욱 확산되고 조직화되고 있다.
상대가, 다시 말해 동성애자들과 무슬림들이 한국사회에서 소수 약자 집단이라는 점은 혐오를 노골적으로 조장할 수 있게 해준다. 이런 힘의 관계는 기독교인들의 혐오와 배척이 아주 계획적이고 치밀하게 이뤄지고 있음을 짐작하게 해준다. 기독교인들은 한국사회에서 가지고 있는 힘을 백분 활용해 앞으로 동성애자들이나 무슬림들이 동등한 권리니 자유니 하는 얘기를 하지 못하도록 쐐기를 박아두려는 것이다. 이것은 약자가 어떤 저항도 하지 못하도록 저항의 조짐이 있을 때 일부러 갈등을 만들고 조기에 항복을 받아내려는 강자의 전략이다. 물론 그 전략은 절대 성공할 수 없겠지만 말이다.
종교를 앞세워 혐오를 조장하고 민주사회의 기본에 도전하는 일은 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소위 기독당이 '동성애, 이슬람 반대'를 노골적으로 주장하면서 정점에 달했다. 한 석도 못 얻을 것이 뻔한데 왜 당을 만들고 헛수고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동성애와 이슬람에 대한 혐오를 정당한 정치적 주장으로 포장하는 효과를 내는 일이었다. 동시에 정치권에 자신들의 입장을 분명히 전달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한 마디로 앞으로 자신들을 상대하려면, 그리고 표를 얻으려면 동성애나 이슬람에 대한 반대를 분명히 하라는 선언과 경고를 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것에 동조하는 정신 빠진 정치인들도 있었다. 민주사회에서는 말도 안 되는 일인데 말이 되는 것처럼, 마치 선택의 문제인 것처럼 포장하는 정치인들이 있었다. 표를 얻기 위한 몸부림이었겠지만 그럼에도 정치인으로서 절대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을 넘은 것이었다.
일부 기독교인들이(사실은 대다수인 것 같지만) 동성애자들이나 무슬림들을 싫어하는 것은 인정할 수 있다. 누구나 무엇인가를, 그리고 누군가를 싫어할 권리는 있다. 그것이 자신의 신앙과 관련해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라면 그것도 인정할 수 있다. 성서적 해석의 차이 때문에 동성애에 대한 혐오와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기독교인들의 심정도 이해할 수 있다. 종교는 기본적으로 자기중심적이고 배타적인 면을 가지고 있으며 성향에 따라 그것이 극단적으로 표출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기독교인으로서 그런 태도가 옳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생각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그런 개인적 혐오를 특정 대상에게 공격적으로 표현하고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는 빌미로 삼는 것은 민주사회에서 허용되지 않는 일이다.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기독교인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대한민국이란 사회의 정체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일이 많고 막가파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이 넘쳐나도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사회다.'평화갈등 이야기 > 평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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