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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산테러'와 민족주의평화갈등 이야기 /평화 2014. 12. 19. 00:00
최근 한 고등학생이 토크쇼 현장에서 황산 냄비를 투척하려다 실패한 사건이 발생했다. 다행히 냄비 투척이 실패해 많은 사람이 다치지는 않았지만 이 소식을 듣고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처럼 일순간 몸이 굳어졌다. 그런데 기막힌 것은 이에 대해 잘한 일이라고 칭찬을 하고 '열사'가 났다고 얘기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앞뒤 분간 못하고 아무 말이나 내뱉는 한심한 인간들이 많은 세상이다. 그러나 공개된 인터넷 사이트에서 감히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사회는 분명 문제가 있다. 더 큰 문제는 그 말이 과장이나 실수가 아니라 진심인 것 같다는 점이다. 최근 이 사회가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무슨 민주주의 사회에서 이런 황당한 일이 있을까 싶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됐을까? 어떻게 그런 폭력적이고 불법적인 일을 계획하고, 또 그런 일을 칭찬할 수 있을까? 어떻게 그런 말을 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지 못할까?
황산 냄비 투척을 시도하고 그런 일을 칭찬하는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근본원인으로 두 가지를 생각해봤다. 하나는 자신의 생각에 반하는 사람이라면 해를 입히고 심지어 죽여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거기에는 목적이 정당하다면 법 같은 것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도 포함돼 있다. 다른 하나는 나라와 민족을 위한 일이라면 어떤 일도 정당성을 주장할 수 있다는 비뚤어진 민족주의다. 물론 '황산테러'를 시도한 학생이 영웅이 되고 싶은 얄팍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고 그렇지만 자신의 일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모 사이트에서 '윤봉길 도시락'을 들먹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을 내세운 이유는 그런 민족주의 핑계가 한 마디로 먹혀 들어가는 사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후자가 정당화되면 전자를 정당화시키는 것은 아주 쉽다. 즉 자신이 생각하는 민족주의에 걸림돌이 되는 사람에게는 해를 입혀도 된다는 것이다.
우리의 민족주의는 좀 무섭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배우는 독립운동의 역사에서는 사람을 죽인 일을 '의거'로 부르며 아무런 토론도 없이 정당화시킨다. 물론 그 일이 개인의 이익이나 안위를 위한 것이 아니고 민족의 독립을 위한 것이었고 자신을 희생한 것이었으니 개인의 일로 쉽게 취급할 수는 없다. 또한 당시의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 그렇다고 사람을 죽인 일을 너무 쉽게 민족을 위한 '의거'로 찬양하는 것도 솔직히 내 입장에서는 불편하다. 그것은 다른 말로 나쁜 놈이 죽었으니 잘됐고 기쁜 일이라는 말과 똑 같기 때문이다. 또한 요즘 일로 치면 일본의 극우주의자를 죽여도 된다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이런 일은 적어도 토론이 필요하다. 정말 민족의 독립이 사람을 죽인 것을 '의거'라고 할 수 있는 절대적인 이유가 될 수 있는 것인지, 그러면 보편적 가치인 인도주의나 인권과는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 말이다. 또한 민족의 독립을 위한 것이면, 다시 말해 목적이 정당하면 폭력이 폭력이 아닌 것으로 되는 것인지, 또는 그것이 최선의 방법이었는지에 대해서도 말이다. 그런 의거는 폭력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보편적 폭력 개념에 의하면 폭력이다. 더군다나 전쟁 상황이 아니고 상대가 비무장한 상태였으니 더욱 그렇다. 어쨌든 간디의 비폭력 독립운동이 과연 최선이었는지에 대해 비판적 토론을 하는 것처럼 그런 일에도 토론이 필요하다. 재밌는 것은 사람들은 비폭력적 저항에 대해서는 벌떼처럼 달려들어 정당성과 효율성 여부를 따지면서 폭력적인 대응에 대해서는 아주 관대하다는 것이다. 이 민감한 얘기를 꺼내는 이유는 내가 단지 평화연구를 하는 사람이어서가 아니다. 적어도 사람을 죽이고 죽임 당하는 일과 관련해서는 진지한 고민과 토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야 자신의 목적을 정당화시키고, 민족주의나 애국을 내세우며 '미친 짓'을 하는 일도 막을 수 있다는 얘기다. 나라와 민족을 위한다는 핑계로 죽어도 좋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하는 것은 한 마디로 섬뜩한 일이다.
아무런 토론도 없이 아이부터 어른에게까지 민족주의를 절대적 진리로 주입시키는 상황을 보는 것은 엄청 불편하다. 사실 민족주의, 특히 과거의 저항을 미화시키는 일은 어느 민족, 어느 나라에나 있다. 그러나 적어도 현재의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행동으로 옮기는 것에 있어 과거의 민족주의와 현재의 민족주의 사이에 구분이 이뤄진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식민지 시대에나 정당화될법한 강한 민족주의가 여전히 큰 힘을 발휘하고 있고 과거의 방식조차 민족주의, 또는 '애국'이라는 이름 하에 여전히 유효하다. 민주주의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황산테러', '가스통 시위', '폭언과 협박' 등을 소위 국가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범법 행위로 생각하지 않고 애국적 행위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다. 비뚤어진 민족주의와 애국심이지만 어쨌든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국가와 민족을 위한 일이라는 명분이 있다면 어떤 일을 해도, 심지어 사람을 죽여도 칭찬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공유되는 것이다.
그런데 민족주의나 애국을 내세워 죽어도 좋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하는 것과 비슷한 일이 반대 성향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도 나타난다. 소위 정치적으로 진보고 보수 성향의 정부에 비판적인 사람들 사이에서도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저주가 난무한다. 말이 행동으로 옮겨지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어쨌든 '죽어도 좋은 사람'을 구분하고 있다는 것은 섬뜩한 일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의 생각은 내가 볼 때는 아주 모순적이다. 특별히 그런 사람들 대부분이 사형제도를 반대한다는 것을 보면 그렇다. 사형에 반대하는 기본적인 논리는 인간의 생명을 뺏는 것이 비인도적인 일이고 모든 사람의 인권은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모순적이게도 사형제도에는 반대하면서 정치적 반대자나 이념적 대결 상대는 증오하고 죽으라는 저주를 퍼붓는다는 것이다. 명분이 있고 목적이 정당하다면 '죽어도 좋을 사람'을 구분하는 것에 문제가 없다는 태도다. 분명 이중적인 태도고 자기 모순이다. 내 생각엔 이것 또한 다른 종류의 민족주의, 또는 애국심이다. 이 나라의 시대를 거스르는 정치 현실을 타개하고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고 싶은 또 다른 민족주의와 애국심이 보편적 가치인 인도주의와 인권에 우선하는 것이다.
약소 민족, 또는 국가에게 민족주의는 생존을 위해 중요하다. 그러나 강대국, 또는 우리나라처럼 어느 정도 힘이 길러진 나라의 민족주의는 무섭다. 국내적으로는 정치적 갈등을 야기하고 국외적으로는 대한민국의 향상된 힘을 다른 약소국들에게 강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민족주의가 많은 다른 것에 우선되는 대한민국은 그런 점에서 위험하다. 그런데 정치적 보수, 진보 성향의 사람들 모두 어느 정도는 민족주의를 공유하고 있다. 다만 그것을 주장하고 실행하는 방법이 다를 뿐이다. 평화연구를 하는 내 입장에서 보면 그런 민족주의는 항상 위험하다. 폭력을 만들고 정당화하는데 가장 자주 악용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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