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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 컵'의 충격과 죄.책.감.평화갈등 이야기 /평화 2015. 2. 26. 00:00
여행의 후유증은 생각보다 오래간다. 미치도록 재밌는 시간을 가진 후 직면하는 현실의 팍팍함 때문이 아니다. 노는 것도 힘든 일인지라 신체적 피곤함이 생각보다 무겁고 낯선 환경에서 지내면서 받은 정신적 스트레스 또한 무시할 수 없다. 내 경우엔 몇 주전 미국 여행에서의 찜찜함이 후유증으로 남았다. 그 찜찜함의 근원은 여행 내내, 그리고 돌아와서도 느꼈던 죄책감이다.
7년 여만에 방문한 미국 캘리포니아. 오랫만에 다시 갔지만 하루가 지나니 타향 같지 않게 금방 적응됐다. 그런데 적응하기 힘들고 새삼 옛 일을 되새기게 하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대량소비와 일회용품 소비가 생활화된 곳이라는 것이었다. 여행은 본래 소비지향적인 활동이다. 그렇지만 혼자 가는 여행에서는 자연스럽게 신중히 소비를 하기 마련이다. 내 경우에는 내 주머니의 돈뿐만 아니라 현지의 물이나 전기도 아끼려고 애쓰는 편이다. 그런데 친구와 함께 친구 집에 놀러갔으니 혼자 여행할 때의 신중한 태도와 행동을 고수하기가 힘들었다. 같이 돌아다니면서 먹고 쓰는 일이 오랫만에 만난 친구들의 일과가 됐으니 말이다. 적절한 타협을 해가며 불가피한 것은 받아들이기로 했지만 식당과 커피숍에서 마구마구 제공하는 일회용품들을 내 쪽에서 능동적으로 조절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째째하게 식탁 위에 남은 종이냅킨을 챙기고 종이컵을 한번 더 써볼려고 노력했지만 아주 얄팍한 만족감을 줄뿐 애시당초 쓰지 않는 것만 못한 일이었다.
그러던 중 나를 경악케 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더블 컵'이었다. 한국에서는 가지 않는 스타벅스지만 곳곳에 널려 있는지라 그곳에서 몇 번 커피를 마셨다. 주문한 커피가 나온 후 뜨거울까봐 갈색 종이 밴드를 끼우려고 했더니 직원히 더블 컵이라 끼울 필요가 없단다. 그래서 살펴보니 종이컵 두 개가 포개 있었다. 그 튼튼한 일회용 종이컵을 한 개 쓰는 것도 황송하고 죄책감이 들어 죽겠는데 두 개라니...그리고 드는 생각은 '이 지나친 친절은 뭔가...?', 그리고 '집에서 몇 개씩 굴러다니는 휴대용 머그 하나쯤 왜 여행가방 안에 넣어오지 않았을까...' 였다. 언제부터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더블 컵은 미국의 새로운 음료 문화가 된 모양이다. 찾아보니 아이스 커피컵을 스티로폼 컵안에 넣어주는 곳도 있단다. 손 차갑지 말라고. 특히 겨울에 아이스 커피는 너무 손을 차갑게 만드니까.... 손발을 오그라들게 만드는 '친절'이다. 뭐 질 높은 서비스, 또는 뛰어난 마케팅 기술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래서 소비되는 일회용품과 쌓여가는 쓰레기, 그리고 삼림 소실과 환경오염은 어떻게 할 것인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좀 찾아봤다. 미국에서 소비되는 일회용 종이컵은 얼마나 되는지... 몇 년전 나온 통계에 의하면 미국에서 한 해 소비되는 일회용 종이컵은 약 580억 개란다. 그리고 한해 소비되는 일회용 종이컵과 종이접시 무게가 약 130만 톤이란다. 그런데 내가 찾은 통계는 2007년 것이다. 7년 이상 지난 지금은 훨씬 양이 늘었을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일회용 종이컵이 문제가 되는 가장 큰 이유는 모두 알다시피 그로 인해 삼림이 소실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종이컵은 재활용 종이로 만들 수가 없다. 직접 음식이 닿는 것이라 규제가 엄격하고 재활용 컵의 경우 튼튼하지 않아 음료 등이 새기 때문이다. 다른 문제도 있다. 따뜻함을 유지하고 새는 것을 막기 위해 종이컵에 입히는 합성수지 때문에 재활용 자체가 쉽지 않단다. 스타벅스의 경우도 재활용 종이컵 시도를 했지만 여러 차례 실패했고 2007년부터는 10%의 종이컵을 재활용 재료로 만든 것으로 충당하고 90%는 여전히 새 종이로 만든 것을 사용하고 있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2008년 스타벅스는 2015년까지 매장에서 나오는 모든 일회용 종이컵을 재활용하는 체계를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2013년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고 말했고 현재 스타벅스 매장에서 나오는 일회용 종이컵 재활용 비율은 약 40%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세계적 대기업이 돈이 없어서는 아닐테고 의지가 없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그럼 한국은 어떨까? 한 마디로 만만찮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한 해 사용하는 일회용 종이컵은 약 135억 개에 달한단다. 이제 계산을 좀 해보자. 미국 인구가 약 3억 2천만 명인데, 우리나라 인구는 약 5천만 명. 미국이 우리보다 6배 이상 인구가 많다. 일회용 종이컵 135억 개를 6으로 곱하면 810억 개. 그런데 미국의 연간 사용 개수는 580억 개. 몇 년전 통계니 쫌 많이 더해서 650억 개 정도로 쳐도 우리의 1인당 소비 개수가 대량소비와 일회용품 소비로 명성이 자자한 미국보다 많다. 미국을 이겼으니 축하해야 하는건지....씁쓸하다. 우리나라 종이컵 사용량이 많아진데는 커피숍 증가가 큰 영향을 미쳤다. 뭐 매일 생기는 것이 커피숍이니, 그리고 사람들의 손마다 들려있는 것이 커피니 알만하다. 그런데 더 중요하게는 일회용 종이컵에 대한 규제가 폐지되고, 일회용컵 보증금제도 폐지됐기 때문이다. 그후로 커피전문점이나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회용 종이컵 사용이 폭발적으로 늘었단다. 규제도 없는데 스스로 지킬 것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순진한 생각이다. 난 커피숍을 많이 다니지 않다보니 가끔 가는 커피숍에서 머그에 달란 말을 잊어버리곤 한다. 그리곤 항상 후회하고 죄책감을 느낀다. 그러면 뭐하나, 이미 써버린 종이컵인걸.... 다시 한번 뼈저리게 반성한다.
평화연구자가 뭔 종이컵 타령이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아주 깊은 관계가 있다. 평화가 관심을 가지는 현안 중 하나가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로 인한 희생의 증가다. 그런데 지구온난화에 두번째로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산림의 소실이고 일회용 종이컵 사용이 산림 소실을 부추기니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그외에도 종이컵 생산, 유통, 처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그리고 지구온난화를 가중시키는 주범인 이산화탄소 문제가 있다. 일회용 종이컵 문제가 돌고 돌아 결국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 그리고 각종 자연재해로 희생당하는 사람들게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갈수록 더워지는 지구와 그로 인한 자연재해의 증가로 희생당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그래서 탄소 1톤의 배출이라도 줄여야 하는 상황에서 먼 미국의 일이든, 내가 사는 한국의 일이든 관계가 있다면 감시하고 반성해야 할 일이다. 그리고 '아니다'고 생각하는 일은 즉시 멈추고 바람직한 태도를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이제는 개인용 머그를 가져가 '세련된 자세'로 커피를 담아달라고 하는 사람들이 생겨야, 그리고 아주 많아져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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