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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권 환수, 맘은 있고?평화갈등 이야기 /평화 2014. 10. 27. 00:00
난 군사전문가가 아니다. 그래서인지 지난 23일 한미 연례안보협의회에서 합의된 전시작전통제권, 일명 전작권 환수 재연기를 이해하기 힘들다. 절차상의 문제, 군사력 평가 차이, 대선 공약 불이행, 남북관계와 한반도 평화 비전 부재 등의 현안과 관련해 볼 때 정부의 이번 결정에서는 논리적 타당성을 찾을 수 없다. 정부 정책이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나처럼 군사전문가가 아닌 국민들까지 설득해야 한다. 그런데 난 이해는커녕 증명할 수 없고 쬐끔 비합리적인 것 같지만 두 가지 점에 있어 의심까지 든다. 하나는 정부 당국자들과 군 수뇌부가 대부분 친미 성향의 사람들로 미국을 정말 '수호천사'처럼 여기고 있는 것 같고, 다른 하나는 자신과 정치적 이념이 다른 정권에서 결정한 것을 어떻게해서든 무효화하려는 시도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정말 증명할 수 없고, 합리성을 전제로 일을 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정부에게는 함부로 들이댈 수 없는 주장이다. 그럼에도 그냥 스멀스멀 올라오는 이런 생각을 외면하기 힘들다. 또 하나 드는 생각은 한국전쟁 발발 후인 1950년 7월 위기상황 모면을 위해 유엔 사령관이던 미군 사령관에게 이전했던 전작권을 60년이 지났는데도 환수할 수 없다면 그동안 군은 무엇을 했고, 지금 현재 군은 정부 예산의 약 10%인 한해 34조를 쓰면서 도대체 뭘하고 있는가하는 의구심이다.
많은 사람들이 가장 이해하기 힘들어하는 부분은 절차상의 문제인 것 같다. 전작권 환수 재연기로 한.미연합사의 용산기지 잔류와 미 2사단 210화력여단의 경기 동두천 잔류가 합의됐고, 때문에 주한미군 이전 계획은 차질을 빚게 됐다. 그런데 주한미군 이전을 전제로 한 용산기지 이전계획과 그에 따른 토지연합관리계획은 2004년 12월 이미 국회 비준을 마쳤다. 결국 이번 정부 당국자 사이의 전작권 연기 합의로 국회 비준 사항이 폐기되게 된 셈이다. 무슨 이런 황당한 일이 있는지 모르겠다. 정부 당국자가 그것을 몰랐어도 알았어도 큰 문제다. 개인적으론 두 가지 모두의 가능성을 왠지 완전히 배제해선 안될 것 같은 찜찜한 생각이 들지만 말이다. 어쨌든 이로 인해 평택미군기지 이전 문제로 치렀던 사회적 비용, 그리고 용산기지 이전계획을 위해 투여된 시간과 에너지는 결과적으로 역사에 길이 남을 헛발질이 됐다. 군사쿠데타, 독재, 민주화를 모두 겪고 수십 년 동안 온갖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점진적으로 민주주의를 정착시킨 나라에서 생길 일은 아닌데 말이다.
또 하나 사람들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전작권 환수 연기가 대선 공약 폐기라는 점이다. 이에 대해 정부는 2013년 2월 북한의 핵실험과 안보위기 때문에 안보환경이 근본적으로 변했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국가안위를 위해 현실적인 선택을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 또한 이해는 가지 않는다. 2013년 2월 북한이 핵실험을 하고, 그 이전에 장거리 미사일개발을 위한 실험을 한 것이 사실이긴 하다. 그렇지만 북한의 핵무기 개발은 거의 20년 동안 이어지고 있는 일이고 이미 전 세계가 알고 있는 일이다.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계속 미국과 남한을 겨냥한 협상 카드로 쓰고 있는 점도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북한과의 관계는 이명박 정부 시작부터 급속히 악화돼서 더 이상 악화될 것도 없는 상태다. 큰 그림을 보면 이번 정권 들어서 남북관계가 특별히 더 악화된 것도 나아진 것도 없다. 굳이 비교하자면 이명박 정부 때보다는 나아진 면이 있다. 그런데 도대체 대선 때와 무엇이 변했다는 건지 알 수 없다. 결국 그때의 판단은 오류였고 지금의 판단이 제대로 된 것이란 말인지....아님 맘이 변했다는 말인지 이해가 안 간다.
전작권 환수 연기와 관련돼 드는 가장 큰 의심은 정부와 국방부의 의지 부족이다. 전작권 환수 계획은 참여정부의 작품이다. 당시 이 문제를 자주국방의 한 축으로 계획했던 참여정부는 군의 강한 저항에 부딪쳤다. 군은 남한의 군사력이 북한에 비해 열세고 북한의 핵개발로 안보상황이 심각하다는 이유로 전작권 환수에 반대했다. 군 일각에서는 전작권 환수가 곧 주한미군 철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심각하게 제기됐다. 참여정부는 군의 저항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국방비를 대폭 인상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군은 그후 계속 미국의 바짓가랭이를 잡고 계속 전작권 환수를 연기해달라고 애걸복걸했다. 마치 학교에 가야되는 아이가 엄마에게 계속 집에 같이 있게 해달라고 애걸하는 것처럼 말이다. 현재 국방부는 차후 전작권 환수 시점을 한국이 대북한 방어 능력을 완전히 갖춘 이후가 될 것이고 말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KAMD)와 선제타격시스템인 킬체인(Kill Chain)의 완성 시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것은 군사 정찰위성, 고고도 무인정찰기, 중고도 무인정찰기, 조기경보레이더, 장거리 지대공 미사일 등의 체계가 모두 완성되는 것을 말하고 연도로는 2020년대 중반 쯤이 된다. 이 모든 것을 갖추기 위해서는 최소 17조 5천억 원 정도가 들어간단다. 뭐 복잡한 이름이 많지만 한 마디로 얘기하면 북한의 공격으로부터 완벽하게 안전해지면 그때야 전작권 환수를 다시 논의할 수 있다는 얘기다. 물론 국방부의 이 모든 계획은 정부의 뜻이 반영된 것이다. 지금까지의 기조로 보아 정부는 확실히 군사력 증강으로 북한을 상대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음이 확실하고, 그때까지는 불안하니 전작권 환수를 하지 않겠다는 생각인 것이다. 물론 그토록 싫어하는 참여정부에서 결정한 일이니 지키고 싶은 맘이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완벽한 방어 능력을 갖추겠다는 이 부분이 영 미심쩍다. 북한과의 관계 개선과 대화 없이 남한이 완벽하게 안전해질 수 있다는 생각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그동안 있었던 남북 충돌, 인명 피해, 위협 등은 최첨단 무기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재래식 무기와 언어에 의한 것이었고 이 모든 것의 근본원인은 남북관계의 악화였다. 또 하나 문제는 우리가 이렇게 첨단 무기에 투자하는데 북한은 가만 있겠냐는 것이다. 지금도 군사력 차이를 한 방에 뒤집어 보겠다는 생각으로 계속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는데 말이다. 결국 군의 주장은 무기 경쟁의 '끝장전'을 치러보자는 것이고, 둘 다 같이 죽자는 얘기다. 결국 남한이든 북한이든 나라 살림 거덜나고 민생 힘들어지는 일 밖에 뭐가 남겠냐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내가 평화학자기 때문에 무기 경쟁에 반대해서가 아니라 조금만 상식적, 합리적으로 생각해도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많은 사람들은 전작권 환수가 국가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군사 주권을 다른 나라에 넘긴 꼴이니 말이다. 솔직히 나는 국가의 자존심을 위해 반드시 전작권을 환수해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강한 신뢰가 있고 그것이 정치적으로 유익한 일이라면 현 상황의 유지를 생각해볼 수도 있다. 그런데 내가 정말 자존심 상하고 두려운 것은 국지전이나 긴박한 무력 충돌 같은 위기상황이 닥쳤을 때 우리의 이익이 아니라 미국의 이익에 맞춰 중대 결정이 내려질 수 있는 조건이 유지되는 것이다. 한국전쟁이 중국의 남진을 억제하고 북한의 공산정권을 아예 쓸어버리려는 미국의 이익 때문에 연장돼 수많은 인명 피해가 나고 한반도가 초토화됐던 것처럼 말이다. 어떻게 내 운명을 천사도 아닌 '자국의 이익'을 매일 신조처럼 되뇌이는 나라에 맡길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 그런데 정부의 설명은 이런저런 잡다한 정보는 있고, 그래서 걱정과 의심은 많아 이번 전작권 환수 연기를 이해할 수 없다는 나 같은 국민들을 설득하기에 너무 부족하다. 정말 '지못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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