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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폭력, 민주사회의 모순평화갈등 이야기 /평화 2015. 5. 12. 00:00
오늘 아침 뉴스를 검색하던 중 눈에 들어온 기사 제목이 있었다. "..하룻밤에만 경찰 물대포 4만 리터 쏴"라는 제목이었다. 5월 1일 노동절 및 세월호추모 철야 집회를 막던 경찰이 안국동 네거리에서 살수차 3대로 집회 참가자들에게 쏜 물의 양이란다. 1.5 리터 페트병으로 2만 6666병 분량이고, 경찰이 2010년 이후 물대포를 사용한 13차례 집회 가운데 가장 많은 양이란다. 4만 리터를 1.5리터 짜리 물병에 담아 쌓아놓으면 얼마나 될까 생각해봤지만 상상이 안 간다. 그뿐만이 아니다. 물에 섞어 넣은 캡사이신 최루액도 무려 45 리터였단다. 이 양 또한 상상을 초월한다. 경찰이 이렇게 막대한 양의 물과 캡사이신 최루액을 들이부은 이유는 시위대가 청와대로 향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한 마디로 '헉....'이다. 시위대가 무기를 든 것도, 그리고 최근 있었던 볼티모어 폭동에서처럼 약탈과 방화를 지질렀던 것도 아닌데 특정 장소로 행진하는 것을 막기 위해 취한 조치로는 과해도 너무 과한 것이었다.
이번에 경찰청이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0년 이후 집회를 막기 위해 경찰이 가장 많은 물을 쏟아부은 두번째 집회는 4월 18일 세월호추모 범국민대회였다. 이때 사용한 물의 양은 33200 리터였다. 그런데 2위와 그 다음 순위와는 사용된 물의 양에 차이가 많았다. 3, 4, 5위는 2011년 11월 한-미 FTA 반대 집회 때인데 경찰은 각각 24800, 22300, 22000 리터의 물을 쏟아부었다. 이렇게 수치를 나열하고보니 자연스럽게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4월 18일과 5월 1일 집회 참가자들이 그렇게 위험한 사람들이었나? 그들의 행진이 그 많은 양의 물과 캡사인을 쏟아 부을만큼 위협적이었나? 그래서 경찰이 위협을 느꼈나? 경찰이 기록을 갱신하려고 안달난 것은 아니었을테니 이런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날 벌어졌던 일을 보면 집회 참여자들은 무기도 없었고, 약탈이나 방화을 저지르지도 않았고, 경찰에게 위협을 가하지도 않았다. 물론 짐작컨데 좀 과격한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 그것은 중무장한 경찰을 위협할 정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다만 경찰이 집회를 막고 집회 참가자들이 그에 저항하면서 충돌이 일어났을 뿐이다. 후에 나온 통계에 따르면 5월 1일 집회 참가자들과 경찰의 충돌로 인해 경찰 10명이 부상했단다. 그중 중상자는 없었다. 물론 집회 참가자들 중에도 부상자가 많았을 것이지만 그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었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해보면 결론은 하나다. 경찰이 살수차를 동원해 막대한 양의 물을 뿌리면서 과잉 진압을 했고, 그것은 명백한 '경찰 폭력'이었다는 것이다.
경찰과 폭력은 어울려서는 안되는 단어다. 물론 경찰이 범죄자들을 다루면서 폭력에 노출되는 상황이 흔하고, 그에 따라 폭력적으로 대응할 여지도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경찰의 기본 임무는 사회 폭력, 그중에서도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폭력을 막고 색출하는 것이다. 시민의 안전을 위해 일하는 경찰은 선제적으로 폭력을 사용해 시민의 안전을 위협할 수 없다. 그런데 우리는 '경찰 폭력'이란 말에 익숙하다. 그것이 과거의 맥락에서만 사용되는 단어였으면 좋겠지만 여전히 현 상황에도 적용된다. 이런 현실이 무척 당황스럽다. 백번 양보해서 경찰이 살수차로 그 많은 양의 물을, 그것도 캡사이신 최루액을 섞어 집회 참가자들에게 퍼붓는 상황이 정당화될 수 있으려면 서울 시민들이 위험한 상황이었어야 했다. 집회 참가자들이 폭도여서 주변 시민들의 안전이 우려되는 상황이었어야 했고, 그래서 주변 사람들을 모두 피신시키고 경찰로는 부족해 군대까지 동원해 치안을 유지하고, 비상계엄까지 고려하는 상황이었어야 했다. 그 정도 상황이 아니었는데 경찰이 그 많은 양의 물을, 그것도 80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한 장소에 모인 사람들에게 쏘아댄 것은 민주사회에서 절대 정당성을 확보할 수 없는 일이고, '경찰 폭력'이라는 말로밖에 설명될 수 없는 것이었다.
아주 오래된, 그리고 기본적인 갈등 이론에 의하면 경찰 폭력과 같은 사회적 모순은 사회 갈등을 발생시키는 근본원인이 된다. 경찰의 본래 임무를 알고 있는 시민이 경찰의 모순된 행동을 한없이 묵과하지도 그것에 끝없이 굴복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최근 몇 달 동안 미국 각지에서 일어난 경찰 폭력과 그에 대한 시민 저항을 봐도 잘 알 수 있는 일이다. 물론 우리사회도 겪었던 일이다. 이런 이론과 현실은 어떤 민주사회에서도 경찰 폭력이 정당화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이런저런 핑계로 경찰 폭력을 불가피한 것으로 포장하면 결국 경찰, 그리고 그 위의 행정체계와 시민 사이에 심각한 사회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시민은 안전한 사회를 위해 불가피하게 경찰이 필요하지만 또 다른 얼굴을 가지고 자신의 안전을 위협하는 경찰과는 대립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론에 따르면, 그런 모순적 상황이 계속되면 시민은 더 강하게 사회적 규범을 깨면서까지 저항하는 선택을 하게 된다. 난 그런 일이 생기지 않기를 바란다. 적어도 우리는 원칙적으로 경찰 폭력이 정당화될 수 없고, 동시에 시민의 폭력도 정당화될 수 없는 민주사회에 살고 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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