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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대사 테러', '황산테러', 증오의 확산평화갈등 이야기 /평화 2015. 3. 6. 00:00
오늘 하루 열심히 일해보리라 다짐하며 뉴스를 켠 어제 아침. 이건 뭔 소리, 주한 미국 대사가 칼을 맞았단다. 처음 뜬 속보를 봤을 때는 혼자 산책하다가 묻지마 범죄에 노출됐나 싶었다. 아마 그러기를 바랬는지도 모르겠다. 사건이 가지는 무게가 너무 무거웠기 때문이다. 한 나라 대사에 대한 공격은 보낸 나라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될 수 있고, 그 나라가 다름아닌 미국이기 때문이다.그런데 공식 행사에서 공격을 받았다니...곧 이어 나온 빨간 피가 선명한 얼굴과 하얀 식탁보 사진은 끔찍했다. 그리곤 10-20분이 지나자 가해자의 신상이 나왔다. 이건 또 뭔가....음지에서가 아니라 양지에서 멀쩡하게 활동하는 사람이라니... 왜 그런 일이 생겼는지 이런 저런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곧 이어 생각난 것은 얼마 전 있었던 '황산 테러 사건'이었다. 두 사건은 다른듯 하지만 따져보면 닮은 점이 더 많다.
두 사건이 닮지 않은 점은 '황산 테러'는 우익 성향의 생각을 가진 사람이, '미대사 테러'는 좌익 성향을 가진 사람이(그가 외친 내용을 보면) 저질렀다는 것이다. 뭐 이런 구분에 심기가 불편한 사람들이 많이 있겠지만 (물론 나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다) 큰 틀에서 보자면 그렇다는 얘기다. 또한 둘 다 정치적 상황과 무관하지 않으니 이런 구분을 하는 것도 아예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것을 빼면 두 사건, 그리고 공격자 두 사람은 닮은 꼴이다. 두 사람 모두 공개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알리기 위해 누군가를 직접 해치는 선택을 했다. 모두 특정 목적을 가지고 있었고 한참 동안 준비를 해 공격을 감행했다. 두 사람이 가장 크게 닮은 점은 모두 물리적 힘을 이용해 상대를 위협하고 공격함으로써 자신의 주장을 널리 알리고 사회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점이다. 또 짐작할 수 있는 점은 두 사람 모두 공격 대상에 대한 증오를 품고 있었을 것이란 점이다. 공격 대상이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고, 자신이 생각하는 세상을 만드는데 걸림돌이 된다고 여겼을 것이다. 그래서 열심히 준비해 모두 보는 앞에서 본보기를 삼고 싶었을 것이다.
이런 끔찍한 일들을 보면서 가장 우려되는 것은 우리사회에 증오가 확산되고 그 증오가 폭력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여기서 말하는 폭력은 물리적 힘을 동원에 상대에 직접 해를 입히는 가장 원초적인 폭력이다. 물론 우리사회에는 구조나 문화를 통해 가해지는 다른 교묘한 폭력도 많고 피해를 따진다면 그런 폭력이 야기하는 피해가 더 광범위하다. 그럼에도 직접 신체에 해를 가하는 폭력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직접 누군가의 생명이나 신체를 노리는 것으로 가해자의 폭력성을 가장 잘 드러내주기 때문이다. 이런 폭력은 뿌리 깊은 증오나 주체할 수 없는 분노 등에서 비롯되며, 가해자의 인간성이 훼손돼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사실 범죄 수준의 큰 일만 저지르지 않을 뿐이지 증오와 분노를 키우고 그것을 욕설, 협박과 저주의 말 같은 폭력으로 증오와 분노를 표출하는 사람들은 많다. 그들은 SNS나 다양한 인터넷 공간에서 그런 방식으로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풀어낸다. 특별히 정치, 사회 현안과 관련해서는 그런 폭력적이고 자극적인 방식에 의존하는 것이 마치 자신의 정의감을 드러내는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그런 표현 방식이 이번 사건과 같은 큰 사고를 치는 사람들에게는 물리적 폭력의 승인과 같은 '잘못된 메시지'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그렇게 분노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수 있고, 적어도 그들의 지지는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착각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원하고 지지하는 '대의'를 위해서는 '희생'이 불가피하다는 파렴치한 말로 자신을 포장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그것은 사고친 사람들의 착각이지만 그런 식으로 폭력은 확산되고 건강한 비판과 원칙적인 행동이 설 자리는 줄어들게 된다. 물론 그렇다고 미 대사를 공격하고 토크 콘서트에서 황산을 뿌리려 한 사람들의 책임이 희석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양지에서 활동하며 다른 사람들과 멀쩡하게 교류하는 사람이 사고를 친 경우라서 우리사회가 그 사람에게 폭력적 방법의 승인 또는 묵인의 메시지를 보내지는 않았는지 성찰해보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사회에는 왜 증오와 분노가 많아지는 것일까? 왜 사람들은 그 증오와 분노를 건강한 방식으로 표출하지 못하고 험한 말, 협박, 저주, 물리적 폭력 등을 통해 표출하는 것일까. 물론 개인적 품성과 성향의 문제도 있겠지만 그런 사건들이 정치, 사회 문제와 관련돼 있다는 것은 주목해야 할 점이다. 곧 개인적 문제가 아니라 정치, 사회 현안 때문에 증오와 분노를 키우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그 증오와 분노가 누군가에 대한 폭력으로 표출되고 있다는 얘기다. 거기에는 건강한 방식으로 문제를 제기하지 못하게 하고, 화병만 키우게 만드는 정치적, 사회적 환경의 문제가 있다. 정치는 국민과 따로 놀고, 사회 문제는 아무리 소리쳐도 해결되지 않고, 남북 문제는 정치적 대결 구도에 갇혀 헤어나오지를 못하는 상황에서 속이 썩어들어가고 인내심이 바닥나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들 중 누가 또 다시 한계에 달하거나 지지를 얻을 것으로 착각해 사고를 칠지 알 수 없다. 물론 개인의 폭력 행위와 책임을 희석시키기 위해 이런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폭력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다만 개인의 폭력이 사회의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고, 특별히 우리사회는 개인의 한계를 시험하는 구조적 문제가 만연해 있다는 것이다. 그런 구조적 문제에 건강한 방식으로 의견을 표출하고 논쟁을 할 수 있는 공간과 기회의 부재 또한 우리사회의 안전을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라는 것이다. 그나저나 이번 사건이 어떤 정치적, 사회적 파장을 만들어낼지 걱정이 태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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