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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군 훈련장에선 현역처럼?평화갈등 이야기 /평화 2015. 5. 16. 00:00
예비군 훈련장에서 모든 예상을 능가하는 초유의 총기 사건이 벌어졌다. 가해자를 포함해 2명이 사망하고 3명이 부상을 당했다. 가해자가 가까운 곳에서 조준사격을 했기 때문에 부상의 정도도 심하다. 이번 사고 역시 인재다. 그것도 기강이 심하다는, 다시 말해 모든 것을 눈꼽만큼의 융통성도 없이 원칙대로 한다고 주장하는 군에서 일어난 인재다. 물론 우리는 이미 겪은 각종 사건들을 통해 그런 원칙론이 군이 제 편할 때만 들이대는 주장임을 잘 알고 있다. 이번 사건을 도대체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해야할지 혼란스러웠다. 어쨌든 결론은 이런 일은 자꾸자꾸 얘기하고 널리널리 의견을 알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다양한 생각을 공유하고 기존의 것과 다른 시각으로 문제를 보면서 군과 정부에 구체적 변화를 요구할 수 있다.
총기 난사 뉴스를 들었을 때 처음 든 생각은 '군은 정말 사람 목숨을 우습게 아는구나....'였다. 어떻게 진짜 총을 가지고 그 많은 사람들이 훈련하는 곳을 그렇게 허술하게 관리를 하는지 기가 막혔다. 더군다나 예비군 훈련에 가는 사람들은 군인이 아니라 민간인이다. 물론 예비군 훈련이 의무사항이고 국방부는 "부대에 들어와 훈련하게 되면 현역과 같다"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제한된 몇 시간을 군대 환경에서 지낸다고 해서 그들이 군인인 것은 아니다. 한 마디로 그들은 바짝 긴장하고 군기가 든 진짜 군인이 아니라 민간인이기 때문에 총기를 다룰 때 작은 위험요소도 개입되지 않도록 군부대에서보다 철저히 환경과 상황을 관리해야 한다는 뜻이다. 안전을 담당할 사람도 더 많이 배치해야 한다. 그런데 관리와 운영이 허술하기 그지 없었다. '예비군복을 입으면 모두 개가 된다'는 우스개 소리에 맞장구라도 치듯 예비군 훈련장도 그런 분위기에 맞게 대충대충 관리했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는다. 그런데도 군대에서처럼 예비군들에게 명령에 따르도록 강요를 하고 안전하지 않은 환경에서 목숨을 담보로 잡고 훈련을 시킨 셈이다. 민간인을 '현역'이라고 우기면서 "까라면 까라"는 식의 불도저식 군대 문화를 그대로 적용시킨 셈이다.
다음으로 든 생각은 좀 더 근본적인 것이다. '정말 예비군이 필요한가?'라는 의문이다. 물론 군이나 정부는 유사시를 대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하고, 많은 국민들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렇다면 또 다른 의문들이 생긴다. 첫째는 예비군 훈련은 왜 그렇게 설렁설렁 되는가이다. 이미 소문을 들어 다 알고 있고 올해 초 정부가 예비군 훈련을 실전처럼 강화하겠다고 선언한 것을 봐도 그 헐렁함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그 말은 다른 많은 경우처럼 현장까지 가기도 전에 사라져 버렸다. 훈련을 강화했다면 관리도 강화됐어야 하는데 이번 사건이 그렇지 않았음을 잘 보여줬으니 말이다.
둘째는 '예비군이 필요하다고 그냥 우기고 있는 것은 아닌가?'이다. 여당 원내대표까지 군의 기강 해이를 질타하며 "지금 당장 예비군 훈련을 중단하고 근본적인 대책을 수립한 후에 재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상시 필요한 예비군이라면 그렇게 얘기해선 안 되는 것 아닌가 말이다. 그렇다면 결국 '절대적으로 필요하지 않는데 필요하다고 우기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더군다나 첨단무기와 미사일이 넘쳐나는 시대에 후방에 '옷'으로만 군 냄새를 풍기는 예비군을 확보하는 것이 비상 체계표의 한 자리를 메꾸는 것 외에 실제 얼마나 도움이 되는건지 알 수 없다. 때문에 '우리는 한국전쟁 후 62년 동안 계속 남북 전면전을 상정하고, 그에 따른 체계를 만든 후, 그것을 현실에 맞게 대폭 수정할 생각은 하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60만 명이 넘는 군을 효율적으로 유지하고, 막대한 정부 예산을 사용하는 군의 비리를 없애고 기강을 바로잡으며, 넘쳐나는 첨단 무기와 고학력의 군만 잘 활용, 관리해도 안전을 위협받을 상황은 아닌 것 같은데 말이다. 예비군이 군대 다녀온 사람들의 기강을 한동안 유지하고, 그럼으로써 국가안보 의식 고취를 강요하는 수단이라면 이제 좀 다르게 생각해볼 일이다. 그럼에도 꼭 예비군 훈련을 해야 한다면 민간인인 예비군들의 안전 문제를 민간이 같이 감시하면서 투명한 관리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강제로 민간인들의 시간, 에너지, 자유를 빼앗는 억압적 상황을 군이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게 해서는 안 되고, 적어도 함부로 대하는 일이 계속되게 해서는 안 된다.
마지막으로 드는 가장 근본적인 질문은 우리사회가 군을 어떻게 관리하고 운영해야 하느냐는 점이다. 군의 관리와 운영을 군에게만 맡겨놓는 것이 옳은 일이냐 하는 것이다. 물론 군사력 강화보다 남북 관계를 개선시켜 점진적으로 군축을 해나가야 한다는 것이 내 기본적인 의견이지만, 그것과 별도로 대다수 국민들이 불안을 느끼지 않도록 정부 예산의 10%를 쏟아붓는 군이 필요하다면 군 관리를 제대로 해야 한다. 무엇보다 군이 현역이나 예비군 가리지 않고 생명을 좌우하는 일이 이렇게 자주 발생한다면 지금까지 충분히 무능력과 부패를 보여준 군을 개혁해야 하고 그 과정을 민간과 함께 진행하도록 해야 한다. 민간이 군에 대해 어떻게 아냐고? 천만에다. 징집제도가 있는 나라에서, 그리고 잊을만하면 한번씩 터지는 대형 군 사고 때문에 싫어도 군의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게 된 국민들은 충분히 능력과 자격이 있다.
거두절미하고 난 내 주변 소중한 사람들의 안전을 무능력하고, 무책임하고, 독선적인 군에만 맡겨놓고 싶지 않다. 기강이 해이해지고, 자신이 해야할 일을 제대로 알지 못하며, 기득권을 누리는데만 관심들 두고, 사건에는 땜방식 대응만 일삼는 군에게 맡겨놓고 싶지 않다. 이번 사고 후에도 국방부는 LTE급으로 '예비군 훈련 총기사고 재발 방지 안전대책'을 발표했다. 이런 저런 세부사항도 열거했다. 몇 십년 동안 방치된 일을 사고 후 이틀 만에 고치겠다고 대책을 내놓으니 더 신뢰가 가지 않는다. 윤일병 사망 후에도 군은 대책을 내놓았지만 별로 개선된 것이 없다. 군대 내 극단적 폭력은 여전히 계속되고 피해자가 계속 생기고 있다. 군을 신뢰할 수 없는 합리적 이유가 있는 것이다. 군을 군에게만 맡겨놓지 말고 우리도 끊임없이 군에 대해 비판적으로, 새로운 방향에서 생각하고 압력을 넣어야 한다. 무엇보다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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