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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지리아 여학생들 납치, 이슬람 신앙이 문제?평화갈등 이야기 /국제평화 2014. 5. 15. 00:00
나이지리아의 무장단체 보코하람이 300명 가까운 여학생들을 납치한지 한 달이 넘었다. 몇 명은 탈출을 했지만 아직도 276명의 여학생들이 실종상태다. 전 세계적으로 이들을 구출하라는 캠페인이 벌어지고 있지만 누구도 뾰족한 방안을 못찾고 있는 상태다. 잔인무도 안하무인의 무장집단이 이미 여학생들을 나누어 주변국들에 팔아 돈을 챙겼을 가능성도 높다. 법보다 불법이 성행하는 불안한 국가들이 많은 지역이라 그럴 가능성은 충분하다. 그렇지 않고 다같이 억류돼 있더라도 섣불리 접근했다가는 대량 학살을 야기할 수도 있다. 보코하람이 워낙 강경한 태도로 협상 거부를 천명하고 있어서 협상을 시도하는 것조차 거의 불가능하다. 때문에 군사적 선택도 협상 시도도 실효성 있는 방법이 못 되고 있다. 실종학생 부모들은 가슴만 치고 있고, 도와줄 길이 없는 전 세계 사람들은 안타까운 마음 뿐이고, 나이지리아 학부모들은 불안한 마음에 여자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고 있다.
보코하람은 4월 14일 나이지리아 수도 아부자에서 북쪽으로 960킬로나 떨어진 보르노 주의 치복에 있는 학교에서 여학생들을 납치했다. 보르노는 보코하람의 근거지이다. 보코하람은 급진 극렬 이슬람 무장세력으로 선거, 치마나 바지 착용, 세속 교육 등의 사회적, 정치적 행위를 서양사회를 지향하는 것으로 규정해 금지하고 있다고 한다. 보코하람은 나이지리아 정부를 이교도 정부, 그러니까 비이슬람 정부로 규정하고 있고 나이지리아에 이슬람 국가를 세우는 것을 궁극의 목표로 삼고 있다. 기독교 인구와 이슬람 인구가 거의 반반을 차지하고 있는 나이지리아에서 보코하람이 여학생들을 납치한 이유는 이슬람 국가를 표방하고 모든 서양 문화를 반이슬람으로 규정하는 자신의 정체성을 극적인 방법으로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집단의 선명성을 더해 세를 넓히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여성에 대한 교육을 반이슬람으로 규정하고 그것을 빌미로 여학생들을 희생자로 삼는 것은 보코하람만이 아니다. 대부분의 이슬람 급진 무장세력들은 여성교육에 반대하고 나이 어린 여학생들을 희생 제물로 삼는다. 지금도 전쟁이 진행 중인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여성의 지위와 교육에 대한 인식이 갈수록 높아지고 여자 아이들의 취학 비율도 높아지고 있지만 여성 교육에 있어 안전 문제가 여전히 가장 큰 장애물이 되고 있다. 정부 및 나토군과 전쟁 중인 탈레반 무장집단이 장악하고 있는 지역에서는 여전히 여학생들이 위협받고 희생당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탈레반이 국경지역에서 세를 떨치고 있는 파키스탄에서도 마찬가지다. 탈레반은 2012년 10월 파키스탄에서 백주 대낮에 여아교육 운동가인 15세의 소녀 말랄라 유사프자이에게 총격을 가해 세계를 경악시키기도 했다.
이들 급진 이슬람 무장세력들은 코란의 가르침을 따르고 이슬람 세계를 위협하는 서양 문화에 대항한다는 명분으로 여성 교육에 반대하고 빈번하게 잔인한 방법으로 보복을 가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들이 표면적으로 내세우는 주장은 자신들의 세력을 규합하고 확장하기 위한 정치적 슬로건에 불과하다. 궁극적인 목적은 정치적으로 불안한 사회를 장악해 자신들이 좌지우지할 수 있는 통제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여성들 또한 전통적인 규범 안에 가두고 생각과 행동을 통제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정치적 슬로건이 비록 일부지만 사람들에게 먹혀 들어가는 이유는, 그리고 그것이 악용되는 이유는 이슬람 문화권에서 실제적으로 서양 문화의 급속한 유입을 위협으로 느끼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정치적으로는 9.11 테러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한 나라들의 일부 이슬람 국가들에 대한 공격을 이슬람 세계와 기독교 세계의 대립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실제 이라크 전쟁과 아프간 전쟁에 대한 반향으로 세계 곳곳 무슬림 공동체들의 결집이 강해지고 정체성을 강화시키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급진적 생각을 가진 무슬림들은 무장세력에 가담하기도 했다. 그들은 세계를 이슬람과 비이슬람으로 나누고, 세계를 이슬람화하기 위한 지하드를 천명하고 있다. 특히 기독교 세계를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보고, 미국을 기독교 세계의 우두머리로 간주하며, 비이슬람을 모두 반이슬람으로 규정하는 주장을 펴고 있다.
비록 급진적이지는 않지만 다문화권에서 사는 이슬람 공동체에서도 교육, 그러니까 이슬람 교육기관에 의한 대중교육이 아니라 세속적, 또는 서양식 대중교육에 대한 무슬림들의 반감과 경계심이 아직도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이슬람 공동체가 광범위하게 분포돼 있고 무슬림 인구가 많은 영국의 경우 대학에서 많은 남.녀 무슬림 학생들을 볼 수 있지만 그들의 전공은 대부분 자연과학이나 인문분야에서도 경제학, 심리학 등 한정된 분야에 집중돼 있다. 인문과학 분야에서는 불가피하게 서양 철학과 문화를 익히고 수용해야 하는 압력에 직면할 수 있지만 자연과학 분야에서는 그런 일이 드물기 때문이다. 결국 대부분 기독교 세계에서 형성된 학문적 전통을 피하면서 이슬람 세계에 근거한 자신의 세계관을 별 어려움 없이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슬람 공동체나 거기에 속한 무슬림들이 서양식, 또는 세속교육을 경계한다 하더라도 모든 무슬림들이 비이슬람 세계를 악으로 규정하고 급진적 태도로 이슬람 정체성을 보존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이슬람 문화가 지역마다 다르듯이 무슬림들도 어디에서 사느냐에 따라 다르다. 히잡이나 니캅 등 전통 복장을 고집하는 것 또한 다르다. 터키와 유럽의 무슬림은 주류 유럽문화와 융화돼 있고 유럽과 미국의 무슬림들은 전통 의상조차 거의 입지 않는다. 그들은 기독교 문화를 포함한 다른 문화의 사람들과 자유롭게 교류한다. 영국의 무슬림들은 복장을 통해 자기들을 정체성을 선명하게 드러내지만 세속교육에 반대하지 않는다. 프랑스는 학교를 포함한 공적 공간에서 종교행위를 금지하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신앙적 색채를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므로 어떤 이슬람 무장세력이 나타나 이슬람 신앙에 따라 여성에 대한 교육에 반대한다고 주장한다면, 더군다나 여성을 희생의 제물로 삼는다면 그것은 신앙적 주장이 아니라 정치적 주장일 뿐이다. 나아가 종교적 명분을 내세운 폭력일 뿐이다. 보코하람도 마찬가지다.
모든 종교는 자기 종교의 가르침을 진리로 여긴다. 그러나 현재의 세상에서는 종교적 가르침이 항상 진리인 것만은 아니다. 현재의 종교가 제도화됐기 때문이고 제도화된 종교 안에서는 종교적 가르침이 제도 안에서 권한을 위임 받은 누군가에 의해 해석되고 가르쳐지기 때문이다. 이 부분이 사람들을 헷갈리게 만든다. 권한을 위임받은 사람이 진짜 종교적 진리를 가르치고 있는지 자신의 인생 철학을 설파하고 있는지 간혹 구분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종교적 가르침이 누군가를 억압하고, 무엇인가를 강요하는 폭력이 될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지점이다. 종교적 진리가 아닌 개인의 진리가 종교적 진리로 둔갑하고, 그것이 개인의 이익을 위해 타인을 억압하는 수단으로 이용될 때 평화학의 개념상 바로 '문화적 폭력'이 된다. 종교의 가르침이 문화적 폭력이 되는 것을 막으려면, 개인이 문화적 폭력의 희생양이 되지 않으려면 권한을 위임받은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고 자기 주도적이며 성찰적인 '똘똘한' 종교생활을 할 필요가 있다. 무지 때문에 폭력의 희생양이 되거나 무의식적으로 폭력에 휘말리는 한탄스런 일은 없어야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것으로 인해 다수의 사람들이 희생되는 것은 막아야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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