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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팔 교전, 그리고 미국평화갈등 이야기 /국제평화 2014. 7. 23. 00:00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교전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가자 지구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희생은 이제 630명을 넘어섰다. 하루가 지나면 수십 명씩 사망자가 늘어나는 상황이다. 현지 기자들조차 냉철하게 보도하기 힘들 정도로 가자 지구는 아비규환 상태다. 이런 상황을 들은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이 TV 인터뷰 도중 조나단 피너 국무부 차관보와 전화 통화를 하면서 이스라엘을 비난한 듯한 발언을 해 구설수에 올랐다. 통화가 촬영되고 있는지 모른 상태에서 케리 장관은 다소 격하고 절망스런 톤으로 "빌어먹을 정밀 타격 작전이야"를 두번이나 반복했다. 피너 차관보는 "맞다"고 응수하면서 "상황이 악화되고 있어 휴전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케리 장관은 "그곳으로 가야 돼. 여기서 가만히 앉아 있는 건 미친 짓이야"라고 말했다. 대중적이지만 거의 '찌라시' 언론과도 같은 폭스는 이 녹화 영상을 공개했다. 그리고 케리 장관은 이스라엘을 비난한 것이 아니냐는 구설수에 올랐다.
케리 장관의 사적 발언이 문제가 된 이유는 이-팔 교전과 관련한 미국의 공식적 입장은 이스라엘의 자위권을 지지하는 것인데 케리의 대화 내용은 공식 입장과 뉘앙스가 달랐기 때문이다. 케리 장관은 인터뷰에서 "전쟁은 냉혹하다" "이스라엘은 자위권이 있다"며 계속 미국의 공식 입장만 되풀이했다. 어쨌든 케리 장관은 현재 이집트로 날아가 이-팔 교전 중단을 위한 중재를 요청하고 있는 상황이다. 먼저 로켓을 발사해 교전을 야기한 하마스에 대한 이스라엘의 자위권을 인정하면서도 팔레스타인의 희생자 증가를 외면할 수 없는 것 또한 미국의 공식 입장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공격은 힘의 열세를 여실히 보여준다. 비록 하마스가 먼저 로켓 공격을 가했지만 이스라엘의 최첨단 무기 시스템을 이용한 공격을 하마스는 당해낼 수가 없다. 때문에 지난 2주 간의 교전에 의한 팔레스타인 사망자는 630명을 넘어섰다. 부상자는 거의 4,000 명에 달한다. 좁은 가자 지구에서 피신할 곳을 찾지 못한 사람들이 거의 집에서 변을 당했고 10만 명 이상이 유엔 대피소에 몸을 피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공격은 인도적 참사을 야기하고 있다. 사상자의 약 80%가 민간인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목적은 이번 기회에 하마스의 전력에 큰 타격을 입히려는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 사람 한 명이 죽어도 생난리를 치고 팔레스타인을 공격하는 이스라엘이 군인 28명과 민간인 2명이 목숨을 잃었음에도 공격을 밀어붙이는 것을 보면 맘을 단단히 먹은 모양이다. 이것은 이스라엘에게는 치열했던 2008-2009 교전 때보다 많은 희생이다. 이스라엘은 특별히 이번 기회에 하마스가 이스라엘과의 국경에 판 터널을 주요 공격 목표로 삼고 있다. 지상군을 투입한 것이 이 목적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23개의 터널을 발견해 6개를 파괴했다고 밝혔다. 이스라엘은 하마스가 터널을 통해 이스라엘로 침입해 민간인들을 공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팔 갈등 뒤에는 항상 미국이 있다. 미국이 갈등을 부추기는 것은 아니지만 미국이 중동 정책을 위해 이-팔 갈등을 적절히 정치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미국은 이스라엘의 무자비한 팔레스타인 공격이 맘에 안 들어도 맹렬히 비난하지는 않는다. 이스라엘은 어쩌니 저쩌니 해도 중동 지역에서 유일하게 미국이 신뢰할 수 있는 우방이자 민주주의 국가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교전의 시작이 이스라엘 청소년 3명의 납치와 죽음, 그리고 하마스의 로켓 공격으로 시작됐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이스라엘의 자위권을 더욱 지지하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물론 미국 내 강력한 유대인 로비 집단들을 무시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미국은 팔레스타인도 외면할 수 없다. 이스라엘로 인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고통은 이미 세계적으로 공유되고 있는 진실이고 인도적 차원과 평화 문제에서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미국 내 여론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이-팔 교전 중단을 모색하기 위해 이집트에 도착한 케리 장관이 팔레스타인에 4천 7백만 달러의 인도적 지원을 할 것이라고 밝힌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일 것이다. 병 주고 약주는 일이라고 할 수 있지만 팔레스타인으로서도 미국의 지원이 없으면 살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팔레스타인은 전 세계에서 1인당 수령 원조액이 가장 많은 곳이고 미국은 유럽연합과 함께 단연 최대 지원국이다. 1990년대 중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립 이후 지금까지 미국은 50억 달러를 지원했다. 파타당과 하마스의 분리로 2008년 이후부터는 지원도 양쪽으로 다소 분리됐지만 어쨌든 한 해 평균 약 5억 달러를 지원했다. 미국이 팔레스타인을 지원하는 공식적인 이유는 이스라엘에 대한 테러 예방, 이-팔 갈등의 평화적 해결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2국 체제를 위한 안정과 번영 지원, 인도적 필요 등이다. 지원액이 많아도 이스라엘의 억압과 봉쇄 때문에 팔레스타인은 경제적 발전과 자립을 꾀할 수가 없다. 어쨌든 미국이 공식적으로 이스라엘 편인 것은 팔레스타인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팔레스타인이 미국이 주도하는 이-팔 회담 등에 항상 응하고, 문제가 있을 때마다 미국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전 세계에 미국만큼 이-팔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나라가 없는 것 또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열세인 하마스는 이집트가 나서는 휴전 회담은 거부하고 있다. 또한 휴전의 전제 조건으로 투옥된 사람들의 석방과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봉쇄 해제를 요구하고 있다. 가자 지구 봉쇄로 하루 12-16시간의 전기 공급 제한과 이동 제한이 이뤄져 170만 명의 사람들이 극심한 생활고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이집트로 연결된 땅굴이 막힌 뒤에는 식품비도 계속 오르고 있다. 하루 빨리 휴전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팔레스타인에게 가장 치명적인 것은 어쩌면 이스라엘이 아니라 팔레스타인의 내분인지도 모른다. 오랫동안 집권했던 파타당이 2006년 선거에서 하마스에게 져 정권을 뺏긴 후 양쪽의 관계는 적대적이 됐고 급기야 교전으로까지 번졌다. 이때 사망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거의 600명이 넘었다. 결국 하마스는 가자 지구를 통치하고 파타당은 웨스트 뱅크를 차지하게 됐다. 파타당은 사실상 이스라엘의 존재를 인정하고 팔레스타인 독립국가를 세우는 2국가 해결책을 지지하고 있지만, 하마스는 원칙적으로 이스라엘의 존재 자체를 거부하고 이스라엘이 없는 팔레스타인 국가를 주장하고 있다. 양측은 2014년 말에 선거를 치르고 공동 정부를 세우기로 올해 4월 합의했지만 그것이 지지를 얻으려는 하마스의 강경 노선을 부추길 수도 있다. 어쨌든 내분 때문에 지난번 납치 상황이나 이번처럼 교전이 생길 때 대외적으로 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이스라엘과의 협상력을 떨어뜨리는 상황이 되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정치는 아주 잘 돼야 사람들의 최소한의 필요를 반영할 수 있다. 그런데 팔레스타인의 정치는 엉망이다. 이스라엘의 보복을 부르고, 무차별 인명 살상을 가져오는 하마스의 강경 노선이 과연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위한 것인지 그들의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한 것인지는 물론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판단할 일이다. 또한 이스라엘과의 평화 협상과 공존이 팔레스타인을 위해 더 나은 선택인지, 아니면 이스라엘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고 끝까지 팔레스타인 국가만을 밀고 나가는 것이 팔레스타인에 더 나은 선택인지도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결정할 문제다. 그렇지만 어떤 선택이 됐든 그 과정에서 지나치게 많은 희생이 야기된다면 적어도 희생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의 의사와 필요는 반영돼야 한다. 그런데 지금의 팔레스타인 정치는 '생존'이라는 사람들의 최소한의 필요에도 답하지 못하고 있다. 수많은 무고한 희생자들을 보면서 분노의 화살은 이스라엘로 향하지만 하마스에도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낼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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