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갈등전환 & 구조적 접근평화갈등 이야기 /갈등해결 2016. 3. 7. 11:09
갈등해결 연구, 구조에 주목
구조는 갈등해결 연구의 핵심 주제 중 하나다. 갈등해결 연구의 기본 입장은 다는 아니라 할지라도 거의 대부분의 경우 구조의 문제가 갈등을 만드는 근본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초기 갈등해결 연구에서부터 일관되게 이어져온 주장이고 이런 이유로 갈등해결은 구조의 문제를 외면할 수 없다. 구조의 문제는 평화갈등연구가 태동되던 때부터 지적된 것이지만 그것을 체계적으로 설명한 사람은 1960년대 후반 요한 갈퉁이었다. 그는 태도(A/atttitude), 행동(B/behavior), 모순(C/contradiction)이라는 세 개의 꼭지점을 가진 갈등 삼각형을 제시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갈등은 세 가지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전개되는데 A나 B가 나타나지 않고 C가 존재하면 잠재적 갈등이 되고 세 가지가 모두 나타나면 완전히 드러난 갈등이 된다. 즉 구조의 문제가 있어도 당사자들이 힘이 없어서건 자각이 없어서건 태도와 행동으로 문제를 표현하지 않으면 갈등이 표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별히 C는 갈등을 만든 상황을 말하는 것으로 곧 사회적 구조를 말한다. 갈등 당사자들은 구조를 중심으로 서로 태도와 행동을 주고받으면서 각자의 이익을 추구한다. C가 모순인 이유는 사회적 가치와 사회적 구조가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 공유하는 가치와 상반되게, 또는 그것을 지원하지 않는 형태로 구조가 존재하고 작동한다는 얘기다. 당사자들이 구조의 문제점을 알아채지 못하는 경우가 있지만 C가 지속되면 아무리 무감각하고 분석력 없는 사람이라도 문제를 인식하고 절망하게 된다. 마침내 당사자들은 구조의 문제가 극복된 나은 상황을 갈망하고 되고 그것이 행동으로 이어지면서 갈등이 생긴다. 이렇게 C에 기반해 생긴 갈등은 C 자체, 그러니까 구조를 바꾸지 않고는 해결되지 않는다. 갈퉁은 후에 이 C를 구조적 폭력으로 설명했다.
1970년대 초 유럽에서 평화갈등연구가 학제로 시작되고, 특별히1980년대 중반 미국에서 갈등학 학위 프로그램이 생겨나면서 구조의 문제는 더욱 핫하고 다른 한편으로 아주 기본적이고 당연한 주제가 됐다. 연구자들은 구조의 문제에서 사회 갈등은 물론 사회 폭력의 문제까지 짚어냈다. 갈등과 구조의 연관성에 대한 비판적 성찰은 갈등해결 연구 정체성의 일부가 됐다. 그러나 갈등해결 실행이 사회적으로 확산되면서 이런 구조적 접근은 연구자들의 비판적 사회 성찰 정도로 취급되는 경향도 생겼다. 갈등해결의 체계화와 확산에 큰 기여를 한 미국에서는 1960년대 말부터 1980년대 말까지 20여년 동안 갈등해결이 다양한 사회갈등을 해결하는 기제로 자리잡고 급속도로 확산됐다. 당연히 갈등 조정을 직업으로 선택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이들은 갈등을 야기한 근본원인보다는 갈등 상황을 종결시키는데 더 관심을 가졌다. 특별히 법률서비스 한계에 대한 대안이자 사법제도 개혁의 일환으로 시작되고 확산된 ADR(alternative to dispute resolution)의 경우엔 구조에 문제를 제기할 이유가 없었다. ADR의 관심은 다툼(conflict가 아닌 dispute)을 낮은 비용으로 빠르게 해결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단기간의 훈련을 거친 후 조정자가 되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이들은 직업적으로 갈등 또는 다툼의 종결에만 집중했다. 갈등해결 연구자들 중에는 이런 변화를 비판적으로 지적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이런 상황은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직업적 조정자들이 모두 구조적 문제를 도외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경우 별 관심을 쏟지 않거나 갈등해결 연구자들만큼 진지하게 접근하지는 않는 것이 사실이다.
갈등전환, 구조 변화의 전략 제시
갈등전환을 구조 이론 또는 구조적 접근의 아류 쯤으로 이해하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갈등전환이 구조에 대한 비판적 성찰에 뿌리내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다른 점이 있다면 갈등전환은 구조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을 넘어서 구조를 바꿀 단계적이고 포괄적인 전략과 실행 방법을 제시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갈등해결 연구가 진전되면서 생긴 당연한 결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구조적 접근은 구조를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문제를 지적하는 것에 몰두하다보니 그것을 누가 어떻게 바꿀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갈등전환은 구조를 단순히 비판이나 극복의 대상으로만 보지 않는다. 반대로 구조를 당사자들, 즉 구조의 문제로 피해를 입는 사람들의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게 변화시켜야 하는 목표로 본다. 구조의 변화 없이는 갈등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고 결국 당사자들은 계속 피해자로 머물 것이기 때문이다. 구조 변화를 위해 갈등전환이 제안하는 가장 기본적인 전략과 방법은 구조를 성찰하고 구조적 문제에 대응할 수 있도록 당사자들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어찌보면 당연한 것 같지만 구조를 견고하게 지어진 중세시대 성처럼 여기고 '절대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흔히 관심을 두지 않는 부분이다.
당사자 변화를 위한 기본 방식은 교육과 훈련을 통한 힘 키우기다. 이것은 아담 컬(Adam Curle)이 제안하고 존 폴 레더락이 발전시킨 갈등의 진행(Progression of Conflict) 그림을 통해 잘 이해할 수 있다. 이 그림에 의하면 구조를 통제하거나 운영하는 사람들과 그 구조의 문제 때문에 피해를 입는 사람들 사이 힘의 불균형이 심한 상황에서는 갈등이 생기지 않는다. 다시 말해 앞에서 얘기한 C가 존재하지만 A와 B가 나타나지 않고 갈등이 잠재적으로만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피해를 입는 상대적 약자에 대한 교육과 훈련이 이뤄지면 힘의 불균형이 어느 정도 해소되면서 대립과 갈등을 만들 힘이 생긴다. 그러면 대화와 협상을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 만들어진다. 상호 합의를 통해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고 평화적 공존을 논의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드는 것도 가능해진다. 그러니 대립과 갈등이 불가피한 것이다. 갈등전환이 갈등을 부정적인 현상이 아니라 오히려 기회로 보는 이유다.
갈등전환이 얘기하는 약자의 힘 키우기는 사실 구조의 문제에 관심이 없이 갈등해결에 직업적으로만 접근하는 사람들도 하는 일이다. 그러지 않으면 당사자 대화가 제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갈등전환은 그런 힘 키우기를 통해 갈등을 만든 근본원인을 제거하고 구조까지 바꾸는 것을 목표로 삼지만 갈등을 만든 문제의 종결에만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어느 정도 키워진 약자의 힘을 문제 해결을 위한 수단으로만 한정해 적용한다는 것이다. 어찌보면 어렵게 키워진 힘의 낭비라고 볼 수도 있다. 또 다른 면에서 약자의 힘 키우기는 사회운동의 방식과 비슷하기도 하다. 그러나 갈등전환의 절차와 목표는 약자의 힘을 통해 구조를 바꾸기 거부하는 힘 있는 당사자를 대화의 자리로 끌어내고 합의를 통해 구조의 문제를 해결하고 바꾸는 것이라는 점에서 보통 대결적으로 전개되는 사회운동과는 다르다고 볼 수 있다.
한 가지 더 주목할 것은 갈등전환은 상대적 약자의 힘을 키우는 것과 동시에 구조 안의 행위자들과 그들의 관계에도 주목한다는 것이다. 갈등 당사자들은 물론 구조를 통제하거나 운영해 자기 이익을 취하는 사람들도 모두 그런 행위자에 포함된다. 갈등전환의 최종 목표는 그들 사이 관계를 변화시키고 그들이 평화적으로 공존할 수 있는 사회 구조와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갈등전환은 갈등을 야기하는 구조를 지속시키는 문화, 다시 말해 갈등을 이해하고 그것에 대응하는 구조 내 행위자들의 태도와 방식에도 주목한다. 문화가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지속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것도 결국 사람에 집중하는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어쨌든 구조 내의 다양한 행위자들은 가진 힘의 크기가 다르지만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관계를 맺고 있고, 이들 모두의 태도와 행동이 변하지 않으면 갈등이 해결되지 않고 구조도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평화갈등 이야기 > 갈등해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갈등전환 & 피스빌딩 (0) 2016.03.15 갈등전환 & 관계 (0) 2016.03.10 갈등해결 & 갈등전환 (0) 2016.03.04 갈등과 구조, 꿩 대신 닭? (0) 2016.02.29 대화, 방심하면 망한다 (0) 2016.0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