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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민주주의의 무덤?평화갈등 이야기 /평화 2015. 10. 8. 15:41
니들이 뭘 알아?
학교 급식은 이래저래 말이 많다. 무상급식 찬.반 논쟁, 저질 급식, 그리고 급식 재료 및 비용 횡령까지. 인간 생활의 기본 중 기본이 먹는 일이고, 아이들에게 밥 주는 것은 어른들이 해야 할 당연한 일이지만 우리는 학교 급식 문제로 참 많은 일을 겪으면서 산다. 그중 최고봉은 요 며칠 뉴스를 장식하고 있는 서울 충암고의 급식용 쌀과 비용 횡령 사건인 것 같다. 언뜻 보면 다른 비리 사건들과 비슷해 보이지만 그것의 결과로 학생들이 저질 밥을 먹고 그로 인해 장기적으로 건강에 피해를 입었으니 사실은 중대 범죄다.
식당 주인이 가장 신경 쓰는 것은 손님의 입맛과 만족도다. 손님이 싫어하면 식당 문을 닫아야 하고 그러면 밥줄이 끊기니 당연하다. 학교 급식의 손님은 학생이다. 정상적이라면 학생의 입맛과 만족도를 가장 신경써야 한다. 그런데 충암고 급식은 학생이 싫어하는 저질 밥을 제공하면서도 굳건히 유지됐다. 학교의 결정을 무조건 따라야 하고, 학교 안에 갇혀 살아야 하는 학생들의 '불쌍한 신세'를 악용하고 학생들에게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급식을 먹도록 강요했기 때문이다. 그런 저질 급식을 제공하면서도 급식비 안 낸다고 아이들에게 공개적으로 창피까지 주는 일도 있었으니 이것이 과연 학교인가 싶다.
충암고 급식 문제는 오래 지속된 저질 급식에 대해 학생들의 불만이 쇄도했을 텐데도 불구하고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체계가 없었기 때문에 생긴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론 비리를 저지른 사람들이 교묘하게 숨겼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애초 의견 수렴 체계가 작동되고 있었다면 4년 동안이나 그렇게 간 큰 행동을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학교, 민주주의의 무덤?
학교에서 발생하는 많은 문제들을 꿰뚫는 근본원인은 학교가 학생들의 공동체가 아니라 이사장, 이사, 교사, 학부모 등 어른들의 조직으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학교 일에 대해 학생들은 결정권이 없다. 결정권은 없어도 적극적인 의견 수렴 체계라도 갖춰 있으면 좋으련만 대부분의 학교는 그런 것엔 관심도 없다. 그냥 '니들이 뭘 알아? 시키는대로 해!"라는 식이다. 학교의 운영 같은 큰 일은 아니더라도 급식이나 교실 환경 등 직접 영향을 미치는 문제에 대해서만이라도 정기적으로 학생들의 목소리를 수렴하고 그것을 반영하는 체계가 갖춰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학교 안에서 학생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사실 중.고등학교에만 해당되는 일은 아니다. 대학교에서도 학생들의 목소리는 쾌적하고 폼나는 회의실에서 논리적인 주장과 설득이 아니라 땡볕 아래 잔디밭이나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서 분노와 절망을 담은 외침이 된다. 비학생에 의한 학교의 독점을 깨고 학교 내 결정 권한을 분산시키는 것이 이 나라 교육의 가장 큰 현안인 것 같다.
학교의 현실은 학교가 민주주의를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무덤이 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결정 권한은 소수에 집중돼 있고 그 소수가 다수의 학생을 지배하는 거의 반독재 체제가 여전히 작동하는 곳이 학교다. 구성원의 권리가 존중되지 않고, 목소리가 무시되며, 결국 힘이 지배하는 학교 안에서 배우고 생활하는 학생들이 나중에 과연 제대로 된 민주시민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런 학생들이 성년이 돼 사회에 나가면 자신이 경험한 것처럼 힘으로 다른 사람을 지배하려고 할 가능성이 높다. 이 나라 민주주의가 거의 답보 상태인 이유 중 하나도 이런 학교 환경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와중에 경기도 교육감이 고1 이상 학생들에게 교육감 선거권을 주자고 주장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적극 찬성이다. 고 1이면 클만큼 컸고 요즘 고등학생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많은 정보을 접해서인지 생각보다 똘똘하다. 민주주의 교육도 전혀 받지 못하고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경험해 보지도 못한 60대 이상 노인들보다 그들이 더 잘 민주시민의 권리와 투표의 의미를 이해하고 있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학교의 현안을 더 잘 알고 이런저런 눈치 보지 않고, 정치적 영향에 흔들리지 않고 어른들의 이익이 아니라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투표할 수 있다. 그래도 성숙하지 못한 점이 불안하다면 학생들의 표 반영 비율을 조정할 수도 있다. 결국 문제는 생각의 전환과 의지다. 어떤 식으로 투표권을 주고 그 결과를 반영하든 학교 현실을 잘 알지 못하고 생각없이 투표하는 사람이 많은 지금의 교육감 선출 방식보다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지금의 학생들은 유치원에서부터 민주주의 개념과 방식을 가장 잘 체계적으로 교육받은 아이들이다. 그렇지만 학교는 그들에게 교실에서 배운 민주주의를 실행해보고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지 않는다. 열심히 가르치지만 학교가 하는 일은 민주적이지 않아서 뒤돌아 서서 가르친 것을 발로 차 버리거나 땅 속에 묻어버리는 꼴이다.
학교가 이렇게 민주주의의 무덤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학교가 아무리 정치적 결정과 사회 변화에 휘둘려도 한 가지 점은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바로 민주시민을 기르는 것이다. 그렇다면 학교는 학생들이 배운 민주주의를 연습하는 곳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런저런 말 다 집어치우고 가장 중요하고 원칙적인 것은 학교의 주인은 이사장, 이사, 교사, 학부모 등이 아니라 학생이라는 것이다. 그들이 비록 아직은 좀 어리더라도 말이다.'평화갈등 이야기 > 평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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