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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통의 정치와 '공적' 폭력평화갈등 이야기 /평화 2015. 1. 15. 00:00
새해가 됐다고 기자들을 불러 일년 구상을 밝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새해 구상에 시선과 귀를 집중하는 호사를 누리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아마 한 나라에 한 명 정도? 바로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이다. 그런데 신년 기자회견이 끝나자마자 온 나라가 시끄러웠다. 내용에 실망한 사람들, 2015년도 별 볼일 없겠다고 한숨을 쉬는 사람들, '화기애매'한 분위기에 오히려 얼떨떨해진 사람들, 등등... 그런데 가장 일반적인 반응은 소통 부재에 대한 탄식이었다. 한 마디로 '파란집'에 계신 분이 밖에 사는 사람들의 심정을 너무 모르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 것 같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분'은 소통에 문제가 없다고 인식하고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넘기 힘든 가장 큰 산이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잘못을 따진다면 누구를 지목해야할까? 뭘 그리 빙빙 돌리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누군가에게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근거가 있어야 하기에 조금의 머리 회전이 필요하다.
우리가 흔히 부르는 소통은 '의사소통', 그러니까 생각이나 뜻을 서로 전달하고 이해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상호책임이 전제된 행위다. 소통이 잘 되거나 잘 안되거나 상관없이 소통의 쌍방이 결과에 대한 책임을 져야하기 때문이다. 이 점은 소통의 과정을 보면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다. A란 사람이 B란 사람에게 자신을 생각을 전달한다고 치자. A는 전달하고자 하는 생각이나 뜻을 언어, 몸짓, 표정 등을 통해 전달하고 그것은 A와 B의 공동 영역에서 표출되고 공유된다. 그러면 B는 그것을 해석해 A가 전달하고자 했던 생각이나 뜻을 이해하게 된다. 만일 B가 A가 전달하고자 했던 것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면 A가 언어, 몸짓, 표정을 잘못 선택했을 수도 있고, 반대로 B가 엉뚱한 해석 방식을 적용해 전혀 다르게 해석했을 가능성도 있다. 물론 양쪽 다 조금씩 잘못했을 수도 있다. 어쨌든 둘이 반반씩 책임을 질 문제다. 그리고 잘못된 소통을 바로잡는 것도 둘이 같이 할 일이다.
소통이 잘못되면 많은 문제가 생긴다. 오해나 책임 전가가 생기며, 심한 말다툼과 치고받는 싸움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잘못된 소통, 또는 소통 부족은 갈등으로 이어지곤 한다. 많은 사람들이 갈등의 원인을 의사소통의 부족에서 찾는다는 점도 소통이 사람들 사이에 문제를 일으키는 주요 원인이 된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물론 갈등을 의사소통의 문제로만 치부하면 갈등의 원인이 되는 큰 구조나 문화의 문제를 보지 못하고 갈등을 개인화시키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 어쨌든 소통은 사람 사이의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임에 분명하다. 그렇게 중요한 소통이 잘못돼 문제가 생기면 적어도 양쪽 모두가 최소한 반반씩은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런데 자신은 잘못이 없고 상대방이 모든 것을 잘못 이해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소통의 의미 자체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상대가 이해능력이 부족하거나 편견이 있어 오해를 했다 하더라도 그런 상대를 감안하고 적절한 수단을 이용해 생각과 의미를 잘 전달하지 못한 쪽도 반은 책임을 져야하기 때문이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살면서 아무리 노력해도 사람 사이에 소통의 문제가 생기는 것은 흔한 일이다. 그래서 심심치 않게 이런저런 일로 부대끼며 사는 맛도 있을 것이다. 개인 사이에 이렇게 소통이 아닌 불통이 생기고 그래서 문제가 생기는 것이야 보통 있는 일이고 두 사람이 관계를 단절하든, 한바탕 고함치고 싸우든 알아서 해결하면 그만이다. 그런데 공적인 소통, 즉 공적 영역에서 이뤄지는 소통은 다르다. 아니 달라야 한다. 공적 소통은 개인의 목적이 아닌 공적 목적을 가지고 공적 체계에 따라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모든 절차에는 세금이 들어간다. 그러므로 공적 영역에서의 소통 부재, 또는 불통은 무책임, 또는 무능력으로 여겨지고 그에 대해 엄중한 평가의 잣대가 적용된다. 그리고 사람들, 다시 말해 세금을 내는 국민은 그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정당한 권리를 가진다.
공적 소통을 잘해야 하는 사람들은 공직에 있는 사람들, 그것도 고위 공직에 있는 사람들이다. 대통령은 물론 장관들, 국회의원들, 그 주변의 사람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그런데 우리사회의 공적 소통은 아주 일방적이고 오만하다. 자신의 생각과 뜻을 일방적으로 표현하고 국민들이 문제를 제기하면 너무나 오만하게도 국민들이 잘못 알아들었다고 말한다. 심지어 잘 못알아 듣겠으니 다시 잘 좀 말해달라고 애원해도 '사오정'처럼 자기 얘기만 반복하고 오히려 상대를 질책한다. 이런 일방적 소통 방식은 (사실은 소통이 아니지만) 폭력적이다. 자신의 생각과 뜻만 강요하고 다른 사람의 것은 전혀 듣지 않거나 의도적으로 무시하기 때문이다. 더 기가막힌 일은 의사소통의 기본 원리를 무시하는 이런 폭력적 공적 소통이 모두 세금으로 이뤄진다는 것이다. 그들이 한 걸음 움직이고, 한 마디 내뱉을 때마다 모두 그 아깝고 귀중한 세금이 들어간다. 그런데 불통의 정치가 야기한 공적 폭력 때문에 가슴이 답답하고, 화가 치밀어오르고, 술을 가까이하게 됨으로써 정신적, 신체적 해를 입는 것은 세금을 내는 사람들이다. 폭력의 피해가 가시화되는 것이다. 불통의 정치 때문에 술을 마시거나 폭식을 하는 사람에게는 최소한 술값과 음식값 지원이라도 해야 공평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가끔은 고위공직자들이 직책에 오른 것을 혹시 로또로 착각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래서 소통을 외면하는 일에 세금을 펑펑 쓰면서도 아까운 줄 모르고, 제 맘대로 권력을 휘드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국민과 어떻게 소통할까 고민하기보다 자신의 권한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어떻게 잘 사용할까에만 정신이 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확인도 하지 않은채 모든 고위공직자들을 싸잡아 이렇게 얘기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현재의 상황을 보면 국민들의 눈에 잘 띄는 대부분의 고위공직자들이 대놓고 국민들에게 불통의 정치로 공적 폭력을 휘두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 이후 많은 사람들이 쏟아냈던 절망과 탄식은 아마도 그런 폭력으로 상처를 입었기에 자연스럽게 나온 신음이었을 것이다. 문제는 그 소리가 파란집이나 여의도의 큰 집, 그리고 곳곳의 정부청사에까지 전해지지는 않은 것 같다는 것이다. 더 정확하게는 그들이 듣지 않은 것 같다는 것이다. 2015년도 만만치는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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