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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전단 저지, 표현의 자유와 인권 침해?평화갈등 이야기 /평화 2015. 2. 11. 00:00
국가인권위가 지난달 전원위원회를 열어 대북전단 살포를 막는 것이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에 해당한다며 정부가 이를 단속하거나 저지해서는 안된다는 의견을 표명하기로 결정했단다. 국가인권위는 대북전단 살포 행위가 세계인권선언이 보장하고 있는 표현의 자유에 속하기 때문에 정부가 이를 제지하는 것은 인권침해라고 봤다. 그런데 지난 달 법원은 대북전단 살포가 인근 주민들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기 때문에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정부 또한 전단 살포 단체들의 행동에 대해 자제를 요청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국가인권위가 존재감을 나타내고 싶었는지, 또는 보수 성향의 정부와 단체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싶었는지 난데없이 표현의 자유를 들먹이며 대북전단 살포를 지지하고 나선 것이다. 평범한 단체가 이런 의견을 표명했다면 그냥 흘려버릴 수 있지만 국가인권위가 내린 결정이니 그 무게감 때문에 그냥 모른체하고 넘어가긴 힘들다. 때문에 국가인권위의 판단이 왜 설득력이 없는지 좀 따져볼 필요가 있다.
대북전단 살포가 사회적 논란이 된 가장 큰 이유는 그로 인해 민통선 주변 주민들의 안전과 생명이 위협받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이유는 북한의 노골적인 위협 때문이고 그 뒤에는 전단의 내용과 살포 방식에 대한 북한의 강한 저항이 있다. 솔직히 전단의 내용을 보면 유치하고 비열하기 그지없다. 내용은 지나치게 자극적이고 '인권'과는 거리가 먼 저주, 살기, 독설이 가득차 있다. 그런 내용을 달가워할 사람은 세상에 없다. 살포 방식도 문제다. 북한이 공식적으로 남한의 적국이기 때문에 공격적 방식에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국경을 넘어 무단으로 전단을, 그것도 공격적인 내용을 담은 전단을 보내는 것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나라는 없다. 그것도 자국민을 꼬이기 위해 돈까지 달아 날려보내는 전단을 좋아할 나라가 어디 있겠는가. 어쨌든 이런 자극적인 내용과 방식 때문에 북한은 강한 거부감과 함께 무력 대응까지 들먹이며 전단을 저지하겠다고 공언해왔고 그것이 결국 민통선 주변 주민들의 안전과 생명을 위협하게 된 것이다. 주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전단 살포로 인해 가장 기본적인 인권인 안전하게 살 권리를 위협받게 된 것이다. 국가인권위의 결정은 이런 배경과 맥락을 통합적으로 보지 않고 표현의 자유만 독립적으로 강조해 내린 판단이다. 그러니 설득력이 없을 수밖에 없다.
국가인권위의 판단이 설득력이 없는 또 다른 이유는 한 편의 권리를 위해 다른 편의 권리를 침해해도 괜찮다는 식의 접근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권 문제를 다루는 기관으로서 모순적인 판단일 뿐만아니라 국가 최고의 인권 기관이 내린 판단으로는 지나치게 피상적인 접근이다. 그 판단에는 결국 전단 살포 단체들의 표현의 자유가 민통선 주변 주민들의 안전하게 살 권리 및 생존권에 앞선다는 주장이 내포돼 있다. 한 편의 인권이 다른 편의 인권보다 우선될 수 있는 상황이 있을 수 있냐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국가인권위가 왜 전단 살포 단체들의 권리가 주민들의 권리에 우선된다고 판단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드는 생각 중 하나는 전단 살포 단체들의 행동을 인권 활동이라고 봤기 때문이고 그것이 결국 북한 주민들의 보편적 인권 보장에 도움이 되는 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남북 대치 상황에서 이런 생각 자체가 정치적 판단이 들어간 것이지만 말이다.
사실 전단 살포 단체들은 인권 단체가 아니라 북한의 몰락을 궁극적 목적으로 삼는 정치 단체들이다. 그 목적 달성을 위해 인권을 선전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을 뿐이다. 그것은 전단이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보편적 인권보다 북한 지도자인 김정은에 대한 비난과 저주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전단이 북한 주민들의 손에 들어가도 과연 북한의 인권 향상에 도움이 될지도 의문이다. 인권은 어떤 상황에서든 보장되고 향상돼야 하는 것이지만 외부의 압력으로 그런 목적이 달성될 가능성은 아주 낮다. 내부의 변화와 내부 사람들, 즉 당사자들의 노력이 전제가 돼야 하고 그런 상황에서 적절한 외부의 지원이 이뤄질 때만 인권은 향상될 수 있다. 결국 북한의 인권은 북한의 환경이 점진적으로 변화되고 북한 주민들이 노력할 때 향상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때 외부의 지원이 필요하겠지만 전단 살포식의 공격적이고 자극적인 방식은 북한 내부의 노력이 있다해도 그것에 전혀 도움이 될 수 없다. 인권이 당사자의 꾸준한 노력에 의해 향상될 수 있다는 것은 우리의 역사와 다른 나라들의 역사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어쨌든 이런 저런 점들을 봐도 국가인권위의 판단은 과연 인권에 대한 통찰을 가진 사람들이 내린 판단인지 의심스러운 것이다.
국가인권위가 근거로 밝힌 '표현의 자유' 또한 생각해볼 여지가 아주 많다. 특별히 다른 사람의 안전과 권리를 침해하는 표현의 자유까지 보장돼야 하는지는 심각히 고려돼야 하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작년 12월 인질 사건과 관련해 호주 언론이 취한 태도를 참고할만 하다. 당시 호주 언론은 인질극이 벌어지고 있는 카페 건너 편에서 내부 상황을 촬영했지만 인질들의 안전을 우려해 영상을 모자이크 처리하거나 자극적인 영상은 보도하지 않았다. 인질들과 범인의 이름도 공개하지 않았다. 카페에서 탈출한 인질들과의 인터뷰 내용도 보도하지 않았다. 그 누구보다 표현의 자유를 주장할 수 있고 표현의 자유를 보장받고 있는 언론이지만 당시 호주 언론 매체들이 가장 관심을 둔 것은 자신들의 '표현의 자유'보다 사람들의 안전이었다. 그들은 사람들의 안전이 표현의 자유보다 우선된다고 판단했고, 그래서 부여된 표현의 자유를 스스로 제한했다.
위에서 언급한 얘기들은 사실 국가인권위에 참여하고 있는 위원들이라면 이미 진지한 성찰과 고민을 거쳤어야 하는 것들이다. 그렇지만 그들은 단편적으로 상황을 인식하고 한 편을 위해 다른 편의 인권을 침해하는 결정을 내렸다. 그런 사람들이 국가인권위 위원들이니 실망스러울 뿐이다. 물론 반대한 2명과 기권한 1명의 위원이 있었지만 최종 판단을 바꾸지는 못했으니 결과는 마찬가지다. 가장 실망스러운 점은 그런 인식이 얕고 편협한 사람들에게 국가 차원에서 인권 문제를 다룰 권한을 부여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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