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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방심하면 망한다평화갈등 이야기 /갈등해결 2016. 2. 26. 15:02
마주 앉았으니 됐다고?
작은 문제가 됐든 심각한 갈등이 됐든 해결을 위한 가장 기본적이고 동시에 최후의 수단은 대화다. 이것은 문제나 갈등으로 골치를 앓는 당사자들이 마주 앉아 논의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마주 앉는' 것이 쉽지 않다. 문제나 갈등이 심각할수록,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 대결하고 비난하는 것이 일상이 되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상대에 대한 미움이 증오로 바뀐다. 그러니 대화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은 알지만 마주 앉는 것은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된다. 이런 사람들이 마음이 변해서건, 아니면 주변의 압력 때문이건,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마주 앉기로 했다면 그 자체로 대단하고 축하할 일이다. 무엇보다 문제 해결의 희망이 생긴 것이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사람들은 일종의 성취감을 느끼면서 안도하고 방심하게 된다. 주변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마주 앉았으니 이제 시간만 지나면 모든 일이 해결될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마주 앉았으면 대화를 해야 한다. 그런데 대화가 쉽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화가 무엇인지 잘 알지도 못한다. 그저 앞에 앉은 사람과 얘기를 하면 그것이 대화라고 생각한다. 사실 그렇지 않다. 대화, 그러니까 영어로 dialogue는 문제를 공동으로 이해하고 해결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의견을 교환하고 토론하는 것을 말한다. 물론 같이 풀어야 하는 문제를 가진 사람들은 당연히 이런 목적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성적 생각과 습관적 행동이 따로 논다. 그래서 진짜 대화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일방적인 자기 주장, 상대에 대한 비난과 책임 추궁, 분노의 발산, 자신이 얻어야 하는 것 등등에만 초점을 맞춘다. 대화가 아니라 독백을 하고 이해가 아니라 비난을 하는 것이다. 거기에는 원인이 있다. 진짜 대화를 경험해 보지 않았고, 그래서 대화를 맥주집에서 각자 자기 얘기를 하거나 상대를 물고 늘어지는 논쟁으로 오해하기 때문이다. 결국 힘들게 만든 대화 기회를 날려 버리기 일쑤다.
대화, 디자인이 필요하다그렇다면 제대로 대화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뭐 이런저런 상세한 절차와 방법이 있지만 기본적이고 포괄적인 한 가지를 말한다면 대화를 디자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대화의 전체 모습을 설계하고 세부 진행안과 실행 방식을 만드는 것을 말한다. 동시에 대화의 흐름과 마주 앉은 사람들의 합의에 따라 설계를 언제든지 수정할 수 있는 융통성을 원칙으로 포함시키는 것을 말한다. 디자인을 한다는 것은 마치 옷을 만들기 위해 먼저 옷본을 그리는 것과 같지만 다른 점은 대화의 결론은 원했던 옷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마주 앉은 사람들이 어떻게 대화를 하고 어떤 합의를 하느냐에 따라 처음 예상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물론 대화의 단점이 아니라 장점이자 묘미다. 그러니 대화의 디자인에는 어쨌든 모두가 좋아하는 옷을 만든다는 목표 하에 아주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사항만 포함시키면 된다.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디자인한 대화를 잘 진행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대화를 하는 사람들이 정말 잘 협력해야 한다. 그런데 심각한 이견과 오랜 대립으로 관계가 안 좋고, 신뢰가 없고, 게다가 서로 비호감 또는 미움까지 가지고 있는 경우엔 이것이 불가능하다. 몇 시간 내내 서로 얼굴을 마주보는 것조차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엔 대화를 진행할 사람을 찾아야 한다. 진행자는 마주 앉은 사람들 사이에서 완충지대 역할을 하고, 대화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진행을 하고, 감정적 충돌이나 예상치 못한 대결이 생겼을 때 대화를 제자리로 돌리는 역할을 한다. 보통 다른 나라에서는 이런 일을 갈등해결 전문가나 전문 훈련을 받은 진행자가 한다. 그러나 내부 일을 밖으로 드러내길 꺼리는 한국 사람들은 외부인에게 이런 일을 잘 맡기려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정말 심각한 문제나 갈등을 해결해야 한다면, 그리고 정말 힘들게 마주앉는 기회를 만들었다면 꼭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주변에서라도 진행을 해줄 사람을 찾아보는 것이 좋다.한국인들의 문화적 특징 중 하나는 남의 도움을 받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개인이든 조직이든 마찬가지다. 독립적이어서가 아니라 자신의 약점이 밖으로 드러날까봐 조심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도움을 잘 받는 것도 문제나 갈등을 잘 해결하는 방법 중 하나다. 바쁜 직장인들이 좋은 반찬가게를 찾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동시에 필요한 사람에게, 다시 말해 풀어야 할 문제나 갈등이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잘 제공하는 것도 중요하다. 특별히 조직, 공동체, 사회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문제라면 당사자들에게 알아서 잘 해보라고 떠넘기지 말고 대화를 시작하고 잘 진행할 수 있도록 사적, 공적으로 관련된 주변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지원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중 하나가 바로 대화를 디자인하고 진행해줄 사람을 제공해주는 것이다. 그들이 어렵게 만든 대화의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나아가 대화가 무의미하게 끝나고 그 결과 실패한 대화에 대한 나쁜 기억 때문에 다시 마주 앉는 것을 피하지 않도록 말이다.'평화갈등 이야기 > 갈등해결'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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