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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는 무엇을 탐구하는가?평화갈등 이야기 /평화 2015. 12. 23. 11:29
평화의 시대, 평화의 상실
평화가 '대세'까지는 아니지만 '유행'하는 시대가 됐다. 모두가 거부감 없이 평화를 입에 올리고 평화가 필요하다는데 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20여 년 전만해도 우리사회에서 평화가 불손한 언어로 취급됐던 것을 생각하면 큰 변화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평화는 도대체 무엇인가? 왜 평화를 얘기하는가? 정말 평화를 수용할 준비가 돼 있는가? 이 모든 질문들은 평화를 얘기하기 전에 먼저 생각해야 할 것들이지만 사람들이 이런 구체적인 것까지 생각한 후 평화를 입에 올리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결국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하는 평화는 입에 발린 소리가 아닐까? 솔직히 아쉬움은 있지만 꼭 그렇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평화를 말할 때의 마음은 진심이지만 다만 평화를 잘 알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자기 입장이나 이익을 정당화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평화를 왜곡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은 따로 다뤄야할 문제니 여기서는 접어두자.
평범한 사람들이 생각하는 평화는 그냥 모든 사람들이 안전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그 평화는 고물가에 시달리는 서민들에게도, 직장을 찾지 못해 계속 알바만 하는 젊은이들에게도, 부모의 학대에 시달리는 아이들에게도, 정착할 곳을 찾아 헤매는 시리아 난민들에게도, 내전에 시달리는 세계 곳곳의 사람들에게도 똑 같이 적용되는 평화다. 사람들이 평화를 얘기하는 이유는 이 모든 사람들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안전하고 행복한 삶이 실현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평화가 '유행'하는 시대지만 평화를 상실한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평화가 없기 때문에 평화가 자주 입에 오르내리는 것이다.
평화의 관심, 희생과 공존
그런데 위에서 얘기한 많은 문제들은 평화, 특별히 평화를 탐구하는 평화연구가 관심을 쏟지 않더라도 다른 분야의 접근을 통해, 다시 말해 정치, 경제, 사회 연구 등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평화의 시각을 통해 문제에 접근하는 것은 무엇이 다른가? 평화는 도대체 무엇을 탐구하는가? 이런 질문들이 생길 수 있다.
평화연구는 짧게 정리하면 평화로운 세상을 위한 다양한 사회적 조건을 탐구하고 그것을 구체적으로 적용할 방법을 찾는 연구다. 이런 목적을 위해 불가피하게 폭력의 상황과 원인, 평화를 위해 바뀌어야 하는 사회 조건과 상황, 평화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 화해와 공존의 방법 등에 주로 관심을 쏟는다. 그러다보니 평화연구는 세상 모든 일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전쟁과 난민 문제부터 빈곤과 지구온난화까지 평화연구가 관심을 가지는 주제는 다양하다.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세상 모든 문제를 평화 문제라고 하는 것은 결국 평화연구가 독립적이지 않고 이론적 토대가 취약한 것이 아니냐고 말한다. 물론 그렇지는 않다.
평화연구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사실 전쟁, 난민 문제, 빈곤, 지구온난화 등 현상적인 것이 아니다. 평화연구는 그 모든 문제들이 야기하는 희생, 다시 말해 희생자에 관심이 있다. 희생자에 대한 관심이 결국 전쟁, 난민 문제, 빈곤, 지구온난화 등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희생자를 줄이고 그들의 안전과 행복을 되찾기 위해 그 문제들을 다뤄야 하고 그 뒤에 숨겨진 폭력적 구조, 사회, 문화, 정치 등을 다룰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어떻게 곳곳의 폭력적 상황을 바꾸고 새로운 상황을 만들지에 관심을 쏟는 것이다. 희생자에 대한 관심은 모든 사람들의 공존이 이뤄지는 상황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다. 평화의 궁극적 목표는 평화로운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론과 실천의 병행
평화연구는 불가피하게 이론의 실천에 관심을 둔다. 사실 이론과 실천은 평화연구에서 각각 절반을 차지한다고 볼 수 있다.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는, 또는 실천을 전제로 하지 않는 이론은 좀 극단적으로 말하면 무용지물이다. 평화가 사람들이 현재 가장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성취할 방법이 당장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평화는 폭력과 희생을 낳는 전쟁부터 개인 갈등까지 사람들 사이의 갈등과 갈등해결도 연구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갈등의 해결은 평화적 수단을 통한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가해자, 다시 말해 폭력을 만들고 실행한 사람들까지 포용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들도 평화로운 삶을 살 권리가 있는 사람들이고, 현실적으로 그들이 배제된다면 다시 폭력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보다 궁극적으로는 그들을 배제하고는 평화로운 공동체가 만들어질 수 없고 공존의 사회와 세상이 만들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평화연구는 희생을 얘기하지만 동시에 증오를 얘기해서도 안 되고, 희생자의 안전과 삶의 회복을 얘기하지만 동시에 가해자의 제거와 추방을 얘기해서도 안 된다. 때문에 평화를 위한 디자인은 복잡해질 수밖에 없고 점진적이고 장기적인 구상을 가질 수밖에 없다. 평화연구가 다른 연구와 차별화되고 동시에 인간의 모든 지혜를 동원해야 하는 도전적인 일이 되는 이유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있다. 그리고 새해가 오고 있다. '평화'가 사람들의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시기다. 금기어도 아닌데 많은 사람들이 쓰면 좋은 일이다. 다만 그것이 값싼 평화가 되지 않기를, 입에 올릴 때는 마음과 몸도 같이 움직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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