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짜 사나이, 진짜 여자?평화갈등 이야기 /평화 2014. 10. 1. 00:00
국군의 날이다. 관심없는 날이지만 뉴스에서 꼭 다뤄주니 알 수밖에 없다. 올해 국군의 날은 계룡대에서 기념식만 한 모양이다. 작년 서울 한복판에서 거창하게 군인들은 물론 중화기까지 동원해 퍼레이드를 한 것과 비교하면 정말 조용한 행사다. 21세기에 그것도 민주주의 국가이자 경제 선진국의 문턱에 있는 나라의 한복판에서 중화기까지 등장시킨 퍼레이드는 참 난감한 모습이었다. 국군의 존재가 국방을 위해 불가피한 면이 있다지만 겉으로라도 전쟁이 아닌 평화를 지향해야 할 민주국가이자 국제사회에서 제법 위상이 높아진 나라가 무기를 내세워 힘을 자랑하는 모습은 참 천박해 보였다. 그리고 그 힘 자랑이 특별히 북한을 겨냥하고 있음이 분명해서 더 씁쓸했다. 물론 올해 행사를 축소한 것은 군이 그런 성찰을 했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잇단 병영 사고로 군이 대한민국의 가장 큰 문제집단으로 등극했으니 대대적인 축하의 자리를 만드는 것이 민망했을 것이다. 그런 생각조차 없다면 더 문제겠지만 말이다.
국군의 날이니 군대가 생각나지 않을 수 없다. 그중 최근 인기를 끌었다는 '진짜 사나이-여군 특집'에 생각이 꽂혔다. 5분 이상 볼 수 없어 매번 포기했던 프로그램을 어느 날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보니 여자들이 군복을 입고 나타났다. 저절로 입이 떡 벌어졌다. 국방부의 왜곡된 홍보 프로그램이 됐고, 공적 조직인 군을 이용한 연예인들의 인기 얻기 수단이 된 '진짜 사나이'도 폐지시켜야 할 마당에 시청률을 잡아보겠다고 여자들까지 군대에 쳐 넣었으니 '막 가는' MBC의 바닥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여군 특집의 인기가 장난이 아니라는 얘기를 듣고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됐다. 왜 여자 연예인들을 군대에 넣었을까? 무엇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 것이라 생각했을까?
여군 특집은 이제는 별 이목을 끌지도 못하는 연예인, 그것도 여자 연예인 '쌩얼'의 끝판왕이었을 것이다. 모든 것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병영은 여자 연예인들의 모습을 모두 까발리는데 최적의 핑계가 됐던 것이다. 결국 여군 특집은 여자 연예인에 대한 '엿보기'의 또 다른 모습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여군 특집을 그냥 여자 연예인 엿보기로만 얘기하기엔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 그 찜찜함은 바로 '진짜 사나이-여군 특집'이라는 제목에서 온다. 마치 군에도 여자도 있다는 것을 알아 달라고, 그리고 여군들의 활약도 알아 달라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뒤에 숨겨진 메시지는 여자도 군대에 가면 '진짜 여자'가 될 수 있다는 억지처럼 들린다. 군대에 가면 여자도 강함을 보여줄 수 있고, 겉모습에나 신경 쓰는 여자가 아닌 나라를 위해 자기를 헌신하는 여자가 될 수 있으며, 충분히 남자와 똑 같이 군생활을 할 수 있는 체력도 가지고 있다는 것 말이다. 그러면 여자는 진짜 '나라를 지키는' '진짜 여자'가 될 수 있다고 말이다.
그런데 사실 위의 것들은 곁가지에 불과하다. 여군 특집이 진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남자들이 나온 에피소드와 다르지 않게 '군대'가 꽤 괜찮은 조직이라는 것이다. 남자들이 나오는 진짜 사나이처럼 군은 인정사정 없는 교관이나 장교가 있는 무서운 곳이지만 동시에 사실은 인간적이고, 배려심 깊은 교관, 장교, 동료가 있는 '따뜻한' 조직이란 것이다. 이런 왜곡된 메시지는 군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혼동과 왜곡을 거듭하고 있는데서 나온 것이다. 군은 공적 조직이고 군의 운영은 공적 조직이라는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이뤄진다. 설사 좋은 교관, 장교, 동료가 있다해도 그들의 개인적 품성과 행위는 현재 우리 군이 가지고 있는 조직적 경직성과 폭력성을 뛰어 넘지 못한다. 그런데도 군은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계속 자기 정체성을 왜곡시키면서 국민들을 현혹하고 있는 것이다. 군이 가지고 있는 구조적 문제와 폭력성을 숨기기 위해서고, 군에 대한 지지를 유지시키기 위해서며, 결국 자기 조직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여군 특집은 끝났다고 한다. 그런데 진짜 사나이는 계속되는 모양이다. 군이 연속 사고를 쳐도 시청자들은 진짜 사나이를 그런 군의 문제와는 별개로, 진짜 예능 프로그램으로만 보는 모양이다. 그 뒤에 군을 미화시키고, 군의 구조적 문제를 프로그램에 얼굴을 내미는 몇몇 개인의 성실함으로 덮으려는 시도가 있으며, 궁극적으로 군 이미지를 호도하려는 의도가 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알면서도 예능의 단맛을 끊지 못하는건지 알 수가 없다. 계속해서 군이 문제를 저지르고 은폐 왜곡하는데도, 그리고 구조 개혁의 의지가 보이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진짜 사나이' 시청 거부 운동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평화갈등 이야기 > 평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북 삐라, 시민단체의 자유? (0) 2014.10.11 북한의 내민 손, 남한의 주춤하는 손 (0) 2014.10.07 군대 폭력과 국민 감시 (0) 2014.08.06 박스 속의 세월호 한과 분노 (0) 2014.07.15 관심병사에 대한 폭력적 관심 (0) 2014.07.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