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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국가 안보 vs. 국민 안전평화갈등 이야기 /평화 2015. 6. 8. 00:00
한 마디로 '갈수록 태산'이다. 정부의 대응은 뒷북 투성이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병원들의 안전불감증도 예상을 뛰어 넘는다. 메르스 확산 상황은 그야말로 '인재'다. 솔직히 나는 어떻게 질병관리본와 복지부 등 보건 당국이 상식 수준의 대응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는지, 또는 못했는지 정말 궁금하다. 나는 그들이 능력이 없거나 게으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일까? 병원이 메르스 확산의 주범이 된 지금 병원들과 의사들의 대처도 문제지만 그들까지 탓하기엔 솔직히 에너지가 딸린다. 사실 나를 포함해 대부분의 사람들을 복장 터지게 하는 것은 국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보건 당국과 정부의 대응이다.
대응 시나리오는 있었을까?
메르스가 위험한 전염병인 것은 이미 전 세계적으로 알려진 일이고 그런 와중에 환자가 발생했는데 왜 초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았을까? 첫 환자로부터 감염된 사람들이 나왔을 때 왜 그렇게 느리게, 안이하게 대응했던 것일가? 인력이 부족해서였나? 그리고 1차 감염환자가 입원했던 병원의 환자와 방문자에 대한 전수조사는 왜 최초 발생일로부터 15일이 지나 이미 전국으로 확산이 시작된 후인 6월 5일에나 결정됐나? 정부 차원의 공식 대응책은 왜 6월 7일에나 발표됐을까? 질문들이 꼬리를 문다. 그리고 든 마지막 생각은 보건 당국과 정부는 메르스 같은 전염병이 상륙할 때의 대응 시나리오를 갖고 있기나 했을까? 정부는 이런 상황에 대처할 능력이 있는 것일까? 아니 적극 대응할 생각이 있기나 한 것일까? 이런 근본적인 질문이다. 지난 20일 동안 일어난 일들을 보면 전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저런 질문들을 하다보면 조금 다른 시각으로 문제에 접근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다른 질문이 생긴다. 정부가 그렇게 쓰기 좋아하는 '안보 위기' 상황이었다면 그렇게 안이하게 대응했을까? 그들이 생각하는 국가 안보란 무엇일까? 거기에 국민들의 안전은 포함돼 있기나 한 것일까?
국가 안보와 인간 안보
'국가 안보' 담론은 여전히 우리사회, 특별히 정부의 통치 철학을 지배하고 있다. 군사력은 물론 정치, 외교, 경제의 힘을 통해 국가와 국민을 보호하는 것을 말하는 이 개념이 우리나라에서는 군사력을 통한 국가와 영토 보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다른 나라들이 국가는 물론 국민을 보호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군사력을 넘어 외교와 정치에 동등하게 힘을 쏟고 있는 것과는 다르다. 나아가 냉전 종식 이후에 대부분의 나라들이 국가 안보를 넘어 '인간 안보' 개념을 수용하고 있는 것과도 너무 다르다. 인간 안보는 국가를 넘어 개인 삶에 초점을 맞춘 개념이다. 즉 국민 개개인의 경제, 식량, 건강, 환경, 공동체, 정치 분야에서의 안전을 담보하는 것을 말한다. 거기서 거긴 것 같지만 국가 안보와 인간 안보의 개념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국가 안보가 국가를 위해 개인의 희생까지 정당화하는 개념이라면 인간 안보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안보가 곧 국가 안보를 담보하는 것이라는 접근을 취한다. 그리고 개개인의 안보는 다른 말로 모든 삶의 영역에서의 안전이 담보되는 것을 말한다. 북한을 마주하고 있는 우리의 특수한 상황 때문에 국가 안보가 강조될 수 밖에 없다는 구태의연한 얘기는 집어치우자. 인간 안보에 초점을 맞춘다고 국가 안보가 위험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국가 체제와 영토가 아닌 국민 개개인의 안전을 위해 국가 안보를 더 잘 지켜야 하는 것으로 접근만 바꿔지기 때문이다.
'국가 안보'와 상관 없으면 국민 안전은 나몰라라..
물론 국가 안보 개념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정부가 국가 체제와 영토 보전에 초점을 맞춘 국가 안보를 통치의 근간으로 삼고 국민 안전은 국가 안보를 해치는 수준이 되지 않는한 소홀히 다루거나 외면한다면 그것은 큰 일이다. 그런데 이번 메르스 사태가 딱 그 꼴이다. 정부는 환자 발생 초기에 적극 대응할 수 있었지만 그것이 국가 안보와는 상관 없는 것으로 여겨 해당 부처와 기관들에게만 맡겨둔 것으로 보인다. 비상 사태로 간주하지도 않았고 초기 예방을 위해 인력이 부족하면 군 인력까지 동원해야 했지만 그러지도 않았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생명이 중요하지만 국가 안보 이념 하에서 국가 전체의 안보만 해치지 않는다면 몇몇 개인의 희생은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고 봤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정부와 보건 당국이 뒤늦게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메르스가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수준에 도달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전염병이 확산돼 민심이 흉흉해지고,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확대되며, 거기에 주변국과 국제사회의 압력까지 커지면 국가 안보가 위험해지는 것으로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국가 안보를 위해 정부가 적극 개입해야 하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지나친 해석이라고? '글쎄올시다....'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지만 이번 사태를 보면서 드는 생각은 딱 이것이다.
난 솔직히 내 생각이 '쓸데없는 것'이기를 바란다. 정부와 행정 당국이 단순히 무능하거나 게으른 것이 아니라 국가 안보에 초점을 맞춘 이념과 철학으로 통치를 하고 있다면 이번 같은 사태가 재발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솔직히 난 굳이 정부에게 국가 안보 개념을 포기하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그것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다만 국가 안보에만 초점을 맞추고 국가 안보가 위협받지 않는한 국민 안전은 소홀히 다루는 일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국가 안보와 국민 안전은 상반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아가 국가 안보를 우선시하면 국민 안전은 외면될 수있지만 국민 안전을 우선시하면 국가 안보는 당연히 지켜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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