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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리더의 갑질 폭력평화갈등 이야기 /평화 2014. 12. 29. 00:00
2014년의 마지막 달인12월을 뜨겁게 달구었던 두 명의 여자가 있다. 한 사람은 직원들에게 상상할 수 없는 폭언과 성희롱 발언을 쏟아낸 서울시립교향악단의 박현정 대표고 (자진 사퇴해 오늘로 전 대표가 됐음), 다른 한 사람은 직원들에게 폭언은 물론 신체적 해까지 입히고, 심지어 비행기를 돌려 많은 승객들의 안전을 위협했던 대한항공의 조현아 전 부사장이다. 여론과 언론은 두 사람이 부하직원들에게 한 행동을 '몹쓸 갑질'이라는 말로 정리했다. 자신의 힘을 이용해 상대적 약자인 직원들의 인권을 유린하고, 인격을 모독하고, 부당한 요구를 했다는 것이다. 두 사람의 상식을 넘어서고 인권의식이 실종된 행동은 우리사회의 다층적인 폭력 구조를 재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특별히 실망스러웠던 것은 두 사람에게서 여성 리더가 가진 특유의 포용과 관계의 리더십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었다. 오히려 남성 리더들에게서 흔히 보이는 힘에 의존하는 상하 관계와 관리 형태만 두드러졌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얼굴은 여자인데 생각과 감성은 그냥 남자, 그것도 아주 폭력적인 남자라는 것이다.
여자가 리더의 자리, 그러니까 회사나 단체의 윗자리에 오르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다. 사회에서 전문가로 인정 받고 자리를 잡는 것 또한 쉽지 않다. 전문적 논의를 하는 회의나 학술대회에 가보면 여전히 남자들이 대부분이다. 이렇게 남자들이 대세인 사회에서 끝까지 살아남는 것은 사회생활을 하는 여자들에게 여전히 큰 도전이다. 그래서 우리사회는 성평등을 언급할 때 흔히 기업이나 정치권의 고위직, 또는 정치인들 가운데 여성 비율이 얼마인지를 따진다. 그것이 하나의 성평등 지표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윗자리에 오른 여성들의 비율을 따지는 이유는 단순히 수치적 성평등이 아니라 숨겨진 다른 기대도 있기 때문이다. 나만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암튼 대놓고 요구하진 않아도 그런 기대가 살짝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것은 여성들이 이끌고 관리하는 회사나 단체의 구조나 문화가 달라질 수 있다는 기대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 그런 기대를 할 수 없는 사회인 것이 위 두 명의 여성 리더로 인해 증명됐다. 그렇다면 성별이 여자인 사람이 리더가 되는 것을 굳이 환영해야 하는가 하는 회의도 생긴다. 그들이 몸만 여자일뿐 대부분의 남자들과 같은 생각, 조직 관리 방식, 상하 관계 유지 등에 의존한다면 말이다. 그것이 바람직하든 그렇지 않든 말이다.
여성이 리더가 돼도 구조나 문화의 변화를 기대할 수 없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우리사회가 여성을 리더로 선택할 때 그 사람이 여성적 리더십을 가졌는지를 보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그런 '비정상적인' 리더십 발휘를 원치도 않기 때문이다. 공적인 영역에서는 여전히 힘으로 상하 체계를 잡고, 부하 직원들과 주종 관계를 설정하며,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통솔하는 '사나이' 세계의 방식을 충실히 반영하는 리더십이 '진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성 리더를 뽑아도 사람들이 요구하는 것은 남자들이 힘에 기대 만들어 놓은 구조와 문화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다. 때문에 남자들 세계에 뿌리깊이 박혀 있는 군대문화도 그대로 유지된다. 이것은 좋고 싫고를 떠나서 성별에 따른 리더십 차이가 거의 존재하지 않고, 그런 차이가 사회 구조나 문화의 변화에 전혀 기여를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여성적 리더십을 가진 여성이 윗자리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힘에 의존한 남자 세계의 리더십을 지지하고 찬양하며 강화까지 할 준비가 돼 있는 여성들이 윗자리에 발탁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여성이 리더가 되더라도 지위나 나이 같은 힘에 의존한 관계맺기와 구조운영, 다른 말로 폭력적인 문화가 강화만될뿐 전혀 균열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자들이 가족이나 친구들과 관계를 맺을 때 발휘되는 포용력이나 공감력, 그리고 나이나 지위를 따지지 않는 관계맺기 방식이 사회생활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그것은 윗자리에 오른 여자들의 선택이기도 하고, 그들 스스로 남자 세계에 적응해 진화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니 남자들이 만들어 놓고 유지하는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피터지게 노력한 여자들이 리더의 위치에 올라 결국 자신을 힘들게 했던 힘이 '진리'가 되는 남자들의 세계를 유지하기 위해 애쓰는 결과가 생기는 것이다. 한술 더 떠 위의 두 사람처럼 남자들보다 더 지독하게 힘을 악용하고 폭력을 휘두르며 군대식 조직 문화를 강요하는 것이다.
무조건 남자들이 힘에 의존하는 폭력적 구조와 문화를 만들고 여자들이 피해자라는 말은 아니라. 남자들이 더 폭력적이고 여자들이 덜 폭력적이라는 말은 더더욱 아니다. 그러나 여성성을 얘기할 때 흔히 언급되는 것들이 우리사회의 여성 리더들에게서 두드러지지 않는다는 것은 용기, 독립심, 단호함 같은 진짜 남성성이 아니라 사회화 과정에서 정착되고, 군대에서 강화되며, 사회생활을 통해 '진리'가 되는 왜곡된 남성성이 지배하는 폭력적 사회 구조와 문화가 바뀔 가능성이 낮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우리사회가 여성 리더들에게 여성성을 발휘하는 리더십을 요구하지도 기대하지도 않는다는 것은 폭력적 구조와 문화를 상식으로 취급하는 우리사회의 문제를 그대로 드러내주는 것이기도 하다. 여자에게 여성성이 부각된 리더십을 기대하지 않는 것은 우리사회가 남자들이 만들어 놓은 힘을 신봉하고, 힘에 의존한 관계를 상식으로 생각하며, 그런 폭력적 관계에 별로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는다는 의미도 된다. 이것은 힘보다는 관계와 포용력 및 공감력이 중심이 되는 여성적 리더십의 차별성을 경험해보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사실 지난 대선에 여성 후보가 나왔을 때도 사람들은 여성적 리더십을 거의 기대하지 않았다. 오히려 후보는 표를 얻기 위해 그런 점을 강조해보려고 했지만 지지를 했던 사람들은 그런 기대를 별로 드러내지 않았고 그냥 남자와 똑 같은, 또는 '강한 남자' 뺨치는 강력한 리더십을 기대했다. 대선공약으로 내세운 것이 다 실현되길 바랬다면 뭐 당연한 기대였을 것이다. 그리고 '강한 남자'식 리더십은 그대로 맞아떨어졌다. 뭐 대선공약은 별로 실행된 것이 없지만 말이다.
여자 리더의 갑질 폭력은 결국 조직의 윗자리에 오른 여자들에게 여성적 리더십을 기대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말해준다. 물론 남자들이 그런 갑질 폭력을 휘두르고 여자들은 그럴 가능성이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이런 얘기 잘못하면 여자, 남자 양쪽에서 욕먹기 딱 좋다. 그런 얘기가 아니라 적어도 여성들의 특성인 포용력과 공감력, 그리고 관계를 중심으로 세상을 보는 능력이 여성 리더들에게 있다면, 또는 우리사회에서 그런 리더십이 유효한 구조와 문화가 만들어진다면 윗사람의 갑질 폭력 같은 것은 최소한 줄어들 것이라는 점이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여성적 리더십은 단지 여성들에게만 기대할 것이 아니라 남성들에게도 요구해야 하는 것이다. 자세히는 생각나지 않지만 예전에 들은 어떤 외국 그룹의 노래에 이런 가사가 있었다. "당신 안에는 얼마나 여성적 면(feminine side)이 있나?" 여자들 뿐만 아니라 남자들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여성성'이 사회적으로도 정의되는 개념인 것을 생각하면 여자, 남자 할 것없이 힘이 아니라 포용과 공감으로 관계를 맺고 사람들을 대하는 여성성을 강화하는 것을 고민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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