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업의 사회적 책임평화갈등 이야기 /평화 2014. 5. 9. 00:00
세월호 침몰 사고 수사가 진행되면 될수록 드러나는 것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청해진 해운, 유병언 및 측근들, 그리고 구원파 교회의 얽히고설킨 사업 비리고 다른 하나는 청해진 해운, 한국선급, 한국해운조합, 해경의 유착관계다. 그중 나를 가장 어지럽고 허탈하게 만드는 것은 유병언 및 측근들의 사업 방식이다. 물론 국민의 해상 안전을 책임지는 임무를 맡고 있는 해경의 부패와 청해진 해운, 한국선급, 한국해운조합의 비리는 분노를 부른다. 그렇지만 그런 부패와 비리는 씁쓸하게도 워낙 많이 접해서인지 욕이 나올지언정 허탈함은 없다. 그렇지만 법과 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사업을 확장하고 부를 축적한 유병언 집단에게 우리 사회 전체가 조롱과 기만을 당했다는 점은 생각하면 할수록 기막힌 일이다. 그러니 다판다쇼핑몰이나 노른자쇼핑을 통해 물건을 샀던 사람들은 얼마나 허탈할지 짐작이 간다. 물론 그중에는 여전히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또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말이다.
유병언과 측근들은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을뿐 재벌기업보다 더한 문어발식 사업을 해왔고 드러나지 않으니 더 은밀하게 비윤리적인 방법으로 회사를 키우고 부를 축적해왔다. 사실 '비윤리적'이라는 점잖은 단어조차 들이대기 버거운 더러운 방법으로 사업을 하고 돈을 모았다. 돈이 되는 일이라면 질 나쁜 동네 깡패나 조폭보다 더 비열하고 치졸한 방법으로 사람들을 속이고 착취했다. 그렇지만 유병언 집단이 한 사업들은 모두 합법적이었고 때문에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었다. 이 점이 우리 사회의 기업 인식과 감시 수준을 가장 잘 보여주는 점이고 우리를 가장 힘 빠지게 만드는 부분이다. 이제 세계가 알아주는 경제 대국이 됐다고 자랑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나쁜 사람들이 온갖 폭력적인 방법으로 큰 돈을 버는 것이 어렵지 않은 사회, 기업이 최소한의 직업 윤리와 안전 문제를 외면해도 소비자를 끌어 모으는 것이 어렵지 않은 사회, 잔재주와 잔머리로 법망을 교묘히 악용하고 빠져나가는 것이 어렵지 않은 사회에 살고 있다. 그러니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나 윤리 경영 같은 말은 세상물정 모르는 책상물림이나 비현실적인 주장을 주저리주저리 되뇌이는 이상주의자의 '꿈' 정도로 취급된다.
유엔 산하 기관 중에 글로발 콤팩트(Global Compact)라는 것이 있다. 세계의 기업들이 사업을 할 때 기본 중의 기본을 지키도록 유도하는 글로발 컴팩트는 기업들에게 10개의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10개 원칙은 인권 존중에 대한 2개 조항, 노동자의 권리 보장에 대한 4개 조항, 환경 보전 기여에 대한 3개 조항, 그리고 착취와 뇌물을 포함한 일체의 부패 행위 거부에 대한 1개 조항으로 구성돼 있다. 10개 원칙은 거창한 것 같지만 사실은 모든 기업이 지켜야할 최소한의 사회적 책임과 윤리적 행동을 나열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 나라 기업 중에 이런 원칙을 지키는 기업이 얼마나 될까는 의문이다. 아니 사실은 사업을 할 때 그런 원칙들을 고려하기 위해 손톱만큼의 고민이라도 하는 기업들이 얼마나 될까가 더 의문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나 윤리 경영을 얘기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사치스런 구호는 배부른 기업이나 고민해야 하는 일이고, 기업이 고려하면 고맙고 아니면 할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기업이 사회에 존재하는한 그리고 사회 구성원들을 통해 사업을 유지하고 부를 축적하는한 사회에 해를 끼치지 않고 사회의 긍정적 변화에 기여하는 것, 그리고 최소한 사람들을 속이거나 착취하지 않는 것은 사회를 구성하는 한 주체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물론 전 세계를 상대로 사업을 하는 기업에게는 여기에 지구적 책임까지 더해져야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세상에서 혼자 돈을 버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누군가 또는 어떤 기업이 돈을 벌 수 있는 것은 상품이나 서비스를 사주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세금으로 만들어진 사회적 토대를 이용해, 다시 말해 도로, 교통, 전기, 수도, 통신 등 다양한 사회 자본을 이용해 돈을 벌고, 때로는 다른 사람들이 이미 만들어 놓은 토대를 발판으로 삼아 돈을 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 사람이 또는 기업이 사회적 관계를 무시하고 독립적으로 돈을 번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큰 돈을 벌어 부를 축적한다는 것은 더욱 불가능하다. 특별히 기업은 복잡한 과정을 통해 사업을 하는만큼 개인보다 더 다양한 사회 자본을 이용하고 더 많은 사람들의 기여를 필요로한다. 그러므로 기업이 최소한 사회에 해를 끼치지 않는 사회적 책임과 윤리 경영을 해야 하는 이유는 명백하다.
우리 나라 기업들이 사회적 책임이나 윤리 경영에 무관심한데는 많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가 압축적 경제성장 과정에서 경제 발전에 기여한 기업 활동을 마치 성역처럼 취급한 것, 역시 압축 성장 과정에서 부의 축적에 대한 윤리적 기준을 만들지 못한 것, 소비지향적 사회 환경에서 공급을 책임진 기업에 대한 감시를 소홀히한 것 등등이 이유가 될 수 있겠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사회적 감시와 압력의 부족일 것이다. 이례적으로 남양유업 사건 때는 많은 소비자들이 적극적으로 불매운동에 동참해 기업에 실질적 압력을 가한 적이 있긴 하다. 그렇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의 법과 제도는 기업 활동에 지나치게 호의적이고 소비자들은 자신의 소비가 어떤 경로를 통해 어떤 기업에게 이익을 가져다주는지 별로 관심이 없다.
물론 투명하지 못한 기업 경영과 정보의 부족으로 소비자들이 기업들의 속내를 파악하기 힘든 것도 있다. 그런 한계를 고려하더라도 이른바 선진국으로 분류되는 다른 사회에 비해 우리 사회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소비자로서의 권리와 주장을 강하게 피력하지 못하고 수동적 입장에 머물러 있는 것이 사실이다. 유병언 집단이 다판다쇼핑몰, 노른자쇼핑 등을 이용해 소비자들과 직접 접촉하고 물귀신처럼 소비자들까지 비윤리적 사업에 끌어들였듯이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외면하고 비윤리적 행위를 하면 결국 소비자들도 윤리적 책임을 같이 져야하는 상황이 되고 만다. 이런 부당한 상황에 얽히지 않으려면 수동적 입장을 벗어나 능동적 자세로 소비를 해야 모르고 당하는 피해를 줄일 수 있다. 비윤리적 기업 행위에 동참하도록 강요받지 않을 권리에 대해, 그리고 결과적으로 기업들이 만들어 놓은 폭력적 사회 및 기업 구조를 옹호하도록 강요받지 않을 권리에 대해 강하게 주장해야 한다. 결국 문제는 어떻게 정보를 얻을 것이냐로 귀결될 수 있겠지만 알려진 정보라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활용하는 능동적 소비자가 돼야 한다. 최소한 소비자로서 기업들의 사회적 폭력에 아무 생각없이 동참하는 일은 피해야하고 편리함 때문에 결심한 것을 쉽게 포기하지는 말아야 한다.
'평화갈등 이야기 > 평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의리의 대한민국? (0) 2014.05.20 손석희의 뉴스, 지상파의 뉴스 (0) 2014.05.12 세월호 사고와 공공성 (0) 2014.05.03 구원파의 교회, 한국의 교회 (0) 2014.04.30 절망하지 않기 (0) 2014.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