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약자는 말이 없다평화갈등 이야기 /평화 2015. 10. 14. 11:02
정부, 강한 아버지가 돼야 한다?
한국사 교과서가 국정화의 길로 접어들었다. 황우여 교육부 장관은 "역사적 사실에 대한 오류를 바로잡고....이념적 편향성으로 인한 사회적 논쟁을 종식시키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한 뉴스매체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국정화 교과서에 찬성하는 사람들과 반대하는 사람들의 격차가 1% 남짓이었다. 좋은 이유를 갖다대며 설명했으니 좋게 알아들은 사람들이 꽤 되는 것 같다. 그렇지만 문제는 40%를 훌쩍 넘는 사람들이 반대한다는 사실이다. 이런 상황인데도 정부는 단호하게 국정화를 결정했다. 물론 그 뒤에는 내년 총선을 겨냥한 정치적 계산이 있을 것이란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만 갑자기 내 머리를 스친 생각은 대통령은 물론 정부와 여당이 국민들에게 강한 아버지가 되고 싶어한다는 것이었다.
언어학자인 조오지 라크오프는 미국 정치가 국가를 가족처럼 생각하고 정치적 성향에 따라 다른 도덕적 기준을 가지고 국가를 가족처럼 통치한다고 분석했다. 그가 제시한 '국가는 가족'이라는 은유(metahpor)에 따르면 정부는 부모며 국민은 자녀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보수적 정부와 진보적 정부가 생각하는 정부의 역할, 다시 말해 부모의 역할이다. 보수적인 정부는 국민에게 '엄격한 아버지(strict father)'가 되려고 한다. 엄격한 아버지가 험한 세상에서 생존할 수 있도록 자녀들을 강한 규율로 훈육하고 통제하는 것처럼 정부도 국민들에게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또한 자녀인 국민들을 세상의 악으로부터 보호하고 그들에게 올바른 길을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보수적인 정부는 가정의 '엄격한 아버지'처럼 누구도 자신의 권한에 도전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반면 진보적인 정부는 국민들에게 정부가 '양육적인 부모(nurturant parent)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자녀인 국민이 스스로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 돌봐주고 독려하며, 힘이 부칠 때는 도와주고 삶을 충실히 살 수 있도록 격려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진보적인 정부는 양육적인 부모처럼 국민들과 소통하고 상호 이해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위의 은유에 비춰보면 대통령, 정부, 여당 모두 정치적 계산과는 별도로 국민에게 엄격한 아버지가 되고 싶어한다는 생각이 든다. 단지 이번 국정화 교과서 문제뿐만 아니라 다른 현안을 봐도 그런 생각에 뿌리내린 태도와 행동이 드러난다. 그들의 말처럼 '좌편향'인 교과서로부터 학생들을 보호하고 그들이 '올바른' 역사를 배울 수 있도록 국정화 교과서를 가지고 훈육하고 통제해야 한다고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태도와 행동이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설사 여론조사에서 국정화 교과서에 찬성한다고 답한 사람들조차 이런 방식에는 찬성하지 않을 것이다. 제대로 된 민주국가 어느 곳에서도 '엄격한 아버지' 같은 정부는 필요하지 않다. 미국의 공화당조차 이제는 국민들에게 '엄격한 아버지'처럼 굴 수가 없다. 그것이 국민의 자유와 선택권을 빼앗는 일이 되기 때문이고, 소통과 공동의 문제해결을 불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약자는 말이 없다
사실 담담하게 '엄격한 아버지'가 되고 싶어하는 대통령, 정부, 여당에 대해 썼지만 그런 도덕적 관점과 정치적 접근이 이번 국정화 한국사 교과서 결정에 미친 영향을 생각할 때 가장 화나는 것은 따로 있다. 바로 이번 결정이 중.고등학생들에게 직접 영향을 미치지만 누구도 그들의 생각을 물어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들은 이번 국정화 교과서 문제에서 보이지 않고 인정받지 못하는 직접 당사자다. 자신들이 배울 교과서를 가지고 정치권과 어른들이 논쟁을 벌이고 있지만 그들은 아무 말도 못하고 지켜보기만 해야 한다. 절대적 약자이기 때문에 논의 테이블에 초대받지 못하고 철저히 소외되기 때문이다.
물론 현실적으로 중.고등학생들에게 교과서 집필 방향이나 내용에 대해 의견을 물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지만 최소한 어떤 교과서로 배우고 싶은지, 교과서가 정치적, 이념적 목적에 따라 변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또한 그 결과 만들어진 교과서를 가지고 공부해야 하는 상황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등등은 물어볼 수 있다. 또한 어떤 교과서가 좋은 교과서라고 생각하는지도 물을 수 있고 그런 생각에 귀를 기울여줄 수도 있다. 그런데 그들은 어느 곳에서도 목소리를 낼 수 없다. 가끔 인터넷 공간에서 자기 생각을 조심스럽게 밝힐 뿐이다. 자기 일인데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상황 때문에 가장 황당한 것은 아마도 중.고등학생들이 아닐까 싶다.
화가 나면서도 가장 걱정되는 것은 이런 상황을 보고 아이들이 한국사회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이다. 이 사건을 통해 더 많은 아이들이 정치 권력으로 하루 아침에 모든 것이 바뀔 수 있는 현실, 다시 말해 힘이 지배하고 힘 있는 자가 모든 것을 가지는 여전히 비민주적인 우리사회의 현실을 알게 됐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 중 많은 아이들이 성인이 돼 사회에 나갔을 때 그런 힘을 추구하고 힘을 악용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게 될 가능성이다. 힘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당연히 약자가 희생될 수 밖에 없지만 자신들이 겪었던 것처럼 약자의 희생이나 소외를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국정화 교과서 결정은 한쪽으로 기울어진 역사를 가르치는 문제를 야기할 뿐만 아니라 노골적인 방식으로 아이들에게 힘이 지배하는 비뚤어진 한국사회의 현실을 주입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평화갈등 이야기 > 평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평화는 무엇을 탐구하는가? (0) 2015.12.23 시위와 전략적 피스빌딩 (0) 2015.12.01 학교, 민주주의의 무덤? (0) 2015.10.08 자살, 그리고 정의 없는 사회 (0) 2015.07.24 집밥의 시대와 최저임금 (0) 2015.07.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