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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연구로서의 갈등해결 연구평화갈등 연구/갈등해결 2015. 5. 4. 02:00
평화 연구로서의 갈등해결 연구: 평화적 과정과 평화 성취에의 기여
정주진
I. 서론: 평화연구와 갈등해결
평화연구(peace research)는 평화학(peace studies) 또는 평화갈등학(peace and conflict studies)이라는 명칭과 교환적으로 사용되곤 한다. 평화연구가 학제와 상관없이 개인 또는 집단의 관심에 기초한 접근의 포괄적 의미를 내포한다면 평화학 또는 평화갈등학은 대학의 학제, 다시 말해 제도화에 초점을 맞춘 접근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제도화와 상관없이 명칭이 내포한 의미를 해석한다면 평화연구나 평화학은 연구와 실천의 궁극적 목표가 평화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와는 조금 다르게 평화갈등학은 평화의 성취라는 궁극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갈등을 다룰 수밖에 없는 불가피성을 내포하고 있다. 다른 한편 평화 성취의 과정에서 직면하게 되는 갈등이라는 도전을 구체적으로 제시함으로써 평화가 추상적이 아닌 현실적인 필요이자 갈등의 해결을 통해 달성되는 현상적 목표임을 강조하고 있다. 각 명칭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와 상관없이 평화연구, 평화학, 평화갈등학 모두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평화고 궁극적인 목표 달성의 과정에서 불가피하고 빈번하게 갈등해결을 다루게 된다. 갈등해결은 구분된 명칭과는 상관없이 평화를 연구하고 궁극적으로 평화를 성취하기 위해 다뤄야 할 가장 중요한 주제 중 하나로 여겨진다. 다만 본 논문에서는 용어 사용의 혼동을 피하고 글 전개의 목적에 부합하기 위해 평화연구와 갈등해결 두 개의 용어를 병렬적으로 또는 필요에 따라 구분해 사용하기로 한다.
평화연구는 평화 성취의 전제가 되는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조건을 만들고, 실행하며, 유지하는 방법, 그리고 그와 관련된 주제들을 연구한다. 갈등해결 연구는 평화연구의 구체적인 응용 영역으로 평화의 부재 또는 불안한 평화의 지속을 야기하는 갈등에 대한 평화적 대응, 갈등의 평화적 해결, 갈등 종식 후 지속가능한 평화를 위한 포괄적 환경의 변화와 관계의 회복 등에 관련된 이론, 실천적 방법, 사회적 조건을 연구 주제로 삼는다. 평화연구와 갈등해결 연구는 연구 주제를 공유하고 평화를 궁극적인 목표인 동시에 연구 및 실천 과정에서 추구해야 할 가치로 여긴다.
일반적으로 갈등해결 연구가 거론되는 경우는 두 가지다. 하나는 평화학 또는 평화갈등학이라는 학제 안에서 하나의 세부 연구 분야 또는 주제로 언급되는 경우다. 이 경우 평화연구와 갈등해결 연구는 궁극적 목표와 과정에서 추구할 가치를 공유하기 때문에 특별한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다른 하나는 평화학 또는 평화갈등학이라는 학제가 아닌 다른 학제 안에서 언급되는 경우다. 이 경우 갈등해결은 각 학제의 궁극적 목표를 성취하기 위한 응용 방법의 하나로 연구되기 때문에 평화연구와는 궁극적 목표와 과정적 가치를 공유하지 않는다. 본 논문은 주로 첫 번째 경우에 대한 논의를 다루지만 자연스럽게 두 번째 경우에 대한 경계도 함의하고 있다. 논의의 핵심은 갈등해결 연구가 평화연구로서 가지는 정체성이며 그 정체성을 주장하기 위한 설명으로서 갈등해결 이론, 실천 방법, 과정에 내포돼 있는 평화성과 평화 성취의 구체적 실천을 다뤄온 평화구축 연구와 갈등해결 연구와의 유기적 결합을 논할 것이다.
위의 접근을 통해 본 논문이 기여하고자 하는 것은 평화연구와 갈등해결 연구의 관계가 규정되지 않고 단순 분리돼 있으며, 분리된 두 연구 분야 사이에 상호 이해나 교류가 형성돼 있지 않은 한국 연구 환경에 통합적 논의와 성찰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러나 두 연구 분야의 분리로 통합적 논의가 거의 진행돼 있지 않은 한국의 상황으로 인해 국제 일반적 갈등해결 연구에 초점을 맞춰 논의를 전개시키는 접근을 취할 것이다. 이 부분을 보충하기 위해 본 논문의 주장이 한국적 맥락에서 가지는 함의와 한국의 평화연구 및 한국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은 결론에서 다룰 것이다.
II. 갈등해결의 이해
1. 학문적 영역의 갈등해결
‘갈등해결’은 갈등(conflict)과 해결(resolution)의 두 단어가 결합된 용어로 그 자체로 고유명사 역할을 한다. 갈등해결은 연구 또는 실천을 하는 주체에 따라 조금씩 다른 의미로 이해되기도 하지만 이것은 용어의 왜곡이 아니라 갈등해결의 부분적 연구 또는 실천에서 기인한 것이다. 갈등해결에 대한 이해 중 가장 중심적인 것은 학문 연구로서의 이해다. 갈등해결은 평화학 또는 평화갈등학이라 부르는 학문 영역 내에서 연구된다. 평화학 또는 평화갈등학이 학제간(inter-disciplinary) 학문으로서 정체성이 강조되는 것처럼 갈등해결 연구 또한 학제간 연구 영역으로 이해된다. 평화학 또는 평화갈등학이 학제간 연구라는 것은 두 가지를 의미한다. 하나는 기존의 다른 학제들이 이룬 학문적 성과들을 참고하거나 학제의 영역을 뛰어 넘어 교차 및 융합 연구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연구의 궁극적인 목표는 평화의 성취 또는 문제의 평화적 해결이다. 같은 주제를 다루더라도 다른 학문 영역들은 평화의 가치와 성취를 염두에 두고 연구하지는 않기 때문에 이것은 다른 연구와 구분되는 점이다. 학제간 영역이 갖는 다른 의미는 연구자들이 다른 영역에서 학문적 기초를 쌓은 후 평화학 또는 평화갈등학의 영역에 진입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평화학 또는 평화갈등학이 학문 영역으로써 비교적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어 생긴 현상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많은 학위 프로그램들이 학부가 아니라 대학원 과정부터 시작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평화학 또는 평화갈등학 내에서 이뤄지는 갈등해결 연구는 이런 학제간 연구 환경을 공유하며 특별히 응용 연구 영역으로써 평화 성취를 위한 바람직한 실천 형태와 결과의 평가 기준을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갈등해결 연구의 토대가 되는 것은 갈등의 이해다. 갈등은 일반적으로 양립할 수 없는 목적을 가진 상호의존적인 당사자들이 불충분한 자원을 획득하기 위해 자신의 목적 달성을 방해하는 다른 당사자, 또는 당사자들과 대립할 때 발생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여기서 갈등을 구성하는 세 가지 요소는 양립할 수 없는 목적, 불충분한 자원, 상호의존적인 당사자들로서 한 가지 요소라도 충족되지 않으면 갈등은 성립하지 않는다. 이런 갈등의 효율적인 해결을 모색하는 갈등해결 연구는 갈등의 원인을 무엇으로 보느냐에 따라 접근법에 차이를 보인다. 대부분의 갈등해결 연구자들은 갈등이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의해 발생한다고 본다. 구조적 모순은 갈등 당사자들 사이의 양립할 수 없는 목표 설정을 야기하는 상황으로 당사자들의 개념적 가치와 실질적 필요를 충족시켜주지 못하는 사회 구조를 말한다. 당사자들 사이에 대칭적 힘의 관계가 있을 때 모순은 당사자들 사이의 입장과 이익의 단순 충돌을 야기하지만 비대칭적 힘의 관계에서는 그에 기반한 입장과 이익의 충돌에 의한 풀기 힘든 갈등을 야기한다. 구조적 모순은 구조적 폭력을 만들어 내고 그 결과 첨예한 대립을 동반하는 갈등이 발생한다. 구조적 폭력 개념을 고안한 요한 갈퉁(Johan Galtung)에 의하면 구조적 폭력은 힘의 불평등한 분배 때문에 발생하는데 이것은 사회 자원의 불평등한 분배로 이어져 그 결과 부당한 사회 환경이 만들어진다. 이로 인해 가장 심각한 피해를 입는 것은 수입이 적고, 교육 수준이 낮으며, 신체적으로 약하고, 상대적으로 적은 힘을 가진 사람들이다. 구조적 폭력의 심화와 지속으로 마침내 구조적 폭력을 인지하게 된 사회 구성원들은 절망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나은 삶과 보다 많은 자원 획득에 대한 욕망으로 구조적 모순을 바로 잡으려 하는데 이로 인해 갈등이 발생한다. 구조적 모순으로 생긴 구조적 폭력을 갈등의 발생 원인으로 보는 연구자들은 사회의 구조적 문제로부터 완전히 독립적인 개인 갈등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고 본다. 한 가족 내에서 발생하는 갈등조차 근본원인은 가족 구성원들의 관계나 의사소통의 문제가 아니라 열악한 노동 환경, 낮은 임금, 그에 따른 빈부 격차의 확대 같은 사회 문제일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갈등의 근본원인인 구조적 문제의 성찰 없이 갈등을 개인화시키고 갈등 당사자 사이의 합의와 화해에만 초점을 맞춰 갈등을 종식시키려는 시도를 경계한다.
인간의 기본 필요 불충족이 갈등의 근본원인이 된다고 보는 접근도 있다. 존 버튼(John Burton)은 인간 필요(human needs) 이론을 체계화시켰는데 그에 따르면 세상에는 정체성(identity), 안전(security), 인정(recognition), 자유(autonomy) 같은 사회 제도나 규범에 의해 절대 구속될 수 없는 보편적 인간 필요가 있다. 개인 또는 집단의 정체성과 존재 이유를 결정짓는 인간 필요는 절대 억압되거나 통제될 수도, 협상의 대상이 될 수도 없다. 인간 필요가 충족되지 않는 환경에서 개인 또는 집단은 절망하게 된다. 그런 상황이 한계에 달해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할 때 개인 또는 집단은 자신의 필요를 억압하고 통제하는 환경의 타개를 위해 저항하게 되고 그에 따라 갈등이 발생한다. 인간 필요는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없으므로 갈등은 당사자가 요구하는 인간 필요의 충족을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 그러나 불균형한 힘의 관계로 억압과 통제를 받는 개인 또는 집단의 인간 필요는 쉽게 충족되지 않는다. 때문에 인간 필요의 불충족으로 야기되는 갈등은 폭력적이거나 장기화되는 경향이 있다.
인간 필요를, 또는 구조적 모순을 갈등의 발생 원인으로 보는 연구자들 사이에 근본적 시각 차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 필요의 불총족 상황이 결국 구조적 모순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갈등해결 방법의 설계에 있어서 다른 접근을 취한다. 구조적 모순을 강조하는 연구자들은 갈등과 구조적 모순 사이의 인과관계를 규명하고 폭력적 구조를 변화시키는 것이 갈등해결의 전제이자 결과가 되어야 한다고 본다. 인간 필요를 강조하는 연구자들은 구조적 모순과 인간 필요의 불충족을 야기하는 정치적 환경과 폭력적 사회 구조의 변화는 물론 갈등 당사자들 사이의 의사소통 개선, 상호 인식의 변화, 협력 관계의 형성 등을 통해 갈등이 해결된다고 본다. 인간 필요는 한정된 자원이 아니므로 한 편의 인간 필요 충족이 곧 다른 편의 인간 필요 충족에도 기여하는 결과를 낳으며, 관계 형성과 의사소통을 통해 당사자들이 그 점을 공유하고 공동으로 노력해야 갈등이 해결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갈등을 기본적으로 입장(position)과 이익(interest)의 충돌로 보는 시각도 있다. 이런 시각은 당사자들이 입장과 이익을 혼동하고, 이익에 초점을 맞춰야 할 때 타협할 수 없는 입장에 초점을 맞추는 실수에서 갈등이 비롯된다고 본다. 그 근저에는 이익에 초점을 맞춘 효율적 협상을 불가능하게 하는 당사자들의 의사소통 기술 부족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이런 시각을 가장 잘 정리한 것이 게임 이론(game theory)에서 출발해 1980년대 초반 체계화된 협상 이론(negotiation theory)이다. 갈등을 의사소통 문제로 보고 갈등해결의 초점을 이익 분배에 맞추는 이런 시각은 평화연구의 일환으로 갈등을 연구하는 학자들로부터 지속적인 비판을 받아왔다. 비판의 핵심은 갈등을 개인화시키고 의사소통의 문제로 전락시킴으로써 갈등의 근본원인인 사회 구조의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개인 또는 집단의 정체성 및 존재 이유를 정당화하는 입장을 당사자들이 포기하지 않는다는 점을 간과한 것도 비판의 초점이 된다. 차별적 사회 환경 때문에 당사자들 사이에 힘의 불균형이 존재한다는 점을 망각하고 모두가 합리적인 생각과 효율적인 의사소통을 개발해 협상에 임함으로써 상호 이익의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고 보는 시각도 비판의 대상이 된다. 이런 점 때문에 협상 이론에 근거한 접근은 갈등해결을 사회 변화를 위한 새로운 문제해결 방식이 아니라 당사자 합의를 위한 절차와 기법을 제공하는 새로운 전문 직업 형성 도구로 삼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갈등해결 연구자들이 가장 포괄적인 접근으로 여기는 것은 갈등의 전환(transformation)에 초점을 맞추는 전환적 시각이다. 1990년대 초에 등장한 이 접근은 이제는 가장 진보한 갈등해결 이론으로 자리 잡았다. 전환적 시각은 갈등의 발생 원인을 힘과 자원의 부당한 분배, 그리고 그에 따른 폭력적인 사회 구조에서 찾는다는 점에서 구조적 시각과 맥을 같이한다. 그러나 동시에 구조적 모순과 폭력에 능동적이고 긍정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개인, 그리고 그들의 관계와 문화의 측면에서도 갈등의 발생 원인을 탐색한다는 점에서는 구조적 시각과 차별화된다. 때문에 구조적 문제의 규명과 분석은 물론 구조적 문제에 대응하고 그것을 해결하는 개인과 집단의 역량 형성을 동등하게 강조한다. 특별히 개인, 관계, 문화, 구조 차원을 모두 아우르는 포괄적 접근을 통한 갈등의 해결을 강조한다. 이것은 모든 갈등에는 표면적인 사건(episode)과 함께 진원지(epicenter)가 있으며 갈등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갈등을 야기한 전체 환경, 즉 갈등에 직면한 개인 및 집단, 그들의 관계 및 갈등 대응 방식, 갈등을 야기 또는 방치하는 사회 구조 등 모두를 전환시켜야 함을 말한다. 그러므로 사건을 다루는 단기적인 접근과 함께 진원지를 다루는 중.장기적 접근이 동시에 계획되고 진행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전환적 시각은 갈등의 해결을 판단함에 있어 다른 접근들과 차별성을 드러낸다. 즉 갈등 현안의 종식을 갈등의 해결로 보지 않고 구조, 문화, 관계, 개인 등 모든 층위의 전환, 다시 말해 갈등을 야기하고, 갈등의 파괴적 전개를 촉진하며, 대화 및 관계의 단절을 고착시키는 전체 환경의 근본적인 변화를 갈등의 해결로 본다.
갈등의 발생 원인을 보는 시각이 다르고 그에 따라 갈등해결 접근에 차이가 존재하지만 갈등을 해결하는 기본 원칙에는 동의가 형성돼 있다. 그것은 당사자들이 스스로 갈등을 이해 및 해결할 수 있어야 하고, 대결적인 아닌 평화적인 방법에 의존해야 하며, 갈등의 해결이 관계의 회복에 기여해야 한다는 점이다. 때문에 갈등해결은 그런 해결 노력이 진행될 수 있는 조건의 형성, 당사자 노력에 대한 지원 방법, 그리고 그런 방법을 통한 갈등의 평화적 해결을 주요 연구 주제로 삼고 있다.
2. 대중적 영역의 갈등해결
갈등해결은 갈등의 해결을 실행하는 사회 전문 영역을 일컫는 대중적인 의미도 가지고 있다. 이때의 갈등해결은 작동하지 않는 기존의 사회 기제를 대체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이고 결과의 질을 담보하는 문제 해결 방식을 의미한다. 대안적 사회 기제로서의 갈등해결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그런 연유로 시민들의 필요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입법, 사법, 행정 절차에 대한 불만을 해소하는 효율적인 기제로 이해된다. 이것은 비용, 시간, 갈등 당사자의 만족도 면에서 효율성이 높음을 얘기한다. 때문에 대중적 의미의 갈등해결은 ADR(alternative dispute resolution), 즉 대안적 논쟁 해결 수단으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대안적 의미의 갈등해결이 사회 운동 차원에서 주목을 받고 확대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였다. 이때의 갈등해결은 이미 20세기 초부터 실행되고 있던 노사 갈등 해결 기제로부터 기본 틀을 이어 받았다. 1920-30년대 노사 갈등으로 어려움을 겪던 미국 정부는 집단 교섭(collective bargaining)을 제도화시키고 철도와 항공 등 국가 기간산업 분야의 노사 갈등 조정을 위해 1934년에 전국조정위원회(National Mediation Board)를 설립했다. 노사 갈등에 직면한 기업에게 제삼자 개입 및 조정 서비스를 제공하는 연방조정화해서비스(Federal Mediation and Conciliation Service)도 설치했다. 1960년대 발생한 사회 갈등은 현안의 다양성이나 관련 당사자의 숫자 면에서 노사 갈등보다 훨씬 복잡한 양상을 나타냈다. 그럼에도 이미 경험을 축적한 노사 갈등 해결 기제는 복잡한 사회 갈등을 다루는 대안 기제 개발에 기본적이며 동시에 구체적인 구상을 제공하는 역할을 했다.
1980년대 중반에는 갈등해결이 대학 학위 과정으로 설치되면서 학문적 연구가 본격화됐다. 학문적 영역 내의 갈등해결 연구는 평화와 갈등 현안을 폭넓게 다뤘다. 같은 시기 대안적 사회 기제인 갈등해결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갈등해결 방법과 기술을 교육하는 많은 워크숍, 세미나, 훈련 프로그램 등이 생겨났다. 학문적 영역의 갈등해결과 대중적 영역의 갈등해결은 비슷한 시기에 영역 확대와 대중 인지도 향상의 길을 걸었다. 학문적으로 훈련받은 인적 자원이 대중적 영역에 진출했으며 학문적 영역과 대중적 영역 둘 사이에는 꾸준히 융합과 상호 보완이 이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문으로서의 갈등해결과 사회 기제로서의 갈등해결 사이에는 일정 수준의 긴장관계가 형성돼 오고 있다. 갈등해결 연구자들은 사회 기제로서의 갈등해결이 이론적 토대가 부족하고, 때문에 사회 변화보다는 통제 수단으로 악용될 여지가 있다고 비판한다. 그 증거로 미국변호사협회(American Bar Association)가 ADR 또는 갈등해결을 효율적 사법 절차를 위한 대안적 문제 해결 방식으로 판단하고 시간과 비용의 효율성, 그리고 무엇보다 법정의 포화상태를 완화시킬 수 있는 방안으로 강조한 1976년 이후 사회 기제로서의 갈등해결이 급속히 확대됐음을 지적한다. 무엇보다 대중적 영역의 갈등해결이 구조적 문제와 당사자들 사이 힘의 불균형 같은 갈등의 근본원인을 다루지 않고 갈등 현안의 종식에만 몰두함으로써 갈등해결의 가치인 과정의 평화성과 관계의 회복은 물론 최종 목표인 평화 성취를 간과하고 그것들을 단지 우연히 얻어지는 부수적 결과로 취급한다고 비판한다.
갈등해결이 학문적 연구뿐만 아니라 대중적 영역에서 실천되고 확대되는 이유는 사법, 행정, 입법 절차에 의존하는 전통적인 문제 해결 방식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새로운 방식을 제안하고 실행하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방식은 여러 가지 이유로 갈등 당사자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지 못한다. 그중 첫째 이유는 복잡한 절차, 긴 시간, 고비용을 요구하지만 구체적인 해결책 제시보다는 옳고 그름에 근거해 승리와 패배만을 판단하기 때문에 당사자들의 만족도는 낮다는 것이다. 둘째는 양자 문제를 다루기에 적합한 형태로 발전돼 왔기 때문에 다수 당사자가 관련된 복잡한 사회 갈등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옳고 그름의 판단보다는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해결책을 모색해야 하는 사회 갈등 대응에 있어 효율적이지 못함을 의미한다. 셋째는 참여를 제한함으로써 시민들의 요구를 외면한다는 것이다. 민주화가 진전되고 시민의식이 성장함에 따라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는 정책 결정 과정에의 시민 참여 욕구는 높아진다. 그러나 전통적 방식은 엄격하게 참여를 통제하는 폐쇄적 특징을 가지고 있고 참여가 허용되더라도 규정된 형식 때문에 당사자들의 자유로운 의견 개진은 제한된다. 충분한 재원이 없는 당사자는 최소한의 참여를 확보하기도 힘들다.
갈등해결은 전통적 방식의 한계를 극복하고 무엇보다 당사자 만족도가 높은 결과를 얻어낼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새로운 문제 해결 방식으로 여겨진다. 갈등해결이 제안하는 방식은 전통적 방식과는 차별되는 몇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 번째는 갈등해결의 가장 큰 장점으로 여겨지는 비공식성(informalism)이다. 이 말은 이중적 의미를 가진다. 하나는 갈등해결 과정이 법에 의해 부과된 공식성을 가지지 않는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결과가 비공식성을 가진다는 것이다. 결과의 비공식성은 법적 권한을 부여받은 제삼자가 최종 결정을 내리는 전통적 방식과는 달리 당사자들의 합의가 최종 결과가 되며, 때문에 합의를 이루지 않고 과정을 끝내는 것도 가능함을 의미한다. 이런 비공식적 문제 해결은 공동체 의식을 중요시해 공동체 밖 사법 과정의 이용을 선호하지 않거나 금지했던 북미 식민지 시대에 이미 등장했고 전통적 방식에 대한 불만으로 대안적 방식에 대한 욕구가 높아지던 1960년대에 재등장했다. 두 번째 특징은 당사자의 자발적 선택, 참여, 해결이다. 비공식성을 띤 갈등해결 과정의 선택 여부는 전적으로 당사자들에게 달려 있고 선택 후에는 당사자들의 적극적 참여가 요구된다. 과정 내에서 이뤄지는 현안 및 문제 해결 논의, 그리고 해결에 대한 합의 또한 제삼자의 강요가 아니라 전적으로 당사자들에게 달려 있다. 이런 방식은 과정에 대한 당사자들의 소유 의식을 강조함으로써 결국 합의의 실행 가능성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세 번째 특징은 융통성과 유연성의 강조다. 갈등해결 과정은 양자 조정(mediation), 다자 합의 형성(consensus building), 규제 협상(negotiated rulemaking) 같은 기본 틀을 가지고 있지만 당사자의 필요, 갈등의 수준과 단계, 외부 조건의 영향 등 다양한 상황에 맞춰 수정이 가능하다. 과정이 비공식적이고 당사자의 결정을 최우선으로 삼는 원칙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전문적 제삼자의 도움이다. 갈등해결 과정에서 제삼자의 역할은 당사자들이 최종 합의에 이를 수 있도록 전체 과정을 설계하고, 진행시키며, 당사자들을 적극 지원하는 역할이다. 전통적 과정에서 제삼자는 당사자들의 의견을 각각 청취한 후 최종 판단을 내리기 때문에 당사자들은 제삼자의 협력과 도움을 기대할 수 없고 제삼자에게 자신의 입장과 이익만 호소해야 한다.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과정에 참여하지만 타인에게 최종 결정을 맡기는 모순된 상황인 것이다. 이와는 다르게 갈등해결 과정에 참여하는 당사자들은 전문적 제삼자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자신의 대화 상대에 집중하며 효율적으로 논의와 협상에 임할 수 있다. 때문에 과정에 참여하지 않을 때보다 더 만족스런 결과를 얻어낼 가능성이 높다. 이런 모든 차별적 특징 때문에 갈등해결은 전통적 방식과는 구분되는 새로운 형태의 문제 해결 방식으로 여겨진다.
갈등은 근본적으로 당사자들의 판단과 그들 사이의 관계에서 비롯되며, 비공식성, 당사자 선택, 융통성 및 유연성, 제삼자 도움과 같은 갈등해결의 특징은 당사자들과 그들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 과정의 설계 및 진행을 가능하게 한다. 앞서 언급한 구조적 문제, 인간 필요, 입장과 이익의 대립 등 갈등의 원인을 해석하고, 그것에 대응하며, 갈등을 표면화시킬지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당사자들이다. 갈등의 확대 또는 축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당사자들 사이의 관계다. 같은 갈등 현안에 직면하더라도 당사자들의 관계에 따라 갈등이 파괴적으로 또는 건설적으로 전개된다. 이런 연유로 갈등해결 과정은 갈등 현안에 대한 당사자들의 인식과 판단, 그리고 당사자들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다. 갈등 전개 과정에서 이미 공식화된 입장과 논리적 주장의 되풀이가 아니라 표면화되지 않은 당사자들의 필요, 우려, 전망 등을 공유하고 관계 속에서 그것들을 새롭게 해석할 수 있도록 돕는다. 갈등을 공동의 문제로 인식하고, 문제 해결을 위한 새로운 협력 관계를 형성하며,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결과를 도출하는데 초점을 맞춘다. 과정의 실행에 앞서 당사자들의 관계 형성을 독려하고 과정 내에서 대화(dialogue)와 협력(collaboration)에 집중하는 것 또한 갈등해결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당사자들의 판단과 관계를 고려한 것이다. 실제 갈등해결 과정의 합의 도출 여부는 물론 합의의 실행 여부 및 수준 역시 당사자들 관계의 질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당사자들의 관계는 갈등해결 과정이 길수록 호전되고 상호 이해도가 높아진다. 합의 실행 과정에서도 당사자들의 관계가 호전되고 그로 인해 같은 문제에 직면했을 때 갈등으로 발전될 가능성은 낮아진다.
갈등해결의 차별성과 새로운 문제 해결 기제로서의 타당성과 효율성은 학문적, 대중적 영역 모두에서 강조되고 무엇보다 대중적 실천에 의해 사회적 인정을 받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영역 사이에 긴장이 존재하는 이유는 학문적 연구가 강조하는 이론적 토대와 비판적 접근이 대중적 영역의 실천에서 같은 수준의 의미를 가지지 못하며, 대중적 영역에서 실천되는 갈등해결 과정이 이론적 성찰과 비판적 평가의 부족으로 학문적 연구에서 여전히 경계의 대상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중적 영역 내의 갈등해결은 학문적 영역 내의 갈등해결 연구자들로부터 사회 변화 기여라는 목표가 결여돼 있고, 때문에 사회 통제 기제가 될 가능성이 있음을 지적받아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적 영역 내의 갈등해결은 결과적으로 학문적 영역 내의 갈등해결이 강조하는 사회 변화에 기여해 왔다. 갈등해결 과정의 계획과 실행을 통해 공공 정책의 결정과 사회 갈등의 해결에 당사자 참여를 확대시키고, 그 결과 정책의 질을 향상시킴은 물론 민주주의 발전에도 기여하고 있다. 가장 중요하게는 학문적 영역 내 갈등해결이 강조하는 것처럼 갈등의 평화적 해결과 당사자에 의한 문제 해결이라는 갈등해결의 기본 원칙을 따르고 있다. 그럼으로써 파괴적으로 전개되는 갈등을 당사자의 필요와 공공성에 기반해 해결하고 전통적 방식을 보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비록 사회 변화 기여를 표방하지 않고 갈등의 근본적 해결이 아닌 갈등 현안의 종식과 당사자 합의만을 강조한다 할지라도 대중적 영역의 갈등해결은 결과적으로 사회 변화에 기여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결과론적인 성과에도 불구하고 갈등해결의 가치와 목표에 대한 학문적, 대중적 영역의 인식 차이는 갈등해결 과정과 결과의 질, 그리고 갈등의 재발 여부에 직접 영향을 미치므로 간과할 수 있는 논의는 아니다.
III. 평화 성취 과정으로서의 갈등해결
1. 갈등해결의 과정적 평화
갈등해결의 최종적 목표는 평화 성취에 기여하는 것이다. 이것은 평화연구가 추구하는 목표와 같다. 다만 갈등해결은 응용 영역으로 갈등 현장에서의 구체적 실천을 통해 평화 성취에 기여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갈등해결이 실천을 통해 평화 성취에 기여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갈등을 야기하는 폭력적 사회 환경 전체를 관망하고, 그로 인한 갈등 현안들을 규명하며, 갈등을 평화적으로 해결(resolution), 나아가 전환(transformation)시킬 조건의 형성에 기여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특정 갈등 현안을 찾아내 해결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평화적 과정의 설계와 진행에 기여하는 것이다. 두 가지 방식을 실행함에 있어서는 평화 성취라는 목표와의 일관성을 위해 과정적 평화가 강조된다. 과정적 평화는 갈등의 규명, 분석, 해결의 전 과정에서 힘의 악용과 그에 따라 강제적으로 부과되는 모든 폭력적 내용을 배제시킴을 의미한다.
폭력적 사회 환경 전체를 관망하는 갈등해결이 가장 주목하는 사회는 무장 갈등(armed conflict)이 진행 중이거나 여전히 무장 갈등에 취약한 무장 갈등 이후 사회(post-conflict societies)다. 전통적으로 갈등해결 연구자들이 가장 많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해온 사회이기도 하다. 편의상 이 논문에서는 이런 사회들을 통틀어 ‘무장 갈등 사회’로 부르기로 한다. 이런 연유로 무장 갈등 사회를 염두에 둔 다수의 이론이 형성돼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각의 이론은 앞서 소개한 기본적인 갈등해결 이론처럼 갈등의 형태에 상관없이 모든 갈등해결 접근에 기본 틀을 제공하는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무장 갈등 사회의 핵심 현안은 무장 갈등의 종식 또는 종식 후 국가 및 사회의 재건이다. 이와 관련해 갈등해결 연구자들이 가장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사회 구성원들의 역량 형성(empowerment)으로 갈등 당사자들 사이의 힘의 균형을 이룸으로써 갈등을 예방하고 해결의 토대를 만드는 것이다. 역량 형성의 첫 걸음은 당사자들에 의한 갈등의 분석과 이해로 이것은 문화적 접근과 맥을 같이 한다. 존 폴 레더라크(John Paul Lederach)는 중미(Central America)에서의 경험에 근거해 ‘갈등’의 문화적 이해를 강조한다. 그의 연구에 의하면 니카라과 내전을 경험하며 사는 주민들은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것은 싸움(disputes), 혼란(messes), 다툼(entanglements), 그리고 문제들(problems)이다. ‘갈등(conflict)'은 학문적 용어이며 우리의 전통에 의하면 ‘무장 집단 사이의 폭력적 투쟁’을 의미한다”라고 말한다. 영어에서 ‘갈등(conflict)'은 포괄적인 의미로 개인 사이의 갈등까지 포함하지만 중미 사람들에게 개인 사이의 문제는 ‘갈등’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문제를 범위가 넓은 사회적 네트워크 안에서 통합적으로 인식할 때 ‘갈등’이란 용어를 사용한다. 갈등에 대한 이런 문화적 분석과 이해는 힘 있는 외부 세력의 이해를 중심에 놓고 상대적으로 약한 내부 세력의 이해를 주변으로 취급하는 전통적인 규정적(prescriptive) 접근에서 탈피해 당사자의 분석을 유도하고 그들의 이해를 정당화하는 유도적(elicitive) 접근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이런 분석 및 이해 주체의 변화는 약한 당사자의 역량 형성과 강한 당사자와 약한 당사자 사이의 힘의 균형에 기여한다.
역량 형성을 통한 힘의 균형은 갈등의 평화적 해결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도 피할 수 없는 과제다. 힘이 불균형이 심하다면 무장 갈등 사회의 경우 생계 문제 선결 해결, 안전한 환경 형성, 참여 보장 등을 통해, 민주사회에서는 참여 확대, 교육 및 훈련 등의 역량 형성을 통해 약한 당사자의 힘을 강화시켜야 한다. 그 과정에서 갈등이 표출되거나 기존의 갈등이 심화될 수 있지만 힘의 균형은 당사자들의 직접 대화와 협상을 가능하게 하는 전제조건이 되므로 불가피한 일이다. 역량 형성은 갈등해결 과정 내에서 나타날 수 있는 폭력적 요소, 다시 말해 상대적으로 강한 당사자가 약한 당사자에게 자신의 이해와 규칙을 부과하는 것을 차단시키고 모두가 동등한 위치에서 대화와 협상에 임할 수 있는 환경 형성의 토대가 된다.
역량 형성은 갈등해결의 실행과 관련해 갈등의 근본원인인 폭력적 구조가 재연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폭력적 구조의 재연이 가져오는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는 힘의 차이에 의한 참여의 제한이다. 무장 갈등 사회에서는 약자에 대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압력과 그것들을 정당화하는 사회 구조, 그리고 민주사회에서는 약자의 낮은 교육 수준, 정보 부족, 직장, 육아 등이 참여를 제한하는 원인이 된다. 상대적으로 힘이 많은 당사자가 영향력과 기여도가 적을 것으로 판단되는 당사자들을 고의로 배제시키기도 한다. 이런 폭력적 구조는 보다 근본적이게는 행정 및 사법 제도에 의해 정당성과 주도권을 부여 받은 사회 구조에서 비롯되고 그런 관료적인 사회 구조의 통제로 인해 대중의 영향력은 제한받는다. 그 결과 시민들은 자신에게 직접 영향을 미치는 정책 결정 과정에조차 참여할 수 없으며 갈등의 해결을 위한 논의에서도 배제되곤 한다. 이런 폭력적 구조에 의한 참여의 제한은 갈등해결 과정 초기에 문제 제기가 이뤄지지 않으면 과정 내내 재등장을 거듭하며 영향을 미치고 결국 과정은 물론 합의 결과의 정당성도 훼손하게 된다. 그러므로 역량 형성을 통해 약한 당사자의 힘을 강화하고 참여를 높임으로써 폭력적 구조를 극복해야 한다.
갈등해결은 정책 결정 과정에 시민의 참여를 허용하지 않는 전통적 구조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방식으로 실행된다. 구체적이게는 특정 정책에 의해 직접 영향을 받는 시민들을 결정 과정에 참여시킴으로서 갈등의 예방 및 해결에 기여하고 동시에 정책의 질과 실행 효율성을 높이는 결과를 낸다. 이런 맥락에서 갈등해결이 포기할 수 없는 원칙 중 하나는 모든 당사자의 참여다. 어떤 당사자도 어떤 이유로든 배제되지 않아야 하며, 효율적 과정을 빌미로 참여를 제한하고 상대적으로 힘이 없는 당사자를 배제하는 것은 갈등해결의 원칙을 어기는 것이다. 오히려 드러나지 않은 관련 당사자들이나 논의 현안이 추가됨으로써 새롭게 등장하는 당사자까지 찾아내고 그들의 참여를 독려해야 한다. 참여의 확대가 갈등을 확대시키기보다 오히려 갈등을 근본적으로 해결해 향후 재발을 막는데 기여하고 당사자는 물론 대중으로부터도 정당성을 인정받는 과정 및 합의 도출을 가능케 하기 때문이다.
과정의 실행과 관련해 의미 있는 참여 환경의 조성과 그에 따른 평화적 과정도 강조된다. 갈등해결 과정은 모든 당사자들의 적극적 논의 참여를 위해 사전 교육을 포함하고, 당사자들의 생활 지식에도 유효성을 부여하며, 나아가 기존 체계에 매몰돼 있는 전문가들의 통념과 지식에서 벗어난 비전문인들의 창의적 구상을 독려한다. 또한 당사자들 사이의 정보 공유와 분석을 위해 워크숍, 전문가 토론, 기술적 정보 습득 절차 등이 고안되고, 그 결과 과정 내에서 자연스럽게 당사자들의 역량이 형성되며, 당사자들 사이의 힘의 차이는 극심한 불균형에서 적절한 균형으로 점차 변화된다.
갈등해결의 과정적 평화는 갈등해결이 평화연구로서의 정체성을 가짐을 잘 드러낸다. 그러므로 갈등해결 과정 내에서 힘의 차이에 의한 참여의 제한과 특정 당사자의 배제, 그리고 지식과 경험이 부족한 상대적으로 약한 당사자의 의미 없는 참여가 강요된다면 그것은 폭력적 사회 구조의 재연이며 결과적으로 갈등해결 과정의 본질을 해치는 것이다. 평화적 과정의 실현은 평화 성취에 기여하는 연구 및 실천 분야로서 갈등해결의 정체성을 위해 불가피하다.
2. 갈등해결과 평화구축
갈등해결 연구자들이 가장 관심을 가지는 주제 중 하나는 국제 사회의 평화 현안이다. 평화연구는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에 대한 절망적인 통찰에서 시작됐다. 그후 원자폭탄의 개발과 사용, 그리고 냉전 시대에 직면하면서 평화연구는 국가 사이의 전쟁이 인류의 생존을 좌우할 수도 있다는 다급한 상황에 처하게 됐다. 당연한 결과로 평화연구는 국가 사이 적대적 관계의 개선과 전쟁의 예방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갈등해결 연구 또한 동일한 주제에 주목했다. 그러나 냉전 종식 이후 증가하기 시작한 국가 내 무장 갈등과 무장 갈등 후 국가 및 사회 재건 현안은 국제 사회의 평화에 대한 갈등해결의 관심을 바꿔 놓는 계기를 제공했다. 갈등해결 연구자들은 내전의 종식은 물론 국가 및 사회 재건에 있어서 갈등해결이 구체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했고 자연스럽게 무장 갈등 사회에 대한 국제사회의 개입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특별히 그 과정에서 무장 갈등 사회의 필요가 외면되고 국제사회의 요구가 부각되면서 무장 갈등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갈등 취약성이 개선되지 않는 상황에 주목했다.
평화구축으로 번역되는 ‘피스빌딩(peacebuidling)’은 아직 영어 사전에는 기재돼 있지 않지만 평화학 또는 평화갈등학에서는 물론 관련 연구 분야, 국제 구호 개발 분야, 국제기구 등에서 이미 오래 전부터 사용되고 있는 용어다. 요한 갈퉁이 전쟁 종식 후 적극적 평화(positive peace)로의 이행을 설명하기 위해 고안한 용어인 평화구축은 부트로스 부트로스 갈리(Boutros Boutros-Ghali) 전 유엔 사무총장의 ‘평화 현안(A agenda for peace)'이라는 보고서에 등장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이 보고서는 중재(peacemaking)와 평화유지(peacekeeping)를 위한 예방적 외교의 보다 효율적이고 강화된 방안을 제시해 달라는 유엔 안보리의 요청에 대한 응답으로 1992년 발표됐다. 보고서는 냉전의 종식과 함께 과도기를 맞고 있는 세계가 국가 사이의 경쟁과 경계를 넘어 소통과 경제 협력으로 나아가고 있는 동시에 새로운 민족주의의 부상으로 민족, 종교, 사회, 문화, 언어에 따른 잔인한 투쟁의 위협에 직면하는 모순적 상황에 처해 있다고 정의했다. 보고서는 무장 갈등을 중단시키는 평화 조성 및 평화 협정의 준수를 지원하는 평화유지 활동과 함께 다방면의 평화구축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별히 ‘무장 갈등 후 평화구축(post-conflict peacebuilding)’을 무장 갈등 재발 예방을 위한 평화의 강화로 정의하면서 파괴된 국가 기관 및 사회 기반시설의 재건과 함께 교전 당사자들 사이의 평화적 상호 관계 형성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 보고서에 근거해 유엔은 중재와 평화유지를 넘어 무장 갈등 후 국가 및 사회 재건과 갈등 예방을 위한 총체적인 사회 제도 수립 및 당사자 역량 형성에 기여하는 활동으로의 전환을 꾀했다. 캄보디아 유엔 과도정부(United Nations Transitional Authority in Cambodia/UNTAC)는 이 새로운 개념에 따라 고안된 최초의 유엔 활동이었다. 연구자들은 캄보디아 사회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국제사회의 국가 재건 계획에 따라 일방적, 보편적 접근을 취했던 UNTAC의 활동을 높게 평가하지 않지만 유엔은 이를 캄보디아에 새로운 사회, 정치, 경제 토대를 만든 획기적 활동이라고 평가했다. 평가는 엇갈리지만 이 새로운 접근이 유엔을 포함한 국제기구는 물론 연구자들과 구호개발 단체들에게 새로운 구상을 불어 넣은 것만은 사실이다.
1990년대와 2000년대를 거치면서 평화구축 개념은 연구자들과 현장 실천가들의 평가를 통해 계속 진화했다. 유엔과 국제기구들은 무장 갈등 사회에 대한 국제사회의 개입과 국가 및 사회 재건과 관련한 거시적 접근에 집중하는 반면 연구자들과 현장의 구호 개발 활동가들은 평화구축 개념을 보다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현장과의 협력(collaboration)과 동반자관계(partnership)를 강화하는 개념적 토대로 삼고 있다. 동시에 적용의 범위를 무장 갈등 사회에 국한시키지 않고 만연된 폭력적 구조로 갈등에 취약한 사회까지 확대시켜 정의롭고 지속가능한 평화 성취를 위한 과정과 그 안에서 이뤄지는 다양한 접근과 활동까지 포함시키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평화구축은 “지속가능한 평화 지대의 형성을 위해 요구되는 모든 노력”을 말하기도 하고, “모든 폭력을 예방, 감소, 전환하고 모든 사람들이 모든 형태의 폭력에서 벗어나 삶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확대된 평화구축 개념은 갈등의 구조적 전환과 평화적 환경의 형성, 그리고 변화된 평화적 환경의 유지를 위한 개인 및 사회의 역량 형성을 목표로 한다.
확대된 개념에 기반한 평화구축 노력은 세 개의 영역으로 구분된다. 첫 번째 영역은 파괴적 갈등을 예방하는 사회적 구조와 인적 역량 형성이다. 두 번째 영역은 갈등의 평화적 종식을 가능케 하는 구조와 노력, 그리고 그것을 지원하는 포괄적, 포용적, 참여적인 계획과 실행이다. 세 번째 영역은 평화적으로 종식된 갈등의 재발을 예방하는 정의롭고 지속가능한 사회 구조, 환경, 문화, 그리고 인적 역량 형성이다. 이런 포괄적이고 종합적인 평화구축 노력은 비록 하나의 공동체, 무장 갈등 지역, 또는 파괴된 국가를 목표로 삼는다 할지라도 목표 달성을 위해 국제기구와 세계의 정부들, 연구자들, 현장 활동가들, 그리고 무엇보다 현지 주민들과 단체들 등 다양한 주체의 참여가 불가피하다. 그러므로 평화구축 노력은 네트워킹 형성과 전략적 활용이 요구되며 이런 접근은 전략적 평화구축(strategic peacebuidling) 담론 하에서 논의된다. 이런 평화구축 노력에서 갈등해결 연구와 실천은 모든 내용을 포괄하지는 않지만 이론적 토대와 실천적 방법을 제공하는 핵심 역할을 한다.
평화구축 노력과 관련해 갈등해결은 무장 갈등 사회에 주목하고 “누구의 평화인가?(Whose peace?)”라는 근본적인 문제 제기와 비판적 탐색에 주력한다. 무장 갈등 이후 국가 및 사회 재건, 그리고 합의된 평화의 유지 및 지속과 관련된 이 질문은 국제 사회가 원하는 평화와 해당 사회 구성원들이 원하는 평화 사이의 충돌과 긴장 관계의 탐색에 초점을 맞춘다. 탐색의 결과 형성된 비판적 논의는 크게 두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는 대부분의 무장 갈등 사회에 확대된 평화구축 개념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장 갈등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파괴된 국가 및 사회를 재건할 자원의 부족이다. 때문에 국제 사회의 지원에 의존하게 되고 국제 사회는 해당 국가는 물론 지역과 세계 평화에 기여한다는 명분으로 국가 및 사회 재건을 지원한다. 국제 사회는 평화구축보다는 국가 건설(state building)을 통해 민주적 정치 제도와 자유 시장 경제 제도를 수립하는데 관심을 둔다. 유엔을 포함한 국제기구가 주도하는 국가 및 사회 재건은 흔히 새로운 정부와 정치 제도의 수립 및 경제 제도 도입과 함께 끝을 맺는다. 무장 갈등을 야기한 근본원인인 정치적, 경제적 문제는 다뤄지지 않으며 제도 수립과 정치적 변화 또한 사회 기반의 부족으로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두 번째는 국가 및 사회 재건에 맞춰진 좁은 의미의 평화구축조차 국제기구가 주도함으로써 무장 갈등 사회의 현실과 괴리된다는 것이다. 평화구축은 무장 갈등 사회 시민과의 합의에 기초하지 않고, 당면한 현안과 사회 구성원들의 필요를 고려한 국가 제도 및 사회 기반시설의 건설이 아니라 보편적인 평화 체제 또는 국가, 다시 말해 서양 국가 체제의 이식에 맞춰진다. 때문에 해당 사회의 필요가 아니라 국제 사회의 필요에 응하는 근본적인 문제를 야기한다. 국제 사회는 구조적 문제의 해결과 지속가능한 평화가 아니라 신자유주의 시장화와 개발 현안에 맞춘 평화구축 과정을 진행한다. 서양식의 국가 수립에 맞춰진 과정을 통해 무장 갈등 사회가 원하는 평화가 아닌 국제사회가 원하는 평화를 이식함으로써 국제기구 주도의 평화구축은 부트로스-갈리가 언급했던 무장 갈등의 재발을 예방하는 평화구축이 아니라 무장 갈등 사회를 새로운 갈등에 노출시키는 모순된 평화구축이 된다.
갈등해결 연구는 무장 갈등 사회가 갈등 재발의 취약성을 극복하고 평화가 지속되는 안정적 환경을 만들 수 있도록 구조적 전환에 의한 갈등의 근본원인 해결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이런 접근은 애초 갈등을 야기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민족적 힘의 불균형 관계를 바로 잡는 장기적 전략에 의해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장기적 전략은 무장 갈등 사회에서 시급히 충족돼야 하는 단기적 필요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장기적 전략은 단기적 필요 충족의 기초 위에 세워져야 하고 단기적 대응은 중.장기적 전략과 모순되지 않아야 한다.
레더라크(Lederach)가 제안하는 시간 구조는 갈등해결 연구가 제안하는 평화구축을 잘 설명하고 있다. 그는 무장 갈등에서 지속적 평화로의 이행을 꾀하는 평화구축 노력을 단기, 중기, 장기적 대응으로 나눠 설명하고 있다. 단기적 대응은 무장 갈등 및 위기 직후 몇 개월 동안의 긴급 상황 대응과 1-2년 기간 동안 이뤄지는 단기 계획으로 이뤄진다. 긴급 상황 대응은 생존 및 안전 필요 충족을 위한 무장 충돌의 중단과 휴전 성립 노력 등을 말한다. 1-2년의 계획에는 무장 갈등 사회가 당면한 반복적인 갈등과 위기에 보다 효율적이고 포괄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계획의 수립, 기술의 습득, 역량 형성 등을 위한 프로그램과 훈련 등이 포함된다. 긴급 필요와 효율적 대응에 맞춘 단기적 대응은 갈등의 최대 피해자인 약자에 대한 지원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그들이 생존 문제를 극복하고 평화구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역량 형성의 기반을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중기적 대응은 5-10년을 내다보는 구상을 말하며 단기적 대응을 갈등 예방 및 바람직한 미래를 위한 사회 변화의 구상과 연결시키는 것을 말한다. 여기에는 갈등의 예방과 평화적 해결을 위한 사회 체계의 설계와 실행이 포함된다. 갈등을 야기한 집단 사이의 비대칭적 관계의 극복과 사회 구성원들의 참여를 포함하는 중기적 대응은 갈등의 예방은 물론 정책 결정자들에게 집중된 힘을 분산시키고 구성원들의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시키는 합법적 체계를 세우는 역할을 한다. 장기적 대응은 20년 이상을 바라보는 세대적 구상을 말하며 보다 평화롭고 조화로운 미래를 위한 대응을 말한다. 이런 장기 대응에는 모두가 원하는 바람직한 미래 비전의 공유, 그것의 성취를 위한 공정한 사회 구조 및 실행 체계의 합의와 수립, 사회 구성 집단 사이의 평등하고 상호의존적인 관계의 형성, 지속가능한 개발, 인간 필요 충족 등의 목표 설정이 포함된다. 장기적 과정 설계의 핵심은 모든 사회 구성원 및 집단의 참여와 합의의 형성이다. 이런 접근은 약자의 소외를 방지하고 오히려 그들의 참여를 독려함으로써 “누구를 위한 평화인가?”라는 질문에 구체적으로 답하는 평화 비전을 마련하는 역할을 한다. 이 시간 구조는 단기적 대응을 요하는 현안과 당사자들의 관계 개선, 중기적 실천을 요하는 사회 하부 구조의 변화, 장기적 구상을 요하는 전체 사회 구조의 근본적 변화와 결합돼 통합적 평화구축 체계를 형성한다.
갈등해결 연구가 제안하는 평화구축은 무장 갈등 사회가 당면한 현실적 필요와 지속적 평화에 기반한 바람직한 미래를 포괄하는 것이다. 당면한 현실적 필요는 사회 구성원들의 삶과 생존은 물론 갈등의 재발 예방 및 해결을 좌우하는 문제기 때문에 피할 수 없다. 지속적 평화는 갈등해결이 평화구축을 통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목표이자 사회 구성원들이 구상하는 바람직한 미래기 때문에 간과될 수 없다. 갈등해결은 이 두 가지를 모두 포함하는 평화구축 구상을 무장 갈등 사회 구성원들과 함께 개발하고 두 가지가 서로 모순되지 않는 참여와 합의의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조건을 형성할 방법과 실천 방안을 연구한다.
IV. 결론: 평화연구로서의 갈등해결
지금까지 갈등해결의 연구와 실천을 설명했다. 무엇보다 갈등해결 연구가 평화연구로서 가지는 정체성을 설명하기 위해 갈등해결이 이론, 실천 방법, 해결 과정에서 평화성을 기본적 가치로 삼고 평화 성취라는 평화연구의 궁극적 목표를 공유하고 있음을 설명했다. 평화연구의 주요 주제 중 하나인 평화구축에 대한 비판적 탐색을 통해 갈등해결이 무장 갈등 사회가 당면한 문제의 현실적 해결과 지속적 평화라는 미래의 가치를 동시에 포함하는 포괄적 접근을 꾀하고 있음도 설명했다. 갈등해결 연구가 평화 성취에의 기여를 최종적 목표로 삼고 있으며, 따라서 갈등해결 연구를 평화연구로 이해해야 함을 강조했다.
이 글에서 갈등해결 연구가 갖는 평화연구로서의 정체성을 의도적으로 강조한 이유는 첫째로 갈등해결에 대한 오해 또는 부분적 이해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다. 갈등해결은 자칫 개인 및 집단 사이의 불화와 사회 갈등을 적절한 수준에서 통제하고 목표 달성의 장애물을 제거하는데 용이한 사회 기제로 오해되기 쉽다. 그러나 갈등해결은 당사자들의 문제 해결 과정 참여 보장, 당사자들의 관계 회복, 나아가 평화로운 공존을 위한 가장 적절하고 효율적인 절차기 때문에 사회 기제로 관심을 받고 활용되기 시작했다. 이런 가치는 기능적 요소에만 주목하는 갈등해결 실행에서 비록 강조되지 않을지라도 갈등해결 과정 자체가 폭력적 사회 구조의 극복과 평화성을 강조하는 평화연구와 맥을 같이함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갈등해결은 어떤 형태로 연구되고 실행되든 평화연구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둘째로 갈등해결이 평화연구의 한 부분으로써 사회 변화와 평화 성취라는 최종적 목표를 위해 연구되고 실행됨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평화연구는 평화 성취를 최종적 목표로 삼고 있으며, 갈등해결 연구 또한 갈등의 평화적 해결을 통한 폭력적 사회 구조의 극복과 평화 성취에의 기여를 최종적 목표로 삼는다. 때로 대중적 영역의 갈등해결이 평화연구로서의 정체성을 외면하고 사회 기제로서의 갈등해결 실행에만 관심을 둔다 할지라도 갈등해결은 여전히 ‘갈등 당사자에 의한 갈등의 해결’이라는 원칙적 접근을 통해 당사자의 소외 또는 배제를 야기하는 폭력적 사회 구조의 극복을 꾀한다. 또한 평화적 문제해결을 통해 결과적으로 참여 및 민주적 절차의 확대 적용에 기여했다는 점은 평화연구로서의 정체성을 강조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여전히 평화성을 내포하고 평화 성취에 기여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갈등해결의 사회 변화 및 평화 성취에의 기여는 간과되지 않고 오히려 명료하게 언급되고 독려돼야 한다.
셋째로 비록 개별적 갈등해결 연구와 실천이 기능적 역할에만 초점을 맞춰 부분적으로 이뤄진다 할지라도 개별 연구와 실행이 결합돼 궁극적으로 평화 성취에 기여할 수 있음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대중적 영역의 갈등해결, 혹은 여러 학문 영역에서 이뤄지는 갈등해결 연구는 때로 기술적 접근만 강조하며 갈등해결 이론과의 연결성이 부족하다. 그러나 갈등해결이 갈등의 평화적 해결을 통해 평화 성취에 기여하는 응용 영역이라는 점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결국 기술적 접근이 추구하는 갈등해결의 목표는 방향성을 잃고 과정의 질과 정당성도 보장될 수 없다. 그러므로 비록 특정 연구가 갈등해결의 기능적 역할에만 관심을 둔다 할지라도 갈등해결이 차별화된 절차와 가치를 통해 추구하는 목표와 평화연구로서의 정체성은 간과되지 않고 오히려 강조돼야 한다.
갈등해결이 학문적, 대중적 영역에서 관심을 끌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전통적인 접근으로 해결할 수 없거나 새롭게 등장한 갈등의 평화로운 해결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갈등해결 이론과 실천은 그런 필요성에 근거해 발전 및 확대됐고 무엇보다 평화연구의 응용 영역으로 현장 적용을 통해 평화 성취에 기여하는 역할을 해왔다. 이와 같은 갈등해결의 본질은 갈등해결이 어떤 방식을 통해 연구되고 실천되든지 분명하게 언급돼야 한다. 가장 중요하게는 갈등해결이 평화연구로서 가지는 정체성과 평화로운 문제해결을 통해 평화 성취에 기여하는 연구와 실천 영역임이 간과되지 않아야 한다.
위의 글은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소의 학술지 <통일과 평화> 5집 1호(2013년)에 실린 논문입니다. 각주와 참고문헌 목록은 http://tongil.snu.ac.kr/ 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무단 배포와 복사를 할 수 없으며 인용할 때에는 반드시 출처와 저자를 밝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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