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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와 전략적 피스빌딩평화갈등 이야기 /평화 2015. 12. 1. 16:25
'국가 폭력'과 피스빌딩
예견된 상황이었고 예견된 사고였다. 지난 11월 14일 집회에서 물대포가 사용되고 그로 인해 시위에 나선 사람들에게 다소 위험한 상황이 만들어지리라는 것은 모두가 예상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물대포가 시위자들에게 조준 발사되고 그중 한 사람이 치명적 부상을 입고 생명이 위험한 중태에 빠질 것이라는 것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경찰의 물대포는 가장 노골적인 국가 폭력의 한 수단이 됐다. 설사 그것의 사용이 합법적이고 폭동을 막고 시민을 보호하는데 사용된다해도 이론적으로는 그렇다. 합법의 여부를 떠나 누군가의 신체에 피해를 입히기 위해 사용되며 폭동을 막기 위해 사용되더라도 폭동을 일으킨 사람들도 시민이고 그보다 먼저 인간이기 때문이다.
국가 폭력의 정당성 여부는 논란의 여지를 가지고 있다. 국가만이 합법적으로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한과 수단을 가지고 있으며, 합법을 넘어 그것이 국가가 보장해주는 안전을 희망하는 국민들에 의해 정당한 것으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평화 이론에 기반해 보면 인간에 대한 어떤 폭력도 정당화될 수는 없다. 비록 그것이 합법성과 정당성을 얻은 국가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라도 말이다. 국가 폭력을 야기하는 국가의 물리력 사용은 시민 안전을 보장해야 하는 국가의 책임과 그런 책임을 핑계로 악용될 수 있는 국가 폭력의 위험성 때문에 논란의 중심에 서곤 한다. 그렇지만 지금 우리가 직면한 문제는 안전을 위해 국가 폭력을 수용하느냐, 아니면 원칙적으로 모든 종류의 국가 폭력을 거부해야 하느냐는 다소 수준 높은 논쟁이 아니다. 우리가 직면한 문제는 시민의 기본적 권리, 아니 그냥 모든 시민의 안전을 보장해야 하는 국가가 과연 특정 시민들에게는 폭력적 수단을 사용해도 되느냐의 문제고, 그래도 된다고 주장하는 정부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느냐의 현실적인 문제다.
피스빌딩(peacebuilding '평화구축'으로 번역돼 사용되기도 한다)의 개념을 적용하면 우리가 직면한 문제에 조금 다르게 접근할 수 있을 것 같아 한번 시도해보기로 한다. 평화학에서는 익숙한 단어지만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할 수 있다. 피스빌딩은 폭력적 상황을 끝내고 평화적 상황을 만들고 정착시키기 위한 과정과 방식을 포괄적으로 일컫는 용어다. 간혹 피스빌딩을 무력갈등, 그러니까 전쟁이나 그에 준하는 전투가 끝난 후 국가 및 사회 재건이 필요한 상황에 적용되는 개념으로만 이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렇지 않다. 피스빌딩은 다양한 폭력이 존재하고 힘을 발휘하는 민주사회의 상황에도 똑 같이 적용된다. 내전이나 전쟁 후 상황과 똑 같이 민주사회에서도 폭력을 예방, 감소, 제거하고 폭력의 희생을 줄이기 위한 다양한 방식과 과정을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피스빌딩 개념과 그것이 주장하는 과정과 방식이 어떻게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기여할 수 있을까?
전략적 피스빌딩
피스빌딩은 '전략적(strategic) 피스빌딩'과 함께 언급되곤 한다. 군사적 냄새가 나는 '전략적'이란 용어는 요즘엔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언어가 됐다. 피스빌딩에서 '전략적'이란 단기적, 장기적 영향을 미칠 것을 고려해 현재의 접근이나 행동을 결정하고 실행하는 것을 말한다. 또한 단기적, 장기적 영향을 고려해 기존의 다양한 네트워킹을 찾아 활용하고 필요할 경우 새로운 네트워킹을 만드는 것을 말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장기적 목표와 모순되지 않는 단기적, 중기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유연성과 적응력을 키우고 발휘하는 것이다. 이것은 상황의 변화에 따라 다양한 형태를 취하면서 가해지는 폭력에 맞서고 폭력적 상황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다.
전략적 피스빌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개인과 사회의 역량이다. 폭력을 예방, 감소, 제거할 수 있는 역량이고, 나아가 바람직한 미래를 설계하고 실현시킬 수 있는 역량이다. 다른 한편 그 역량은 폭력을 감지하지 못하는 다수의 사람들이 폭력의 문제를 인식하고 폭력을 거부할 수 있게 독려하고 설득하는 역량이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이런 역량이 있는가? 유감스럽게도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전략적 피스빌딩을 계획할 수 있는 역량은 그만두고 현재의 문제를 해결할 기본 전략을 세울 역량도 부족한 것 같다.
우리가 당면한 문제는 합법적 힘을 (비록 그것이 국가 폭력으로 규정되는 것이라 할지라도) 특정 시간, 특정 장소에 나온 국민들에게 사용하겠다는 정부에 어떻게 대응하느냐다. 유감스럽지만 정부는 어떤 시민도 극복할 수 없는 강한 물리적 힘을 동원할 수 있고 그 힘을 사용하겠다는 의지 또한 강하다. 이런 상황에서 힘 대 힘의 대결은 유효하지 않다. 국가의 힘을 극복할 수 없기 때문이고 그로 인해 또 다른 희생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현재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방법은 정부가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의 평화 시위, 나아가 비폭력 시위의 모범을 보여주는 것이다. 비록 비폭력을 가치로 선택하지 않더라도 적어도 전략적으로라도 비폭력 저항을 선택하는 것이다.
비폭력 저항의 힘은 생각보다 크다. 그리고 역사적으로도 약자가 가장 큰 도전에 직면했을 때 상황을 극적으로 변화시키는 힘을 발휘하곤 했다. 1930년 5월 21일, 간디가 시작한 소금 행진에 동참한 수백명의 사람들은 간디의 비폭력 저항을 이어 받아 소금을 가져오기 위해 소금 공장으로 향했다. 그들을 맞이한 것은 영국 군인들의 무자비한 폭력이었다. 그렇지만 그들은 전혀 저항하지 않았고 그 참혹한 모습은 미국 기자의 보도로 전세계에 전해져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1965년 3월 7일, 흑인 투표권을 요구하며 행진하던 500여 명의 흑인들은 경찰의 기습 공격과 구타, 그리고 최루탄 발사에 속수무책으로 희생됐다. 이른바 '피의 일요일' 사건이다. 머리가 깨지고 팔, 다리, 갈빗대가 부러진 사람들의 모습은 신문과 방송을 통해 미국 전역에 알려졌고 국민들은 분노했다. 지방법원 판사는 이후의 평화행진을 허용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이 사건은 흑인의 투표권 획득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
위의 사례들에서 비폭력 저항이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이 다수의 대중을 설득했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비폭력 저항이 가지는 가장 큰 힘이다. 사회 변화를 위해서는 대중을 설득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현장에 있지 않고 현장 상황을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까지 호소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비폭력 시위는 비록 전략적 피스빌딩을 염두에 두지 않고, 비폭력을 가치로 선택하지 않아도 현재의 상황을 가장 잘 타개할 수 있는, 무엇보다 강력한 물리력을 가지고 있는 정부를 상대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고 손해볼 것도 없다. 사고가 생기지 않고 집회가 끝난다면 그대로 좋은 것이고, 물대포나 다른 형태의 폭력에 노출된 수많은 시민들의 모습이 전국으로, 그리고 전세계로 중계된다면 그것은 큰 반향을 낳을 것이다. 이것이 현재의 상황에서는 중.장기적 목표 달성을 위한 전략적 선택이 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비폭력 저항이 지속되길 바라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현재의 상황을 타개하고 정부를 상대로 한 문제 제기의 지속성을 담보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는 있을 것이다.'평화갈등 이야기 > 평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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