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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급식 논란, 왜 또 그래?평화갈등 이야기 /평화 2014. 11. 12. 00:00
무상 급식 논란이 다시 불거졌다. 몇 년 전 온 나라를 시끄럽게 했던 논란에 다시 불이 지펴졌다. 상황은 몇 년 전과 별로 다르지 않다. 무상급식 문제는 '밥 문제'가 아니라 '정치 문제'가 됐고, 정치인들과 지자체장들은 자신의 정치적 색깔을 선명히 하고 줄서기를 하는데 이 문제를 이용하고 있다. 경상남도에서는 무상급식 반대 입장을 천명한 도지사를 따라 18개 지자체의 시장, 군수가 무상급식 예산 편성을 중단했다. 경남교육청은 당장 자체 예산만으로 무상급식을 해야하는 상황이 됐다. 중앙 정부와 '파란 집'도 자신의 공약인 보육 지원과 무상급식 문제가 충돌하자 법적 근거까지 들이대며 보육 지원이 우선이라고 교육청을 압박하고 있다. 말은 예산이 부족해서라고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진보 성향의 교육감들을 일부러 골탕먹이려는 속셈이 아닌지 의심이 들기도 한다. 대선 공약을 지킬 예산 확보를 적극 모색하지 않는 것이 선뜻 이해가 가지 않기 때문이다.
논란은 어른들, 그것도 모든 문제를 정치화해서 거래의 수단으로 삼는 특별한 재주를 가진 정치인들 사이에서 진행되고 있지만 정작 직접 영향에 노출되는 것은 아이들이다. 특별히 그동안 전체 무상급식 덕분에 편하게 밥을 먹을 수 있었던 일부 아이들의 조마조마해할 마음을 생각하면 갑자기 울컥해지기까지 한다. 그 아이들은 전체 무상급식이 폐지되면 자신이 선별 지원 대상에 포함될 것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면 지원을 받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벌써 깊은 고민까지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무상급식이 금세 폐지되진 않겠지만 그런 논란이 생기는 것 자체가 그 아이들을 이미 불행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물론 형편이 어려운 부모들도 불안하긴 마찬가지겠지만 현장에서 그 문제에 직접 부딪쳐야 하는 것은 어쨌든 아이들이다.
급식 지원을 받는 아이들은 아주 예민하다고 한다. 부모는 자식 밥 굶기기 싫어 자존심을 젖혀 두고 담임 선생님에게 지원 대상에 넣어달라고 하지만 학생은 자기 집 형편 괜찮다고 우기며 마다하는 일이 흔히 발생한다고 한다. 친구들 앞에서 자존심 구기는 것보다 밥 한끼 굶는 것을 택하고 싶은 것이 아이들 심정이란 얘기다. 주변 아이들이 놀리거나 차별하지 않아도 밥값 낼 돈도 없는 형편인 것을 알리는게 뭐 좋은 일이겠는가. 사실 굶지 않을 권리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다. 그래서 세계에 그렇게 많은 구호단체들이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과 직접 관계도 없고 평생 한 번도 보지 않을 사람을 먹이기 위해 기부를 하고 열악한 현장에서 구호 일도 한다. 그러므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밥'을 제공하는 것은 그리 자랑할 일도 아니고, 반대로 '밥'을 받는 것은 그리 창피한 일도 아니다. 그런데 아이들한테 그런 기본권을 주장하고 당당하라고 얘기할 수는 없다. 이론과 현실은 다르기 때문이다.
사실 무상급식이건 선별 지원이건 계산상 결과는 같다. 점심 굶는 아이들이 한 명도 없게 되는 것이다. 무상급식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그런데 그 뒤에는 무서운 계산이 숨겨져 있다. 무상으로 주는 밥임을 분명히 드러내서 그것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게 해야 한다는 계산이다. 이것은 복지에 들어가는 세금에 대한 그들의 생각과 맥을 같이 한다. 그들은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내는 세금을 게으르게 사는 사람들을 위해 쓰는 것이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가난은 개인의 책임이기 때문에 각자 그에 대한 대가를 달게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뭐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 경우도 진짜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는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없는, 그래서 유효하지 않은 주장이다. 가난이 개인의 책임보다 경제 구조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은 이미 우리나라에서는 물론 전 세계가 공유하고 있는 '진리'다. 부의 분배 문제가 세계가 직면한 가장 큰 현안 중 하나가 된지는 이미 오래다. 그러니 가난한 사람에게 가난의 책임을 모두 지라고 하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그리고 세상물정 모르는 소리다. 그리고 또 하나, 복지 분야 외에 세금이 들어가는 다른 분야에서는 사실 가난한 사람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은 혜택을 본다. 각종 공공시설, 놀이문화시설, 도로, 항만, 철도 등의 사회 인프라, 그리고 수도와 전기 등의 공공서비스, 그 모든 혜택은 오히려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이 가장 많이 누린다. 그러니 따져보면 그리 억울할 것도 없다.
아무리 이런저런 논리로 무상급식은 절대 유지돼야 한다고 얘기해도 그렇지 않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을 설득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 밑바닥에는 가치와 철학의 차이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한 가지 점에서는 결국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무상교육을 받는 아이들 중 누구도 점심을 굶지는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조금 다른 생각을 해볼 수 있다. 아무리 지원체계가 잘 갖춰져 있어도 그놈의 자존심과 불성실한 학부모 등 여러 가지 문제 때문에 지원을 받아야 하는데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생길 수 있다. 그러면 결국 굶는 아이들이 생길 것이다. 그러므로 한 명도 굶기지 않는 것이 목표라면 최선의 방법은 어떤 정치적 상황에도 상관없이 무상급식을 유지하는 것이다. 물론 돈이 문제라고 말할 것이다. 그런데 솔직히 그게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예산은 결국 정치적 선택이다. 지금 다시 무상급식 논란이 정치와 연결돼 진행되고 있는 것을 보면 더욱 더 그렇다. 솔직히 교육복지 중 무상급식 하나 제대로 되고 있는데 그것마저 중단해서 아이들의 팍팍한 학교 생활을 더 힘들게 만들지는 말아야 한다. 정치적 이익을 위해 들쑤셔볼 문제와 그러지 말아야 할 문제는 좀 구분하면 좋겠다. 적어도 무상급식은 그러지 말아야 할 문제다. 대한민국 경제 수준을 따져봐도 재고할 현안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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