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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비상계엄, 군은 여전히 위험하다평화갈등 이야기 /평화 2024. 12. 17. 16:07
12월 10일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의 모습은 참으로 생경했다. 50여 명의 군 지휘관들이 늘어선 모습은 다시는 볼 수 없을 역사의 현장이었다. 이들은 2024년 12월 3일 선포된 비상계엄과 관련된 명령 실행 연루 여부를 증언하기 위해 나와 있었다. 이 장면이 보여준 건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비상계엄이 결국 군이 행정 및 사법에 대한 권한을 행사하며 국민을 통제하는 상황이라는 점에 대한 재확인이었고, 다른 하나는 많은 군 지휘관들이 헌법을 위반하는 비상계엄에 동조했다는 점의 확인이었다. 이날 국방위원회의 장면은 군사 쿠데타와 군사독재를 겪은 후 수십 년 동안의 투쟁과 노력으로 민주주의를 정착시킨 우리 사회가 군의 완전한 정치적 중립을 확보하는 데 실패했고 여전히 군의 영향에 취약한 상황임을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또한 대한민국의 군이 국민과 민주주의를 보호한다는 원칙에 따라 독립적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할 능력이 턱없이 부족함을 보여주었다.
천만다행으로 6시간 만에 해제된 이번 비상계엄은 우리 사회에 ‘군이란 무엇인가?’ ‘군은 왜 필요한가?’ ‘군의 역할은 무엇인가?’와 같은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이는 모두 군의 정체성과 관련된 무거운 질문들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답은 사실 무척 간단하다. 군이 존재하는 이유, 그리고 우리 사회가 막대한 세금을 들여 군을 유지하는 이유는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국가 안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유지, 공동체 보호 같은 것도 결국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군의 핵심 정체성은 국민 보호를 위한 도구라는 점이다. 군은 역량 향상을 위해 자체적으로 인적 자원을 기르고, 다양한 물적 자원을 확보하고, 효율적인 조직을 만들고 운영하는 등 많은 일을 하지만 그건 모두 국민 보호를 위한 것이지 독립적인 기구로서 사회적 영향력을 키우고 자기 존재감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공공기관이 전적으로 국민을 위해 존재하고 그것이 공공기관의 가장 중요한 정체성인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기 위해 군은 철저하게 사회의 감시하에 있어야 하고 군병력은 적절한 상황에 제한적인 목적을 위해서만 사용되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무장한 군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가장 위험한 집단일 수밖에 없다.
많은 사람이 군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으로 ‘명령 불복종’을 든다. 그것을 군의 정체성인 것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이번 비상계엄에서 대통령의 명령을 받은 지휘관들도 같은 주장을 했다. 국회 국방위원회에 출석한 여러 지휘관이 “군은 명령에 복종할 수밖에 없다”며 그것이 군인이 절대 거스를 수 없는 가장 중요한 덕목이자 정체성인 것처럼 주장했다. 그런데 이는 군 지휘관들이 군의 정체성과 역할조차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동시에 군이 민주주의 사회에 위협이 될 수 있는 기구임을 확인하는 매우 위험한 주장이기도 했다. 군은 명령체계를 따라야 하지만 그것이 국민 보호라는 가장 근본적인 책무와 모순되는 것이라면 따르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그들은 무시하고 자신의 명령 복종을 정당화했다. 나아가 일부 지휘관들은 상당 기간 비상계엄을 준비하며 정치적 중립을 깨고 ‘권력 나누어 먹기’를 꿈꾸고 있었음이 드러났다. 물론 명령에 적극적으로 따르지 않은 지휘관들이 있었고, 애초 동조자로 선택되지 않아 배제된 지휘관들도 있었다. 하급 군인들 가운데는 명령에 따르지 않기 위해 이런저런 묘책을 찾은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육군참모총장부터 시작해 다수의 군 지휘관들이 경찰 수사를 받고 구속되는 상황은 군이 얼마나 자기 정체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자기 역할에 충실하지 못한 집단인지를 보여준다. 또한 줄줄이 불려나온 군 지휘관들을 보면 이번 비상계엄 명령체계에서 배제된 지휘관들이 만일 명령을 받았으면 과연 거부를 했을까 의심이 들기도 한다.
이번 비상계엄은 우리 사회가 군을 어떻게 인식하고 감시해야 하는지에 대한 중대한 과제를 던져주었다. 우리 사회는 군이 양날의 칼이 될 수 있음을 경험했다. 한국전쟁을 전후한 민간인 학살, 군사 쿠데타, 독재정권 지원 및 협력, 민간인 탄압과 억압 등 긴 세월 동안 군은 독재자에 복종하면서 권력의 콩고물을 나누었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그런 역사와 사회적 경험 때문에 우리는 군이 정치적 중립을 유지하고 다시는 역사적 오점을 남길 행위를 하지 않을 것임을 믿고 있었다. 군이 여전히 인권 문제 등의 문제가 많지만 적어도 정치적 중립은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집단이라고, 그리고 오래 전에 군사독재를 끝낸 이 사회에서 예전처럼 군이 권력자에 의해 국민을 공격하는 도구로 이용될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그런 믿음은 깨져버렸다. 우리는 군이 권력자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하며 국민에게 총을 겨눌 수도 있는 집단임을 확인했다. 심지어 일부 지휘관들은 오래 전부터 비상계엄을 준비하고 있었음이 드러나고 있다. 이는 군이 자체적으로 쿠데타를 저지를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매우 충격적인 일이기도 하다
군이 과거에 독재자에 부역하고 국민을 학살하는 최악의 반인륜 범죄를 저지른 것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군에 대한 우리 사회의 경계와 감시는 지나치게 느슨하다. 우리 사회는 비판적 평가 없이 군에 대해 지나친 친밀감과 호감을 보이곤 한다. 군을 국민의 안전과 국가 방어를 위해 유지되는 사회적 기구 중 하나로 보지 않고 성역처럼 여기는 정서 또한 강하다. 군에서 비롯된 군사문화가 사회에 널리 퍼져있고 군을 모방한 예능 콘텐츠가 인기를 얻는다. 이는 군과 군사문화에 친숙하고 경계심이 없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데 이와 관련해서는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는 징집제의 영향이 크다. 징집제로 인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모두가 군과 군사문화에 익숙하고 공개된 다양한 공간에서 군은 긍정적으로 묘사된다. 특히 대중의 관심을 받는 연예인들은 군복무 기간을 마치 장기간의 휴식, 또는 자신을 성장시킨 성찰의 시간이었던 것처럼 묘사한다. 하지만 그것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군복무를 애써 긍정적인 시간으로 바꿔보려고 안간힘을 쓴 것에 불과하다. 군은 매우 유감스럽게도 개인의 자유를 박탈하는 강압적인 구조와 군사문화가 기본값으로 장착된 곳이다. 그러니 억지로라도 적응할 수밖에 없는 곳이다. 또한 공개적으로 군에 대한 부정적인 면을 지적할 수는 없는 사회 분위기기도 하다. 군과 군사문화에 대한 왜곡된 긍정적 이미지만 확산되는 가운데 우리는 군에 대한 경계와 감시를 거의 하지 않고 있다. 무장한 군은 가장 위험할 수 있는 집단임에도 그에 대한 비판적 성찰과 감시는 턱없이 부족하다.
우리는 무장한 집단인 군이 민주사회에 해가 되지 않고 국민을 보호하는 역할에 충실하도록 잘 관리해야 한다. 이번 비상계엄을 일부 지휘관들의 일탈로 보는 건 지나치게 순진한 접근이다. 육군참모총장을 시작으로 50여 명의 군 지휘관들이 비상계엄과 연루됐는지를 증언하기 위해 국방위원회에 불려나오고 일부가 거짓말을 했다는 점 또한 심각하게 봐야 한다. 우리는 군에 대한 공적, 사적 감시를 어떻게 강화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또한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균형감 없이 미화에만 맞춰진 군에 대한 이미지, 평가 등을 경계하고 민주주의 사회와는 절대 어울릴 수 없는 군사문화를 경계하고 감시할 방법 또한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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