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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 갈등, 평화적 해결을 위한 제언평화갈등 연구/갈등해결 2015. 5. 4. 04:30
한국사회 갈등, 평화적 해결을 위한 제언
정주진
갈등, 변화를 위한 기회
갈등은 인간 사회에서 피할 수 없는 일이다. 두 사람 이상이 모이면 갈등이 생기게 마련이고 사람들은 각자 삶의 지혜에 기대 갈등을 적절히 관리하면서 살아간다. 그러나 다양한 당사자들이 다양한 문제에 관련된 사회갈등에 대응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한 사회 내에서 다른 가치와 생각을 가진 개인 및 집단이 충돌하고, 사회와 국가 운영의 토대가 되는 법과 제도가 개인과 집단의 권리 및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며, 사회 구조와 운영 방식이 새로운 문제에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면서 발생하는 사회 갈등은 때론 풀기 어려운 사회 문제가 되곤 한다. 이런 사회갈등은 어느 사회에나 존재하지만 해결 수준은 사회가 가진 역량에 따라 차이가 난다.
갈등은 부정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만 갈등해결 연구자들은 갈등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갈등은 당면한 문제가 무엇인지, 개인 및 집단 관계의 질이 어떤지, 공동의 미래를 어떻게 설계해야 하는지에 대한 성찰과 분석의 기회를 제공한다. 그러나 갈등에 관련된 당사자들이 갈등에 긍정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그들을 지원하는 서비스가 제공되지 않으며, 대화와 협상이 아니라 힘에 의한 문제 해결 문화가 만연한 환경이라면 갈등은 당사자들은 물론 사회 전체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최근 가장 두드러진 사회갈등 중 하나인 밀양 송전탑 건설을 둘러싼 갈등은 어느 사회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갈등 중 하나다. 이 갈등은 한국사회가 당면한 장기적 에너지 생산 및 소비 계획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송전탑 건설의 타당성, 시민의 재산권, 보상의 수준 등 기본적인 문제는 물론 에너지 이동 지역 주민 권리와 대도시 소비자 권리 사이의 간극, 시민의 정책 결정 참여 수준 등 부수적이지만 중요한 문제들에 대한 성찰의 기회도 제공한다. 그러나 한국사회의 갈등 전개 방식이 대립적이고 대응 역량이 부족한 탓에 갈등은 송전탑 건립 찬.반 논쟁, 다시 말해 정책의 실행 여부에만 초점이 맞춰졌고 결국 현재 수준으로 악화됐다. 이것은 한국사회가 갈등이 가져다 준 장기적 에너지 정책에 대한 사회적 논의 및 합의의 기회를 잃고 있음을 말한다.
10년 전 한국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부안 방폐장 갈등 역시 장기적 핵폐기물 저장 계획 논의의 기회를 제공했다. 그러나 갈등이 가져다 준 기회는 방폐장 건설 찬.반 논쟁과 문제의 지역화라는 한계 속에 묻혀 버렸다. 현재 방사능 폐기물은 핵발전소 내 저장시설에 임시 저장돼 관리되고 있는데 이 저장시설이 몇 년 후면 포화상태에 이르게 된다. 고리, 월성, 영광, 울진 등의 핵발전소 저장시설들이 2016년부터 줄줄이 포화상태에 이를 예정이지만 우리는 아직 방사능 폐기물 처리에 대한 공론화 작업도 장기 정책도 세우지 못한 상태다. 정부는 사안의 민감성 때문에 공론화에 지나치게 몸을 사리고 있고, 대부분의 시민들은 정보의 부족으로 상황의 심각성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10년 전 부안 방폐장 갈등이 공론화의 기회를 어렵게 제공했지만 우리는 갈등의 대가를 치르면서도 기회는 흘려버렸다.
갈등이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극복하고 갈등을 긍정적 기회로 바꿀 수 있느냐의 여부는 사회의 역량에 달려 있다. 사회 역량은 민주주의의 수준, 시민과 공공기관의 대응 방식, 전문 갈등해결 서비스의 존재 여부 등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인다. 갈등의 전개와 해결에 영향을 미치는 민주주의의 수준은 정책 결정에 시민, 특별히 정책에 영향을 받는 당사자들이 얼마나 참여할 수 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시민과 공공기관의 대응 방식은 갈등을 자신의 이익 추구를 방해하는 장애물이 아니라 공동의 문제로 보는 시각과 대립이 아니라 대화를 통해 해결하려는 의지에 따라 달라진다. 전문 갈등해결 서비스의 존재 여부는 갈등을 당사자들(시민단체와 공공기관도 포함)이 스스로 풀어야할 문제로 두지 않고 그들 사이의 대화와 협상을 주선하고 돕는 전문적 개인, 집단, 단체 등의 존재 여부를 말한다. 한국사회에는 이 모든 것이 부족하다.
갈등 해결, 대화(dialogue)와 협력(collaboration)이 열쇠
한국의 사회갈등 중 대부분은 공공갈등, 그러니까 공공기관의 정책 결정 및 실행과 관련해 발생하는 갈등이다. 공공갈등의 증가가 사회갈등 증가에 기여하고 있는 셈이다. 공공갈등은 민주주의가 진전되고 공공기관의 일방적 정책 결정에 문제를 제기하는 시민이 많아지면서 발생하기 때문에 민주사회 발전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한국사회에서 특별히 공공갈등이 증가하는 이유는 공공기관의 자기 역할 규정과 시민들의 공공기관 역할 규정 사이에 간극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공공기관은 여전히 자신을 정책결정권을 가진 사회 운영 주체로 보고 있고, 반면 많은 시민들은 공공기관을 공공 서비스 제공자로 인식하고 있다. 공공기관은 갈등을 정책 실행을 방해하는 장애물로, 시민은 갈등을 권리 행사와 당연한 문제 제기로 본다. 때문에 공공기관은 갈등을 신속히 봉합시키는데 주력하고 시민들은 권리를 실현하는데 초점을 맞춘다.
공공갈등에는 밀양송전탑 공사나 제주해군기지 건설처럼 정부의 지나친 힘의 행사와 압력 때문에 당사자들이 격렬히 저항하면서 악화되는 갈등이 있다. 이런 형태의 갈등은 공공기관과 당사자 집단 사이의 입장 차이보다는 정부의 구조적 폭력 때문에 발생한다. 반면 보호관찰소, 쓰레기 소각장, 요양소, 정신병원 등 불가피하게 만들어져야 하는 공공시설에 해당 지역 주민들이 반대하면서 생기는 갈등도 있다. 이런 갈등은 공공기관과 주민들의 입장과 이익의 차이 때문에 발생하고 양측 사이에 비교적 힘의 균형이 유지되면서 전개된다. 첫 번째 유형의 갈등은 당사자들과 그들을 지원하는 개인 및 집단이 구조적 폭력에 저항하는 형태로 전개되고 두 번째 유형의 갈등은 공공기관과 당사자들이 이익과 필요를 상호 조율해가는 형태로 전개된다. 그러나 두 가지 유형의 갈등 모두 궁극적인 해결책은 당사자들이 대화를 하고, 상호 필요를 파악하며, 수용 가능한 대안을 찾음으로서 해결될 수 있다. 첫 번째 유형의 갈등이 비록 사회운동의 형태로 전개되더라도 저항하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갈등의 해결이다. 공공기관이 원하는 것도 기본적으로는 갈등의 해결이다. 두 번째 유형의 갈등은 첫 번째 유형의 것과 비교했을 때 해결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만 대화와 협상이 시작되지 않는 한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열쇠는 대화와 협력이다. 이것은 한국사회에는 아직 정착되지 않은 새로운 접근이다. 그렇지만 세계 각국에서 이미 오래 전부터 실행되고 있고 한국에도 사례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비교적 작은 규모의 공공갈등이나 개인갈등에는 이미 이런 접근이 이뤄지고 있다. 어떤 갈등도 대화와 협력 없이는 해결되지 않으며 대화와 협력을 피한다면 갈등은 강자의 압력으로 봉합되거나 강제 종료된다. 대화는 대립적인 당사자들이 마주 앉아 자신의 입장, 이익, 필요, 어려움, 두려움, 불안감 등을 얘기하고 상대의 것도 듣는 것을 말한다. 협력은 갈등 당사자들이 대화와 협상 과정을 설계하고, 일정과 참여자를 결정하며, 논의할 의제와 합의 방식을 정하는 등 과정을 함께 계획하고 진행하는 공동 작업을 말한다. 이렇게 당사자들이 직접 주도권을 가지고 참여하는 과정이 없다면 갈등은 절대 해결되지 않는다. 설사 해결책이 마련되더라도 당사자들의 만족도는 현저히 낮을 수밖에 없다.
제삼자의 필요, 종교의 역할 기대
앞서 얘기한 두 가지, 즉 갈등을 변화의 기회로 보고 대화와 협력을 통해 갈등을 해결하는 것은 누구도 희생시키지 않고 갈등을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이고 현실적인 접근이다. 문제는 누가 어떻게 당사자들이 갈등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도록 돕고, 그들이 대화와 협력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이냐다. 또한 가장 도전적인 문제는 어떻게 당사자들을 대화와 협력의 자리로 불러내느냐는 것이다. 공공갈등의 경우 공공기관도 저항하는 시민들도 흔히 대화를 거부한다. 대화 거부와 관계 단절은 갈등 전개 시간이 길어지고 갈등이 악화될수록 고착화된다. 저항하는 시민들은 흔히 공공기관을 부도덕하고 폭력적인 집단으로 규정하고 공공기관과의 대화 자체를 불의에 굴복하는 것으로 여긴다. 공공기관은 대화가 자칫 공공정책에 저항하는 사람들에게 굴복하는 것으로 비쳐지고 부정적 선례를 남길 것을 우려해 대화를 거부한다. 대화와 협상으로 갈등을 해결해 본 경험이 부족한 한국사회에서 대립적인 당사자들을 대화의 자리로 불러내는 것은 가능성이 없는 무의미한 도전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대화와 협력을 통해 갈등에 전향적으로 접근하고 해결하기 위해서는 제삼자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다른 국가들에서도 전문적인 제삼자가 대화와 협력 과정을 계획하고 당사자들과의 협의를 통해 과정을 실행한다. 지난 7월 밀양송전탑 전문가협의체가 위원들의 입장 차이만 확인하고 파행으로 끝난 것은 두 가지 중요한 이유 때문이었다. 하나는 갈등 해결에 대한 전문적 지식과 진행 방법을 아는 제삼자의 도움이 없이 그들 스스로 과정을 진행했기 때문이다. 대립되는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앉아 스스로 대화를 잘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애초 근거 없는 것이었다. 다른 하나는 협의체에 공공기관, 현지 주민, 시민단체 등 갈등 당사자가 아니라 그들을 대변하는 위원들이 참여했기 때문이다. 갈등이 발생한 근본원인 중 하나가 정부와 공공기관이 주민들의 참여를 배제하고 일방적으로 정책을 결정한 것인데 다시 그들을 배제한 채 ‘전문가’라는 사람들을 불러 해결책을 논의한 것은 참여 배제의 또 다른 사례였을 뿐이다. 갈등 현안과 그것이 개인 및 공동체의 삶에 미치는 영향은 전문가가 아니라 당사자가 가장 잘 알고, 가장 잘 얘기할 수 있으며, 당사자의 입을 통해 공유될 때 가장 설득력이 있고, 갈등은 당사자들이 합의해야 해결될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외면한 것이다. 설사 협의체가 타협을 통해 해결책을 제시했더라도 결국 당사자들의 저항에 부딪쳤을 것이다.
제삼자 역할에 가장 적합한 사람들은 다른 나라에서도 볼 수 있는 것처럼 학계, 종교계, 시민사회의 전문가들이다. 이들은 갈등 당사자들은 물론 사회 구성원들로부터도 독립성을 인정받고 신뢰를 획득할 수 있다. 특히 독립적인 종교단체는 정치적, 사회적 압력 및 이권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워 당사자들을 돕는데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종교단체는 또한 풀뿌리 집단부터 정책결정 집단까지 다양한 사회 계층에 접근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지고 있다. 이런 역량은 단순히 대화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하는 것을 넘어 모든 당사자들에게 접근하고, 그들을 대화와 협력의 장으로 불러내기 위해 노력하며, 그들이 대화할 준비가 됐을 때 과정을 계획하고 진행하는데 적극 활용돼야 한다. 물론 종교단체가 직접 제삼자 역할을 하려면 전문가를 발굴 또는 양성하는 것이 먼저겠지만, 대화를 주선하고 과정을 진행할 전문가를 초청하고 지원하는 것도 당장 종교단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이것은 쉬운 일은 아니며 무엇보다 현재 종교단체가 사회 문제에 접근하고 있는 방식에서 한 단계 더 전진해야 가능한 일이다. 그렇지만 사회갈등 때문에 희생되고 파괴되는 개인과 집단이 늘어가는 상황에서 갈등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구체적인 지원을 하는 것은 종교계가 외면할 수 없는 일 중 하나다.
대화와 협력으로 갈등을 해결하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 외에 갈등을 해결할 방법은 없다. 물론 갈등의 해결이 아니라 문제의 부당함을 알리는 시민운동 차원에서 갈등을 전개하는 것이라면 대화와 협력은 잊어도 된다. 그러나 억울한 희생자를 줄이고 공동체 파괴를 최소화하려면 끊임없이 대화와 협력을 통한 갈등의 해결을 모색해야 한다. 해결의 모색 없이 저항에만 주력한다면 지금까지 경험했던 것처럼 갈등은 봉합 또는 강제 종료될 것이고, 지원하던 사람들이 다 떠난 뒤 삶을 파괴당한 주민들만 홀로 남겨질 것이다.
위의 글은 가톨릭 잡지인 <사목정보> 2013년 12월 호에 실렸습니다. 무단 복사와 배포를 할 수 없으며 인용할 때는 반드시 출처와 저자를 밝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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