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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갈등과 구조적 문제평화갈등 연구/갈등해결 2015. 5. 4. 06:00
공공갈등과 구조적 문제
정 주 진
1. 갈등과 구조적 문제
갈등을 연구하는 목적은 갈등을 이해하고 그 토대 위에서 갈등을 해결할 방법을 찾기 위해서다. 때문에 갈등의 발생 원인을 규명하는 것은 갈등 및 갈등해결 연구의 토대가 된다. 원인을 알아야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있다는 평범한 상식에 근거한 것이지만 갈등의 원인 규명은 갈등 연구와 갈등해결의 실행에 있어 큰 의미를 가진다. 한 가지 갈등을 놓고 무엇을 원인으로 보느냐는 연구자(researcher) 또는 실천가(practitioner)의 학문적, 경험적 배경에 따라 다를 수 있고, 갈등 당사자에 따라 원인에 대한 이해가 다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갈등 원인에 대한 이해는 갈등해결 과정을 계획하고 실행할 때 과정의 목표를 설정하고, 당사자들이 논의할 수 있는 현안의 범위를 정하며, 당사자들의 합의 수준을 결정하는데 직접 영향을 미친다. 갈등의 원인 규명은 갈등의 해결을 정의하고 해결 과정을 평가하는데도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런 점에서 갈등 연구의 토대가 되는 갈등의 원인 규명을 공공갈등의 맥락에서 논의해 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 하겠다.
갈등은 기본적으로 둘 이상의 당사자가 대립할 때 발생한다. 당사자들이 대립하는 이유는 근본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는데 있어 다른 당사자가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원하는 것은 다양한 유형, 무형의 것이 될 수 있으며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게 만드는 이유가 바로 갈등의 원인이 된다. 갈등의 표면적인 원인은 당사자들 사이의 대립적 관계, 소통의 부족, 신뢰의 부재, 문제해결 의지의 부족 등이다. 그러나 조금 더 심층적인 접근으로 원인을 분석해보면 당사자들 사이의 신뢰 관계 형성과 소통을 방해하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들을 찾아낼 수 있다. 대가족 내 고부 사이의 문제는 유교문화와 가부장적 가족 문화에서 기인하고, 직장 동료들 사이의 문제는 성과를 위해 경쟁을 조장하는 기업 문화와 업무 체계 때문에 야기되며, 시민과 공공기관의 문제는 시민 참여 숙의 과정을 배제한 공공기관의 업무 절차와 시민 각자의 권리와 이익은 간과하고 국익 또는 거시적 목표에만 초점을 맞추는 행정 방향 때문에 발생한다. 이런 것들은 보통 갈등의 근본원인으로 언급된다.
요한 갈통(Johan Galtung)이 고안한 갈등 삼각형(Conflict Triangle)은 갈등의 표면적 원인과 근본원인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갈등 삼각형에서 A는 태도(attitude)를, B는 행동(behavior)을, 그리고 C는 모순적 상황(contradiction)을 나타낸다. 갈등 당사자들이 표면적으로 보이는 행동인 B, 다시 말해 상호 비방과 공격, 위협, 강요 등의 말, 행동, 몸짓은 대립 상황을 만들어내는 표면적 원인이 된다. 그러나 이런 행동은 상대에 대한 태도, 즉 A에서 나온다. 상대에 대한 적개심, 무시, 편견, 차별 등의 태도가 행동을 통해 표출되는 것이다. 따라서 비가시적인 것을 가시화시켜 상대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방법이 곧 행동이 된다. 상대에 대한 인식과 감정에 근거한 태도는 공포, 화, 증오 등을 형성한다. 물론 갈등에 직면한 당사자들이 항상 상대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과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갈등의 수준에 따라, 또는 갈등의 전개 단계에 따라 상대에 대해 호의적인 태도를 가지고 협력적 관계를 형성하려 노력하기도 한다. 그러나 갈등이 전면적으로 전개되고 위기 국면에 도달하게 되면 그런 긍정적인 면은 찾기가 힘들어 진다.
모순적 상황을 말하는 C는 당사자들의 태도와 행동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공교육 기관인 학교가 우열반을 편성해 학생들을 차별하거나 마을 지도자들이 주민들의 동의 없이 개발 사업을 허락하는 일은 전체 학생과 주민의 이익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학교와 마을이 주어진 역할을 외면하는 모순적 상황이다. 이로 인해 갈등이 발생할 때 당사자들의 태도와 행동에 영향을 주는 것은 당연히 그런 모순적 상황이다. 공공갈등의 경우 시민을 위해 일해야 할 공공기관이 시민 위에 군림하거나, 시민에게 행정 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공공기관 실무자들이 시민을 통제하거나, 시민의 행복과 번영에 초점을 맞춰야 할 공공정책이 일부 기득권 집단의 이익을 위해 시민을 외면하는 등의 모순적 상황이 공공기관과 시민 사이 갈등을 야기하곤 한다. 이 경우 시민들의 태도와 행동은 당연히 공공기관의 모순적 행태의 영향을 받을 것이다. 갈등은 표면적으로 행동(B)을 둘러싸고 전개되지만 그 이면에는 태도(A)와 행동의 형성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는 모순적 상황(C)이 숨겨져 있다. 변화의 기미가 없이 지속되는 모순적 상황은 절망을 만들어내고 해소되지 않고 누적된 절망은 결국 공격적 태도와 행동으로 이어진다. 갈퉁에 의하면 행동, 태도, 모순적 상황 세 가지 요소가 모두 존재할 때 갈등은 완전한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모순적 상황이 존재하지만 태도나 행동을 통해 표현되지 않을 때 갈등은 잠재적으로 존재하게 된다. 이 세 가지 요소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갈등의 역동성에 지속적인 에너지를 제공한다.
갈퉁의 삼각형 모델은 사회갈등, 특별히 공공갈등을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공공갈등과 관련해 주목할 것은 모순적 상황을 만드는 구조의 문제다. 모순적 상황은 사회의 모순적인 구조(structure)에 기인하고 구조적 폭력(structural violence)을 만들어낸다. 그러므로 구조적 문제에서 야기된 갈등은 구조적 폭력의 맥락에서도 접근해 분석해야 한다. 대부분의 공공갈등은 구조적 문제에서 기인하며 근본원인이 되는 구조적 문제를 간과하고는 갈등을 분석하고, 이해하며, 나아가 해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비록 당사자들이 인지하지 못하고 표출되지 않은 채 잠재적으로 머물고 있다 할지라도 갈등을 포괄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구조적 문제를 탐구하고 분석하는 것은 갈등 연구에서 불가피한 일이다. 구조적 문제를 간과했을 때 공공갈등은 당사자들 사이의 입장과 이익의 대립, 소통의 문제, 신뢰의 문제 등으로 개인화되고 단순화될 수 있다. 이런 단편적 이해는 당사자들을 문제적 개인 및 집단으로 규정하고 공공갈등을 지나치게 민감하고 가치지향적인 문제적 시민들의 저항으로 여기는 왜곡된 태도를 만든다.
구조적 문제를 갈등 및 갈등 당사자와 분리시킨 이해는 특별히 공공기관의 갈등 대응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공공기관의 공공갈등 이해는 대체적으로 부정적이다. 공공기관은 흔히 공공정책에 이의를 제기하는 개인 및 집단의 등장과 함께 발생하는 공공갈등을 공공기관 또는 정부에 대한 저항으로 인식하고 공공정책의 계획과 실행을 가로 막는 장애물로 여긴다. 때문에 갈등은 되도록이면 발생되지 않아야 하고, 저항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는 높아지지 않도록 조치가 취해져야 하며, 갈등은 되도록 빨리 봉합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갈등이 확산된다면 최소한 정책 실행을 중단시키는 요인이 되지 않도록 갈등을 한정된 틀 안에서 잘 관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인식 위에서 공공기관은 흔히 목소리가 크고 저항의 강도가 높은 당사자에게만 대응하고 이를 통해 갈등의 전개를 중단시키고 봉합하려는 시도를 한다. 이런 시도는 공공기관이 인지하든 인지하지 못하든 갈등을 야기한 구조적 문제를 숨기려는 것이며 이런 시도 자체가 또 다른 구조적 문제가 된다. 결국 공공기관은 갈등과 구조적 문제의 연관성을 보지 못함으로써, 또는 인지하면서도 외면함으로써 정책 질의 향상에 기여할 수 있는 갈등과 갈등 당사자들을 제거해야 할 사회 문제로 다루는 실수를 범하게 된다.
공공기관의 갈등 이해와 구조적 문제의 외면은 갈등 연구의 시각과 상충된다. 갈등 연구는 갈등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갈등은 공동체와 사회의 구조, 그리고 관련된 구성원들 사이의 관계에 문제가 있음을 드러내는 신호와 같다. 그러므로 갈등은 문제를 규명하고, 해결 방법을 모색하며, 공동의 미래를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개인과 사회는 갈등을 야기한 근본원인을 다루고,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며, 갈등 대응 역량을 키움으로써 나은 미래를 설계할 수 있다. 다만 갈등을 기회로 만들기 위해서는 갈등이라는 사건(episode)은 물론 갈등의 진원지(epicenter)도 다루지 않으면 안 된다. 진원지는 곧 근본원인을 얘기하며 특별히 공공갈등의 경우에는 구조적 문제를 말한다. 공공갈등에 대한 부정적, 단편적인 이해는 이런 구조적 문제에 대한 접근을 방해한다.
2. 공공갈등과 구조적 문제
공공갈등은 다른 갈등과 구분되는 여러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중 가장 큰 특징은 공공정책을 둘러싸고 발생하고 공공기관이 관련된 갈등이라는 점이다. 부수적인 절차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공공정책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것은 공공기관이다. 이는 공공갈등이 근본적으로 공공기관의 업무 과정에서 비롯됨을 말한다. 물론 정책에 영향을 받는 개인과 집단의 대응 수준에 따라 갈등의 발생 여부가 결정되겠지만 특정 공공정책이 갈등을 불러온다는 것은 공공기관의 계획과 실행 과정에 문제가 있음을 의미한다. 정책의 영향을 받는 개인과 집단이 저항하는 가장 큰 이유도 사실은 개인이 아닌 조직 차원에서 문제를 발생시켰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공공기관 이외의 공공갈등 당사자들은 흔히 구조적 문제를 갈등의 근본원인으로 인식한다. 당사자들은 갈등의 전개 과정에서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고 갈등해결 과정에서는 구조적 문제의 해결을 요구한다. 그러나 구조적 문제의 인정에 부담을 느끼는 공공기관은 구조적 문제를 외면하고 갈등 현안 자체에만 초점을 맞추려는 경향을 보인다. 때문에 당사자들의 요구는 입장으로 굳어지고 때로 실질적인 이해가 아닌 입장만을 부각시키며 공공기관과 대립하는 양상으로 발전된다. 공공기관이 관련돼 있고 다른 당사자들이 공공기관의 구조적 문제를 인지하고 있는 이상 구조적 문제를 언급하거나 다루지 않고 공공갈등의 해결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공공갈등의 또 다른 큰 특징은 하나의 갈등이 복잡하고 다양한 현안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공공정책은 범위에 있어서는 사회 구성원 전체, 또는 여러 집단과 개인에게 영향을 주고 사회의 유지 및 발전과도 관련돼 있다. 때문에 하나의 정책은 거시적, 미시적 문제와 과거, 현재, 미래의 현안을 동시에 포함하곤 한다. 이런 이유로 하나의 공공정책에 다양한 개인과 집단이 문제를 제기하고 각각 다른 입장과 이해관계를 가진 당사자들이 공공갈등에 관여하게 된다. 갈등 현안은 모든 당사자에게 중요하고 이해관계는 물론 삶의 문제까지 관련된 일이다. 그러므로 공공기관은 자신이 책임을 지는 공공정책이 갈등에 직면하는 경우 당사자들이 제기하는 문제에 대응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공공기관은 당사자들의 관심과 문제 제기를 공공정책에 대한 저항으로 단순화시키는 실수를 범하곤 한다. 때문에 대두되는 현안보다는 공공갈등의 발생 자체에 관심을 쏟게 되고 갈등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보다는 방치하거나 조기에 봉합하려는 시도를 하곤 한다. 다양한 문제 제기를 공공정책에 대한 저항으로 단순화시키는 이런 대응은 공공기관이 비민주적이고 일방적인 방식으로 시민과의 관계를 설정하고 자신의 사회적 역할을 규정하는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된다. 공공기관은 시민에 봉사해야 하는 공공 서비스 제공자임에도 여전히 자신을 독점적 정책 결정권과 실행권을 가진 주체로 생각한다. 이런 인식에 의하면 시민에 의한 문제 제기는 공공기관이 가진 정당한 정책 결정권과 실행권에 저항하는 것이고, 갈등 당사자들은 공공기관이 전문적 지식과 안목으로 사회 전체의 이익을 고려해 만든 정책을 외면하고 자신의 이익만 챙기는 이기적인 개인과 집단인 것이다. 공공기관이 가진 이런 구조적 문제는 공공갈등의 발생, 파괴적 전개, 장기화를 야기하는 원인이 된다.
대부분의 공공갈등에는 여러 당사자가 관계하게 된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하나의 공공정책이 다양한 개인과 집단의 다양한 문제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공공갈등의 특성상 여러 당사자가 관여하는 일은 자연스런 일이지만 그들을 상대해야 하는 공공기관에게는 부담스런 일임에 분명하다. 갈등을 공공정책에 대한 장애물로 보는 공공기관은 갈등 초기부터 여러 당사자들을 상대하기보다 목소리가 큰 당사자만을 상대함으로써 갈등의 표출을 억제하려는 시도를 하곤 한다. 이것은 공공기관이 갈등에 선제적으로 대응함으로써 조기에 해결하려 하지 않고 갈등을 피하고 되도록 봉합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기에 전체 당사자를 파악하지 않고, 그들의 문제 제기에 대응하지 않으며, 가장 강하게 문제를 제기하는 당사자에게만 대응하는 것은 갈등을 오히려 악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때로 공공기관의 관심을 받기 위해 상대적으로 약한 당사자는 조직화를 꾀하고 강경책을 강구하기도 한다. 목소리의 크기에 상관없이 모든 당사자를 파악하고 그들을 모아 조기에 문제해결을 모색하기보다 갈등을 잠재우려는 이런 시도는 공공기관이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해 공공정책을 수정할 의무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공공기관이 갈등에 대응하고 당사자들을 불러 모아 갈등 해결을 모색하는 경우는 갈등이 너무 커져 도저히 외면할 수 없는 불가피한 상황에 직면했을 때다. 공공기관은 비전문적이고 자기 이익을 주장하는 당사자들과 정책을 논의하고 결정 권한을 공유하는 것 자체에 거부감을 가지며 그로 인해 전문적인 공공기관 실무자들의 업무 권한과 행정력이 쇠퇴할 것을 두려워한다. 공공기관의 이런 인식과 태도는 시민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정책에 대해 절대적 결정권과 통제권을 유지하려 하고 그것을 정당화하려는 구조적 문제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공공기관은 그런 인식과 태도를 구조적 문제로 보지 않고 법적, 행정적 정당성을 가진 원칙으로 이해한다.
특별히 한국의 공공갈등이 가지고 있는 특징 중 하나는 정치 문제와 얽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공공정책에 영향을 받는 개인 및 집단의 문제 제기로부터 시작된 공공갈등이 해결 노력의 부재로 시간이 흐르면서 정치 문제가 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공공갈등의 정치화는 주로 두 경로를 통해 이뤄진다. 하나는 정치권의 개입에 따른 정치화다. 보수 성향과 진보 성향의 정당이 대립하고 있고 양측이 번갈아 정권을 잡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공공갈등은 흔히 정치적 비판의 주제가 된다. 공공정책 자체가 보수 또는 진보 성향을 지니는 경우도 있지만 때로는 공공정책과 그로 인한 공공갈등이 집권당에 대한 공격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다른 하나는 시민단체의 개입으로 인한 정치화다. 시민단체는 단체의 정체성에 근거해, 또는 특정 갈등 당사자와 연대하기 위해 갈등에 관여한다. 이런 시민단체의 관여는 자주 갈등에 이념화 논쟁을 가미시킨다. 시민단체의 개입 이후 갈등은 정치적 논쟁의 주제가 되고, 갈등 현안은 방향을 잃고 표류하며, 갈등은 정부 또는 공공기관과 시민단체의 대립으로 변질된다. 이런 상황은 한국에서의 공공갈등 해결을 힘들게 하는 간과될 수 없는 중요한 문제 중 하나다.. 갈등의 정치화와 이념화 문제 역시 귀착되는 지점은 공공기관의 갈등 대응이고 이것은 구조적 문제에서 기인한다. 정치권의 관여로 인해 갈등이 정치화되는 것을 막지 못하는 주요 이유는 공공기관이 갈등에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않음으로써 갈등을 정치적 영향으로부터 독립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시민단체의 관여에 의한 정치화와 이념화는 공공기관이 시민단체를 갈등 당사자 중 하나로 보지 않고 시민단체의 문제 제기를 공공기관, 나아가 정부에 대한 정면 도전으로 보기 때문이다. 시민단체의 영향력을 높게 평가해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결국 공공갈등이 정치화되는 것을 막고 정치화된 공공갈등을 되돌리는 일은 공공기관의 책임이다. 공공기관이 갈등에 조기에 대응하고 정치화로 인해 한쪽으로 치우친 갈등을 당사자들의 문제 제기와 요구에 초점을 맞춰 중립화시켜야 하는 임무를 방기하기 때문이다.
공공갈등과 관련된 구조적 문제는 대부분 공공정책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공공기관에서 비롯된 문제다. 구조적 문제는 공공갈등의 근본원인이 됨과 동시에 갈등의 발생, 전개, 해결 모든 단계에서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구조적 문제를 외면하고 공공갈등을 다루려 할 경우 최선을 다해도 갈등의 해결이 아닌 봉합 내지 일시적 중단의 결과만 기대할 수 있다. 물론 구조적 문제를 다루는 것은 힘든 일이고 하루아침에 해결되는 문제도 아니다. 그럼에도 갈등 당사자들은 공공기관이 공공갈등과 관련해 구조적 문제의 존재를 인정하고 나아가 점진적 해결을 위해 노력해 주기를 원한다. 그것이 공공기관의 기본 의무고 공공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기본자세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런 요구는 사실 갈등 당사자들뿐만 아니라 모든 시민의 요구기도 한다. 구조적 문제의 언급 없이 공공기관의 일관성 없는 대응, 일부 실무자의 독자적 판단, 힘의 남용, 정치권과의 밀착 관계 등으로 인해 공공갈등이 해결의 방향을 찾지 못한 채 표류하고 비슷한 공공갈등이 재연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3. 구조적 문제와 공공갈등해결
앞서 언급한 각각의 구조적 문제는 공공갈등해결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공공갈등해결에서 구조적 문제의 해결은 차치하고 그 영향을 벗어나는 것조차 힘든 이유는 공공갈등의 가장 큰 당사자 중 하나인 공공기관의 힘에 도전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공공갈등에서 주목해야 할 가장 중요한 주제 중 하나는 공공기관과 다른 당사자들 사이의 극심한 힘의 불균형 문제다. 공공기관은 공공정책의 최종 결정권자로서 실질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공공갈등이 흔히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장기화되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도 정책을 결정할 수 없는 다른 당사자들이 공공기관의 최종 판단과 결정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공공갈등해결 과정에서도 공공기관은 흔히 과정을 재정적, 행정적으로 지원하고 갈등 현안에 대한 질 높은 정보를 독점한다. 때문에 다른 당사자들보다 우월한 위치에서 과정에 참여한다. 무엇보다 공공기관은 합의를 최종 승인할 권한을 유지한다. 공공기관은 물론 다른 당사자들도 공공기관이 가진 이런 힘의 우위를 인지하고 인정한다. 공공갈등해결 과정은 이런 힘의 관계가 과정 내에서 영향을 발휘하지 않도록 견제하고 과정 내에서만큼은 당사자들 사이의 균형 잡힌 힘의 관계가 형성되도록 고안된다. 그러나 힘의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공공기관이 자신에게 주어진 힘을 근본적으로 시민을 위한 것으로 인정하지 않고, 힘의 문제를 심각한 구조적 문제로 인식하지 않는 한 불균등한 힘의 관계를 완벽히 통제하고 재정리하기는 힘들다.
앞에서 언급한 공공갈등의 특징과 그와 관련한 구조적 문제는 공공갈등해결 과정에도 실질적인 영향을 미친다. 공공갈등이 공공정책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갈등이기 때문에 공공갈등해결 과정은 차별화된 과정의 설계와 진행을 요구한다. 가장 큰 차별점은 공공기관과 관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당사자들의 합의에 더해 최종적으로 공공기관의 동의 또는 승인을 받아야만 전체 과정을 종결지을 수 있고 비로소 합의가 효력을 발휘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점은 공공갈등해결이 공공기관의 구조적 문제를 다루는데 취약할 수 있음을 말해준다. 정책 결정권을 가진 공공기관은 힘과 정당성을 잃을 것을 우려해 때로 당사자가 중심이 되는 갈등해결 과정 자체를 지지하지 않을 수 있다. 마지못해 동의하더라도 과정에 불성실하게 참여하고 비공식적인 갈등해결 과정에서 도출된 합의를 거부하는 일도 발생한다. 공공기관의 부정적 태도에도 불구하고 정책 결정권을 가진 공공기관의 과정 참여와 합의가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에 공공갈등해결을 위해서는 갈등의 진원지인 구조적 문제를 언급하기보다 공공기관을 설득하는데 주력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다. 게다가 갈등 현안 자체에만 초점을 맞추기 원하는 공공기관과 갈등의 근본원인인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는 다른 당사자들의 요구를 조율해야 하는 문제에도 직면한다. 이런 입장 차이는 해결 과정의 시작을 어렵게 하고 당사자들을 불러 모으는데 오랜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하게 만든다. 사실은 많은 경우 해결의 시도조차 어렵게 한다.
공공갈등이 복잡하고 다양한 현안을 포함한다는 점은 공공갈등해결이 얽혀버린 실타래를 푸는 것처럼 힘들고 지난한 과정이 될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때문에 과정이 시작되더라도 어떤 현안에 초점을 맞추고 어떤 것을 우선적으로 다룰 것인지가 큰 도전이 되곤 한다. 공공갈등 해결은 그러므로 조직적이고 세밀한 갈등 분석과 당사자를 중심에 둔 접근을 통해 현안을 정리하고 논의 방향을 결정하게 된다. 갈등해결의 원칙 상 당연한 얘기지만 때문에 모든 당사자의 참여, 특별히 형식적이 아닌 실질적인 참여와 중심 역할의 수행을 중요하게 여긴다. 이것은 공공정책을 둘러싼 갈등을 다룰지라도 공공갈등해결 과정이 절대 공공기관과 공공정책의 실행 여부에 초점이 맞춰질 수 없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공공갈등해결의 이런 원칙적 접근은 빠른 시간 안에 갈등의 잡음을 줄이고, 확산을 막으며, 공공갈등이라는 장애물을 제거하려는 공공기관의 관심과 충돌하곤 한다. 공공기관은 갈등해결 과정을 되도록 단순화시키려 하고 그런 의도에서 자신이 원하지 않는 당사자의 참여를 배제시키고 논의 현안을 단순화시키며 범위를 축소시키려는 시도를 하기도 한다. 이런 공공기관의 의도는 과정에 압력으로 작용하며 결국 과정 전체를 오염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공공갈등의 발생과 악화에 영향을 미친 공공기관의 정책 결정권과 통제권 남용이라는 구조적 문제가 그대로 해결 과정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공공갈등에 다수의 당사자가 관계하게 된다는 것은 갈등해결에 있어 두 가지를 의미한다. 하나는 과정의 규모와 절차가 복잡해질 수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당사자들 사이에 여러 가지 면에서 차이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당사자가 많기 때문에 공공갈등해결 과정은 갈등 분석 절차에서부터 오랜 시간이 요구되고 당사자들 사이의 대화가 시작된 후에도 속도감 있게 과정이 진행되지 않는다. 집단 당사자들은 특히 한 가지를 결정할 때도 집단의 동의를 구해야 하기 때문에 과정은 더 더딜 수밖에 없다. 갈등 당사자들 사이의 차이는 직업, 교육, 생활수준, 전문 지식, 정보, 세계관 등 여러 면에서 존재한다. 배경과 수준이 다른 당사자들이 단계별로 현안을 이해, 논의, 합의할 수 있도록 과정을 진행시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모든 당사자 참여라는 갈등해결의 원칙은 공공갈등해결에도 예외 없이 적용돼야 한다. 다수의 당사자가 관계하게 된다는 것은 또한 공공갈등해결 과정이 다양한 개인 및 집단의 참여를 보장할 수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그러나 당사자 중심의 문제해결이라는 새로운 방식과 과정의 번거로움을 지지하지 않는 공공기관은 때로 해결 과정의 규모를 축소시키고, 일부 당사자들의 실질적 참여를 외면하며, 대화와 협상 능력이 있는 대변인들을 중심으로 과정을 진행시키려는 시도를 하기도 한다. 공공기관은 전문적 지식이나 협상력도 없고 시민 단체도 아닌 일반 시민들을 신뢰하지 않고 그들을 상대하는 것을 불편하게 여기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당사자 중심의 문제해결 원칙을 가지고 있는 갈등해결 과정의 기본 인식 및 원칙과 상충된다. 무엇보다 공공정책이 시민을 위해 존재해야 하며 때문에 시민의 의견이 반영돼야 한다는 공공정책에 대한 기본적 이해를 거스르는 것이다.
공공갈등이 정치 문제로 변질되는 문제는 현재 공공갈등해결이 직면한 가장 큰 도전이라 할 수 있다. 특정 공공갈등을 둘러싼 정부 및 여당과 야당의 힘겨루기, 시민단체와 공공정책에 저항하는 공동체와의 연대, 그리고 그들에 반대하는 다른 단체와 시민들의 연대 등은 하나의 공공갈등이 정치화되는 양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그후 전개되는 시민단체와 정부 및 공공기관과의 대립과 갈등 현안의 이념화는 공공갈등이 가진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지 않고는 설명하기가 힘들다. 공공갈등의 정치화와 이념화는 갈등에 직면한 공공기관이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제 역할을 하지 못함에서 비롯된다. 무엇보다 공공기관이 공공정책을 개인 및 집단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삶의 문제로 이해하지 못하고 정부 및 공공기관의 독점적 업무로 인식하고 당사자들의 저항을 정부와 공공기관에 대한 도전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시민단체의 갈등 관여와 다른 당사자와의 연대를 시민단체의 고유한 업무인 정책 감시의 역할로 이해하지 못하고 특정 이념에 토대를 둔 정치적 의도를 가진 행동으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사실 시민단체의 관여는 공공기관이 갈등에 조기 대응하지 않고 당사자의 작지만 절실한 목소리를 외면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공공기관은 공공갈등의 정치화가 갈등에 선제적이고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없는 자신의 구조적 한계에서 비롯됐음을 잘 인정하지 않는다. 공공갈등이 정치화된 경우 공공갈등해결이 우선적으로 해야 하는 일은 갈등을 중립화시키고 현안에 초점을 맞춰 재정리하는 것이다. 또한 공공기관을 포함한 모든 당사자들을 모아 대화의 틀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정치화에 매몰된 공공기관은 물론 다른 당사자들도 한 자리에 불러 모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영향력과 실질적 힘을 가진 공공기관이 저항하는 당사자들과 마주 앉도록 설득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4. 구조적 문제 극복의 패러다임
근본원인의 규명과 분석은 갈등해결의 첫 걸음이자 불가피한 일이다. 표면적인 원인을 제거함으로써 갈등을 일단락 시킬 수도 있다. 그러나 근본원인이 다뤄지지 않는다면 갈등은 진정으로 해결됐다고 볼 수 없다. 첫 머리에서 언급한 갈퉁의 모델을 참고하자면 갈등의 표면적인 원인이자 표출 방식이기도 한 행동은 갈등이 일단락됨과 동시에 변화될 수 있고 바람직한 변화가 이뤄진다면 태도의 변화까지 가져올 수 있다. 그러나 갈등의 근본원인인 모순적 상황이 변하지 않는다면 태도와 행동의 변화를 보인 당사자들은 멀지 않아 같은 또는 비슷한 문제에 직면할 것이고 예전의 태도와 행동으로 회귀할 것이다. 이것은 결국 갈등의 재발 또는 다른 갈등의 발생에 기여하게 된다. 갈등해결 연구가 근본원인에 주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근본원인의 탐색 없이 갈등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고, 근본원인에 대한 대응 없이 갈등을 해결할 수 없으며, 갈등 해결의 합의를 지속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근본원인을 다루는 것은 갈등해결에서 불가피한 일이다.
근본원인을 다루는 일은 갈등해결 연구의 궁극적 목표와도 맥을 같이 한다. 갈등해결은 당사자들이 대립과 공격이 아니라 대화, 협력(collaboration),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의 연구와 실천을 포괄한다. 갈등해결 연구의 목적은 대화로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개인적, 사회적 조건과 환경의 형성을 위한 이론을 개발하고 그것을 현장에 적용하는 것이다. 현장 실천이 없다면 갈등해결 연구는 무의미한 일이 될 것이다. 이런 이론과 실천의 결합을 통해 갈등해결 연구가 목표로 삼는 것은 갈등 해결 방식의 변화와 그에 따른 사회 변화다. 이런 변화는 갈등해결 과정이 개인의 갈등 대응 역량 강화, 갈등에 직면한 개인 및 집단의 관계 변화, 갈등 대응 문화 변화, 그리고 궁극적으로 갈등을 야기하는 구조의 변화에 기여할 때 이뤄질 수 있다.
공공갈등해결과 관련해서도 근본원인의 규명과 논의 없이는 갈등 해결 방식의 변화도 공공정책과 관련한 사회 변화도 기대할 수 없다. 공공갈등의 근본원인인 구조적 문제를 다루지 않는 공공갈등해결은 문제의 종식에는 제한적으로 기여할 수 있겠지만 사회 변화와 그에 따른 갈등의 감소에는 기여할 수 없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공공갈등해결 실천은 계속돼도 갈등은 줄지 않는 상황이 연출될 것이다. 중.장기적인 접근을 잠시 접어둔다 할지라도 특정 갈등에만 집중하는 단기적이고 단선적인 접근의 극복과 갈등의 재발 예방이라는 현실적 필요 때문에 갈등해결 과정에서 근본원인의 규명과 대응은 불가피하다.
공공갈등의 근본원인인 구조적 문제를 다룸으로써 공공갈등해결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새로운 공공정책 및 공공갈등과 관련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제시다. 공공갈등해결은 단순히 한 개인 또는 집단의 문제를 해결하는 기제가 아니라 공공성을 가진 사회 기제다. 공공기관의 일방적인 정책 결정이 아니라 갈등의 직접 당사자는 물론 간접적으로 관계된 시민까지 참여하는 정책 결정을 가능하게 하는 공공갈등해결은 시민이 중심이 되는 민주주의의 본질과도 통하는 것이다. 이런 사회적 역할과 의미를 가진 공공갈등해결은 그러므로 공공기관에 봉사하는 기제나 또 하나의 사회 통제 기제가 될 수 없다. 공공갈등해결은 오히려 공공정책과 관련한 구조적 문제를 극복하고 공공기관과 시민이 함께 구상하고 실행하는 공공정책 수립을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기 위해 공공갈등해결은 연구와 실행에 있어 몇 가지 기본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 첫째는 공공갈등해결의 목적이 공공기관의 위기관리 또는 사회 통제를 지원하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공공정책은 시민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지만 시민의 동의 없이 공공기관의 판단과 결정만으로 실행될 수 있다. 이것은 민주적 절차와는 모순되는 것이지만 비대해진 사회의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 시민들이 전문 관료에게 결정권을 위임했기 때문에 가능해진 일이다. 그러므로 특정 공공정책 결정 과정에 시민이 참여를 요구하면 그 요구는 존중되고 받아들여져야 한다. 공공갈등해결은 바로 이런 시민 참여 권리의 보장과 그것을 위한 과정의 효율성에 기여한다. 이런 맥락에서 공공갈등해결은 공공기관이 아닌 다양한 시민 개인 및 집단에 초점을 맞춰야 하고 그들의 이익이 외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공공갈등해결은 갈등 당사자인 시민의 참여를 독려하고 보장하는 과정을 설계해야 한다.
둘째는 공공정책이 시민 삶의 파괴가 아닌 삶의 향상에 기여하도록 해야 한다. 공공갈등의 최악의 결과는 개인과 집단의 삶의 파괴다. 이것은 곧 공공정책의 최대 실패를 의미하기도 한다. 공공갈등이 해결되지 않고 장기화될 때 그로 인한 물질적, 신체적, 정신적 피해는 고스란히 공공기관 이외의 당사자들에게 돌아간다. 공공갈등은 갈등에 직면한 개인과 집단 사이의 관계도 파괴해 되돌릴 수 없게 만든다. 시민들을 위한 공공정책 수립과 실행 과정에서 이런 일이 생긴다는 것은 모순적 구조의 문제를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다. 공공갈등해결은 이런 모순적 구조를 바로 잡고 공공정책이 제 역할을 할 수 있게 지원한다. 무엇보다 공공정책으로 인한 시민 피해를 줄이고 나아가 공공정책이 시민의 필요에 답하고 삶의 질을 높이는데 기여할 수 있게 한다. 그러므로 공공갈등해결 과정은 무엇보다 당사자인 시민들의 삶을 우선적으로 고려해 설계되고 진행돼야 한다.
셋째는 시민과 공공기관의 새로운 관계 형성에 기여해야 한다. 갈등해결 과정이 당사자들에게 미치는 가장 긍정적인 영향 중 하나는 관계의 변화다. 과정에 참여하는 개인 및 집단은 관계의 긍정적 변화를 경험하곤 한다. 단기간의 과정보다는 긴 과정에 참여하는 당사자들의 관계 변화가 더 두드러진다. 공공기관과 시민 당사자들도 공공갈등해결 과정에 참여하는 동안 관계 변화를 겪고 부분적으로 그런 관계 변화의 영향으로 합의에 이르게 된다. 공공기관과 시민의 관계 변화는 향후 다른 갈등의 예방과 조기 해결에 기여할 수 있다. 그러므로 공공갈등해결은 공공기관과 시민의 관계 변화에 기여할 수 있게 설계돼야 한다. 관계의 변화는 갈등해결의 목표이자 결과 중 하나며 구조의 변화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공공갈등해결은 시민과 공공기관의 역량 형성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 당사자 역량 형성은 갈등해결 과정 평가에서 중요한 기준 중 하나가 된다. 역량 형성은 당사자들이 향후 다른 갈등에 건설적으로 대응하고 대화로 해결할 수 있게 되는 것을 말한다. 공공갈등해결 과정에 참여하는 당사자들은 갈등, 입장, 이해를 객관적으로 분석하는 절차를 경험한다. 전문지식을 다루곤 하는 공공갈등해결 과정에서 당사자들은 과학적, 기술적 정보를 분석하고 이해할 수 있는 기회도 가질 수 있다. 또한 포용적이고 참여적인 과정에서 대화와 협상에 기초한 새로운 문제해결 방식을 배우기도 한다. 갈등을 객관적이고 포괄적으로 이해하게 되는 이런 경험은 당사자들로 하여금 향후 다른 갈등에 과거보다 선제적, 긍정적,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해준다. 당사자들의 경험과 역량 형성은 사회 자원이 되고 새로운 사회 경험의 축적으로 이어진다.
지금까지 주로 시민의 편에서 공공갈등해결의 긍정적 영향을 언급했지만 공공기관의 입장에서도 공공갈등해결 과정은 좋은 선택이 된다. 무엇보다 공공기관은 공공갈등해결을 통해 정책 결정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 공청회나 주민 설명회 같은 형식적인 절차가 아니라 당사자들이 직접 마주 앉아 정책 내용을 분석하고 대안을 논의한 후 합의를 도출하는 공공갈등해결 과정을 통해 결정된 정책은 비난을 피할 수 있고 확고한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책 수립과 실행 과정의 답보 상태를 피하고 보다 만족스럽고 질 높은 정책을 결정할 수 있다는 점도 공공갈등해결이 공공기관에게 활용 가능한 좋은 사회적 기제임을 말해준다 과정에 참여하는 당사자들을 통해 공공기관이 단독으로 수집할 수 없는 많은 전문적, 경험적 정보를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네트워크와 협력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는 점도 공공기관에는 과소평가할 수 없는 공공갈등해결의 긍정적 효과다 이런 네트워크와 협력관계의 형성은 공공기관의 업무 역량을 향상시키고 정책 실행의 질을 높이는데 기여한다. 결국 공공기관이 복잡하고 번거롭다는 이유로, 또는 비전문가인 시민들과 정책 결정권을 나눌 수 없다는 이유로 공공갈등해결을 거부할 경우보다 훨씬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셈이다.
공공갈등이 등장하고 확대된 이유는 무엇보다 기존의 문제해결 방식과는 다른 차별성 때문이다. 그 이면에는 전통적인 입법, 사법, 행정 절차가 시민의 필요에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방법으로 응할 수 없었던 문제가 있었고 그로 인해 새로운 방식이 필요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전통적인 절차들은 또한 새롭게 발생하는 공공정책과 관련된 문제들에 대응할 수 없었고 시민들의 정책 참여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었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공공갈등해결은 새로운 문제해결 기제, 특별히 공공기관과 시민 모두에게 만족을 주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회 기제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공공갈등해결의 발생지인 미국과 비교적 일찍 받아들여 적용한 다른 국가들에서 공공갈등해결은 특별히 시민의 필요에 답하지 않는 공공정책과 공공기관이라는 포괄적인 구조의 문제를 시민 참여를 통해 극복하는데 기여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되었다. 비슷한 문제에 당면해 있는 한국사회와 공공기관에도 공공갈등해결은 비슷한 기여를 할 수 있다.
위의 글은 2014년 2월 24일 단국대학교 <한국 공공분쟁의 진단과 이론화 모색>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글입니다. 무단 복사와 배포를 할 수 없으며 인용시 반드시 저자와 출처를 밝혀야 합니다. 각주는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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