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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의 색깔평화갈등 이야기 /국제평화 2016. 3. 25. 17:03
영원한 이방인, 정체성의 혼란
'폭력의 색깔 (Colours of Violence)'. 십 수년 전 읽었던 책이다. 이 책의 저자는 인도 하이데라바드에서 간헐적으로 발생하는 힌두교 신도들과 이슬람 신도들 사이 폭력적 충돌의 원인을 분석한다. 그는 집단의 역사, 기억, 종교가 개인의 정체성 형성에 영향을 주고 그것이 개인과 집단 사이 증오와 물리적 충돌을 반복시킨다고 말한다. 브뤼셀 테러를 보면서 이 책이 생각났다. 테러범들이 모두 아랍계 무슬림들이고 브뤼셀의 빈민지역 출신 청년들인 것을 보면 그들이 저지른 극한 폭력인 테러에도 어떤 독특한 색깔이 있을 것 같았다.
이번 브뤼셀 테러는 작년 11월에 일어난 파리 테러와 연결돼 있다. 연결 고리는 이렇다. 대부분의 파리 테러 용의자들은 브뤼셀 도심에서 4킬로 떨어진 몰렌비크 출신이었고 그중 한 명인 압데슬렘이 브뤼셀 테러 며칠 전 몰렌비크에서 체포됐다. 브뤼셀 공항에서 자폭 테러를 저지른 두 명은 바크라위라는 성을 가진 형제로 파리 테러에도 가담했었다. 이들은 파리 테러 때 탄약 공급책 역할을 했고, 최근 체포된 파리 테러 용의자인 압데슬렘에게 은신처를 제공하기도 했다. 경찰이 쫓고 있는 브뤼셀 테러의 유력 용의자인 라크라위는 이번에 체포된 파리 테러 용의자 압데슬렘과 거주하면서 브뤼셀 테러를 모의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몰렌비크와 인접한 스하르베크 출신이다. 브뤼셀 테러 용의자들은 스하르베크에 있는 아파트에 모여 테러를 모의하고 준비한 것으로 드러났다.
인적 연결 고리 외에 세계 언론이 주목하는 것은 브뤼셀 도심을 초생달 모양으로 에워싸고 있는 몰렌비크, 스하르베크, 라에켄이라는 지역이다. 이곳은 노동자 계급이 사는 빈민지역으로 무슬림 인구가 많은 곳이다. 특히 파리 테러 때문에 주목을 받게 됐고 이번 테러와도 연결된 몰렌비크는 인구의 30%가 아랍계 무슬림이고 실업률이 벨기에 평균의 4배인 30%에 달하는 지역이다. 이곳의 무슬림들은 벨기에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사회적으로 소외된 삶 때문에 여전히 정체성에 혼란을 겪고 있다. 교육, 직업 등 사회적 혜택에서 배제돼 쉽게 범죄에 빠져들고 백인 유럽 사회에 대한 반감도 크다. 때문에 벨기에나 유럽보다 오히려 다른 곳의 이슬람 국가나 아랍계 무슬림들에게 더 연대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래서 많은 젊은이들이 시리아 내전 소식을 듣고 아사드 정권에 저항하기 위해 시리아로 향했고 거기서 극단적 이슬람 신앙을 접한 후 IS에 가담하게 된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물론 그곳에서 다시 정체성의 혼란을 겪은 경우도 있겠지만 그중 많은 젊은이들은 IS 전사의 정체성을 가지고 벨기에로 돌아왔다. 그들이 파리와 브뤼셀이라는 유럽의 상징 도시에서 테러를 저지른 것이다.
테러로 경고하는 젊은이들
어떤 이유를 들이대더라도 무고한 민간인을 겨냥한 테러는 정당화되지 못한다. 그러나 한 가지 명심할 것이 있다. '테러'라는 단어는 관련된 이슈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테러'라는 꼬리표가 붙여지는 순간 그와 관련된 모든 것은 '비정상적'이거나 '문제적'인 것으로 취급돼 언급할 가치가 없는 것으로 된다. 파리의 샤를르 에브도에 대한 테러 공격이 있은 직후 무슬림들에게 신성모독으로 여겨졌던 샤를르 에브도의 만평에 대한 비판적 논의는 언급조차 할 수 없었다. 9.11 테러 이후에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기독교 서방세계의 이슬람 세계에 대한 정치적, 문화적 침략과 그에 대한 무슬림들의 문제 제기가 테러를 정당화시킬 수 있다는 이유로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다. 특히 정책 결정자들은 범죄를 테러로 규정한 후엔 원인에 대한 어떤 성찰도 허락하지 않으려 한다. '범죄는 범죄일 뿐'이라며 근본원인을 따지지 않으려 한다. 그렇지만 근본원인을 찾는 것은 인간 지성의 본성이고 지금의 세계에서는 그런 본성이 영원히 통제되지 않는다.
파리와 브뤼셀에서 일어난 테러는 어쩌면 벨기에, 그리고 백인 유럽 사회로부터 배제됐다고 생각하는 청년들이 보내는 경고일 수 있다. 그들은 브뤼셀이나 파리처럼 유럽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도시들을 파괴함으로써 가장 극단적이고 공격적인 방법으로 경고를 보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들이 정말 원하는 것은 몰렌비크 같은 가난하고 소외된 곳의 무슬림들이 벨기에 국민으로, 그리고 유럽인으로 제대로 인정받고 보호받으며 사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곳은 여전히 그들의 부모, 형제, 친구가 살고 있는 곳이고 자신이 낳고 자란 곳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과 알고 있는 많은 젊은이들이 테러에는 반대하지만 그런 경고에는 동의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현재의 상황이 계속된다면 자신도 인내심을 버리고 테러에 가담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가지고 말이다. 이런 경고에 어떻게 응답하느냐가 유럽이, 그리고 세계가 풀어야 할 숙제다.
얼핏 드러난 브뤼셀 테러의 색깔은 문제적 젊은이들, 그들의 증오, IS의 근본주의와 테러 사주 등이다. 그러나 그 속에는 소외, 분노, 절망의 색깔이 짙게 퍼져 있다. 이 테러의 색깔은 벨기에 사회가, 그리고 유럽이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는 한 퇴색되지 않을 것이다. 인도의 하이데라바드에서 힌두교 신자와 이슬람 신자들의 갈등과 물리적 충돌이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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