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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 그리고 정의 없는 사회평화갈등 이야기 /평화 2015. 7. 24. 11:55
죽음에 대한 모독
7월 18일, 국정원 직원이 자살했다. 허탈했다. 생각해보니 가끔씩 겪곤 했던 그 허탈함과 같은 것이었다. 사회를 뒤흔드는 사건이 발생하고, 특정인이 지목되고, 정부와 정치권이 긴장하고, 그러다 갑자기 핵심 증거를 쥔 그 특정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대부분 크게 모자란 것 없이 살았던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자살을 택한 구체적인 이유는 본인만이 알 것이다. 그러나 그런 자살로 인한 결과는 '사회를 뒤흔든 사건'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 묻힌다는 것이다. 참 난감한 상황이 된다. 살았을 때 어떤 일을 했건 진심으로 죽은 자의 명복을 빌어주는 우리네 풍습을 지키기 힘든 상황에 직면하게 되기 때문이다. 죽은 사람을 물고 늘어지자니 참 무정한 일인 것 같고, 그렇다고 그냥 넘어갈 수도 수도 없다. 자살한 사람이 그것을 노린 것이 아닌가해서 화가 나기도 한다. 최악은 그런 자살을 전세 역전의 기회로 이용하는 사람들이 생긴다는 것이다. 정말로 무정한 일이다. 이번 국정원 직원의 자살도 우리사회에서 심심찮게 일어났던 그런 일의 복사판이다. 생과 사는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지만 그의 자살은 사회적 사건이라 유감스럽지만 개인사가 될 수 없다. 그의 자살은 목적을 가지고 있었기에 결과적으로 인간사에서 가장 존중받아야 하는 일중 하나인 죽음을 모독한 것이 됐다.
자살한 국정원 직원은 국정원 해킹 의혹을 밝히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인물 중 하나였다. 그런데 자살을 택했다. 그런데 왜 자살을 택했는지 그것을 이해하기 힘들다. 유서의 요지는 자신이 잘못했고 조직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것이다. 다른 사건에서 자살한 사람들처럼 그도 자신의 죽음을 통해 모든 것을 덮어버리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 솔직히 의도가 아주 불손하다. 그렇지만 어쨌든 인간으로서 가장 힘든 자살을 택했고 이미 고인이 된 사람이기에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싶어진다. 왜 그랬을까? 국정원이라는 특수하고도 폐쇄적인 조직, 검찰도 정치권도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권력 기관, 국가 차원에서 무작정 삼킬 수도 쉽게 뱉을 수도 없는 정보 기관, 이런 모든 것들이 그 사람에게 압력이 됐을까? 그 사람은 정말 자살을 할 정도로 국정원을 사랑했을까? 정말 모든 사실이 덮어지길 바랐을까? 자신이 죽으면 정말 모든 일이 끝날 것이라고 믿었을까? 이런 밑도 끝도 없는 질문들이 이어진다. 어쨌든 명백한 사실은 진실찾기에서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이 중요한 증거를 삭제한 후 죽었고 그것이 어떤 식으로든 진실찾기를 방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는 결국 정의의 외면이 될 수 있다.
한 없이 가볍고 하찮은 정의
사회적 사건과 관련된 자살은 우리사회에서 정의가 얼마나 가볍게 취급되고 하찮게 여겨지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곤 한다. 사법적 정의도 도덕적 정의도 마찬가지다. 한 없이 가볍고 하찮은 정의는 매번 길을 잃고 헤매다 결국 시궁창에 쳐박힌다. 물론 정의가 제발로 그 길을 찾아가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 그렇게 만들기 때문이다.
정의는 두 가지 이유 때문에 가볍고 하찮은 결말을 맞는다. 하나는 정의를 무시하는 사람들 때문이다. 우리사회에서 힘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정의에는 관심조차 없다. 그들은 뻔뻔하게도 말과 행동을 통해 힘이 가르키는 방향이 정의라고 강조한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힘으로 정의를 깔아 뭉갠다. 힘 없는 사람들이 외치는 정의는 '안타깝지만 뭐 어쩌라고...'라는 식으로 하찮게 취급한다. 덧붙여 '억울하면 출세하든가....'라고 비수까지 꽂는다. 다른 하나는 정의를 불신하는 사람들 때문이다. 힘 없는 사람들도 여기에는 적극 가담한다. 반복적으로 정의가 외면되는 것을 경험하고 그 결과 냉소와 절망이 일상이 돼버린 악순환이 가져온 결과다. 그렇지만 정의의 불신이 또 다른 정의의 외면을 가져온다는 것을 생각하면 약자의 선택이라고 무조건 지지해줄 수는 없다.
정의가 이뤄지지 않는 사회는 절망적이다. 정의가 비정상이고 불의가 정상으로 취급되는 사회라는 얘기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최악은 정의를 불신하는 사회다. 정의가 절대 이뤄질 수 없다는 생각이 만연된 사회에서 정의가 이뤄지기는 정말 힘들기 때문이다. 다시 국정원 직원의 자살로 돌아가보면, 그는 정의를 불신한 것이 분명해 보인다. 사회가 무능해서건 무관심해서건 어쨌든 그는 정의가 이뤄질 것으로 믿지 않았고 정의를 하찮게 봤다. 그 정의는 아주 기본적인 사법적 정의인데도 말이다. 그는 자신의 죽음이 허약한 사법적 정의를 이길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고, 아무리 사회와 정치권이 떠들어도 자신의 죽음이면 모든 것이 끝날 것으로 생각했다. 물론 그가 자살을 택한 진짜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 달랑 몇 장의 유서로는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한 사람의 복잡한 심경을 다 알 수가 없다. 거기에는 자신이 필요로 했던 개인적 정의가 숨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가 정의를 믿지 않았던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의 비극이고, 우리 사회의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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