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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질' 경제, 제대로 '을'이 되는 것은...평화갈등 이야기 /평화 2015. 6. 1. 00:00
아침에 읽은 두 개의 기사는 닮아 있었다. 하나는 '베트남 한국 기업 갑질' 기사고, 다른 하나는 '방송사 비정규직 백화점' 기사다. 굳이 구분하자면 하나는 '노동력 착취'와 '노동자 인권 침해'에 대한 기사고, 다른 하나는 요즘 말로 '열정 페이'에 대한 것이다. 그렇지만 둘 다 쥐꼬리만한 돈을 벌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노동자들의 얘기다. 첫 번째 기사의 내용은 하루에 화장실을 여러번 가면 엘로우 카드를 준 후 쌓이면 해고를 하고, 생산품 수가 맞지 않는다고 몸수색을 하고 땡볕에서 벌을 세우기도 하며, 휴일에 24시간 연속 노동을 시키는 등의 기가 차는 내용이다. 그렇게 혹독하게 일을 시키면서 노동자들에게 주는 임금은 법에 저촉되지만 않으면 되는 최저임금 수준이다. 베트남 기준 최저생활임금에 30-40%나 못 미치는 액수란다.
두 번째 것은 몇 명의 PD 이외엔 대부분이 아르바이트, 프리랜서, 계약직 등의 꼬리표를 달고 일하는 방송국의 비정상적 상황에 대한 기사다. <1박 2일> 스태프 80명 중 정규직은 고작 PD 6명 뿐이고, 나머지 인력은 하청, 하청의 하청 등을 통해 메워진단다. 그리고 밤낮없이 뼈빠지게 일해서 받는 돈이 가장 힘든 막내들의 경우 150-200만원 정도란다. 이것이 공영방송의 현실이다. 하긴 뭐 다른 방송사들도 비슷한 행태일테니 이쯤되면 모든 예능 프로그램을 보이코트하고 싶은 심정이다. 사실 나 혼자 그래봐야, 그리고 다 같이 해도 일자리를 잃는 것은 계약직일테니 효율적인 대응책도 아니다. 어쨌든 결론은, 이 나라 저 나라에서 사람 착취하는 일이 성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제 위와 같은 일을 짧고 굵게 '갑질'로 정리하곤 한다. 계약서에 갑과 을로 표기하는데서 나온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사실 난 실소를 하게 된다. 내가 출판사와 서명한 계약서들에는 항상 저자인 내가 '갑'으로 돼 있다. 그런데 사실 난 갑질을 할만큼 힘 있는, 한 마디로 잘 팔리는 책을 쓰는 작가가 아니다. 이런 경우 갑은 오히려 출판사다. 저자에게 강요를 하지는 않지만 책의 내용와 구성 방식에 있어서 편집과 마케팅 전문가인 출판사의 얘기를 듣지 않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얘기가 좀 샜지만 어쨌든 대체적으로 갑은 힘의 관계에서, 특별히 시장 내 힘의 관계에서 우월한 위치에 있는 사람을 말한다. 그런데 이른바 '갑'이 하는 일들을 그냥 '갑질'로 설명하기에는 뭔가 부족한 감이 있다. 언뜻 들으면 '센스, 짱!'의 신조어같지만 '갑질'이 상세하게 분석되고 나열돼야 하는 많은 문제점들을 오히려 한 마디로 뭉뚱거리거나 단순화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갑질'이란 말을 쓰더라도 그 속에 담긴 수많은 얘기들은 놓치지 말고 곱씹고 분석해야 한다.
사실 기사에서 다룬 베트남과 방송사의 일은 단순한 '갑질'을 넘어 비인간화의 전형이고 인간에 대한 폭력이다. 한 마디로 인간에게 해서는 안되는 일이고 자기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을 희생시키는 일이란 얘기다. 베트남 노동자들이나 방송국 계약직 노동자들 모두 노동자로서 존중받지 못하고 있고, 자존감에 상처를 입고 있으며, 그로 인해 몸과 마음, 삶이 피폐해지고 있으니 말이다. 일을 한다는 것은 돈을 벌기 위해 노동력을 파는 행위다. 물론 생계 유지를 넘어 자존감 성취, 삶의 가치 실현 등의 이유가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그렇다. 그런데 고용하는 쪽은, 특히 '갑질'하는 고용주는 노동력에 대해서만 계약했을 뿐인데 노동자의 삶 전부, 나아가 인간으로서의 권리까지 바칠 것을 요구한다. 노동력의 가치조차 제대로 쳐주지 않으면서 말이다. 그러면서 수요보다 공급, 다시 말해 노동력 공급이 많다느니, 경쟁사회라느니, 전문가가 되기 위한 훈련이라느니 하는, 따져보면 전혀 논리적이지 않은 핑계를 갖다 붙인다. 아무리 공급이 많아도 노동력 없이 자기가 뭔가를 만들고 팔 수 없는데 마치 그 많은 사람 중에서 뽑아줬으니 고마워하라는 투로 말이다. 그냥 스스로 '나쁜 짓' 또는 '나쁜 놈'으로 인정하면 그 '쿨함'은 인정해주겠지만 나쁜 짓, 다시 말해 비인간화와 폭력을 저지르는 가해자는 되지는 않겠다고 지나가는 개도 웃을 논리를 우기는 것을 보면 화가 치민다.
사실 더 화가 나는 것은 비인간화와 폭력을 자연스런 시장경제의 모습으로 치장한 이른바 '갑'들의 논리에 넘어가 서로 싸우는 을들이다. 세렝게티에서 볼 수 있을 법한 동물적 생존 방식을 가지고 서로 으르렁거리는 을들이고, 소위 '갑질'하는 사람들의 논리를 들이대며 자기 합리화를 꾀하는 을들이다. 뭐 베트남이나 방송국에서 그런 일이 일어난다는 얘기는 아니다. 현재 우리가 직면한 무한 경쟁의 시장에서 스스로 '을'이라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렇다는 얘기다. '을'들 속에서 '갑'이 되고 싶은 욕구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은 결국 비인간화와 폭력,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나쁜 짓을 따라하는 것이다. 괜찮은 '을'이 되려면 열악한 환경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라도 서로 자존감을 지켜주고, 매순간 자신은 물론 모두의 자존감을 지키면서 제대로 된 '을'로 사는 선택을 해야 한다. '갑'의 '자비'를 바라고 자기와 같은 '을' 중 하나를 뭉개고 서는 것보다 그것이 훨씬 당당한 일이다. 상황이 그렇지 못하다는 얘기는 이미 널려 있고 질리도록 들었다. 변화를 원한다면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과 동료의 자존감과 가치를 지켜주는 선택을 해야 한다. 그래야 적어도'갑질'하는 사람들보다는 나은 인간으로 살 수 있다. 뭐 이런 당연한 얘기를 쓰냐고 할지 모르지만 오늘은 그냥 이 당연한 얘기가 땡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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