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상계엄이라는 국가폭력: 더는 피해자이길 거부하다평화갈등 이야기 /평화 2024. 12. 9. 14:15
지난 12월 3일 선포된 비상계엄은 2024년에 대한민국에서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정치적 사건이었다. 다행히 몇 시간 만에 해제됐지만 극소수를 제외한 대한민국 국민과 거주자 모두가 충격과 분노로 잠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비상계엄의 핵심은 ‘무력’으로 국가를 운영하고 국민을 억압하는 것이다. 헌법에 명시되어 있다 할지라도 성숙한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헌법 제 77조에는 대통령이 “전시, 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있어서 병력으로써 군사상 필요에 응하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때” 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77조 3항은 비상계엄이 선포된 때에는 영장제도,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정부나 법원의 권한에 관하여 특별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이런 계엄은 민주주의 사회의 기본 원칙과는 모순이다. 국민의 기본적인 권리를 제약하고 일상을 억압하기 때문이다. 또한 무력으로 국가의 조치에 따를 것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국가에 어떤 비상한 상황이 일어날지 알 수 없으므로 만약에 대비하기 위해 명시해 놓은 것이고 쉬운 실행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
계엄은 설사 헌법에 명시된 상황에서 선포된다 할지라도 그 자체로 국가폭력이다. 국가가 무력을 동원해 국민의 자유를 억압하고 신체에 위협을 가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계엄은 헌법상 가능하지만 제대로 된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상상할 수도, 선포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래도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성숙했다고 생각한 2024년에 날벼락 같은 비상계엄에 직면했다. 다행히 몇 시간 만에 중단됐고 아무도 목숨을 잃거나 체포되지 않았지만 모든 국민이 공포의 몇 시간을 보냈다. 계엄이 하루라도 발효됐다면 적어도 수십에서 수백 명의 사람이 체포되고 구금되는 상황이 발생했을 것이다. 또한 국회에 진입한 군이 한 명이라도 잘못된 판단을 했다면 목숨을 잃는 사람이 발생했을 것이다. 45년 만의 계엄은 45세 이하의 사람들에게는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강렬한 국가폭력의 경험이었다. 45세 이상이지만 이전의 계엄에 대한 기억이 희미한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계엄이 가능한 이유는 국가를 운영하는 대통령에게 군과 경찰의 물리적 힘을 운용할 권한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이는 다른 국가폭력이 작동하는 원리와 같다. 계엄 외에도 다양한 형태로 우리 사회에서 자행되는 국가폭력은 국가가, 그리고 국가를 대변해 권한을 행사하는 선출직, 또는 임명직 공무원들이 국가가 운용할 수 있는 군, 경찰, 공공기관 등을 이용해 국민을 억압하고 부당한 것을 강요할 때 발생한다. 그중에서도 비상계엄은 가장 중대하고 심각한 국가폭력이다. 과거에 비상계엄 하에서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고 체포되고 고문을 받았던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12월 7일 대통령 탄핵 국회 표결에 맞춰 수십만 명의 시민이 국회 앞에 모였다. 전국 곳곳에서도 수백에서 수만 명의 시민이 모여 집회를 했다. 시민들은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국민과 국민을 대변하는 국회의원들에게 총을 들이댄 대통령을 탄핵하라고 요구했다. 이는 법적 절차를 통해 대통령을 파면해야 한다는 주장에 그치지 않고 국가폭력을 저지른 가해자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나아가 두 번 다시는 국가폭력의 피해자가 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명이었다. 어느 대통령이든 다시는 그런 국가폭력을 가하지 못하게 만들겠다는 의지를 표한 것이기도 했다.
폭력의 피해자가 더는 피해자가 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가해자 처벌에 나서는 건 누구도 억누를 수 없는 모든 인간의 의지이자 기본적 욕구다. 인간으로 자신의 본성과 사회 구성원으로 자기 정체성을 지키겠다는 결연한 의지의 표명이기도 하다. 국가폭력의 피해자가 목소리를 내는 이유도 같을 수밖에 없다. 많은 국민이 집회에서 ‘탄핵’을 외친 이유는 국가폭력의 피해를 입었기 때문이고 민주주의 국가의 국민인 자신의 존재가 대통령과 공범자들에 의해 거부당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사람의 인간으로, 그리고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자기 존재와 정체성을 회복해야 할 절박한 상황에 처했기 때문이다. 이 강한 기본적 욕구는 어떤 정치적 수사나 묘수로도 막을 수 없다. 편법은 통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각성한 폭력의 피해자는 무서울 게 없다. 지금 우리 국민이 그렇다.
'평화갈등 이야기 > 평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12.3 비상계엄, 군은 여전히 위험하다 (4) 2024.12.17 세계시민교육 시리즈 1 위기의 세계를 바꿀 세계시민 (1) 2024.12.02 북한군 파병,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명분? (5) 2024.10.25 응급실 뺑뺑이, 새로운 형태의 국가 폭력 (1) 2024.09.10 전쟁과 평화 (2) 2024.0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