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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사회, 겨우 20여 년 살았는데...평화갈등 이야기 /평화 2017. 5. 29. 17:45
스무살, 세상 쓴 맛 다 안다
학부 강의시간에 자신이 지금까지 겪은 폭력 사례를 써 내라고 했다. 20여 년의 세월 동안 그들이 겪었다고 쓴 사례들은 너무 평범해서 오히려 놀라웠다. 우리 주변에 크고작은 폭력이 널려 있음을 확인시켜줬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인들에게는 큰 상처를 준 사건이었다. 물론 그랬기에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많은 사례들이 나이 및 직위와 관련된 것들이었다. 덧붙여 여대 강의라서 여자로서 겪는 폭력적 상황까지 포함하고 있었다. 우리사회에서는 여전히 상대적으로 나이가 많고 직위가 높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와 이해가 아니라 강요와 압력으로 권위를 인정받을 수 있고 나아가 존경까지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인상적인 것은 많은 학생들이 당시에는 폭력인줄 몰랐지만 수업을 듣고 나니 자신이 폭력의 피해자였음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화를 언급하거나 상상하면서 따뜻하고 편안한 것들을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상태는 치열한 분석, 문제 제기, 저항, 토론, 대화와 합의 등을 거친 후에야 비로소 실현될 수 있다. 우리가 사는 사회가, 그리고 세상이 너무 폭력적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평화를 깨고 방해하는 폭력에 대한 민감성을 기르는 것이다. 두 가지 이유에서다. 하나는 자신이 폭력의 가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고, 다른 하나는 자신이 폭력의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다. 평화는 폭력의 가해자도 피해자도 없을 때 성취될 수 있고 그것은 각자가 얼마나 민감하게 폭력 문제를 다루고 대응하느냐에 달려 있다.
폭력, 주변에 널려 있다!
아래는 학생들이 써낸 폭력 사례 중에서 몇 가지를 추린 것이다. 우리사회에 존재하는 폭력의 평범성과 고착화를 아주 잘 이해할 수 있다.
"초등학생 때 급식으로 콩밥이 나오면 남겼는데 선생님이 알약처럼 물하고 같이 삼켜서라도 억지로 먹게 했다. 선생님 입장에서는 편식을 고친다는 것이었겠지만 너무 폭력적인 방법이었다고 생각한다."
"아르바이트 하는 가게에 매장 단속이 나왔다. 검사기준에 미달하는 매장 상태 때문에 사장님이 혼났는데 담당 공무원이 가고 나서 사장님은 알바생들을 옥상으로 불러모아 "씨**들아. 개*끼들아." 하면서 욕을 했다. 음식물 쓰레기통을 던지기도 했다."
"지하철에서 치마를 입고 서 있었는데 어떤 할아버지가 대놓고 내 다리를 쳐다봤다. 옆칸으로 옮겼는데 계속 따라왔다. 계속 피해다니다가 내렸는데 거기까지 따라와서 계단 올라가는 곳에 서 있었다. 가방으로 가리고 올라가는데도 계속 계단 아래서 쳐다보고 있었다. 결국 지하철보안관에게 잡혀갔다. 너무 무서웠다."
"고등학교 다닐 때 방과 후 수업을 해서 저녁을 밖에서 먹고 온 후 시작하는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런데 저녁시간을 30분 밖에 주지 않고 수업시간에 늦으면 점수를 깎는 선생님이 있었다. 학생들이 1분이라도 늦으면 가차없이 뒤에 세워놓고 점수를 깎았는데 본인은 식사할 것 다하고 늦게 들어오곤 했다."
"친구가 알바하는 곳에서는 화장을 하지 않고 오면 화장을 하고 오는 알바생과 비교하면서 화장하고 올 것을 강요했다고 한다. 이것은 분명 외모적, 성적 차별이다."
"서울 안의 대학교에 합격했는데도 부모님이 집근 처 지방대학교를 다니라고 강요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집 근처 지방대학교를 다니면서 남동생의 식사와 빨래 등 뒷바라지를 해주라는 이유에서였다."
"알바하면서 시급이 아닌 일급을 받았는데 계산해보면 결국 최저시급도 안 되는 액수였다. 근로계약서에 써 있는 쉬는 시간에도 제대로 쉬어본 적이 없다."
"아빠가 '빨간 옷은 빨갱이 같으니 입지 마!'라고 했다. 모든 기성세대가 위와 같은 불합리한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기 생각을 강요하며 남의 자유를 억압하는 경우가 많다."
"기독교학교라는 이유로 경건회와 기독교개론을 강요하는 것은 너무 폭력적이다. 경건회에 6번이나 참석해야 하고 시간표도 목표일, 금요일 밖에 없다. 한 학기 동안 기독교개론을 배우면서 관심도 없는 성경에 대해 공부해야 하는 것은 비종교인에게는 괴로운 일이다."
"고등학교 3학년 담임선생님은 아주 엄격했다. 미용이나 예체능 계열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자율학습시간을 방해한다고 눈총을 주곤 했다. 하루는 그 친구들의 자리 주변가 더러운 것을 발견한 선생님의 화가 폭발했다. 두 명의 친구를 복도로 불러내 머리채를 잡아서 바닥에 주저앉히고 등을 때렸다."
"내가 다니는 교회에서도 정신적으로 폭력을 경험하곤 한다. 어른들이 방을 쓰고자 하면 청년들은 먼저 왔어도 당연히 비켜줘야 한다. 어른들이 준비하는 행사를 청년들이 도와주지 않으면 버릇과 예의가 없다고 판단을 한다. 청년들은 할 일 없고 바쁘지 않다고 생각하는 어른들 때문에 힘들다."
"고등학교 때 학교 남자애들이 단체 카톡방에 여학생 몇 명을 초대해 성적 농담을 하고 의미 없는 카톡을 보내곤 했다. 자기들끼리 농담을 하다가 서로의 전 여자친구들을 초대해 놀리는 등의 장난도 쳤다. 자기들 한테는 장난이었겠지만 초대 받은 여자애들은 당황스러움과 수치심을 느꼈다. 나 또한 그 카톡방에 초대되어서 기분이 아주 불쾌한 적이 있었다."
"고등학교 때 동아리를 했는데 무조건 토요일 모임에 참석해야 한다고, 빠지면 나중에 불이익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협박을 하다시피 했다. 그 당시에는 강압적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그건 폭력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자기의 기분이 안좋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있을 때마다 학생들에게 심한 폭언과 벌을 주곤 했다. 대학 진학 상담을 할 때도 친구들의 꿈을 비웃고 희망을 주지는 못할망정 짓밟아 버렸다. 반 아이들 모두 큰 스트레스를 겪었다."
"친구 학교에서는 수영을 전공필수로 들어야 한다. 그런데 남자 교수가 남학생들한테는 노출이 없는 래쉬가드를 입게 하고 여학생들한테는 일반 수영복을 입어야 한다고 했단다. 여학생이 래쉬가드를 입으면 수업에 참여할 수 없다고 했단다. 수업을 듣는 여학생들은 학점 때문에 반발하지 못하고 노출이 있는 일반 수영복을 입고 수업을 듣는다고 한다."
"아웃도어 브랜드 매장에서 알바를 하는데 10여 명의 남자들과 같이 일을 한다. 내가 남자들과 똑 같은 실수를 해도 선임 남자 직원들은 항상 내게 '군대를 안 갔다와서 그렇다'거나 '여자들이란...'이라고 여성을 비하하는 말을 하곤 한다."
"가족 내에서도 폭력을 겪는다. 늘 식사를 마치고 나면 남동생도 있는데 부모님은 꼭 내게만 식탁을 정리하라고 하신다. 명절에 온 식구가 모이면 늘 음식을 차리는 사람은 고모들과 우리 엄마다. 남자들은 정말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고 여자들이 음식을 다 차릴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는데 우리 식구들은 이 상황을 매우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최근에 했던 알바에서는 주휴수당도 못 받고 너무 추운데 히터가 들어오지 않는 곳에서 일했다. 항의하고 싶었지만 해고당할까봐 그냥 참았다. 고용주와 알바생의 갑을관계에서 오는 폭력을 뼈저리게 경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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