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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테러, 그리고 증오와 보복의 악순환평화갈등 이야기 /국제평화 2015. 11. 17. 16:53
애도 뒤에 숨겨진 공포
프랑스 파리에서 지난 13일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테러는 전 세계인들을 경악시켰다. 현재까지 132명이 사망했고 다수가 부상을 당했다. 현재 349명의 부상자 중 96명이 중상자이기 때문에 앞으로 사망자는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단다. 전 세계인들이 애도를 표했고 자신의 SNS 프로필 사진에 프랑스 국기를 내건 사람들도 많다. 그런데 솔직히 난 그렇게까지는 못하겠다. 올 한 해만해도 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 테러 사건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는데 파리에서 죽은 사람들에게만 특별한 애도를 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파리 테러를 제외하고 올해 하반기에 일어난 큰 테러 사건 몇 개만 살펴봐도 사망자가 3백 명이 넘는다. 7월 17일 이라크에서 폭탄 테러로 130명 사망과 130여 명 부상, 8월 13일 역시 이라크에서 폭탄 테러로 76명 사망과 212명 부상, 10월 10일 터키에서 폭탄 테러로 102명 사망과 508명 부상 등, 그리고 수많은 다른 테러가 있었다. 테러가 있을 때마다 무고한 사람들이 목숨을 잃거나 부상을 입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아니 세계인들은 프랑스 파리에서 일어난 테러에 그렇게 관심을 보이고 특별한 애도를 표하는 것일까? 사실 전 세계인들은 아닐 것이다. 주로 프랑스와 비슷한 환경, 다시 말해 정치 사회 환경이 비교적 안정돼 대규모 조직 범죄나 테러에 의한 인명 살상이 잘 생기지 않는 환경에 사는 사람들이 특별히 애도를 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똑 같은 테러 희생자들에게 다른 반응을 보인다는 것은 원칙적으로 인정할 수 없는 태도다. 그렇지만 그 뒤에 숨겨진 정서를 보면 조금 이해가 가기도 한다. 파리 테러를 보고 충격을 받고 애도 물결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은 '파리가 저렇게 뚫렸으니 우리도 안전하지 않겠구나'고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뒤에는 통제나 예측이 불가능한 테러에 대한 공포가 숨겨져 있는 것이다.
올해 1월부터 11월 현재까지 전 세계에서 일어난 크고 작은 테러 사건들을 보니 세 가지 특이한 점이 있었다. 첫째는 몇 건을 제외하고 거의 전부가 이슬람 무장세력이나 조직에 의해 이뤄졌다는 것이다. 둘째는 대다수의 테러가 자살 테러였다는 점이고, 셋째는 많은 테러가 현재 세를 확장하고 잇는 IS에 의해 이뤄졌다는 것이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이 상황을 보면 세계는 9.11 테러 사건 이후 한 치도 나아진 것이 없어 보인다. 아니 오히려 더 악화된 것으로 보인다.
무엇을 누가 해야할까
대부분의 테러가 이슬람의 가르침과 가치를 내세우는 조직들에 의해 자행되다보니 무슬림에 대한 반감과 공포가 커지고 있다. 잔인한 IS나 테러에 가담한 사람들에 대한 비난과 반감은 당연하다고 쳐도 세계 곳곳에서 무고한 무슬림들에 대한 반감이 커지고 있다. 이번 테러 사건으로 세계 곳곳에서 반이슬람 정서가 강화될 가능성은 더 커졌다. 이미 미국과 프랑스 등에서 조짐이 나타나고 있기도 하다. 반이슬람 정서는 개인, 공동체, 사회, 국가에 심각한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세계는 증오와 보복의 악순환에 빠지게 될 것이다. 무기를 가진 자들은 무기로, 정치적 힘을 가진 자들은 법과 제도로, 그리고 지도층이나 평범한 사람들을 막론하고 많은 사회 구성원들은 자신이 가진 사회적, 문화적 기득권과 위치를 이용해 자신의 사회, 공동체, 조직 안에서 배제, 차별, 물리적 공격으로 증오를 발산시키고 보복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근거없는 우려가 아니다. 9.11 이후 미국 곳곳에서 무슬림들에 대한 증오가 커지고 언어적 공격은 물론 증오 범죄가 급증했던 사실을 돌이켜보면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영국에서도 2005년 런던 연쇄 테러 사건이 있은 후 무슬림들에 대한 반감과 경계의 정서가 확산됐고 증오 범죄 또한 몇 배가 급증했다. 무슬림 공동체들은 파리 테러 때문에 앞으로 비슷한 일들이 생기지 않을까 벌써 우려하고 있다. 물론 시민의식이 높고 사회의 문제해결 역량이 높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한 가지 단언할 수 있는 것은 세계 곳곳에서 과거보다는 반이슬람, 반무슬림 정서와 증오가 커지고 그 결과 상호 증오와 보복이 고착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선의 대응은 증오와 보복의 악순환을 예방하거나 중단시킬 방법을 모색하고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사회적 자원을 만드는 것이다. 현재의 상황에서 쉽지 않아 보여도 그것이 결국 함께 공포를 극복하고 살 수 있는 길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16일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의 의회 연설은 아주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그는 IS에 대한 보복과 테러리즘을 뿌리뽑을 것을 다짐했고, 테러 예방을 위한 경찰, 군대, 사법부 인력의 확충을 선언했으며, 테러 자행의 위험이 있는 외국인의 신속 추방 대책을 선언했다. 사회당 출신 대통령답지 않은 강경하고 군사주의적인 발언이지만 현재 프랑스가 직면한 상황을 감안한다면 이해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프랑스 내에서 자라고 있는 무슬림들의 증오와 보복의 정서, 그리고 앞으로 나타날 반이슬람 정서와 증오는 그런 대책으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종교의 잠재력을 발휘한다면....
세계는 한 마디로 테러의 공포에 시달리고 있고 그 배후에는 이슬람 교리를 내세운 무장세력들과 그들의 동조자들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다수의 무슬림들은 움츠러들 수밖에 없고, 그렇게 견디다가 사회적 배제, 경계, 공격의 대상이 되면 그들 또한 급진세력의 동조자가 될 것이다. 그러면 세계는 더 불안해질 것이고 공포가 확산될 것이다. 이런 면에서 보면 테러가 가져오는 가장 큰 위협은 사람들을 분열시키고 공존의 가능성을 없애는 것이다. 우리가 살 길은 그 위협을 극복할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다. 그중 가장 근본적이고도 중요한 것은 증오와 보복의 악순환을 끊는 것이 될 것이다.
증오와 보복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는 가장 큰 잠재력을 가진 집단은 종교인이나 종교단체인 것 같다. 특별히 대다수의 테러주의자들이 비뚤어진 이슬람 교리를 매개로 세력을 형성하고 비록 잘못됐지만 대부분의 동조자들이 이슬람 안에서 피난처를 삼고 있는 것을 감안한다면 인류사회를 위한 종교의 역할을 이슬람과 함께 모색하고 표명하는 접근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종교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다수의 무고한 무슬림들을 포용하고, 보호하고, 그들과 대화함으로써 공존의 실마리를 찾는 접근이 필요해 보인다. 작은 공동체부터 시작해 전체 사회에 이르기까기 다양한 형태의 증오와 보복에 절대적 반대를 표하고, 무슬림들의 적극적인 보호자로 나서며, 테러의 위협을 극복하고 공존의 사회와 지구촌을 만들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작업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누군가는 그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종교를 가진 더 많은 사람들, 그리고 다양한 종교 단체들이 이런 일에 적극 나서서 사회적 자원을 만드는 바람직한 현상이 번져나갔으면 한다.
한국의 상황에서도 현재의 상황을 빌미로 적극적으로 반이슬람, 반무슬림 정서를 확산시키려는 사람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현재 존재하고 있는 인종차별주의에 그런 정서가 더해지면 분명 피해를 입는 사람도 생길 것이다. 무슬림 인구가 적기 때문에 남의 일처럼 관망해도 괜찮다는 안이한 생각을 넘어 한국사회에서 기득권을 가진 종교들이 적극적이고 선제적인 자세로 나서서, 그리고 한 사람이라도 피해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접근을 해줬으면 한다. 모두가 주저할 때, 그리고 모두가 관심을 받지 못하는 일이라며 뒤로 미룰 때 나서는 것이 종교가 사회에서 할 수 있는 가장 큰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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