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갈등과 화해평화갈등 연구/갈등해결 2015. 5. 4. 02:30
갈등과 화해
정주진
갈등 유발하는 사회
한국사회는 갈등에 취약하다. 발생하는 갈등이 많고 해결되지 않는 갈등 또한 많다는 얘기다. 때문에 갈등은 계속 누적되고 한국사회는 다른 사회에 비해 갈등이 월등히 많은 것처럼 보인다. 갈등이 발생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런 일이다. 모든 인간 관계, 인간 사회에서는 갈등이 발생한다. 그러나 모든 인간 관계, 인간 사회에서 갈등이 잘 해결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개인과 사회의 갈등 대응 방식과 역량, 갈등을 보는 시각, 갈등 해결 지원 체계 등 여러 가지 조건이 갈등의 해결 여부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한국사회가 갈등에 취약하다는 것은 그러므로 한국사회, 그리고 구성원들이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한국사회에서 갈등 발생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분야에서 찾을 수 있다. 먼저 정치적 요인을 보면 민주주의가 정착됐지만 성숙되지는 못한 정치 환경에서 공공기관의 일방적 결정, 시민 참여의 제한, 당사자 배제 등의 상황이 흔히 벌어지고 결국 갈등이 발생한다. 공공기관은 자신을 시민을 다스리는 통치자로, 시민들을 공공정책의 대상으로 규정하기 때문에 일방적인 정책 결정과 실행을 당연하게 여긴다. 반면 시민은 자신을 결정권을 가진 주체로, 공공기관을 공공 서비스를 제공하는 봉사자로 간주하기 때문에 공공기관의 일방적 정책 결정과 실행을 시민 권리를 침해하는 일로 여긴다. 이런 이해와 기대의 간극은 많은 공공갈등 발생의 원인이 된다 (정주진, “한국사회 갈등의 특징과 해결 방안,” 『한반도 비평화 구조와 분단: 이론과 실제』,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IPUS) HK평화인문학연구단 국내학술대회 (2012년 5월 17일) 참조). 경제적으로 한국은 지난 수십 년 동안 극히 짧은 기간에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뤘다. 경제 성장과 함께 부의 축적, 재산권 보호, 삶의 질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그 결과 사회 구성원들 사이에 새로운 갈등이 등장했다. 단기간의 경제 성장으로 인한 빈부 격차 및 상대적 빈곤 심화 또한 계층 사이 갈등을 발생시키는 주요 원인이 됐다. 한국사회의 빠른 변화 속도도 갈등의 발생을 부채질한다. 경제 성장과 함께 나타난 개인주의 문화의 확산 및 강화는 전통적인 집단주의 문화와 불협화음 또는 대립을 만들어내고 개인 및 집단 사이의 갈등을 야기하고 있다. 거주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전통적 공동체의 해체와 도시화로 인한 가족 중심 개인주의의 강화도 갈등 발생을 부채질한다. 사회 변화와 함께 권리, 참여, 소통 등에 대한 견해의 차이는 갈등을 발생시키는 문화적 요인이 되고 있다. 개인 및 집단의 권리와 권위에 대한 문화적 해석의 차이, 수직적 조직 문화에 대한 개인 및 집단의 저항, 일방적 문제 해결 방식과 참여적 문제 해결 방식의 대립과 같은 문화적 요인이 개인 및 집단 사이 갈등 발생에 기여한다 (정주진, 『갈등해결과 한국사회』(서울: 아르케, 2010), pp.19-33 참조).
한국사회는 다양한 갈등에 노출돼 있지만 갈등을 해결하는 수준은 아주 낮다. 갈등이 어느 시기, 어느 사회에나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한국사회에도 한민족이 살아온 세월만큼 갈등을 겪으면서 자연스럽게 쌓인 문화적 갈등 대응 방식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의 갈등은 잘 해결되지 않는다. 이것은 사회 환경의 변화로 새로운 갈등이 발생했기 때문만이 아니다. 갈등에 긍정적, 능동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한국문화의 특성이 새로운 갈등의 증가 또는 심화라는 상황과 맞물리면서 부정적 상황의 악화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사회 변화와 새로운 갈등의 증가라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사회 구성원들의 갈등 대응 역량이 개발되지 못하고 건설적인 갈등 대응 및 해결을 지원하는 사회적 기제가 발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회적 대응 역량의 부족
한국사회 구성원들의 갈등 대응 및 해결 역량 부족은 갈등의 해결을 저해하는 가장 큰 걸림돌이다. 한국인들의 전통적인 갈등 대응은 갈등의 전개나 확대보다 봉합과 방치에 가깝다. 이런 대응 방식은 갈등이 집단의 조화를 깨는 부정적 사건으로 인식되고 당사자들은 집단의 조화 유지라는 사회적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비난받는 문화적 환경 때문에 발달했다. 그런데 이런 전통적 갈등 대응 방식에 변화가 생기고 있다. 특별히 사회 갈등과 관련해서는 봉합과 방치라는 개인 갈등에 대한 대응과는 달리 전개와 대결이라는 적극적인 방식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그런 적극적인 방식은 소통 및 관계의 단절을 야기해 갈등을 심화시킬 뿐 갈등의 해결에는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대부분의 사회 갈등은 개인 및 집단의 생활과 때로는 생존, 그리고 삶의 질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것들이기 때문에 저절로 사라지지 않는다. 생활, 생존, 삶의 질 등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현안이기 때문에 갈등 당사자들은 개인 갈등에 대한 소극적 대응과는 다르게 적극적으로 갈등에 대응한다. 그러나 대화(dialogue)와 협력(collaboration)을 통해 건설적으로 갈등을 전개시키고 해결할 역량을 개발하지 못한 당사자들은 예전의 사회 운동에서 배운 대결적 방식으로 갈등에 대응한다. 이런 방식은 갈등의 전개와 상대에 대한 압력에는 어느 정도 효과를 내지만 갈등의 해결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관계와 소통의 단절을 야기해 갈등은 제어할 수 없는 수준으로 발전되고 정체와 대결을 반복하면서 장시간 지속된다.
·갈등의 건설적 전개와 해결을 지원하는 사회 기제의 부족은 갈등의 해결을 어렵게 만드는 가장 취약한 사회적 조건이다. 갈등은 어느 사회에나 존재하므로 자연스럽게 갈등 해결 기제도 발달하게 된다. 전통적 갈등해결 기제들은 개인의 권리, 선택, 참여를 중요시하는 현 시대의 시각으로 본다면 민주적 절차, 기본권 존중, 성 평등 등의 요소가 극히 결여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동체의 조화와 구성원들 사이의 사적, 공적 관계를 유지시키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곤 했다. 전통적인 한국의 농경사회에도 비슷한 기제가 존재했지만 이제는 거의 사라졌거나 작동하지 않는다.
사회 기제의 필요성에 대한 논의는 참여 정부 시절부터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불안정한 정치 환경, 공공기관 주도와 그에 협력하는 학계 위주 논의 환경, 논의의 일관성 부족, 기술적 절차 중심의 논의, 사례 발굴 노력 부족 등 여러 가지 요인으로 인해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여전히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이런 환경은 1960년대 후반 사회 갈등 해결 기제를 태동시켜 보편적 갈등해결 모델을 만든 미국의 사례와는 대조적이다. 미국의 사회 갈등 해결 기제는 공동체 해결 기제에서 출발해 약자 보호를 위한 사회 운동 차원에서 발달했다. 민간 차원에서 전문가 집단이 형성되자 자연스럽게 민간은 물론 공공기관까지 서비스를 이용하게 됐고 그에 따라 사회 갈등 해결 전문 기관들이 성장하고 부분적 제도화까지 이뤄졌다.
사회 기제는 대립적인 갈등 당사자들의 단절된 소통과 대화를 위한 최소한의 관계를 복원시키고, 대화와 협력 과정을 통해 갈등의 분석과 해결 모색을 도우며, 현실적인 해결책 합의와 실행을 지원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런 갈등 해결 과정이 작동하는 이유는 갈등 당사자들의 자발적 선택과 참여, 과정의 비공식성, 합의에 의한 결정, 유연성 등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정주진, 『갈등해결과 한국사회』(서울: 아르케, 2010), pp.121-127) 참조). 다시 말해 당사자들이 자유 의지로 선택할 수 있고, 법으로 규정된 과정이 아니기 때문에 중도에 실패하거나 합의를 이루지 못해도 책임질 필요가 없으며, 그럼에도 당사자들이 중심이 되는 대화와 협상 과정을 통해 모두가 원하는 합의된 결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갈등의 단계와 종류에 따라 유연한 접근을 취할 수 있기 때문에 갈등 해결 가능성을 높이고 당사자들의 역량을 향상시키는데 큰 기여를 한다. 이런 사회 기제의 존재와 지원은 갈등 당사자들이 대결을 통한 파괴적 갈등 전개가 아닌 대화를 통한 건설적 갈등 전개와 평화적 문제 해결을 경험하게 하고, 그 결과 향후 관계의 회복과 화해의 가능성을 높이는데 기여한다.
갈등해결과 화해
갈등의 해결과 화해 사이에는 필연적 상관관계가 존재하지는 않는다. 다시 말해 갈등이 해결됐다고 해서 화해가 이뤄지는 것이 아니며, 갈등해결 과정이 반드시 화해를 목표로 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화해는 갈등해결과는 상관없는 주제로 취급되곤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갈등 당사자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관계의 회복, 다시 말해 화해를 통한 관계의 회복과 평화로운 공존이다. 당사자들에게 화해는 안전하고 편안한 생활과 적절한 수준에서의 삶의 질 보장을 의미하는 지극히 현실적인 목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해는 쉽게 달성될 수 없는 이상적인 갈망으로 여겨지곤 하는데 그것은 화해가 당사자들 사이의 이해, 인정, 용서 등이 없이는 절대 이뤄질 수 없기 때문이다.
갈등해결의 궁극적인 목표가 화해가 되지 않는 이유는 대부분의 갈등해결 접근이 관계가 아니라 현안에만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다. 그러나 관계를 외면하는 갈등해결 접근은 모순적이다. 갈등은 관계 속에서 발생하고 갈등으로 인해 당사자들이 입는 가장 큰 타격은 관계의 파괴기 때문이다. 갈등이 관계 속에서 발생한다는 것은 갈등의 정의를 통해서도 잘 알 수 있다. 보통 갈등은 "양립할 수 없는 목적과 불충분한 자원, 자신의 목적 달성에 대한 다른 사람의 방해를 인지하는 최소한 두 명의 상호의존적인 당사자들 사이에 표출되는 다툼”으로 정의된다 (William W. Wilmot and Joyce L. Hocker, Interpersonal Conflict (sixth edition) (New York: McGraw-Hill, 2001), p.41 참조). "상호의존적”이란 말은 갈등 당사자들 사이에 관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갈등을 다룸에 있어 당사자들 사이의 관계에 주목하지 않는 것은 가장 중요한 것을 간과하는 것이다. 또한 화해와 관계의 회복을 염두에 두지 않는 갈등해결 과정은 갈등 해결이 아닌 문제 해결 과정으로 이해돼야 한다. 이 경우 문제는 해결되더라도 화해는 되지 않고, 따라서 관계 회복도 이뤄지지 않으며, 결국 새로운 문제가 발생했을 때 다시 갈등으로 회귀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러므로 화해는 포괄적인 갈등해결 스펙트럼 내의 장기적 목표가 되어야 하고 단기적 갈등해결 과정은 화해라는 장기적 목표의 달성과 모순되지 않아야 한다.
화해는 오랜 시간과 과정을 필요로 한다. 화해를 염두에 둔 갈등해결은 문제 해결에만 초점을 맞춘 갈등해결과 구분되어져야 하고 몇 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첫째는 문제를 평화적으로, 그리고 정의롭게 해결해야 한다. 평화로운 해결은 대결과 힘에 의한 승리와 패배가 아닌 대화 후 합의에 의한 해결을 말하며 정의로운 해결은 각자의 진실이 아니라 당사자들 모두가 합의할 수 있는 진실이 드러나고 책임 소재가 규명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잘못의 인정과 용서의 가능성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물론 갈등해결 과정은 그 자체로 평화롭고 정의로운 과정에 기반한 당사자들의 합의라는 가치를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항상 과정은 합의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과정을 축소시키고, 당사자 참여를 제한하며, 따라서 진실을 왜곡시키는 함정에 빠질 위험성도 가지고 있다.
둘째는 대립의 종식과 현안의 일단락이 아니라 당사자들 사이의 관계 복원과 평화적 공존이 갈등해결의 궁극적 목표가 되어야 한다. 이것은 갈등해결 과정을 “바람직하지 못한 것의 종식이 아니라 파괴적인 것을 끝내고 바람직한 것을 만드는 것”이라고 보는 갈등 전환(conflict transformation) 이론과 맥을 같이한다 (John Paul Lederach, The Little Book of Conflict Transformation (Intercourse: Good Books, 2003), p.33 참조). 관계를 중심에 놓고 갈등을 해결하지 않으면 합의된 해결 방식을 실행하기 힘들고 갈등이 재발되는 현실적 문제에 직면하게 되며, 궁극적으로 당사자들의 평화적 공존이 요원하게 된다. 그러나 많은 갈등해결 과정이 어려움을 피하기 위해 또는 관계는 문제 해결과 무관하다는 가정 하에 관계는 접어 두고 문제에 초점을 맞춘다. 관계와 화해의 가능성을 포기한 이런 과정은 결국 문제 해결도 어렵게 만든다.
셋째는 포스트 과정(post-process)의 실행이 계획되어야 한다. 갈등해결의 포괄적 스펙트럼에서 보면 당사자들의 합의는 문제의 종식이 아니라 문제 해결의 시작이다. 합의가 실행되고 실행 수준에 만족해야 실제로 문제가 해결된다. 그런데 문제의 해결이 자동적으로 화해와 관계의 회복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합의 실행과는 별도로 화해와 관계 회복을 위한 과정이 진행돼야 한다. 개인 및 집단의 화해와 관계 회복은 정교하고 전략적인 구상과 실행을 필요로 한다. 그 구상에는 소통 체계의 복원과 안전의 담보 같은 당사자들의 즉각적인 필요를 충족시킴은 물론 과거, 현재, 미래를 포괄적으로 다루는 접근을 통해 화해를 모색하는 계획이 포함돼야 한다.
화해에서 시간은 핵심 역할을 한다. 갈등, 갈등의 해결, 잘못의 인정과 용서, 치유와 화해, 관계의 완전한 회복은 모두 과거, 현재, 미래라는 세 영역의 시간과 관련돼 있다. 평화학자이자 현장실천가인 Lederach에 의하면 과거는 진실을, 현재는 정의와 자비를, 그리고 미래는 희망과 평화를 말한다. 삶의 지속과 공동체 회복이라는 현실적인 목표를 위해 갈등의 해결과 화해가 필요한 당사자들은 과거, 현재, 미래를 특정한 순서가 아닌 융통성 있게 다루는 방식을 택하곤 한다. Lederach는 세계 각지에서의 자신의 관찰과 간접 경험에 근거해 세 가지 화해의 틀을 제시한다.
첫 번째는 가장 일반적이지만 실현이 만만치는 않은 과거→현재→미래의 틀이다. 이것은 과거의 잘못이 규명되고, 그에 대한 정의로운 심판과 함께 자비가 베풀어지며, 미래의 평화로운 공존을 위해 관계를 재설정해 나가는 것을 말한다. 두 번째는 현재→미래→과거의 틀로 당면한 현안에 집중하고 미래를 위해 필요한 것에 초점을 맞추는 접근이다. 이 틀은 급박한 생존 현안을 위해 갈등을 재연시키고 고통과 두려움을 동반하는 과거를 잠시 접어두는 선택이다. 세 번째는 미래→현재→과거의 틀로 먼저 미래의 생존을 보장받기 위해 과거의 진실은 물론 현재의 정의와 자비도 접어두는 선택을 말한다. 이것은 미래의 생존에서 공동의 토대를 발견하고, 그를 위해 현재의 문제에 공동으로 대응하며, 거기로부터 과거의 규명을 모색해가는 선택이다 (존 폴 레더락 저, 유선금 역, 화해를 향한 여정 (서울: 한국하나뱁티스트프레스, 2010), pp.78-96 참조).
세 가지 중 어떤 것이 정답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모두 실제로 갈등과 분열을 겪은 사람들이 선택한 화해의 틀이기 때문이다. 다만 어떤 선택을 하든지 원칙적으로 두 가지가 전제돼야 한다. 하나는 당사자들, 또는 사회 구성원들의 참여와 합의에 의해 화해의 틀이 선택돼야 한다는 것이다. 참여와 합의가 없이 선택된 틀은 강제성을 동반하고 결국 화해가 아닌 새로운 갈등의 도화선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진실을 대변하는 과거는 절대 피할 수도, 피해도 안 된다는 것이다. 즉시, 또는 시간을 두고 다룰 수는 있지만 과거의 진실을 다루는 일은 갈등의 완전한 해결과 갈등을 야기한 상황의 전환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과거는 곧 역사를 말하며 개인의 역사든, 공동체, 사회, 국가의 역사든 항상 현재보다 앞서 등장해 갈등의 해결과 화해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John Paul Ledereach, The Moral Imagination: the Art and Soul of Building Peace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05), pp.138-143 참조). 세 가지 화해의 틀 중 과거가 후에 오는 경우는 과거를 잊어서가 아니라 너무 고통스럽고 두려워 잠시 과거 다루기를 유보하는 것일 뿐이다. 이것은 과거는 피할 수 없으며 과거를 다뤄야만 화해에 이룰 수 있음을 말해준다. 다만 관건은 과정을 어떻게 설계 및 실행하고, 누구의 필요에 초점을 맞추며, 화해의 과정에 누구를 어떻게 참여시키느냐는 것이다. 이런 문제는 앞서 언급한 참여와 합의에 의해 해결돼야 한다. 힘 있는 개인, 또는 소수에 의해 선택되고 특정, 또는 일부 당사자를 배제시킨 과정은 절대 평화적 공존이라는 갈등해결과 화해의 궁극적 목표 달성에 기여할 수 없다.
갈등은 결코 부정적인 것이 아니지만 파괴적으로 전개될 때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 갈등은 어느 관계, 어느 사회에서나 발생하고 때로는 관계와 사회의 발전을 위해 불가피한 일이기도 하다. 갈등은 과거의 잘못, 현재의 당면한 현안, 원하는 미래가 무엇인지를 선명하게 드러내는 사건이다. 때로는 해묵은 감정의 극복과 화해의 필요성을 재확인시키는 기능을 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갈등은 바람직하지 않는 관계를 바로잡고, 억압적인 구조를 개선하며, 화해와 관계의 완전한 회복을 위한 기회가 된다. 다만 갈등을 기회로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건설적으로 갈등을 전개시키고 관계에 주목하면서 화해와 평화적 공존을 궁극적 목표로 삼는 해결 과정의 구상과 실행이 이뤄져야 한다.
위의 글은 한신대 신학대학원이 발생하는 잡지 <세계와 선교> 2013년 3월 호에 실린 글입니다. 무단 복사와 배포를 할 수 없으며 인용할 때에는 출처와 저자를 밝혀야 합니다.
'평화갈등 연구 > 갈등해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갈등과 분열을 넘어 평화적 공존으로 (0) 2015.05.04 한국사회 갈등, 평화적 해결을 위한 제언 (0) 2015.05.04 평화 연구로서의 갈등해결 연구 (0) 2015.05.04 한국사회 갈등의 특징과 해결 방향 (0) 2015.05.04 갈등해결이란 (0) 2015.05.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