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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회담, 독백 대 독백평화갈등 이야기 /한반도평화 & 평화통일 2015. 12. 14. 17:16
이산가족 vs. 금강산 관광
1박 2일 동안 격론을 벌였던 것으로 알려진 남북 당국회담이 결국 결렬됐다. 아무런 합의도 이뤄내지 못했고 심지어 다음 회담 날짜도 잡지 못했다. 이것은 남북의 정치 변화와 양측 최고 결정권자의 의사에 따라 향후 회담이 열릴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다시 앞을 알 수 없는 안개 속 상황이 됐다. 사실 국민들은 별 기대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회담 소식도 비중감 없이 그저 뉴스의 한 꼭지를 장식했을 뿐이다. 그렇지만 일말의 기대를 가지고 지켜봤을 이산가족들과 금강산 관광에 관련된 사람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을 것 같다.
회담이 결렬된 이유는 서로의 주요 관심사가 달랐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는 이산가족 문제에 초점을 맞췄고, 반면 북한은 금강산 관광 재개에 관심이 있었다. 우리 정부는 인도적 문제인 이산가족 문제를 금강산 관광 재개와 연계시키는 것은 맞지 않는다고 얘기했다. 북한은 금강산 관광 재개와 이산가족 문제를 연계시켜 동시에 논의.진행하자고 했다. 이것을 보면 회담 결렬의 책임이 우리 정부의 단호한 입장과 태도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이산가족 문제를 아예 거부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북한이 남한의 거부에도 불구하고 금강산 관광 재개 문제를 고집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솔직히 북한이 그 문제를 꺼낼 것이라는 점은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그러니 아무래도 우리 정부 쪽의 전략과 융통성이 부족한 것 아니었나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오랜만의 당국회담이 결렬됐다는 것은 남과 북 모두 아쉬울게 없어서이지 않을까? 그렇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 아닐까? 뭐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사실 그렇지가 않다. 남한은 현 정부 들어서 남북 관계에서 아무런 진전을 이뤄내지 못했다. 정부 출범 당시 얘기했던 장밋빛 계획들은 북한에 말도 꺼내보지 못한 채 잊혀진지 오래다. 이산가족 만남이 성사됐지만 일회적 사건에 불과했고 현재로선 향후를 전망할 수 없다. 그래서 정부로선 성과가 절실히 필요하고, 때문에 명분이 있는 이산가족 문제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을 것이다. 북한은 남한의 현 정부 출범 이후 관계 복원과 그로 인한 경제 상황 개선도 기대했다. 그렇지만 남북의 강경 기조가 충돌하고 사건 사고까지 이어지면서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렇게 3년을 허비한 남북 모두 이제 가시적인 성과를 내야 하는 절실한 상황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서로에게 도움을 줄 수 있었던 회담인데 기회를 날려버렸으니 답답할 뿐이다.
독백 vs. 독백
이번 회담 결렬의 근본원인은 남한과 북한이 대화를 한 것이 아니라 각자 독백을 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물론 마주 앉았으니 뭔가 얘기를 주고받았을 것이고 회담을 잘 하기 위해 노력도 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얼굴을 보고 마주 앉았어도 각자 자신의 주장만 계속하고 상대의 주장을 열심히 듣고 적극 수용할 방법을 고민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대화가 아니라 그저 독백일 뿐이다. 이런 독백과 독백의 구도는 최소한 한쪽이 방향을 바꾸기 위해 독백을 중단하고 대화를 시도해야 해체될 수 있다. 그런데 이번 회담에서는 그런 일이 생기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사실 협상에서는 누구든 최대 이익을 얻기 위해 강경 태도를 취하기도 하고 상대가 받아들이기 힘든 제안까지 해 교착상태가 생길 수도 있다. 그렇지만 제대로 된 협상가는 그런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모색하고 때로 장기적 이익을 위해 단기적 이익을 포기하는 선택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남북 어느 쪽에도 그런 협상가가 없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럴 때보면 남과 북이 '한 민족'임이 확실하다.
이번 회담에서 특별히 남한이 독백의 구도를 깨지 못하고 이산가족 문제를 잘 활용하지 못한 것은 잘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이다. 남한은 이산가족 문제의 안정적 해결을 원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인도적 문제라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 그렇다면 그 명분을 북한의 주장을 수용하는 핑계로 적극 활용할 수도 있었다. 북한이 이산가족 문제를 거부하지 않았으니 의제로는 문제가 없는 것이고 '인도적' 문제인 이산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할 수 없이 금강산 관광 문제에 전향적으로 접근하기로 했다는 핑계로 정치권, 사회, 국민을 얼마든지 설득할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사회에서는 충분히 설득력을 가지는 주장이고 독재국가인 북한에 '인도적' 사안을 수용하라고 끈질기게 요구하는 것보다 쉬워 보인다. 그렇게 해도 인도적 문제를 정치적 거래 조건으로 삼은 북한이 체면을 구기는 것이지 남한에게는 손해볼 것이 없다.
이런 생각까지 이르게 되면 더더욱 북한의 주장을 수용할 수 없어 성과 없이 회담을 끝내야만 했다는 설명을 이해할 수 없다. 우리 정부가 사실은 이산가족 문제보다 북한에 경제적 도움이 될 일을 절대 만들지 않겠다는 것, 또는 북한이 남한에게 무릎을 꿇고 남한의 요구를 수용하게 만들겠다는 것을 우선적 목표로 삼은 것이 아닌가하는 의심까지 든다. 만일 정부가 조금이나마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정말 걱정이다. 세상에 주고받는 것 없이 일방적으로 이익을 챙기는 그런 대화나 협상은 없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런 한쪽의 의지와 목적을 다른 쪽이 알아챘다면 절대 대화와 협상이 계속되지 않을 것이다. 솔직히 북한이 우리 정부의 태도를 그런 식으로 해석하지 않았을까 걱정된다. 앞으로 다시 기회가 생긴다면 독백의 구도를 깨고 적극적으로 대화를 시도하는 쪽이 우리 정부이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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