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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눈으로 본 인권평화갈등 이야기 /평화 2016. 1. 27. 16:16
인권 다음은 평화?
우리나라의 민주화 운동은 인권운동과 함께 진행됐다. 그리고 공식적으로 민주정권이 들어서고 정권교체가 이뤄진 이후 한국사회에서도 인권은 아주 보편적이고 당연한 가치가 됐다. 그렇다고 인권 문제가 모두 없어진 것도 모든 사람들의 인권이 차별없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지만 어쨌든 이제 인권은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개인적, 사회적 가치가 됐다. 그런 후 등장한 키워드가 '평화'다. 2000년을 전후로 해서 평화운동이 사회운동의 하나로 대두되고 평화에 대한 관심이 생기면서다. 2000년대 초반 전 세계적으로 번졌던 반전운동도 한몫을 했다. 그 결과 소수의 언어였던 평화가 이른바 주류 사회의 언어가 됐다.
어쨌든 평화는 인권 다음으로 한국사회가 가치로 삼고 성취해야 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래서인지 대학, 연구소, 시민단체 등등에서 인권과 평화를 같이 비전 또는 가치로 내세우는 일이 많아졌다. 그렇게 10여 년이 흘렀지만 지금도 인권과 평화에 대한 개별적, 그리고 통합적 이해가 명확하게 이뤄지지 않고 았다. 특별히 평화에 대한 분명한 이해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모두 좋은 가치니 함께 쓰면 더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인권을 보호하는 것이 당연히 평화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평화에 대한 정확한 이해도 컨텐츠도 없으면서 인권과 평화를 같이 쓴다. 마치 평화는 인권 보호를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성취되는 것으로 생각하면서 말이다. 적어도 내가 직접 경험한 것에 의하면 그렇다.
그렇다면 인권과 평화는 굳이 구분이 필요 없는 비슷한 개념인가? 인권을 보호하면 당연히 평화가 성취되는가? 답은 'NO'다. 그러면 인권과 평화는 관련이 없는가? 이에 대한 답도 'NO'다. 인권과 평화는 분명 관련이 있다. 그러나 그 관련이란 것이 당연하게, 또는 내용과 접근 방식의 구분 없이 마구잡이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솔직히 인권이 평화를 어떻게 이해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난 인권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어도 평화가 인권을 어떻게 보는지는 안다. 그것이 내 전문분야기 때문이다.
평화를 위한 인권은?
평화의 눈으로 봤을 때 평화와 인권의 기본 차이점은 평화는 관계를 통해 정의되고 성취되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관계와 공동체에 초점을 맞추지만 인권은 기본적으로 개인에 초점을 맞춘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인권이 관계와 공동체에 관심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기본 개념과 접근에 따르면 그렇다. 이것은 별것 아닌 차이 같지만 큰 결과를 내기도 한다. 사람에 따라 한 사람의 인권을 보호하는데 있어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와 공동체를 꼭 고려할 필요는 없다고 해석하고 행동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제 코피노 아이들이 아빠를 찾을 수 있도록 아빠들의 인적사항을 공개한 코피노 소송 지원단체 대표가 명예훼손 및 초상권 침해 혐의로 고소당했다. 그는 아이들의 아빠를 찾아주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또한 아이의 생존권이 아빠의 초상권보다 중요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아이의 인권을 위해 아빠의 인권을 포기했다는 말이다. 물론 인권의 시각에서 봐도 이것은 바람직한 방식이 아니다. 그렇지만 평화의 시각에서 보면 원칙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는 접근이다. 왜냐하면 아이에게 아빠를 찾아주고 생존권을 보장해주는 것의 궁극적 목표가 아이와 아빠의 관계를 회복시키고 어떤 식으로든 서로 가족임을 인정하도록 만드는 것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 궁극적 목표의 성취를 가로막고 그것과 모순되는 접근은 절대 정당화될 수 없는 것이다. 또한 한 쪽의 권리를 위해 다른 쪽의 가족과 사회적 생존을 해치는 폭력적 방법을 승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권은 평화를 성취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개인의 권리 보호가 평화로운 관계와 공동체의 기본이자 토대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평화를 위한 인권은 개인을 넘어 관계와 공동체에 초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다. 이것은 평화를 위해 개인의 인권을 희생시키거나 개인의 인권을 평화를 위한 도구로 이용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것은 개인의 인권, 개인들의 관계, 그리고 그들이 같이 소속된 공동체의 평화를 함께 성취할 방법을 모색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평화가 제안하는 인권은 평화적 방법에 의해 보호되고, 관계와 공동체를 파괴하지 않는 인권 보호다. 새로운 관계와 공동체를 만들고 평화로운 공존에 기여하는 인권 보호다. 나아가 가해자의 권리 보호는 물론 그들의 관계와 공동체 복귀까지 염두에 둔 인권 접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누구에게도 폭력적 방법이 적용돼서는 안 된다. 물론 요즘에는 인권의 시각에서도 이런 접근이 지지를 받고 있다. 그렇지만 근본적인 차이는 인권의 시각에서는 이것이 선택적일 수 있지만 평화의 시각에서는 절대적이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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