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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갈등, 위기에서 벗어나려면...평화갈등 이야기 /한반도평화 & 평화통일 2015. 8. 21. 15:37
방치되는 남북 갈등
휴전선에서 남과 북의 포격전이 발생했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다. 그러나 군사적 긴장이 최고조에 달하면서 하루 아침에 딴 세상이 됐다. 북한은 "48시간 내에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단하고 시설을 철거하지 않으면 군사행동을 개시하겠다"고 남한에 통보했다. 시한은 토요일 오후 5시다. 이어 북한은 전방지역에 '준전시상태'를 선포했다. 우리 군은 대북 방송 중단 계획은 없다면서 북한의 군사행동 가능성을 기정사실화했다. 물론 경계 태세를 강화한다는 '상투적' 대응책도 덧붙였다.
이 상황이 몹시 두렵고 불안하다. 휴전선에 가까이 살고 있거나 피난을 가야할 상황이어서가 아니다. 최고조에 달한 군사적 긴장을 완화시킬 돌파구가 아직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좀 더 분명히 말하면 이렇게 불안한 상황을 누그러뜨릴 대책을 정부가 마련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와 신뢰가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수년 동안 지켜본 바에 의하면 말이다. 그럼에도 정부의 대책만 바라보고 있어야 한다.
남과 북은 지난 수십 년 동안 극한의 갈등을 겪고 있다. 이런 갈등은 흔히 장기간 이어지는 까다로운(protracted) 갈등으로 불린다. 흔히 적대적인 민족 집단이나 국가 사이에서 볼 수 있는 갈등이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수단과 남수단 등이 겪고 있는 갈등이다. 남과 북이 겪고 있는 갈등도 이런 갈등에 해당한다. 이런 갈등의 특징은 수십 년 동안 증오와 충돌의 역사가 축적돼 쉽게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또 다른 특징은 흔히 무력 충돌을 동반한다는 것이다. 수십 년 동안 상호 적대감이 고착화되고 그런 적대감을 상대에 대한 공격과 위협으로 바꿀 체계적 무력 대응 방법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특징은 많은 사람들을 희생시키고 불안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무력 충돌로 목숨을 잃는 것은 물론 지속적인 군사적 긴장과 정치적 불안 때문에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없고 경제활동에도 지장을 받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 이스라엘, 남수단의 상황보다는 낫지만 한국의 상황도 이런 특징을 모두 갖추고 있다.
이런 갈등은 체계적으로 관리되지 않으면 안 된다. 많은 사람들의 생명과 안전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갈등을 해결할 지속적인 노력이 수반돼야 한다. 어느 쪽이든 상황의 심각성을 인정하고 지속적으로 상대와의 관계를 관리하고 위기로 치닫지 않도록 적극 대응하면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 대립과 긴장이 점진적으로 완화되고 해결을 위한 방향으로 조금씩 전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남과 북의 갈등은 체계적인 관리가 없이 수십 년 동안 방치돼 왔다. 정권을 잡은 정부 및 여당의 성향과 정책에 따라 북한에 대한 대응 방식은 계속 변했다. 때문에 대립과 상호 비난은 일상이 됐고 오히려 긴장 완화나 관계 개선은 일시적 이벤트나 부정기적 사건이 됐다.
북한의 48시간 통보, 우리의 대응은....
이번 일은 북한의 목함지뢰 폭발 사건에서 출발했다. 그에 대한 대응으로 군이 대북 방송을 재개했고 북한이 그에 대한 저항으로 포격을 가했고, 그러자 남이 대응 포격을 한 것이다. 한 치의 어긋남도 없는 대립의 악순환이다. 그러나 모두 알다시피 이런 군사적 대립이 생긴 근본 이유는 남북 사이에 어떤 공식적 대화도 관계 개선 노력도 없기 때문이다. 관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했다면 지뢰 폭발 사건에 대한 남과 북의 신속한 공동 조사가 이뤄졌을 것이다. 군의 뒤늦은 대응과 일종의 체면 회복 수단으로 보이는 대북 방송 재개에 기대지 않고 말이다. 그랬다면 설사 북한의 얘기를 모두 신뢰할 수 없다해도 이런 군사적 긴장 상황을 만드는 일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서로 체면을 세우고 대립을 피하는 명분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갈등에 대한 최선의 대응은 직접 접촉과 대화다. 전쟁, 사회 갈등, 개인 갈등을 가릴 것 없이 접촉과 대화가 최선이다. 물론 대화를 위해서는 소극적이지만 갈등이 악화되지 않도록 통제하는 관리부터 직접 접촉과 대화를 통한 적극적 해결 노력까지 여러 가지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 가장 기본적으로 상대를 단순히 적이 아니라 갈등의 상대, 그리고 대화의 파트너로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방향은 대화와 합의에 의한 갈등 해결, 관계 회복, 평화적 공존에 맞춰져야 한다. 이런 방향을 설정하고 꾸준히 노력해도 가끔 중간에서 헤매고 서로 엇나갈 수 있다. 그렇지만 우리의 현재 상황은 해결로 가는 도중에 잠시 방황하는 것이 아니라 대화와 관계의 불모지에서 헤매는 꼴이다. 남과 북 어느 쪽도 남북 갈등을 일관성을 가지고 잘 관리하고 꾸준히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 않다. 심각한 갈등에 직면해 있는데도 그런 갈등은 없다는 듯이 말이다.
이제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북한이 통보한 시한은 거의 하루 밖에 남지 않았다. 그런데 여전히 정부, 여당, 군은 강경 대응만 외치고 있다. 대부분의 국민들도 북한이 "뻥"을 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렇게 안이하게 볼 상황은 아닌 것 같다. 지난 정권부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관계 및 대화의 단절로 상호 불신과 증오가 축적돼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북한이 국영방송을 통해 공개적으로 전방지역에 '준전시상태'를 선포했기 때문이다. 이제 어느 쪽이 먼저 대화를 제안할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은 일촉즉발의 상황이 됐다. 체면을 생각할 때가 아니란 얘기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북한은 청와대로 "현 사태를 수습하고 관계 개선의 출로를 열기 위해 노력할 의사가 있다"는 서한을 보냈다. 그러니 북한에 대화를 제의할 명분은 이미 주어진 셈이다. 병 주고 약주는 식으로 상황의 주도권을 잡고 통제하려는 북한의 속내가 뻔히 보여도 모른척 하면서 말이다. 현 상황은 군사적 충돌을 막는 쪽이 국민의 안전을 위해, 정치적 명분을 위해, 그리고 경제적 이익을 위해 승자가 될 수 있는 상황이다. 물론 국제사회에서도 현명한 판단으로 칭찬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다. 정부도 이런 기본적 생각은 하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지금까지 온갖 실망을 안겨줬지만 모든 이성의 힘을 동원해 정부가 현명한 판단을 내려주길 기대해본다. 솔직히 일개 시민의 입장에서는 그 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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