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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하게 보복? 그 다음은?평화갈등 이야기 /한반도평화 & 평화통일 2015. 8. 14. 12:33
군만 있고 정치는 글쎄....
군이 북한의 지뢰 매설 도발에 대해 "국민들이 시원하다고 느낄 보복 방안에 대해 구체적인 시기와 방법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북 확성기 방송을 이번 주에 모든 전선으로 확대할 예정인데 그것만으로는 국민들이 만족하지 못할 것이라며 아주 '살뜰하게' 국민들을 챙기는 모습을 보였다. '병 주고 약 주는' 식이다. 북한이 작년부터 지뢰를 매설하는 정황이 포착됐는데 군은 경계를 강화하지 않았다. 황당한 것은 이번 사고가 북한군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쪽 지역까지 내려와 매설한 지뢰에 의한 사고라는 것이다. 군이 비무장지대 경계를 철저히 하지 않아 생긴 사고라는 얘기다. 예방과 경계를 소홀히 해 젊은 군인 두 명에게 치명적인 부상을 입히고 무엇보다 남북이 함께 기념하는 광복 70주년을 앞두고 첨예한 대립 상황을 만들었다. 그런 군이 무슨 국민들의 속을 시원하게 해주겠다는 것인지...정말 헛웃음 나오는 상황이다. 무능력하고 태만한 군 때문에 이렇게 뒤숭숭한 상황이 됐는데 말이다.
물론 원인은 북한에 있다. 그렇지만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한국전쟁 이후 계속되고 있는 우리의 휴전 상황이다. 그리고 수년 째 대화가 단절된 남북 관계다. 이런 상황에서는 북한과 언제든 대결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 그러니 북한 탓만 하는 것은 부질 없다. 지뢰매설이 정전협정 위반이라고 해도 상대가 게임의 법칙을 어기겠다고 결심하면 그만이다. 사실 언제든지 엇나갈 수 있는 북한의 그런 가능성 때문에 비무장지대 경계를 서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더 솔직히 말해 그런 북한의 존재 때문에 정부 예산의 10%를 써가며 비대한 군을 유지하고 있는 것 아닌가. 그러니 군은 최소한 밥값은 해야 되는 거다. 그런데 이번 상황만 봐도 군은 밥값을 제대로 안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 상황에서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군만 있고 정치는 없는 것 같은 상황이다. 아주 당황스런 일이다. 군은 11년 만에 대북 방송을 재개했고 대북 전광판도 재가동할 계획이란다. 보복 차원에서다. 그런데 이런 보복이 과연 현명한 선택인지에 대해서는 이미 논란이 일고 있다.그것이 휴전선 인근 주민들의 안전을 위협하기 때문이고, 또한 남북 관계를 더욱 얼어붙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타당성에 대해서도 의문이다. 천안함 사고 이후에도 재개하지 않았는데 이번 상황이 주민들의 안전과 남북관계의 추가 악화를 감수하면서까지 대북 방송을 재개할 정도인지 수긍이 가지 않는다. 결국 군이 자신의 책임을 무마하기 위해 국민들을 호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정부는 제대로 상황 대처를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책임을 면하기 위해 이번 사고에 대한 책임과 사후 대응을 모두 군에 전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대북 방송이 국민 안전과 남북 관계에 가져올 영향을 고려하지 않고 군이 제 맘대로 하도록 놔두고 있는 상황이니 말이다. 정치는 실종되고 군이 뻔뻔하게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는 형세다.
분단 70년, 공존의 프레임은 어디에...
광복 70주년이다. 동시에 분단 70년이다. 남북 대화가 재개되고 남북 관계가 정상화됐다면 아마도 남북 공동 행사들이 줄을 이었을 것이다. 광복 70주년을 함께 기뻐하고 분단 70년의 의미를 함께 되새기는 기회가 됐을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남북 관계는 분단 60주년 때보다 못하다. 아니, 그동안의 모든 성과를 뒤로한 채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졌다.
15일부터 시행되는 북한의 표준시 변경은 남북관계의 현 주소를 말해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남한과의 관계가 중요했다면 북한은 결코 그런 결정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표준시 변경을 논의할 때 북한을 고려했던 것처럼 북한도 남한을 고려했을 것이다. 같은 경도에 위치하면서 다른 표준시를 쓴다는 것은 정상적인 외교 및 무역 관계가 있는 나라 사이에서는 서로가 불편하기 때문에 생길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이제 우리는 북한과 다른 시간대에 살게 됐다. 시간 차이로 치면 30분이기 때문에 별일 아닌 것 같다. 그렇지만 남과 북이 다른 표준시를 쓰게 됐다는 것은 분단 70년을 맞아 더욱 단절이 깊어졌음을 보여준다. 그에 대한 책임을 누가 져야 하는지 심각하게 따져봐야 할 일이다.
분단 70년에 더욱 유감스런 일은 보복의 악순환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군이 북한에 대한 보복으로 결정한 대북 방송은 북한의 보복 가능성을 상정한 것이다. 군이 확성기 설치 지역에 북한의 무력 대응에 대비해 무인정찰기, 대전차미사일, 대포병탐지레이더 등을 보강한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군사 전략 상으로도 정말 감수할만한 일인지 진짜 이기는 길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그러나 정치적으로는 분명 현명한 선택이 아니다. 보복의 악순환을 시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분단 70년, 우리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아직도 지속가능한 공존의 프레임을 만들지 못했다는 것이다. 간헐적으로 언급되고 확인된 남북의 상호의존성과 공존의 필요성은 완전한 공존의 프레임으로 자리잡지 못했다. 그것이 남북 관계를 주도할 가장 이상적인 프레임이 될 수 있는데도 말이다. 공존의 프레임이 없기 때문에 상황 변화에 따라 북한은 남한을 군사적으로 자극하고 남한은 그에 보복하는 상황이 반복된다. 이런 남북 대립의 악순환은 누군가 끊어야 한다. 모두가 노력해야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군은 태생적으로 그런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부가 주도적으로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다. 남북 관계를 잘 관리하는 것은 대한민국 모든 정부의 숙명이자 의무다. 이 정부는 그 숙명과 의무를 거부하고 있다. 어긋난 남북 관계가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상황에서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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