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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팔 대결, 폭력을 먹고 사는 정치평화갈등 이야기 /국제평화 2014. 7. 10. 00:00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무력 대결이 갈수록 태산이다. 팔레스타인의 로켓 공격에 맞서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에 공중 폭격을 가하고 있다. 사망자와 부상자도 늘고 있고, 주택과 시설 파괴도 이어지고 있다. 이번 무력 대결의 발단은 3명의 이스라엘 십대 청소년들이 납치를 당했다가 살해되고, 그에 대한 보복으로 팔레스타인 10대 소년이 역시 납치돼 불탄 시신으로 발견된데서 시작됐다. 팔레스타인의 하마스 정권은 이스라엘 청소년 납치에 대한 책임을 부인했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것을 믿지 않는다. 무장세력 출신의 하마스 정권이 어떤 식으로든 사건과 연결돼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 청소년 납치에 대한 이스라엘의 부인 또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 이스라엘 경찰의 일상적인 폭력과 살해당한 소년의 사촌을 경찰이 폭행한 것을 감안하면 살해 역시 경찰의 소행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폭력, 보복, 폭력의 악순환은 결국 상호 공격으로 이어졌고 이제 전 세계가 이-팔 전쟁을 우려하고 있다.
이-팔 갈등과 간헐적 무력 대결은 워낙 오래된 것이라 새로울 것이 없다. 최근 몇년만 봐도 2008년 말에서 2009년 사이에 전쟁이 있었고, 2012년에도 8일 동안 상호 공격이 계속됐다. 이번 무력 대결이 그때보다 더할지 덜할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상황이 악화되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하마스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한 역공을 부르는 공격을 계속하고 있고 이스라엘은 지상군 투입까지 고려하겠다며 4만 명의 예비군에 동원령을 내렸다. 2012년 휴전을 중재했던 이집트는 정권이 바뀌어 남의 싸움에는 관심이 없고, 미국과 국제사회는 무장세력 출신인 팔레스타인의 하마스 정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때문에 아주 소극적이고 외교적인 방법으로 양측에 민간의 피해를 야기하는 무력 대결을 중단할 것을 주문할 뿐이다. 현 상태에서는 싸움을 말릴 사람도, 국가도 뾰족히 찾을 수 없는 셈이다.
이-팔의 갈등과 대결로 사람들이 죽고 부상당하는 것 또한 그리 새로울 것이 없는 일이다. 이번 무력 대결의 직접적 계기는 청소년 납치와 죽음이었지만 그것은 그들이 10대였기 때문에 특별한 의미가 부여되고 치명적 영향을 끼친 것이었을 뿐이다. 사실 1948년 이-팔 갈등의 시동이 걸린 이후 폭력은 계속돼 왔고 사람들의 죽음과 부상도 계속돼 왔다. 팔레스타인 소년의 죽음이 있던 주에도 8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사망했다. 상대적 강자인 이스라엘 사람들의 피해는 훨씬 적은 것이 사실이지만 그들 역시 불안하게 살기는 마찬가지다. 결국 모든 사람들이 오래된 갈등과 간헐적 무력 대결이 안전과 생존을 위협하는 환경에서 살고 있다.
이-팔 갈등처럼 오래되고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갈등의 가장 큰 특징은 내부의 갈등과 대결 역시 복잡, 심각해지고 그것이 결국 갈등을 지속시키고 악화시키는데 기여한다는 것이다. 내부의 정치적 역학관계와 이해관계는 갈등의 해결이 아니라 지속에 기여하고, 갈등을 해결하려는 의지를 무색하게 만든다. 이런 장기적인 갈등 상황에서 정치는 폭력을 영양분으로 삼아 연명하고, 결국 소외된 대다수 사람들의 삶은 그런 정치에 담보로 잡히게 된다. 이-팔의 갈등과 대립은 아주 전형적인 사례다. 갈등을 영양분으로 삼아 성장하고 진화한 정치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쪽 모두에서 대다수 시민들의 불안한 삶과 생존의 위협을 외면한채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정치는 '적대적 공생' 관계에 있는 셈이다. 무장세력인 하마스가 팔레스타인에서 정권을 장악할 수 있었던 것도, 현재 이스라엘의 네타냐후 총리가 세번째 총리직을 수행 중이고 그의 리쿠드 당이 정권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모두 이런 적대적 공생 덕분이다.
폭력을 먹고 사는 정치를 이해하면 누구에게도 이익이 될 것 같지 않은 지금의 상호 공격도 한심하고 역겹지만 좀 이해는 간다. 팔레스타인의 하마스 정권은 무장세력이라는 태생적 한계 때문에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고 웨스트뱅크에서 지지를 얻고 있는 파타당과도 대립하고 있다. 기댈 것은 오직 가자지구의 지지자들 뿐이다. 물론 그 지지들이라 할지라도 하마스의 무력 대결 조장과 이스라엘 공격을 찬성하지는 않는다. 그들에게는 복수보다 생계 유지와 생존 보장이 더 시급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극렬 지지자들은 복수의 목소리를 높이고 하마스는 자신보다 훨씬 강한 이스라엘을 공격하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희생을 야기하더라도 이번 기회를 통해 입장을 분명히 하고 지지 기반을 더욱 굳힐 수 있다. 나아가 잘되면 이번 공격이 끝날 때에는 이스라엘과의 협상에서 죄수 석방과 같은 이익을 얻을 수도 있다. 이스라엘도 10대 세 명의 목숨을 앗아간 사건을 강경한 지지자들 때문에라도 그냥 두고 볼 수는 없다. 나아가 팔레스타인이 먼저 빌미를 제공했고 하마스가 선제 로켓 공격을 했으니 명분도 좋다. 공격을 통해 팔레스타인 집권당인 하마스를 전멸시킬 수는 없어도 다시 한번 국제적으로 하마스의 정치적 정통성에 문제를 제기하고 세력을 약화시킬 기회가 되는 것이다.
적대적 공생을 정치적 기반 굳히기와 유지에 이용하려는 계산 때문에, 그리고 그런 정치적 계산을 역이용해 적개심에 대한 보상을 받으려는 제법 스마트한 강경 시민들의 지지 때문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필연적인 희생을 낳는 상호 공격은 오늘도 계속된다. 이런 억압적 정치와 상황 속에서 반대 목소리는 그 존재 자체를 드러내기가 힘들다. 특히 내부 상황이 강경해질수록 사람들은 폭력의 악순환에 반대하는 속내를 숨기고 공식적으로는 군사적 보복에 지지를 표할 수밖에 없다. 외국 기자들의 인터뷰에 응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스라엘에 대한 보복보다 사회 경제적 삶과 생존에 더 관심이 많음을 간접적으로, 조심스럽게 얘기한다. 특별히 이집트 모르시 정권의 몰락 후 이집트 국경과 가자지구를 연결하는 상품 수송 터널 중 대부분이 파괴돼 더욱 생활이 힘들어진 사람들은 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그들의 표면적 선택은 이스라엘에 대한 복수가 된다.
이-팔 분쟁에서 항상 더 큰 희생을 치르고 생명을 담보 잡히는 것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다. 지난 며칠 동안의 공격에서도 이미 9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그렇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이라고 안전하게 사는건 아니다. 그들도 항상 공격에 노출돼 있고 오래된 분쟁으로 정치적, 사회적 삶의 질도 만족스럽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불안한 환경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항상 가족의 안부를 챙기는 것이 생활화돼 있다. 항상 서로 행선지와 출발.도착을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물론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삶은 죽지 못해 사는 것에 가깝다. 이스라엘 경계 근처에 사는 10세 소년은 이미 몇 차례의 전쟁을 겪었고 머리 위로 날라다니는 양측의 포탄 소리에 더 이상 놀라지도 않는다. 사람들은 이 상황에도 어이 없는 웃음으로 인터뷰에 응한다. 폭력 및 전쟁과 하나된 삶을 너무 오래 살아온 탓일 것이다. 폭력을 먹고 사는 정치 때문에 사람들은 강제적으로 폭력을 삶의 동반자로 삼아 살아가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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