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난민, 뿌리 뽑힌 사람들평화갈등 이야기 /국제평화 2015. 9. 7. 10:36
시리아 난민의 증가
요 며칠 난민 뉴스가 우리 안방까지 파고들고 있다. 대체로 국제 뉴스에 무관심한 우리 사회의 상황을 생각한다면 그만큼 난민 문제가 현재 중대한 세계 현안이 되고 있다는 증거다. 그 촉발은 해안가에서 발견된 어린 아이의 시신이었다. 이 사건은 난민 문제로 어찌할바 모르고 있는 유럽 국가들에게도 관심을 불러 일으키는 계기가 됐다. 유럽 정부들은 한 편으로는 부담을 덜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다른 부담을 안게 됐다. 사람들이 난민들에게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됐으니 난민 수용을 설득할 수 있어 부담을 던 것이고, 난민을 수용하려면 실제 정치, 사회, 경제 면에서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또 다른 부담을 안게 된 것이다.
사실 바다 속에서 생을 마감한 한 작은 아이의 사진이 전 세계 안방에 전해지고 그로 인해 난민 뉴스가 많아진 현실을 보면 씁쓸하고 마음이 몹시 불편하다. 그 전에도 난민 문제는 심각했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바다에 수장된 사건들이 줄을 잇고 있었기 때문이다. 슬픈 현실이지만 다른 한편 그 '선정적'인 사진이 전 세계로 퍼져 나간 결과 많은 난민들이 유럽 국가들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됐다. 두말할 필요 없이 다행스런 일이지만 여전히 뒷 맛은 씁쓸하다.
최근 뉴스에 등장하는 난민들은 시리아 사람들이다. 현재 난민 네 명 중 한 명이 시리아 사람이라고 한다. 보통 난민이 생기는 가장 큰 이유는 전쟁이다. 최근 10년 동안 아프간 전쟁과 이라크 전쟁이 가장 많은 난민을 만들어 냈었다. 그런데 작년에는 시리아 난민이 가장 많은 숫자를 차지했고 그런 변화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시리아에서 전쟁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별히 작년부터는 2011년부터 계속되고 있는 아사드 정권과 반군 사이의 내전에 IS(이슬람국가)까지 합류한 상황이 됐다. 작년 봄부터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세력을 확장한 이 집단은 급기야 국가를 선언했고 현재는 시리아 정부의 턱 밑까지 진격해 아사드 정권을 위협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난민은 더 증가할 것이다. 반군, 시리아 정부, IS가 싸우는 전쟁터에서 시리아 사람들은 매일 목숨을 위협받으면서 살고 있다. 사실 더 무서운 것은 시리아 정부다. 아사드 정권은 무차별적 공습으로 자기 국민을 살상해 왔다. 지금까지 IS보다 시리아 정부 공격으로 죽은 사람들이 7배나 더 많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시리아 사람들이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시리아를 탈출하는 방법을 선택하고 있다. 바다에서 죽을 위험이 있어도, 그리고 어느 나라가 자신들을 받아줄지 알 수 없어도 수만, 수십만 명이 시리아를 떠나 난민이 되고 있는 것이다.
뿌리 뽑힌 사람들
난민은 보통 'uprooted people'로 불린다. '뿌리가 뽑힌 사람들'이란 뜻이다. 자발적이지만 할 수 없이 삶의 뿌리를 내리고 살던 조국을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극한 상황이 아닌한 되도록 조국을 떠나려 하지 않는다. 다른 땅에서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을 것임은 겪어보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다른 나라로 가는, 또는 가야만 하는 사람들은 더 이상 조국에서 안전과 미래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런 상황은 쉽게 변화되거나 끝나지 않는다. 아마 지금 이 시간에 유럽을 향해 가거나 유럽 국가에 발을 디딘 시리아 사람들도 영원히 시리아로 돌아갈 수 없을지 모른다.
유엔난민국의 통계에 따르면 작년 전 세계 난민은 거의 2천만 명에 육박했다. 이들 중 53% 이상이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소말리아 등 내전 지역 출신이었다. 난민 중 18세 이하는 51%로 지난 10년 동안 최고 수치였다. 18-59세는 46%를 차지했다. 18세 이하의 청소년이나 어린이들은 조국이 아닌 나라의 국민이 돼서 부모들과는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어른들도 새로운 삶을 개척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새로운 삶은 그들을 받아주고 차별하지 않는 나라에 정착했을 때 가능한 일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의 미래는 암담할 수밖에 없다. 뿌리가 뽑힌 채로 평생을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난민 문제는 누구도 탓하기 힘든 문제다. 목숨을 보전하고 미래의 삶을 위해 조국을 떠나는 사람들도, 정치, 경제, 사회 문제 때문에 그들을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나라들도 무조건 탓할 수가 없다. 결국 인도주의와 정치적 결단에 호소할 수밖에 없는 문제다. 물론 난민을 발생시킨 전쟁의 근본원인을 따지면 얼키고설킨 국제정치가 있고 그런 상황을 야기하고 악화시킨 강대국들의 영향이 있지만 그것이 문제의 전부라고 말할 수도 없다. 난민 문제는 결국 지구촌 사람들이 함께 인도주의 정신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십, 수백 명으로 이뤄진 난민 무리 속에 숨겨진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을 찾아내야 한다. 죽은 난민 아이의 사진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던 이유도 그로 인해 사람들이 무리 속에서 그냥 '난민'이 아니라 안전한 곳을 찾으려다 너무나 일찍 생을 마감한 한 아이의 얼굴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평화갈등 이야기 > 국제평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테러의 색깔 (0) 2016.03.25 파리 테러, 그리고 증오와 보복의 악순환 (0) 2015.11.17 지중해, 죽음의 탈출로 (0) 2015.04.23 IS의 위협, 대응책은? (0) 2015.02.16 테러, 종교, 정체성 (0) 2015.0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