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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리의 대한민국?평화갈등 이야기 /평화 2014. 5. 20. 00:00
'의리'가 최신 유행어로 떠오랐다. 한 달쯤 전 대학 캠퍼스에 붙은 '의리하면 총학생회...' 뭐 대충 이런 문구를 보고 '헐....내가 한글을 잘못 읽었나...'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는 의리가 최신 유행어로 등극한 사실을 몰랐었다. 그저 '남성성을 강조하는 구시대적 단어가 왜 갑자기 대학에...'라는 의문으로 고개를 갸우뚱하고 지나쳤다. 그후 의리에 관한 광고가 인기를 끌고 있고, 줄기차게 '의리'를 내세워온 한 연예인이 덩달아 인기를 얻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의리가 구시대의 고리타분한 울타리를 벗어나서 유행을 업고 21세기 현재의 상황에 맞춰 거의 재정립될 태세라는 것도 알았다. 현재 우리 사회가 처한 총체적 난국 상황을 타개할 열쇠어 중 하나로 '의리'가 포장되기도 한다는 것도 알았다.
국어사전에는 '의리'가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마땅히 지켜야 할 바른 도리'라고 설명돼 있다. 그런데 사전적 의미와는 달리 생활적 사용은 전혀 달랐다. '의리'는 남성호르몬이 지나치게 넘쳐나는 남자들의 과장되고 과격한 우정과 자기 희생까지 감수하면서 잘못을 감싸주는 비뚤어진 동료애로 해석됐고 그렇게 현실에 적용됐다. 한 마디로 이유불문하고 지들끼리 감싸주고 껴안아주는 지나치게 따뜻하고 가슴이 터질 정도로 결속력을 강조하는 것으로 왜곡됐던 것이다. 이것이 사전적 의미에서 벗어난 첫 번째의 왜곡이었다. 그런데 이제 그 '의리'가 어른 아이 할 것없이 내뱉는 '놀이 반 진심 반'의 유행어가 되면서 긍정적 이미지가 더해지고 마치 '정의'의 대체어라도 되는 것처럼 사용되고 있다. 이것은 첫 번째의 왜곡이 다시 왜곡된 두 번째의 왜곡이다. 왜곡에 왜곡이 더해졌으니 '의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전적 의미를 뛰어 넘어 일반적 이해와 일상적 적용을 찬찬히 살펴봐야 할 상황이 됐다.
'의리'가 사전적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아예 없지는 않고, 다른 한편으로 유행어가 되면서 긍정적인 이미지가 더해졌다고는 하지만 의리는 여전히 폐쇄적으로 이해되고 사용된다. 그것은 언어가 사용되는 상황과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의도가 폐쇄적이기 때문이다. 의리는 여전히 남성성의 강조, 집단 의식 강화, 끼리끼리 문화 강조 등을 내포하고 있다. '의리'라는 말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의리의 적용을 광범위하게 확대할 의도가 전혀 없다. 의리는 한 마디로 자기들끼리 잘 먹고 잘 사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거의 2년 전 방송됐던 드라마 '신사의 품격'에 나오는 네 남자는 그야말로 '의리'로 똘똘뭉친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보여준 것은 중년이 됐지만 여전히 자기들만의 세계를 보호하고, 자기들만의 이익을 추구하며, 자기들의 우정과 이익을 위해서는 세상을 가끔씩 속이기도 하는 지극히 속물적이고 이기적인 남자들의 '의리'였다. 이 드라마를 통해 보여진 '의리'는 보편적 선을 추구하지 않으며 결국 지극히 개인적이고 편협적인 관계에서 지켜져야 할 '끈끈한 정을 쌓은 인간 사이의 도리'였다. 다시 말해 끈끈한 정이 없는 사람들과는 지키면 좋지만 여의치 않으면 굳이 신경쓸 필요 없는 인간의 도리라는 얘기다.
'의리'의 가장 큰 왜곡은 '정의'로 포장된다는 것이다. '의리'를 내세우는 사람들 또한 그것이 '정의'인 것처럼 착각하고 과대포장한다. 그렇지만 옮음과 진실을 의미하는 '정의'는 보편적인 옮음과 진실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편협적이고 폐쇄적인 '의리'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정의는 좁게는 사법적 차원에서 적용되지만 보다 보편적으로는 사법적 판단에 상관없이 모든 불의를 거부하고 어떤 경우에도 진실을 추구하는 것을 말한다. 거기에는 끼리끼리 감싸주기나 크고작은 집단의 이기적 이익 추구 같은 것은 끼어들 틈이 없다. '정의'의 가장 큰 역할은 사회의 다양한 폭력에 문제를 제기하고 원인을 규명한다는 것이고, 나아가서는 폭력의 제거와 평화의 실현을 위한 과정에 반드시 동반된다는 것이다. 다만 평화에 동반될 때는 정의가 평화적 과정을 거쳐 실현된다. 다시 말해 비난과 징계 후 소외 또는 배제시키기 위한 정의가 아니라 평화로운 공존을 실현하기 위한 잘못의 규명과 과거를 바로잡기 위한 정의에 초점이 맞춰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의는 때로 자기 조직이나 집단까지 비판적 시각으로 성찰하고, 문제를 제기하며, 치열하게 변화를 모색한다. 이런 정의는 편협적, 폐쇄적, 개인적인 '의리'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독보적인 '아우라'를 가지고 있다.
우리 사회가 총체적 난국에 처한 이유 중 하나는 왜곡된 '의리'가 지나치게 강조돼 왔기 때문일 것이다. 친구, 가족, 동료, 지인들과의 의리가 보편적 선으로 왜곡되고 가장 바람직한 처세술로 포장돼왔기 때문이고, 부패하고 불의한 조직 보호를 위한 '제 식구 감싸기'가 '의리'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돼왔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정의'가 아니라 '의리'가 판치는 세상이 됐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현재 진행형이기도 하다. 지금 유행하는 '의리'로 인해 한 동안 주춤했던, 그리고 구시대의 것으로 치부됐던 속물적인 '의리'가 다시 사람들의 마음 속에 파고 들어 저변화될 것 같지는 않다. 빠르게 유행이 변하는 요즘 세상에 '의리' 또한 몇 개월이 지나면 다시 헛웃음 섞인 구시대의 잔재 정도로 취급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지금의 유행 때문에 혹시라도 의리를 정의로 착각하는 사람이 하나라도 늘어난다면 개인적으로 정말 유감스런 일이다. '의리의 대한민국'이 아니라 '정의의 대한민국'이 절실하게 필요한 이 시점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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