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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정치인가?평화갈등 이야기 /평화 2017. 1. 16. 11:17
정치와 평화, 그리고 피스빌딩
정치에 대한 관심이 이처럼 높았던 때가 없었던 것 같다. 적어도 우리가 생생히 기억하는 세월 속에서는 말이다. 정치적 혐오, 냉소, 무관심 등으로 무장했던 사람들도 이제는 정치가 자신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 그리고 자신이 나서야 결국 정치가 변화될 수 있다는 '진리'를 처절하게 몸으로 익히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상황 속에서 나의 관심은 정치에 얼마나 평화적 과정과 내용이 반영되고 현실화될 수 있느냐에 맞춰져 있다. 많은 사람들이 지극히 현실적이고 냉정한 정치와 따뜻한 것 같지만 지나치게 이상적으로 보이는 평화를 함께 고려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정치와 평화의 렌즈를 겹쳐서 세상을 분석하고 바라보는 시도 자체를 무모한 것으로 취급한다. 그러나 그것은 평화, 아니 평화학을 잘 모르는 데서 기인한 생각이다. 평화학은 불가피하게 정치적이며 평화연구자는 그 어떤 분야의 학자보다도 정치적 민감성을 유지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가지고 있다. 그 이유는 평화를 연구하는 궁극적 목적이 모든 개인 및 집단의 안전한 삶과 평화로운 공존이며 현대사회에서 그 목적은 정치를 떠나 달성될 수 없기 때문이다.
정치와 평화를 가장 현실적으로 연결시키는 개념은 '피스빌딩(peacebuilding)'이다. 피스빌딩, 다른 말로 '평화세우기'는 국제사회에서 무장 분쟁 후, 그러니까 전쟁 후 국가와 사회를 어떻게 재건할 것이냐, 그리고 다시는 개인과 집단의 갈등이 파괴적 대립과 무장 충돌로 이어지지 않는 사회를 어떻게 만들 것이냐는 현실적 명제를 지닌 정치, 사회, 군사 분야의 이론과 실행을 일컫는 말로 처음 등장했다. 피스빌딩은 한 마디로 전쟁 후 시민의 평화로운 삶을 담보하는 정치 사회 체계를 시민의 의견을 반영해 만들고 유지하는 구체적 방식을 탐색하고 실행하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계속된 연구에서 피스빌딩은 무장 분쟁에 취약한 사회뿐만 아니라 민주적 질서가 자리잡은 사회에 존재하는 폭력과 갈등을 극복하고 개인과 집단의 평화로운 공존을 이룰 이론과 실행방법을 연구하고 적용하는 것까지 확대됐다. 이렇게 확대된 개념 하에서 피스빌딩은 '누가 민주적 절차와 실행의 주체가 되어야 하는가?'와 같은 기본적인 주제부터 '평화적 공존을 위한 평화적 과정을 어떻게 현실정치에 적용할 것인가?'에 대한 이론적 접근까지 다루게 됐다. 이런 피스빌딩이 정치에 제안하는 것은 결국 시민이 주체가 되고 시민이 참여해 시민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정치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모두의 평화로운 삶이 가능하고 갈등이 폭력적 충돌로 이어지지 않는 사회가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피스빌딩이 기존의 정치 이론이나 사회 담론과 다른 것이 있다면 단순히 이론에 그치지 않고 시민들의 역량을 키우고, 그들의 의견을 취합하며, 그러기 위해 하향식(top-down)이 아닌 상향식(bottom-up) 방식과 관련된 세세한 것까지 계획하고 실행한다는 것이다. 거기에는 정치 영역에 접근하기 위한 전략적 구상부터 사소하게는 시민 참여 브레인스토밍 절차의 계획과 진행 방식까지가 포함된다. 물론 이 모든 계획과 실행의 중심에는 평화로운 삶을 원하는 시민이 자리해야 한다.정치의 배반, 누구를 위한 정치인가?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치를 신뢰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정치에 실망하고 분노하기 때문이 아니라 정치가 프로 정치인들, 또는 정치공학을 설파하는 사람들의 영역으로 바뀌어 시민들이 낄 자리를 없애버렸기 때문이다. 결국 정치가 '누구를 위한 것이여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사라지고 프로 정치인들이나 정치평론가들의 놀이터와 말잔치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시민들은 그저 정치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선거기간 동안만 필요한 도구로 소비된다. 선거가 끝나면 시민은 항상 '배반의 정치'를 경험하고 정치 영역에서 풀-타임(full-time) 일자리를 잡은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정치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모든 권한이 주어졌다고 생각한다. 시민이 목소리를 내고 그것이 정치에 반영되는 상향식 접근은 '귀신 씨나락 까먹는' 미련한 소리, 또는 너무나 이상적이고 낭만적이며 순진한 '잡소리' 정도로 취급된다.그렇다면 피스빌딩은 이런 정치에 대해 어떤 해석과 도전을 할까? 피스빌딩은 상향식 접근을 매도하고 하향식 접근을 당연시하는 정치를 '폭력적'인 정치로 규정한다. 그런 접근은 최선의 경우 시민의 필요를 적선하듯 조금 충족시킬 뿐이고, 최악의 경우엔 시민의 필요가 아니라 정치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결과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것은 절차적 폭력성, 다시 말해 차별, 배제, 강요 같은 폭력성을 내포하고 있다. 평화로운 공존을 위해서는 그런 절차적 폭력성을 극복해야 하고 그래서 피스빌딩은 참여를 핵심 원칙 중 하나로 강조한다. 그 방식이 가장 이상적이어서가 아니라 가장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당사자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정치인이나 전문가가 아니라 당사자가 직접 필요를 규명하고 해결책을 고민하고 요구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정치인이나 전문가는 그런 요구를 법과 절차, 그리고 예산과 현실적 도전 등을 고려해 조율하고 가장 바람직한 실행 방법을 찾는 역할을 할 뿐이다.조기 대선이 현실화되고 있는 지금, 그리고 대선 주자로 나선 사람들이 이런저런 말을 쏟아내는 지금 우리가 마음 속에 새겨야 할 질문은 '누구를 위한 정치인가?'다. 우리는 대선에 뛰어든 사람들에게 '누구를 위한 정치를 할 것인가?'와 구체적으로 '어떤 실행 방식을 취할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정치 자체를 위한 하향식이 아닌 시민을 위한 상향식 방식을 어느 수준에서 어떻게 담보할지를,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정치에 반영할지를 세세하게 물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내 뱉는 한 마디,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평범한 시민들의 일상과 삶에 대한 이해를 얼마나 반영하고 있으며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정말 알고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 그에 대한 이해와 답이 없다면 결국 시민을 무시하고 정치적 협상과 이익만 추구하는 '폭력성'이 내포된 정치를 할 가능성이 높고, 그 결과 시민은 다시 소외, 배제, 차별, 강요의 폭력을 경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평화갈등 이야기 > 평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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