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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온난화 시대의 빈곤평화갈등 이야기 /국제평화 2014. 6. 30. 00:00
가난은 어느 것 하나 쉽고 단순하게 넘어갈 수 없는 너무나 힘든 삶을 만든다. 모든 것을 돈을 주고 사야하는 자본주의 사회, 그것도 도시에서의 가난한 삶은 그래서 생존과 직결되곤 한다. 그런데 이런 팍팍한 삶에 치명적인 장애물 하나가 추가됐다. 바로 지구온난화와 그로 인한 기후변화다. 서서히 진행돼 (긴 인간 역사를 고려한다면 아주 짧은 기간에 진행된 것이지만) 이제는 코 앞의 문제로 다가온 지구온난화는 기후변화를 가속화시키면서 지구촌 전체가 당면한 최악의 시급한 문제로 급부상했다. 그런데 가난은 기후변화에 대한 적응을 힘들게 만들고 결국 사회적으로 적응의 양극화를 야기한다. 빈곤의 양극화가 기후변화 적응의 양극화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6월 중순 일 때문에 방문한 인도에서 지구온난화 시대의 빈곤에 대해, 그리고 기후변화 적응에 대해 다시 깊이 생각할 기회가 있었다. 12억 명이 넘는 사람들이 사는 인도는 가난한 사람들이 가장 많은 나라다. 세계 빈곤 인구의 3분의 1이 인도에 살고 있단다. 인도 정부는 2011-12년 빈곤 인구가 22%라고 밝혔지만 그것은 빈곤선을 낮게 잡은 결과로 나온 것이었다. 세계 빈곤 기준선인 일일 1.25달러 이하로 생활하는 인구를 따져보면 인도 전체 인구의 32.7%가 빈곤 인구다. 그렇지만 어떤 사람들은 인도 인구의 반 이상이 빈곤층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 말도 맞는 말일 것이다. 가난한 지역에서는 빈곤층 비율이 평균보다 높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어쨌든 결론은 인도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지나치게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도가 당면한 가장 시급한 문제는 당연히 경제 발전과 빈곤 감소다. 오죽하면 빈곤선을 낮춰서 빈곤 인구를 줄이기까지 하겠는가. 그런데 지구온난화 시대에 그런 목적을 동시에 달성하는 것은 경제성장이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인도에서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방문한 오디샤(예전의 오리싸) 주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을 너무 흔하게 마주칠 수 있었다. 물론 내가 빈민촌을 방문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내 눈에 띤 사람들은 사실 극빈층이 아닐 가능성이 높지만 말이다. 그들이 마주한 현실은 40도를 오르내리는 한여름의 더위였다. 인도라는 나라가 본래 더운 나라지만 40도는 그들에게도 견디기 쉬운 온도는 아닌 것 같았다. 더군다나 제대로 햇빛을 피할 곳과 더위를 식힐 장비가 없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그랬다. 극도의 더운 날씨에 에어콘이 없는 만원버스를 타고 출퇴근을 하는 사람들, 노점에서 밥을 사먹어야 하는 사람들, 땡볕이 내리쬐는 길가에서 장사를 하는 사람들 등 생존을 위해 더위와 싸우는 일이 그들의 일상이었다. 그곳의 한국 사람들은 더워진 날씨에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고 말했다. 너무 흔한 일이고 행정 서비스가 열악하기에 제대로 집계도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말이다. 그런 현실과 다르게 내가 머무는 호텔방과 이동하는 차 안, 그리고 밥을 먹은 식당 등은 에이콘이 빵빵해 항상 긴팔옷을 덧입어야 했다. 전기 부족으로 호텔, 고급 식당, 회사 등에서도 하루 몇 번의 정전이 일상인 곳에서 긴팔옷을 덧입어야 하는 상황은 참 씁쓸했다.
'인도 경제가 발전하면 그들의 가난도 좀 완화되고 하루 몇시간쯤은 폭염에서 해방될 수도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기엔 현실적 도전이 너무 크다. 경제가 발전해도 가난한 사람들은 가장 마지막에 혜택을 입게 되고, 더군다나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가 진행될수록 인도가 당면하게 될 도전들도 많아진다는 것을 생각하면 가난한 사람들이 지금보다 나은 삶을 살게 되리란 희망은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인도는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에 가장 취약한 나라 중 하나로 분류돼 있다. 실제 지난 몇 년 동안 홍수, 가뭄, 사이클론 피해가 많아졌고, 앞으로는 더 빈번하고 강도가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때문에 이미 식량 생산이 줄고 있고, 전기, 교통, 식수 문제 등도 획기적으로 개선되지 않을 전망이다. 또한 지금보다 더워지는 날씨 때문에 관광객도 점차 줄어들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단시간에 빈곤 인구가 감소될 것으로 예상하기는 힘들다. 더군다나 경제 발전의 우선적 성과는 도시 팽창, 고층 건물, 쇼핑몰 증가, 자동차 증가 등 극히 표면적인 것에 치중돼 있어 국민들의 삶의 질 향상은 아주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지금도 힘들게 살고 있는 수억 명 인도 사람들의 삶은 가까운 미래에도 크게 개선되지 않을뿐만 아니라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극빈층의 삶은 더 어려워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지구온나화 시대 기후변화 적응의 양극화가 가져올 모습이다.
기후변화 적응의 양극화는 사실 가난한 나라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서울 '쪽방촌'의 여름나기는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35도가 넘는 방 안에서 후끈 달궈진 선풍기 하나로 어찌어찌 견뎌야 하는 사람들에게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온 상승과 여름일수 증가는 그야말로 재앙이다. 그런 가운데 정부는 소비를 줄이기 위해 전기료의 단계적 인상을 추진하고 있으니 섬세하고 조직적인 복지가 작동하지 않는 나라에서 적응의 양극화는 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다. 빈곤층이 아니더라도 기후변화로 인한 폭염, 혹한, 폭우, 가뭄 등은 물론 자연재해로 인한 농산물 가격 폭등 등에 적응하기 위해 빈번한 추가 지출을 해야하는 상황은 많은 사람들의 삶을 버겁게 한다. 아마 거기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들은 매달 적자를 계산하지 않아도 되는 상위층 사람들 밖에 없을 것이다.
기후변화 적응의 양극화를 얘기하면서 지나칠 수 없는 문제는 '책임'의 문제다. 모든 문제에는 원인이 있게 마련이고 지구온난화의 원인은 현재의 선진국들이다. 그들이 산업혁명 이후 줄곧 내뿜은 온실가스가 지구의 온도를 높이고 결과적으로 기후변화를 야기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로 인한 가장 큰 피해는 지구온난화에 눈꼽만큼도 기여하지 않은 가난한 나라들이 고스란히 지고 있다. 아직도 빈곤과 싸우고 있는 그들 앞을 가로 막은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라는 문제는 빈곤을 벗어나기 더욱 힘들게 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인도가 온실가스의 주범인 이산화탄소 배출량 세계 3위로 올라섰지만 인도의 배출량을 비난하기는 쉽지 않다. 그것은 12억 명이 내뿜는 양이고, 빈곤 감소를 위해 인도는 더 많은 이산화탄소를 내뿜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측면에서도 '책임' 소재는 분명하다. 지구촌 어느 곳에 살든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를 가속시키는 것은 소비를 많이 하고 그 결과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사람들이고, 그 피해를 고스란히 입고 가장 힘든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이다. 이산화탄소 배출 증가율과 기온 상승이 세계 평균보다 2배인 우리나라의 경우도 갈수록 갈팡질팡인 기후변화에 가장 큰 기여를 하는 것은 경제활동과 소비를 제일 많이 하는 사람들이고 그 피해를 가장 많이 입는 것은 경제활동과 소비 능력이 되지 않아 가장 적게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사람들이다. 그렇지만 이런 부당한 상황은 지나치고 무분별한 이산화탄소 배출과 소비까지 '경제 활성화 기여'라고 꽃그림으로 포장하는 경제 논리와 정치 논리에 희석돼버리고 만다.
지구온난화가 누군가의 희생을 야기하고, 그것이 자연적인 현상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재앙이라는 점에서 결국 그 희생은 우연이 아니다. 누군가가 희생됐다는, 또는 희생되고 있다는 것은 폭력이 발생하고 있음을 얘기한다. 그런데 그 희생은 대부분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서 발생한다. 결국 지구온난화는 환경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문제고, 무엇보다 빈곤과 가장 깊이 연결된 문제다. 이와 관련해 불가피하게 성찰해야 할 것은 사회적, 개인적 차원에서 지고 있는 '환경의 빚'이다. 선진국들과 소비가 많은 사람들은 가난한 나라와 사람들에게 환경의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그 빚이 계속 늘어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언제 갚을지 별 약속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눈물 날 정도로 억울하고 분통 터지는 일이다. 지구온난화 시대에 기후 정의가 화두가 되는 이유는 여기에 기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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