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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과 구조, 꿩 대신 닭?평화갈등 이야기 /갈등해결 2016. 2. 29. 12:49
화살은 쉬운 타겟을 찾는다
며칠 전 발표된 한 연구보고서는 한국사회에서 계층 사이 갈등이 심각해서 그 갈등이 단순한 대립이나 충돌이 아니라 단절, 원한, 반감, 단죄 등의 극단적 감정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계층 갈등이 이미 사회적으로 굳어졌고 그 갈등 속에서 사는 개인들의 피로감과 현실적 경험이 그런 극단적 감정을 만들어냈을 것으로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연구보고서는 다만 그것을 한번 더 확인해줬을 뿐이다. 이런 주장이 말해주는 것은 사실 한 가지다. 우리 사회에 구조적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이다. 구조적 문제가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이 위험 수위에 도달했고, 구조적 문제가 완화되거나 계층 갈등이 줄어들 가능성이 적어도 현재로선 높지 않다는 것이다.
갈등을 이해하기 위해 구조적 요인(structural sources)을 살펴보는 것은 아주 중요하고 기본적인 일이다. 이론상 구조적 요인과 관련되지 않은 갈등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구조의 영향을 받지 않는 개인과 집단의 삶이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족, 공동체, 조직, 사회 등 모든 집단이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계층 갈등을 얘기할 때 말하는 구조는 비교적 큰 사회, 그러니까 한국사회의 구조를 말한다. 이 구조는 알게 모르게 한 가족의 생계와 삶의 질, 연인들의 결혼, 늙은 부모와 결혼한 자녀의 친밀감, 영업사원들의 실적 경쟁, 청년들의 취업 고시, 가정폭력과 아동학대 등 다방면에 영향을 미친다. 대부분의 사회에서 구조는 약자에게 혹독하고 강자에게 너그럽다. 약자들은 구조를 극복할 힘이 없고 그래서 살아 남기 위해 서로 경쟁한다. 결국 약자의 화살은 약자를 향한다. 구조를 극복할 수 없고, 구조의 혜택을 입는 강자를 상대할 수 없으니 그래도 자기가 어찌해볼 수 있는 주변의 약자를 향하는 것이다. 곳곳에서 쉬운 타겟이 만들어지고 그로 인해 크고 작은 갈등이 생긴다. 부모와 자녀, 연인, 회사 동료, 남녀, 청년과 중년 세대 사이의 갈등 등이 모두 그렇다. 각자 만만한 상대를 꿩 대신 닭으로 삼아 공격하고 서로 대립하는 것이다.
폭력적 구조, 2차 폭력(secondary violence)을 낳는다갈등을 만드는데 기여하는 구조적 요인은 폭력적 구조에서 나온다. 폭력적 구조는 간단하게 말하면 개인의 자유, 행복, 성취를 막는 구조를 말한다. 이것은 특별히 개인이 잠재력을 완전히 발휘할 수 없게 만든다.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면 안정적 수입으로 무난하게 살 수 있고 자기계발의 여유도 생겨 지금보다 나은 미래를 준비할 수 있어야 정상이다. 그런데 폭력적 구조 하에서는 열심히 공부하고 일해도 안정적 수입과 생활이 보장되지 않는다. 사회 전체의 힘이 부당하게 분배돼 있고 그로 인해 자원이 부당하게 분배돼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목할 점은 폭력적 구조 하에서는 약자 사이에도 힘의 관계가 만들어지고 힘이 부당하게 사용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상대적 강자는 상대적 약자에게 폭력을 가하고 자신의 물질적, 심리적, 정신적 이익을 취한다. 구조적 폭력의 희생자가 더 약한 상대를 희생양으로 삼는 2차 폭력이 생기는 것이다. 배우자나 자녀 학대, 동료 비난이나 왕따시키기, 경쟁자 배제나 모함 등이 모두 이런 2차 폭력에 해당한다. 바로 꿩 대신 닭을 찾아 분풀이를 하고 그것을 통해 일시적 만족을 얻는 것이다. 그런데 약자 중의 약자도 영원히 참지는 않는다. 결국 대립과 갈등이 생기고 관계가 깨진다. 우리 사회에는 이런 과정을 거쳐 깨진 관계가 널려 있고 그 피해는 모두 약자들이 함께 짊어지고 있다.
이론적으로 정리하진 못하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구조적 요인과 폭력적 구조의 문제를 잘 알고 있다. 자신이 피해를 입고 있다는 것도 인정한다. 그렇다면 문제를 극복할 방법을 고민해야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어쩔 수 없다'거나 '골치만 아프다'며 피한다. 이해할 수는 있지만 '좋은 생각'이라고 지지해주긴 힘들다. 그것은 결국 내일을 포기하는 대응 방법이기 때문이다.
폭력적 구조가 굳건하고 그로 인해 생기는 사람들의 대립과 갈등을 당장 해결할 수 없다하더라도 오늘을 사는 우리는 적어도 두 가지는 해야 한다. 하나는 폭력적 구조에 굴복하는 가해자도 피해자도 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구조적 요인을 핑계로 다른 사람을 희생시키는 것도, 자신이 희생되는 것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쉬운 타겟을 찾아 공격하거나, 자신이 쉽게 공격받도록 놔둬서는 안 된다. 다른 하나는 대립에 몰두하지 말고 공동으로 구조적 요인을 탐색하고 문제에 대응하는 문화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 스스로가 가해자나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국 오늘 한 가지라도 긍정적인 생각과 행동을 하는 것이 폭력적 구조에서 비롯된 갈등에 잘 대응하고 내일을 포기하지 않는 길이다. 그리고 갈등에 맞서는 생존과 공존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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