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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내민 손, 남한의 주춤하는 손평화갈등 이야기 /평화 2014. 10. 7. 00:00
지난 토요일, 아시안게임 폐막식이 있던 날은 역사적인 날이었다. 북한의 고위급 인사 3명이 깜짝쇼라도 하듯 전격 남한을 방문했기 때문이다. 하루 전에 연락하고 다음 날 남한으로 날라온 이례적인 상황이었다. 핑계는 아시안게임 폐막식 참석이지만 그것만이 방문 목적이 아니라는 것쯤은 남북관계에 조금만 관심이 있어도 알만한 일이다. 우리 정부도 그런 속내를 알고도 남는다는듯 청와대부터 통일부까지 남북관계 담당자들이 줄줄이 나서서 그들을 맞았다. 덕담을 주고받고 향후 고위급 접촉 재개에도 합의했다. 오랫만에 남북 사이에 훈훈한 분위기가 연출되면서 남북 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도 높아졌다. 그런데 구체적인 조건을 언급하면서 다시 분위기는 가라앉고 있다. 아직 기대를 접기에는 이르지만 역시 불안하다.
1990년대 이후 가장 강경기조를 유지하고 그 결과 남북 관계를 모두 말아먹었던 이명박 정부가 끝나고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남북 관계 정상화에 대한 기대가 높았었다. 정권이 바뀌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북한 또한 지도자가 바뀌었으니 기대해볼만 했다. 그렇지만 남한 정부는 지금까지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북한과 간헐적인 접촉은 있었지만 항상 '원칙'을 내세우며 진전을 이뤄내지 못했다. 이번 북한 인사들의 방문도 미리 상의했더라면 이것 저것 따지다 성사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럴 가능성을 고려해 북한이 외교적 절차를 무시하며 그냥 밀어붙인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북한은 다시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남한은 얼결에 그 손을 잡았다. 그렇지만 세부 내용으로 들어가자 다시 잡은 손을 놓을지 더 꽉 잡을지 주춤하고 있다. 대통령은 북한에 '진정성 있는 행동'을 기대한다고 말해 기존에 말했던 '원칙'을 되풀이한 것 아니냐는 추측을 낳고 있다. 통일부는 천안함 사건 이후 모든 남북 교역 및 교류를 전면 중단시켰던 5.24 제재조치의 철회와 관련해서 '북한의 책임있는 조치가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것이 .5.24 조치에 대한 청와대의 입장을 반영한 것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현 정부들어 지금까지 통일부가 주체적으로 남북문제를 다루지 못한 것을 볼 때 청와대의 입장이 들어간 것이라고 이해할 수밖에 없다.
남한은 고위급 접촉이 재개되면 제일 먼저 이산가족 문제를 논의하길 원하고 있다. 반면 북한은 5.24 조치 철회와 금강산 관광 재개를 먼저 다루길 원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에 대해 남한은 북한의 사과가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이렇게 남과 북이 다른 조건을 내세우면서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고 있으니 향후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 그런데 천안함 문제와 관련해 북한의 사과를 기대하는 것은 비정치적이고, 비외교적이고, 비현실적이다. 북한은 천안함 사건이 자신들의 소행이 아니라고 누차 주장했고, 남한에서조차 완전히 여론을 설득하지 못한 사건을 두고 북한이 사과할리가 만무하다. 또한 세계 어느 나라건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사과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 아마 나찌 정권의 학살을 사과한 독일 정도가 유일할 것이다. 일본은 수많은 전쟁 범죄에 대해 한국, 중국 등 다른 나라들에게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 그래도 한국, 중국 등과 외교관계나 경제교류에는 문제가 없다. 미국은 일본에게 원자폭탄 투하에 대해 사과하지 않았지만 일본과의 관계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미국은 베트남 전쟁에도 사과하지 않았지만 베트남과 관계를 정상화했다. 잘못된 것은 쿨하게 사과하고 과거를 청산하는 것이 바람직하겠지만 다양한 입장을 가진 국민들을 모두 설득할 수 없으니 국제관계에서는 공식 사과를 하지 않고 기회를 봐 관계를 정상화하는 것이 일반적인 일이다. 사과는 미래 정권과 국민들이 관계가 무르익은 후 해야 할 선택으로 남겨두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북한에게 요구하는 사과는 미운 북한에게 벌을 주고 길들여보자는 지극히 비정치적이고, 비외교적이고, 비현실적인 접근에 불과하다.
현재 꼬일대로 꼬이고, 동상이몽이 계속되는 남북 관계를 푸는 길을 고민해본다면, 우리 정부가 기본적으로 누구를 위해 남북관계를 정상화할 것이냐를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5.24 조치도, 그것의 유지도, 그리고 현재 남한의 엉거주춤한 손도 모두 정치에 초점에 맞춰져있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그리고 국민들의 필요는 철저히 소외돼 있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남북 문제를 국민의 눈높이에서, 그리고 민생의 문제에서 접근한다면 원칙도 명분도 살릴 수 있다. 정부가 우선적으로 다루기 원하는 이산가족 상봉 문제를 보자. 정말 남한이 이산가족 문제를 최우선으로 다루기 원한다면 그것에 걸림돌이 되는 모든 정치적 문제는 제거해야 한다. 북한의 요구가 설사 생떼 같더라도 모른척 받아줘야 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평가는 향후 국민들의 판단에 맡겨두는 것이 현명하고 전략적으로 나은 결정이다. 이산가족 상봉 문제는 모든 정치적 문제를 뛰어 넘는 인류 보편적인 인도적 현안이다. 이 문제의 우선적 해결을 통해 남한 정부는 인도적 문제를 우선적으로 다루기 위해 정치적 문제는 일단 접어두는 민주주의 정부만이 내릴 수 있는 정치적 결단을 보여줄 수 있다. 이런 결정을 통해 남한 정부는 폼나는 명분도 얻을 수 있고, 북한과의 차별점을 부각시킬 수도 있다.
지금 남북 관계가 삐걱거리고 남한이 북한이 내민 손을 어떻게 잡을까 엉거주춤하고 있는 이유는 우선 순위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즉 국민들의 필요와 인도적 문제가 우선이 아니라 정치적 문제를 우선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우선 순위가 뒤바뀌어 결국 실리도 챙기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을 우선순위로 둘 것인가, 즉 국민이 우선인지 정권의 이념이 우선인지에 대한 '원칙'이 없기 때문에 이전 정권은 남북 관계를 다 절단냈고 현 정권은 1 미터의 진전도 보지 못하고 정권을 마감할 위기에 봉착한 것이다. 하긴 이 원칙이 적용되지 않기는 다른 현안에서도 마찬가지지만 말이다. 그래도 남북문제는 이 정부가 올해가 가기 전에 조금이라도 가시적 성과를 내야하는 현안이니 정치적 이익을 위해서라도 눈 꼭 감고 북한의 손을 과감하게 잡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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